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ttersweet Teatime
그리고 이 명제는 그 역 역시 성립한다.
테스타 최고 리더 류청우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언제까지나 행복해야해 우리 천재사격자아기늑대리드보컬~~
#별들의_리더가_행차하신다
#HAPPY_CHUNGWOO_DAY
Bittersweet Teatime
- 그리고 이 명제는 그 역 역시 성립한다.
아. 이건 꿈이다.
류청우는 눈을 떴다. 그래, 눈을 떴더니 웬 낯선 공간으로 순간이동한 것 같은 기분은 이번이 두 번째지. 그때는 현실이었고, 지금은 꿈이라는 것이 다른 점이겠지만. 익숙한 천장과 방은 어디로 가고, 그를 맞이한 것은 그림자 한 점 없이 연푸른색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그리고 눈앞에 서 있는 건 류청우도 익히 아는 그 존재. 생일을 맞아 류청우는 류청우와 마주했다. 이게 선물인지 어쩐지는 사실 너무도 분명했다. 그래서 류청우는 심연에서 치미는 질투를 애써 짓누르며 저를 응시하는 류청우를 노려보았다. 그럼에도 시선을 받아치는 저 눈에는 도리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류청우는 주먹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 * *
이 공간의 끝은 어디일까? 서로를 한참 보기만 하던 둘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몸을 돌려 공간을 탐색했다. 그로써 얻은 결과는 간단했다. 이 공간은 현실과 유리된 어떠한 공간이며, 테스타의 현 숙소 거실과 비슷한 크기지만 출구는 어디를 조사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여기서 나가기 위해서는 모종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뜻인데, 류청우는 그 조건을 알 수 없었으나 저 건너편의 류청우는 아무래도 조건을 아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그 조건을 알아내고 싶었다. 짓밟혀 비틀린 자의 알량한 자존심이라 해도 좋았다. 적어도 그는 저 류청우에게 뭔가를 물어보고 싶지 않았다. 고작 질문 하나이니 별것도 아님을 알면서, 물어보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는 것도 알면서. 그는 몸을 돌려 다시 공간을 살피려고 했다. 저쪽에서 먼저 말을 건네지 않았더라면 아마 의미도 없는 탐색을 다시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고는 제풀에 지쳐 한숨을 좀 쉬었겠지.
“그쪽.”
류청우는 저도 모르게 움찔거리는 손을 애써 꾹 쥐었다. 낮고 차분한, 자신의 것임에도 낯선 목소리가 저를 부르는 경험은 참 기묘했다.
“거길 살펴봐도 나오는 건 없어.”
“… 그래서.”
“앉아.”
류청우는 서늘한 눈으로 류청우를 보았다. 어느 류청우인지 구별할 필요는 없었다. 한 류청우는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였으나 담담했고, 다른 류청우는 아직 자신의 상처를 핥는 것만으로도 벅차 상대를 바라보지 못했으니까. 어쨌든 류청우 둘 다 이곳에서 나갈 필요성은 인지하고 있었으므로, 상대를 노려보다시피 하던 류청우는 아주 느릿느릿, 어느새 나타난 의자에 앉았다. 두 류청우가 모두 푹신한 의자에 앉자, 기다렸다는 듯 착착 준비된 티 테이블 위에는 아기자기하고 달콤한 과자가 가득한 애프터눈 티 세트가 준비되어 있었고, 새하얀 테이블보 위 곳곳에는 흰색과 분홍색 무궁화가 참 예쁘게도 놓여 있었다. 놀리는 건가? 류청우는 짜증스레 눈을 꾹 감았다. 어느새 제 앞에 놓인 단정한 찻잔에는 산뜻한 향을 풍기는 따뜻한 차가 채워졌다. 표정이 굳은 상대의 잔을 채워준 류청우는 제 잔도 같이 채우고는 잠시 고민하다 옆에 놓인 각설탕을 퐁당, 넣었다. 그가 아는 누군가를 닮아 달콤해진 차를 한 모금 조심스레 마신 류청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기서 아이돌 이야기를 꺼낼 필요는 없다. 그러니까.
“형은 단 걸 좋아하는 것 같아.”
“...”
“스트레스를 받으면 가끔 단 걸 찾더라고.”
여전히 서늘한 시선으로 류청우를 보던 류청우는 그 말을 듣고는 기세를 조금 누그러뜨렸다. 그제야 천천히 찻잔을 들어 향을 맡는 류청우를 본 류청우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내게도 권해준 적이 있거든. 단 걸 많이 먹는 게 몸에 좋은 건 아니지만, 세진이가 막을 정도로 자주 찾는 것도 아니고, 유진이도 보이면 뺏어 먹으니까 그냥 놔두지만.”
“… 그래?”
“응. 형이 요리할 때는 간을 세게 하지 않아서 단 걸 좋아하리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의외였지.”
대화하는 상대가 류청우가 아닌 다른 이였다면 한 마디쯤은 덧붙였을지도 모르겠다. 얻어먹는 처지에 그런 것까지 따지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어쨌든 저쪽도 류청우니, 류청우는 굳이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이쯤이야 상대도 얼마든지 쫓아올 수 있을 것이다.
“… 그랬던 것 같네. 차유진에게 김치볶음밥을 해준 걸 봤거든.”
“하하, 부럽네. 형이 해 준 김치볶음밥은 맛있거든.”
“내가 얻어먹은 건 아닌데.”
“그래.”
안다. 류청우는 설탕 탄 차를 다시 한 모금 머금었다. 적당히 따뜻한 차가 달콤하고 향긋하게 입안을 맴돌았다. 아, 이제 알았다. 사과가 가미된 차다. 차를 누가 골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사과 향이 나는 차라니 정말 그의 형을 떠오르게 하는 선택 아닌가. 류청우는 아주 잠깐 미소를 지었다가, 차를 넘김과 동시에 본래의 서늘한 얼굴로 돌아왔다. 탈출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저 류청우, ‘스티어 류청우’와 이야기를 나누고는 있었지만, 역시, 그는 저 류청우가 어려웠다. 저 류청우 때문에 제 형도, 저도 마음고생을 잔뜩 했다는 것을 떠올리면 더더욱. 그래서 류청우는 차나 한 모금 더 마시기로 했다. 어쨌든 달콤한 사과차는 그의 형과 닮아서, 그 차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류청우의 마음이 조금 더 따뜻해졌으니까.
“… 친척이었다고 하던데. 원래 알던 사이였어?”
물론 그렇게 따뜻해진 마음은 금세 식어버렸다. 푹신한 등받이에 살며시 기댄 채 차를 음미하던 류청우는 푸른 눈을 조금만 들어 류청우를 보았다. 향만 맡고 도로 찻잔을 내려둔 류청우는 차를 마시는 류청우를 잠깐 마주보다가, 시선을 돌리고는 트레이에서 마들렌을 집어들었다. 조개 무늬가 새겨진 면에 박힌 오렌지 칩이 귀여운 마들렌을 한입 베어문 류청우는 입이 조금 달았는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오렌지와 사과 향, 새콤하고 씁쓸한 듯하면서도 결국은 달콤한 향이 입안을 맴돈다. 차를 몇 모금 더 마시고서야 류청우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반대편의 류청우는 여전히 반쯤 내리깐 시선을 류청우에게 고정하고 있었다.
“네 스마트폰 갤러리에 옛날 영상이 가득하던데. 류건우… 형, 이 있는 부분만 잘라서 저장해둔 거. 나는 그 형을 몰랐는데.”
사과 향이 여전히 입안을 맴돌았다. 그를 떠오르게 하는 향이. 류청우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그래, 궁금했다. 정작 그땐 알지 못했던 류건우가, 책을 좋아하고 혼자 조용히 있는 걸 좋아하던 어린 류건우가 궁금해서 그렇게 저장해뒀다. 한편, 그런데, 저 ‘형’이라는 호칭은 왜 거슬리는 걸까. 머리로는 분명 저 류청우 역시 류건우를 형이라 부를 권리가 충분하다는 걸 아는데도.
“… 아니, 몰랐어. 촌수가 멀어서 평소에 교류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류청우는 뒷말을 삼켰다. 알았다면 그게 더 문제 아니었을까. 이젠 ‘류건우’의 사정을 아는 류청우는 가슴을 짓누르는 선득한 감각에 손을 명치께로 잠시 올렸다가 내렸다. 짙은 연민과 묵은 울분. 류청우는 그것들을 잘 달래 가라앉히고 상대를 보았다. 아, 그래. 저 류청우는 그걸 모른다. 그러니 제게 그런 것을 묻는 것이지. 류청우는 반투명한 창이 띄워주었던 내용을 다시금 되새겼다. 그, 테스타 류청우에게는 상대, 스티어 류청우를 헤집어 띄울 의무가 있었다. 그건 사실 전혀 어렵지 않다. 류청우는 자신의 어느 상처를 어떻게 헤집어야 가장 아픈지 아주 잘 안다. 그럼에도 그러지 않는 이유는 첫 번째, 제가 익숙한 통증에 헤집어지면 그의 형이 더 아파할 것을 아는 까닭이고, 두 번째, 그렇게 돌려보내면 그의 형이 제게 괜히 마음 쓸 것을 아는 까닭이고.
“그때 형이 어땠는지 궁금해서. 형에게 물어봐도 대답 안 해줄 것 같았고.”
마지막, 결국 저 사람은 분기점에서 갈라진 자신이기 때문에. 이는 두 번째 이유와도 상통한다. 제 형은, 곯아터진 고통에 몸부림치는 순간마저도 너무도 다정하고 따뜻해서 결국 의지하게 되어버리고 마는 류청우의 형은 저 류청우 역시 아끼기 때문이다. 그러니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류청우는 ‘류건우’의 이야기를 하며 류청우를 흔들었다.
“친척이라면서 날 안심시키려 하면서도 정작 옛날 이야기는 거의 안 했거든.”
기억날 리 없는 이를 기억난다고 거짓말했던, 그래서 아주 미약한 기대를 멋대로 맛보았던 이는 다시금 찻잔을 들어올렸다. 새콤달콤한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아주 익숙한 향이다, 하지만 류청우는 여전히 이 차가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는 그 상태로 조금 식은 찻물을 한 모금 마시다 다소 충동적으로, 옆에 놓인 오렌지 조각 하나를 퐁당 빠뜨렸다. 저편에서 류청우가 오렌지 칩이 얹힌 휘낭시에를 집어먹는 것이 보였다. 입안이 너무 달아 조금 쓰렸다. 너무 오랜만에 느끼는 단맛이었다. 목이 탔다.
“다정한 사람이지. 아마 그때도 그랬을 거야.”
“그러게.”
그 다정에 꼼짝없이 사로잡힌 두 류청우는 처음으로 서로를 향해 웃음 비슷한 것을 내뱉었다. 류청우가 힘들어하는 것은 기가 막히게 알아채면서, 그가 힘든 것 따윈 아무렇지 않게 취급하던 모습이 떠올라서. 오렌지 향이 달큰하게 입안을 맴돌았다. 류청우는 찻잔의 차를 전부 마시고는, 티팟을 들어 아직 따뜻한 차를 찻잔에 따랐다. 여기 놓인 것은 온통 달콤한 것뿐이었다. 마치 그의 형이 제게 주려는 것들처럼.
“… 그 형을 사랑하지.”
“당연하지.”
류청우는 시원하게 인정했다. 반대편에 앉은, 한동안 그의 몸을 차지했던 저 류청우도 아마 그럴 것이다. 아무리 류청우가 오랜 시간 동안 의지할 곳 없이 홀로 타들어갔다고 해도 결국 그 역시 아이돌이었으니까. 팬은 아이돌을 사랑한다, 그리고 이 명제는 그 역 역시 성립한다.
또한 이러한 명제 역시 성립한다. 아이돌은 팬으로 말미암아 존재한다. 그러니 어느 세계에서든 류건우는 류청우를 사랑한다. 류청우 역시 류건우를 사랑한다. 그러니, 류청우는 류건우로 연유하여 존재한다. 아니, 사실 굳이 그것이 아니더라도.
“그 형도?”
“그래.”
생략된 목적어와 동사가 무엇인지를 괜히 머리 굴려 추측할 필요는 없다. 알면서 괜히 물어보는 거니까. 류청우는 가라앉은 눈으로 류청우를 보았다.
“… 생각을 좀 정리해봐야 할 것 같은데.”
류청우는 비로소 웃었다. 자각하지 못했던 사랑을 깨닫는 순간이야말로 류청우가 가장 흔들리는 순간이니까.
“류청우.”
“?”
“정말 단 한 순간도 느낀 적이 없어?”
맹한 표정을 띄우던 얼굴은 질문의 본의를 깨닫고 정체모를 감정을 점점이 피워낸다. 그것을 본 류청우는 다시금 찻잔을 들어올렸다. 류청우는 답을 안다. 그 역시 저와 같은 과거를 일부 공유하므로, 어느 정도 다져진 눈치라는 게 있으니까. 찰나의 순간 느껴진 사랑을 류청우가 몰랐을 리 없다고. 황금빛 찻물 너머로 테이블 위의 무궁화가 푸르게 아른거린다.
“네 심연에 매몰되어 외면한 게 아니라?”
류청우의 얼굴에 생긴 균열을 본 류청우는 조금 만족했다.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오렌지 휘낭시에를 하나 더 베어문 류청우는 눈앞의 창이 클리어 문구를 띄우는 것을 보며 등받이에 몸을 느릿느릿 기댔다. 마지막으로 본 스티어 류청우가 이를 악문 채 저를 노려보던 모습이 조금 이질적이었으나, 결국 그 역시 저의 또다른 모습이기에 무슨 심정으로 저를 그리 보았을지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류청우가 예측하지 못한 반등의 불씨를 받아 사라진 자리에서, 류청우는 눈을 몇 번 느리게 깜박이고, 남은 휘낭시에를 꿀꺽 삼키고는 자리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사라졌다.
* * *
류청우는 눈을 떴다. 해는 어느덧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조금 서늘한 가을바람이 부는 계절의 한가운데에서, 서서히 지워지는 꿈결 너머로 류청우는 아주 느릿하게 생각했다. 그의 팬이자 형인 그 사람과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완전히 망가진 어깨가 그를 주저앉혔음을 알게 된다 해도, 기꺼이 자신에게 아직 빛이 난다고 말할 그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마들렌: 녹인 버터와 계란(전란), 설탕, 박력분 등으로 만드는, 일반적으로 조개 모양의 틀에 구워낸 부드러운 디저트.
*휘낭시에: 태운 버터와 계란(흰자), 설탕, 박력분 등으로 만드는, 일반적으로 직사각형 모양의 틀에 구워낸 조금 단단한 디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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