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문대

사진과 여름비

청우문대, 완결 후 if, 사진과 소나기와 웃음소리

티온랩실 by 티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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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우문대 23회 전력: 사진 / 빗소리 / 별처럼 반짝이는

감사합니다!

류건우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고, 또 잘했다. 가장 제정신이 아니던 그 시기에도 카메라는 버리지 않았을 정도로, 취미라 삼아보고자 했던 몇 없는 것을 사진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아이돌이 된 지금도 그 실력이 어디 간 것은 아니어서, 박문대는 이따금 시간이 나면 근처로 사진을 찍으러 나가곤 했다. 동행하는 사람은 각자의 일정에 따라 그때그때 달랐고, 오늘은 류청우가 동행하기로 했다. 류청우는 자신이 운전해줄테니 원하는 곳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고, 박문대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럼 교외에서 차박을 해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어려운 부탁이라는 건 알았지만, 막상 또 승낙을 받으면 괜히 얼떨떨해지고 마는 것이다.

 

“제가 부탁드리긴 했는데, 정말 괜찮으신 건가요.”

“하하. 나도 한번쯤은 해 보고 싶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박문대는 목끝까지 차오른 반박을 천천히 넘겼다. 아무리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이 이상 물어보기엔 괜히 양심에 찔린 탓이었다. 그래서 박문대는 화제를 돌렸다. 류청우도 마찬가지였는지 순순히 박문대의 리드에 따라주었다.

 

“형 사진도 몇 장 찍어드릴까요. 오늘 갈 곳이 사진 잘 나오기로 유명한 곳이라서요. … 러뷰어 분들도 좋아하실 것 같고.”

“음, 그럴까? 그럼 문대는 내가 찍어줄게.”

 

박문대는 몇 년 전 했던 예능을 떠올렸다. … 철새 사진 찍는 것보다는 차라리 쏘아 맞히는 게 더 쉬울 것 같다며 웃던 놈이 어디 살던 누구였던가. 그때를 떠올린 박문대는 피식 웃었고, 그 웃음소리에 고개를 돌린 류청우는 박문대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금방 눈치챈 것 같았다.

 

“어, 음, 그게 몇 년 전인데, 형.”

“기억은 나냐? 너 그때 뭐라고 했는지.”

“응, 기억 나. 그래도 지금은 그때보다는 나아졌잖아요.”

“오냐, 그래.”

 

전혀 진심이 담기지 않은 대답에 류청우가 힘없이 하하 웃었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긴 했다, 항상 셀카 아니면 멤버들의 재밌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 정도만 찍어 올렸지, 제대로 사진을 배울 기회가 있던 것도 아니었으니 남을 찍는 사진 실력이 크게 늘어나지는 않았다. 박문대는 운전하는 류청우의 머리를 대충 쓰다듬어주고는 스마트폰을 꺼내 오늘 찍을 사진의 콘티를 점검했다. 차박을 해도 괜찮은 스팟은 이미 찾아서 내비게이션에 입력해두었고, 원하는 풍광은 가서 찾으면 된다. 사실 오늘 찍고 싶은 것은 별 사진이었으니 그것도 밤에나 가능하겠고, 그럼 도착하고서는 주변 탐색을 빙자한 산책을 빼면 크게 할 일이 없나. 박문대가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보는 사이 류청우는 목적지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제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류청우를 보고 조금 놀란 박문대가 길게 숨을 내뱉었다.

 

“놀랐어?”

“아뇨, 괜찮습니다. 운전 고생하셨어요, 형.”

“하하, 아니야. 덕분에 좋은 풍경도 보잖아. 여기서 찍을 거야?”

“글쎄요, 주변 좀 걸어보고 결정하려고 하는데요.”

 

어느새 반대편에서 걸어와 차문을 열어준 류청우가 장난스레 웃으며 박문대에게 손을 내밀었다. 에스코트하듯 내밀어진 손을 본 박문대는 피식 웃고는 류청우의 손에 기꺼이 제 손을 포갰다.

 

“같이 갈 거냐?”

“응, 좋아.”

 

만약 류청우에게 꼬리가 있다면 지금쯤 아주 정신없었을 거다. 박문대는 은근슬쩍 제 손을 잡고는 놔줄 생각이 없어보이는 류청우의 한껏 치켜올라간 입꼬리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상관없었다. 길가에는 여름 코스모스가 한껏 피었고, 저 멀리까지 청보리밭이 한없이 푸르게 펼쳐졌고, 하늘은 새파랗고 맑- 잠깐. 박문대는 질겁했다. 웬 시꺼먼 구름이 떼로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청보리밭의 저 끝부터 서서히 비에 젖어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박문대는 류청우의 손을 잡고 무작정 달렸다.

 

“문대야?”

“비 온다, 차로 들어가!”

“어? 어?”

 

놀라서 눈이 동그래진 류청우를 얼른 차 안에 밀어넣고 박문대가 차에 타기 무섭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소나기가 온다는 예보는 보지 못했으니 아마 오래 내릴 비는 아니겠지만, 저 아래 있었다면 분명 감기를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땅히 숙소를 잡아둔 것도 아니었으니까. 저야 그 정도는 익숙하지만, 류청우는 감기에 잘 안 걸리는 만큼 한 번 오면 독하게 올 것이었다. 박문대는 유리창을 거세게 때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여름비니까 차갑지는 않겠지만, 걱정은 자유다. 류청우가 비에 젖지는 않았는지 계속 살피던 박문대에게 류청우가 말을 걸었다.

 

“형.”

“왜 그러냐, 류청우.”

“그래도 빗소리 들리니까 나름 운치가 있다, 그렇지?”

 

이건 또 예상치 못한 전개다. 잠깐 입을 벌리고 류청우를 보던 박문대는 제게 동의를 구하는 제법 유치한 표정을 보고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그 소리가 꼭 별처럼 반짝거려서, 류청우는 또 눈매와 입꼬리를 한껏 휘며 웃었다.

 

“비 안 맞아서 다행이기도 하고.”

“그래. 나야 그렇다 쳐도 너는 한 번 오면 독하게 올 테니까.”

“형은 왜 그렇다 치는데.”

“약 먹으면 움직이는 데 지장 없으니까-”

“안 돼. 집에 도착하면 따뜻한 배즙이랑 비타민 챙겨먹자, 문대야.”

“…… 옙.”

 

다행히 비는 오래 지나지 않아 그쳤고, 박문대는 무사히 목표했던 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차박하고 난 다음날에는 푸른 밭을 배경으로 류청우의 화보를 찍는 것도 성공적이었다. 만족스러운 출사를 마친 박문대는 류청우와 함께 숙소로 복귀했고, 멤버들이 보는 앞에서 실시간으로 류청우의 사진을 보정하며 담담한 주접을 떨어 류청우의 목덜미를 붉게 물들여주었다. 그 이후로는 박문대의 동행 자리 경쟁이 치열해진 탓에 같이 다니기는 조금 어려워졌지만, 돌이켜보면 오히려 그 덕분에 동행할 때마다 더 즐거웠던 것 같다. 그리고 어쨌든 박문대의 연인이라는 자리는 이제 제 차지니까. 침대에 누운 류청우는 회상을 마치고 제 형을 꼭 끌어안으며 예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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