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문대

NINE to TEN

청우문대, 직장인if, 졸업과 단것과 강아지

티온랩실 by 티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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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우문대 24회 전력: 졸업

감사합니다!

나인 투 텐. 이게 뭐냐고? 뭐긴, 내가 연구실에 처박혀서 내 연구 하면서 교수 따까리짓도 겸사겸사 해야 하는 시간이다. 요일은 왜 없냐고? 연구실 생활에서 주말을 따지는 건 사치니까. … 알 것 다 아는 사이끼리 이런 걸 물어보는 이유는 뭔가. 남의 속 뒤집어놓으려는 거면 그건 류청우 하나로 충분하니까 그만 해 주었으면 좋겠다. 아무튼, 그래. 그러니까 원래라면 연애세포 비슷한 것도 활성화가 안 되는 게 맞는거다. 원래 사람은 진짜 너무너무 바쁘고 사는 게 힘들면 연애 비슷한 것을 하고 싶은 마음도 안 들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바로는 분명 그랬는데 말이지.

 

“문대 선배, 혹시 이 기기 쓰는 방법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아, 네. 잠시만요.”

“내려간 김에 잠깐 1층 카페 들러서 사 왔어요. 딸기라떼 좋아하셨던 것 같아서요, 하하.”

“어, 고마워요. … 청우 형은 뭐 좋아하세요? 저만 먹긴 좀 그런데. 한 잔 사 드릴게요, 같이 가시죠.”

 

자연스럽게 단둘이 있는 시간을 만들어내는가 하면, 부담스럽지 않은 선물 공세까지 펼쳤다. 그러니까, 스트레스를 받으면 으레 당기는 수많은 단것 같은 걸. 제 취향에 맞춰 시럽을 잔뜩 넣은 딸기라떼, 한입에 털어넣고 우적우적 씹을 수 있는 초콜릿, 근처에 새로 열었다는 디저트 가게에서 사온 맛 좋은 구움과자 같은 것들. 류청우가 왜 그런 것들을 사다 바치는지에 대해, 처음의 박문대는 ‘선배한테 잘 보이려는 사회생활’이라고 답했지만.

 

“제가 정말 석사를 딸 능력은 있는 걸까요, 문대 선배.”

“… 원래 처음엔 다 모르고, 다 잘 못하고,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죠.”

“하지만 석사 과정은 고작 2년인데,”

“그래서요? 어차피 논문은 디펜스 준비랑 겸해도 마지막 반년이면 완성할걸. 실험은 1년이면 충분하고. 교수 지랄은 신경쓰지 마요. 어차피 매번 미팅 때마다 말 바꾸니까.”

“바, 반년…….”

“형 멍청하다고 쪼는 인간들 있는 건 나도 아는데, 내가 보기에 청우 형은 그 정도 아니에요.”

“청우 형, 1층 카페에서 여름 특선으로 오렌지주스 팔던데요. 드실래요?”

“어? 아, 하하! 고마워요, 선배. 잘 마실게요.”

 

사실 별 말을 해준 건 아니다. 그냥 가끔 좋아하는 거 사다주고 뒤에서 괴롭히는 놈을 좀 잡아줬을 뿐이다. 단지 몇 없는 후배 – 나보다 나이는 많지만 어쨌든 늦게 들어왔으니 후배는 후배다 - 가 도망치지 않도록 적당히 당근을 준 것 뿐이라고. 정말 그뿐인데 왜 저놈은 그런 얼굴로 그런 말을 했던 걸까.

 

“형, 보고 싶을 거에요.”

 

… 그러니까 왜 내 졸업식에서 비 맞은 강아지같은 얼굴로 저런 말을 하느냐고. 덩치는 늑대만한 녀석이 강아지마냥 순한 눈망울로 그런 말을 해 봤자 별로 아무 느낌도, 아무 느낌이, 든다. 왜지. 그냥 후배일 뿐인데, 당장 내가 이곳에서 발을 빼는 순간 데면데면해질 관계일 뿐인데. 솔직히 디펜스 통과한 직후엔 그냥 이 녀석도 있으니 경력도 쌓을 겸 한 학기만 더 석사연구원 하고 나갈까, 하는 생각도, 아니 미쳤던 것 같다 진짜. 기껏 졸업해놓고 이 지옥에 더 머무를 생각을 하다니.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그 생각을 했을 때 이미 내가 평소답지 않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고, 슬퍼하는 얼굴을 보면 내 기분도 덩달아 가라앉고, 나보다는 저 녀석 생각을 나도 모르게 먼저 하게 되는 것이 뭐 때문인지 알았어야 했다. 그때는 몰랐고, 이제는 안다. 그뿐이다. 그러니 류청우는 내 머리에서 슬슬 잊히는 게 맞는데 말이지.

 

“이번에 연구개발팀으로 배정받은 류청우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박문대 팀장님.”

 

그런데 왜 이 녀석이 이렇게 상쾌하게 웃으면서 또다시 내 후배랍시고 나타난 건지 모르겠다. 아니, 어차피 같은 연구실 출신에 졸업논문 주제도 비슷했으니 일하다가 같은 회사에서 마주칠 수도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실제 마주하는 건 다르다고. 그러니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새 팀원이 배정된 것을 축하하는 회식이 파한 자리에서 답지않게 술에 취한 류청우가 내게 그런 말을 하기 전까지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보고 싶었어요, 선배.”

 

전보다 더 든든해진 몸으로 맹수의 눈을 강아지처럼 휘며 헤헤 웃는 그 부드러운 얼굴에 내가 뭐라고 해야 했냐고. 그러니까, 연구실 탈출하고 1년쯤 되었으면 이젠 이런 말을 들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때가 되지 않았냐고. 나는 점점 거칠어지는 심장박동을 애써 무시하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학위과정은 무사히 졸업했을지언정, 아직 류청우에게까지 졸업하지는 못한 모양이다. 그래, 나는 여전히 나인 투 텐, 아니 나인 투 나인이다. 류청우 생각에서 졸업하지 못한, 주말 없는 24시간의 나인 투 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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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졸려하는 비버

    졸업 노... 평생 24/7 류청우 생각에서 졸업 못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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