[청우문대 전력] 벚꽃의 꽃말은

벚꽃

요즈음의 류청우는 생각이 많았다. 본래 그가 생각 없이 사는 인간이란 뜻이 아니라, 무언가 고민할 거리가 있는 사람처럼 오래도록 허공을 바라보는 일이 잦다는 말이다. 무언가 고민이 있다는 말을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는 그냥 멍 때리는 게 아니라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멍하니 앉아있는 걸 선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 않은가. 스트레스가 생기면 몸을 움직이는 걸로 풀고, 쉬는 시간이 생기면 가벼운 운동을 하며 보내는. 그러니까 본래의 류청우 같은. 그러니 다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고민이라도 있는 건지 알고 싶었다.

“류청우, 무슨 생각해?”

“…응? 나?”

“그래, 너.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그래서.

마침내 배세진이 우려를 참지 못하고 류청우에게 물었을 때엔 대기실에 함께 있던 모든 테스타 멤버들이 귀를 쫑긋거리며 둘의 대화에 집중했다. 이세진은 배세진을 ‘저 형이 요새 팀워크에 묘하게 더 열심이네.’하는 눈으로 바라보았고, 가볍게 메이크업을 수정받고 있던 박문대는 거울 너머로 비치는 두 사람을 빤히 쳐다보았다. 박문대 다음 차례를 기다리느라 의자에 앉아있는 김래빈 옆에서 장난을 치던 차유진마저도 조용해졌다.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일시에 조용해진 멤버들에 류청우는 조금 놀란 듯 주위를 둘러보고는 하하! 하고 평소같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 바람에 겨우 쥐어짠 용기가 바닥 난 배세진은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며 말을 이었다.

“혹시라도 힘든 일 있으면 말해. 그, 나 아니더라도 다른 멤버들한테라도 이야기해보는 게 어때.”

시선의 끝에 박문대가 있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류청우는 배세진이 말을 끝마치는 걸 다 기다리고 나서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에 테스타 멤버들 모두가 허탈해졌다.

“세진아, 고마워. 그런데 별 거 아니라 좀 민망하네. 그게, 그냥 벚꽃의 꽃말이 뭔지 생각하고 있었어.”

벚꽃의 꽃말.

며칠 내내 류청우를 우수에 젖은 남자로 보이게 만들었던 것의 정체가 고작 꽃말 따위였다니.

그의 발언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박문대는 ‘20대라 그런가, 연애라도 하고 싶나? 그래, 너무 틀어막아도 안 좋으니까….’ 같은 생각을 했다. 핸드폰을 켜서 ‘벚꽃 꽃말’이라고 검색창에 입력했다. 그리고 화면에 뜬 벚꽃의 꽃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 벚꽃 꽃말은 정신의 아름다움이래요.”

“응? 아아. 알려줘서 고마워, 문대야. 별 거 없네.”

“너희들 진짜 친하구나~ 청우 리더라고 멤버들이 엄청 신경써주네.”

박문대의 메이크업을 봐주던 스타일리스트가 그들을 놀리듯 말했다. 그러면서도 앞머리를 고정시키던 머리핀을 능숙한 손놀림으로 제거했다. 그런 그녀에게 이세진이 당연한 거 아니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여전히 거울 너머로 류청우를 보고 있던 박문대가 그가 앉아있는 소파 쪽으로 움직였다. 자연스럽게 류청우는 박문대에게 옆 자리를 내어주었다. 박문대는 슬쩍 다른 멤버들과 매니저 쪽 눈치를 보더니 류청우에게 속삭였다.

“형, 연애가 하고 싶으신 건가요. 벚꽃이 보고 싶으셔도 웬만하면 실내에서 하시고요. 그리고 회사에 상의하세요.”

류청우는 살짝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게 꼭 알았다고 긍정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안 괜찮은데 괜찮은 척하는 사람처럼 보였다고 박문대는 생각했다.

*

사실 류청우는 벚꽃의 꽃말에 대해 생각한 게 맞았다. 다만 그게 정말 궁금해서는 아니고 벚꽃을 보면 연상되는 게 있어서였다.

벚꽃을 보면 떠오르는 풍경. 지금은 꽤 지난 일이지만, 누군가와 산길을 걸었던 어느 날. 제 앞에서 큰 보폭으로 뛰어가는 그를 보며 그새 체력이 많이 늘었네 생각도 했지만, 흔들리는 분홍 머리카락이 솜사탕 같다고도 생각했다. 분홍빛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게 꼭 어린 날 가족들과 함께 갔던 놀이동산에서 사먹은 솜사탕 같았다. 그래서 조금은 기대했다. 내게 털어놓는 게 있을까, 내게 좀더 기대줄 수 있을까, 내가 그에게 전보다는 조금더 믿을 만한 사람이 된 걸까 하고. 실제로 산 중턱에 다다라서 그에게 들은 것은 좀 어처구니 없는 말이긴 했으나, 그래도 전보다 신뢰를 받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고 또 꽤나 설레었다. 그러니까 그 당시에는 그를 보면 전혀 벚꽃을 떠올리진 못했다는 거다. 그냥 놀이공원이나 다같이 가자고 말해볼까, 정도였다.

그런데 그 다음 해에 길가에 하나 둘 벚꽃이 피어나는 걸 보면서는 그가 떠올랐다. 다다음 해에도 차창 너머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벚꽃을 보니 그의 분홍 머리카락이 떠올랐다. 문대 머리카락이 분홍색이었나, 싶어서 옆에 앉아 스마트폰을 하고 있는 그를 흘끗 쳐다본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는 자꾸만 자기를 쳐다보니 스마트폰 화면을 끄고는 손에 꼭 쥐고 ‘이제 안 할게요.’하고 뻐끔거렸다. 내가 차안에서 휴대폰을 한다고 잔소리를 할까 싶었던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 네가 벚꽃을 닮아서, 라고 말하기엔 이상한 것 같아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 뒤에도 매년 벚꽃이 피면, 문대가 떠올랐다. 이게 이상하다고 느낀 건 얼마 전의 일이다. 그러니 벚꽃의 꽃말이 혹시 사랑인가, 조금 고민을 했을 뿐이다. 뭐, 문대는 연애가 하고 싶으면 회사와 상의하라고 했지만, 그와 먼저 이야기를 나눠보아야 할 것 같다. 아무래도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그것도 꽤 오래 전부터였던 것 같다고.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BL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