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전

Fallen, do not be Fallen

12/15, 단 하나를 위해 괴물의 미로에 뛰어든 용감한 사람에게

티온랩실 by 티온
13
0
0

아아 거기 동생건우씨 계신가요? 예 당신이요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큰달씨 생일축하해 우리아가♡ ...라고 형문대씨가 써서 보내주셨네요 악필이라 몰라봤네 그치만 저두 동의해요

"박문대."

자신과 비슷한 얼굴의, 하지만 그보다 훨씬 관리받은 태가 나는 남자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상황이란 어떤 느낌일까. 도플갱어? 아니, 그렇다기엔 닮았을 뿐이지 똑같지는 않은 것 같은데! 애초에 박문대는 그런 쪽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까, 박문대는 지금 눈앞에 나타난 저 사람 때문에 아주, 아주, 아주 많이 놀랐다! 박문대는 깜짝 놀라느라 앞에 선 남자의 표정을 살필 겨를이 없었지만, 사실 남자는 곤란하다 생각하면서도 박문대를 보며 슬며시 웃고 있었다. 남자의 하나뿐인 가족이 본다면 아르릉거릴 얼굴로.

"누, 누구세요?"

"나 말이냐. 흐음."

남자는 턱을 괸 채 잠시 생각에 빠졌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는 아는데,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고르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흡사 그의 형을 연상케 해서, 박문대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이름을 입에 담아보았다.

"혹시 건우 형이에요...?"

"바로 알아채네."

"네에?!"

박문대는 경악했다. 그러니까 지금 박문대는 형의 물건을 정리하고 나오는 길에 자신이 류건우라 주장하는, 저와 닮은 듯한 남자를 만난 것이다. 아슬아슬한 난간 옆에 선 채, 양손에 가득 찬 비닐봉지를 든 스물여섯의 박문대를 본 남자의 눈에 순간 씁쓸함이 비쳤다. 박문대가 그것에 대해 질문하기도 전, 남자는 그린 듯 아름다운 웃음을 띄웠다. 그 웃음마저도 건우 형이 보여주던 그것 같아서, 박문대는 그만 쥐고 있던 봉지를 놓쳐버렸다. 사람이 너무 충격을 받으면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댔는데, 박문대를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아니면 아예 임계점을 넘어 표현을 자제할 이성조차 남지 않았던지. 박문대는 떨리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남자는 그런 박문대를 보며 어깨만 으쓱일 뿐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형이 왜, 아니, 어떻게 계세요? 거짓말이죠?"

"..."

남자는 무어라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 박문대의 표정을 보고는 그냥 입을 닫았다. 남자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던 것과 별 차이 없는, 아직 소년의 모습이 남은 이는 무표정한 얼굴과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구원이었던 사람을 자처하는 남자에게 물었다.

"왜 그랬어요...?"

자신 때문에 무너진 사람을 목도하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남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박문대가 조금이나마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헐떡이는 웃음과 말라버린 울음이 멎은 후에야, 박문대는 서서히 눈을 감았다. 남자는 줄이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지는 박문대의 신형을 조심스레 받쳐 안았다. 감싸안은 손이 가늘게 떨렸다.


"... 으음."

"정신이 좀 드냐."

"으으..."

"아직인가."

남자는 소파에 앉아, 마찬가지로 소파에 뉘여둔 박문대의 베개 역할을 자처하고 있었다. 묘하게 단단하지만 따뜻한 베개에 머리를 부비던 박문대는 제 앞머리를 조심스레 매만지는 손길에 서서히 눈을 떴다. 머리를 만져주는 손길은 좋았지만, 자신에게는 더 이상 그런 다정한 행동을 해 줄 사람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박문대가 깨어났다는 것을 알았는지, 남자가 듣기 좋은 미성으로 말을 걸었다. ... 분명 자신의 목소리와 비슷한 결인데도 명백히 달라서, 박문대는 졸음에 멍한 머리로 그저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우선, 갑자기 데려와서 미안하다. 너에게 해를 끼칠 일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냥 잠깐 일이 있어서, 그래서 온 거야. 네가 뭘 잘못한 건 아니다. ... 이왕 자는 김에 좀 더 자지 그랬냐. 얼굴이 말이 아닌데. 밥은 먹고 다니는 거냐, 안 그래도 힘든데 밥도 안 먹으면 어떡하려고."

조곤조곤 저에게 잔소리하는 목소리를, 따로 덧그리지 않아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 작은 미소를 더는 보고 들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가정 하나가 박문대의 숨을 막았고, 한때 박문대의 숨통을 틔웠던 그 카메라의 주인이 실은 제 구원자였다는 사실은 거대한 돌이 되어 박문대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자신이 형이라 지칭한 이 남자는 그런 걸 알고는 있는 걸까. 박문대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등을 돌린 채 마른 볼을 남자의 허벅지에 문댔다. 남자는 박문대의 어리광에도 불쾌하다는 기색 하나 없이 여전히 머리카락을 조심조심 쓰다듬고 있었다.

"그러면, 형."

"어."

"형은 미래의 형이에요?"

"... 너는 왜 애가 편견이 없냐."

보통 이런 걸 보면 사기라고 의심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둥, 이렇게 순해서 대체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헤쳐온 거냐는 둥 남자가 또다시 잔소리를 늘어놓았지만 박문대는 그게 마냥 좋았다. 왜냐면 이 잔소리가 오늘 병원에서 들은 말을 정면으로 반박할 수 있을 근거인 것 같아서.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건 알면서도 부정하고 싶지 않아서.

"말해주세요, 네?"

"... 허."

어이가 없다는 듯 툭 내뱉는 숨소리에도 기분이 나쁘다는 기색은 전혀 없다. 무언가를 숨기거나 꺼리는 눈치도 박문대는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면 조금 더, 조금 더 물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박문대는 괜히 얼굴을 파묻었다.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작게 묻혔지만, 남자는 못 알아들을 것 없다는 듯 잔뜩 웅크린 채 제 다리를 베고 누운 박문대의 어깨와 팔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형은, 안 돌아가시는 거죠?"

"... 그래."

거짓말은 아니다. '테스타 박문대'는 죽지 않았으니까. 다만 진실도 아니었다. 류건우와 박문대 모두 죽음에 한 발 걸쳐진 상황이 없었다면 남자 역시 존재할 수 없었다. 남자는 지금의 류건우를 떠올렸다. 미친 짓을 저지른 자신을 본 박문대가 어떤 심정이었을지도. 박문대 역시 머잖아 형의 숨이 멎으리란 것은 어렴풋이 짐작하던 것이라고도 했지만, 이 아이가 정말 그런 말을 들으면 울 것 같아서. 남자는 그래서 자신의 화술을 십분 발휘했다.

"안 죽었어. 멀쩡히 살아서 아이돌 하고 있으니까 걱정 마라."

"아이돌이요...?"

"그래, 아이돌. 1군 대상 아이돌 테스타라고 아냐."

"헤헤."

그래, 모른다는 거다. 남자는 박문대의 뺨을 아프지 않게 쭉 잡아당겼다. 박문대는 괜히 엄살을 부리며 아야 아파요 혀엉 같은 말을 조금 뭉개진 발음으로 내뱉었다. 아주 오랜만에 웃는 것 같았다. 그동안 남자는 허공을 응시하며 작게 웃었다. 큰달,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아주 작게 들렸다. 익숙한 호칭에 박문대는 퍼뜩 몸을 일으켰다.

"네?"

"갑자기 왜 그래. 어디 불편하냐?"

"방금, 바,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남자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박문대를 보다가 아, 소리를 내었다. '큰달'이라는 닉네임은 사실 이쪽에서부터 나온 것이었으니 당연히 박문대 역시 알아들을 것이라고 추측했어야 했다. 남자의 실수였다. 남자는 머쓱한 듯 목덜미를 만지작거렸다. 그 모습이 꼭 형이 몰래 저를 챙겨준 것을 들켰을 때의 모습과 똑같아서 박문대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제, 제가 혹시 제가 댓글 달던 닉네임이 큰달이라는 것도 알려드린 거에요...?!"

"어, 네가 알려줬어."

"... 으아악!"

그래, 너는 이런 아이였는데. 남자는 박문대가 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언뜻 허공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차게 가라앉은 눈이 서글픈 빛을 띠었다. 남자가 박문대를 불렀다.

"박문대."

"네, 형!"

"... 넌 의심 좀 하고 살아라. 괜히 나 살리겠다고 이상한 곳에 뛰어들지 말고, 그냥... 사람으로 살아."

"... 네?"

"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해줬다고, 왜..."

"네??"

남자가 의미모를 조언을 읊기 시작한 순간, 박문대는 남자의 머리카락이 저와 같은 흑갈색에서 반짝이는 금색으로 바뀌는 광경을 멍하니 보았다. 그리고 창밖에서 쏟아지던 투명한 햇빛이 순식간에 황금빛과 자줏빛, 붉은빛이 화려하게 뒤섞이며 펼쳐지는 노을로 변화하는 것을 보았다. 어디에서 봤지? 익숙했지만 익숙하지 않은, 모순된 감각이 박문대의 뇌를 강타한다. 그 빛을 받으며 제 앞에 앉은 형은 오르골 소리와 함께 곧 사라질 것만 같아서. 박문대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온기가 스치는 그 감각은 박문대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슬프고 가슴이 아팠다.

"고맙지 않다는 게 아니다. 후회한다거나 싫다는 것도 아니야. 운에도 이유는 있으니까. 그런데 그게 너를 대가로 만들어진 거라면, 네가... 그런 일을 겪어서 만들어진 운이라는 걸 알았다면 어땠을까.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형, 그게 무슨 말이에요...?"

" 찾으려면 오래 걸리겠지만, 그래도 괜찮다면 꼭 행복해져라. 전부가 아니라도 괜찮다. 네가 못미덥다던지, 그런 게 아니야. 그냥... 너도 힘든데, 내가 진 걸 나눠주고 싶지는 않았던 것 뿐이니까."

"형?"

"지금이 아니면 이제 말 못 하겠지. 좀 많이 이르지만, 생일 축하한다. 네가 있어서 나는 행복해질 수 있었어."

"...!"

박문대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 기억은 박문대가 심상세계에서 나가는 순간 깨끗이 지워질 것이었다. 그래도 남자, 박문대는 조용히 한마디를 덧붙였다. 박문대가 자신을 살려냈다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꼭 해주고 싶던 말이었다.

"그러니까 너도 꼭 네가 행복해지는 걸 우선으로 해줬으면 좋겠다."

"...! 고마워요, 형. ... 형도, 오래오래 건강하게 행복하셔야해요."

박문대는 팔을 뻗어 박문대를 꼭 안았다. 박문대는 놀란 것 같았지만, 곧 화답하듯 포옹을 돌려주었다. 등을 토닥여주는 손길을 느끼던 것도 잠시, 글리치가 튀며 박문대는 찰나에 사라졌다. 박문대의 흔적처럼 남은 글리치를 눈으로 좇던 박문대 역시 곧 심상세계에서 사라졌다. 과거는 변하지 않을 것이고, 곧 박문대는 난간에서 추락하며 소원을 빌고 시스템에 융합되어 상태창이 되겠지만, 그럼에도 류건우는 박문대를 찾아 그 미친 짓들을 감행할 것이다. 현실로 돌아온 박문대는 눈앞에 서서 저를 보는 큰달, 류건우를 향해 웃었다.

"그럼, 너도 생일 축하한다. 큰달."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