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세문대] Iron-hearted Boy

X발... 모니터링이 죄였다.

Europa by 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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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화 언저리... 시점입니다 (21.10.24)


활동기를 막 끝마치고 짧은 휴가까지 다녀온 뒤의 어느 날.

나는 한산한 숙소 거실에 앉아 스마트폰을 꺼냈다. 당연하지만 모니터링을 위해서다. 바쿠스 특성이 없는 탓에 가용 시간이 부족해졌으니, 자연스럽게 활동기에는 모니터링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니 비활동기를 이용해서 지난 반응들을 쭉 훑어볼 예정이었다.

‘스마트폰 너무 많이 본다고 제일 걱정할 녀석도 오늘은 없고.’

선아현은 개인 CF 촬영 일정으로 숙소에 없었다. 류청우는 운동, 김래빈은 회사 작업실. 지금 이 숙소에 있는 건 차유진과 큰세진, 그리고 배세진과 나, 이렇게 넷뿐이다. 이정도 인원은 충분히 감당 가능하다.

‘일단 메이저한 사이트 반응부터.’

나는 인터넷창을 켜고 아이돌 팬덤 인구가 가장 많이 몰려드는 사이트의 반응부터 살폈다. 이미 날짜가 많이 지나 모든 반응을 살필 수는 없었고, 일정 조회수를 넘긴 게시물만 모아보는 기능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테스타’와 연관된 키워드를 넣어 검색한 결과는…… 예상 범위 내였다.

- 테스타 1군 굳히기 들어갔네;

└ ㄹㅇ 븨틱이랑 붙어도 이정도다! 보여주기 ㅋㅋㅋ

└ 타팬이라 사실 강건너불구경 했는데 진짜 좀 놀랐다 1군 ㅇㅈ..

└ 222 타팬인데 7월 개살벌하다 하고 구경왔다가 셤별로 갈아탈뻔

- 솔직히 말할게... 난 당연히 브이틱이 압살할줄알았어...

└ 브이틱이 이겼는데?

└ 응 일주일만에 음원순위 밀린거 누구?

└ 어 존나 쉬운 여름컨셉 들고와서 음원 이겼다고 자랑하죠?

└ 너네 지금 싸우지 말고 연말 시상식때 몰아서 싸워라

└ ㅋㅋㅋㅋㅋㅋ예정된 싸움의 시간

- 셤별 노래 좋더라 컨셉은 솔직히 좀 오그라들긴 했는데 노래는 플레이리스트에 넣었음ㅋㅋㅋ

└ 나 요즘 출근길마다 들으면서 바다 가는 상상함^^

현실:회사

- 티카들아 인정할건 인정하자 이걸 어케 1군 아니라고 하냐

└ 응 분탕 꺼져~ 티카 그런말 한적 없어 끌어들이지마~

‘됐다.’

1군 굳히기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그’ VTIC과 붙어서 이정도까지 해냈으니 이제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물론 연말에 대상까지 타기 위해서는 커다란 한 방이 더 필요하겠지만.

‘여긴 이쯤 봤으면 됐고.’

다음으로 SNS 서치를 시작했다. #테스타 태그부터 시작해서 다른 녀석들 이름도 가볍게 한번 쭉 돌려보고, 서치 방지용으로 변형된 키워드들도 좀 봐주고. 그런데…….

‘…이건 뭐지?’

낯선 단어가 몇 번 눈에 들어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주 낯선 단어는 아니었다. 옛날에 모니터링 할 때도 마주친 적이 있는 단어니까. 대충 좋다는 반응과 함께 들어간 단어길래 팬덤 안에서 쓰이는 어떤 은어겠거니 하고 일단 넘겼었는데.

두 글자 단어였다. 큰머.

“…….”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큰이 붙었으니 큰세진과 관련된 단어인가, 하는 추측을 해 봤지만…… 그럼 어째서 박문대의 이름을 서치하는데 자꾸 발견된단 말인가.

‘궁금한데.’

원래 팬분들 사이에서 쓰이는 은어는 굳이 찾아보지 않으려고 했었다(서치 중에 뜻을 눈치채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긴 하지만). 어쨌든 일부러 변형까지 거쳐 서치가 되지 않게 만들어 낸 단어이니 모르는 척 해주는 게 아이돌로서 일종의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쁜 뜻으로 쓰이는 단어라면 찾아 보겠지만, 그런 게 아니니까.’

물론 알더라도 모르는 척 하면 되지만 거기엔 한계가 있다. 이제는 잠잠해졌지만, ‘박문대 모니터링 너무 많이 하는데 자의식 과잉 아니냐?’라는 물밑 반응에 먹이를 줄 필요도 없고.

하지만 역시 박문대의 이름과 함께 이 정도 빈도로 언급되는 단어라면 알아둬야 할 필요가 있었다. 좋은 반응일지라도 물밑에서 어떤 의견층이 형성되고 있는 거라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그 여파를 맞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본격적인 서치를 돌리기 시작하고 3분 뒤.

‘…커플링명이었군.’

김이 빠져서 헛웃음이 살짝 나왔다. 예상 못한 게 어이없을 수준이다.

그야…… 아이돌이라면 없을 수가 없는 알페스 커플링명이었던 것이다.

존재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알페서 자체는 데이터 팔이 시절에도 꽤나 많이 봤었고. 물론, 박문대를 비롯한 테스타 멤버들 사이에 다양한 CP가 존재한다는 것도 이미 안다. 특별히 거부감이 든다거나 싫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실제가 어떻든 다짜고짜 호모포빅한 성향을 가질 정도로 내가 감수성이 없는 것도 아니고, 어찌 됐든 그것도 멤버를 향한 일종의 관심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알페서들이 알페스와 동시에 이른바 ‘나페스’라고 불리는 유사 연애적 감정으로 아이돌을 좋아한다.

‘그래서, 이 커플링명이 누구와 누굴 엮은 거였냐면.’

……박문대와 큰세진이다. 아니, 도대체 멀쩡한 이름자는 어디다 두고 저렇게 괴이한 커플링명이 붙었단 말인가. 멀쩡하게 남은 글자가 없는데. 일반적인 규칙대로라면 ‘세문’ 같은 게 되어야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나와 똑같은 의문을 가진 사람의 글을 찾을 수 있었다.

[ 얘들아 근데 큰셎이랑 박곰머랑 cp명이 어쩌다 큰머가 된 거야? 누구 알려줄 사람 ]

└ 비밀 계정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 아 시/발/ ㅋㅋㅋㅋ 존나웃겨 땡큐

“…….”

나도 알려달라고, X발.

어쨌든 답은 멀리 있진 않았다. 짧은 서치 끝에 나는 ‘세문’의 ‘세’는 그룹 내에 동명이인이 있는 탓에 삭제되었으며, 대안인 ‘큰문’은 서치할 때 ‘커다란 문’을 의미하는 다른 검색결과들과 겹치기 때문에 비선호됐다는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다른 대안인 ‘큰곰’은…… 또 말할 필요는 없겠지.

궁금증은 해결됐군. 나는 곧장 해당 사안에 관심을 끊고 다음 모니터링을 시작하려고 했…….

“문대문대~ 뭘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봐?”

X발, 깜짝이야. 나는 반사적으로 스마트폰의 화면을 끄고선 액정이 바닥에 가도록 덮어서 내려놓았다.

“모니터링.”

“근데 왜 그런 표정이야? …무슨 안 좋은 얘기라도 있었어?”

큰세진의 얼굴에 잠시 진지한 기색이 어렸다. 손을 뻗어 내 스마트폰을 확인하려는 놈의 팔을 밀어내며 나는 정색했다.

“그런 거 없다.”

“아니, 그럼 왜 그렇게 심각한 얼굴이었는데? 말을 해 봐.”

“난 원래 기본이 심각한 표정인데.”

“거… 그렇기는 한데, 그거랑 달랐다니까?”

내가 박문대 하루 이틀 보나? 그런 소리를 하며 스마트폰을 낚아채길래 얼른 뺏어서 다시 가져왔다. 하지만 순식간에 다시 뺏겼다. 틈을 노려 다시 뺏어왔다가 뺏기기를 두세 번.

“…내놔라, 이세진.”

“야, 이렇게까지 숨기니까 더 수상하잖아!”

X발. 큰세진 놈은 소파에 올라가서 스마트폰을 쥔 손을 위로 번쩍 치켜들었다. 거의 천장에 닿는 높이다. 박문대의 키로는 닿기가 좀 어려운 높이. 이 새끼가……. 나는 꽉 쥔 주먹을 파르르 떨며 싸늘한 얼굴로 놈을 노려봤다. 그 시선에도 놈은 아랑곳 않고 의기양양하게 손으로 브이 자를 그렸다. 그러더니 눈치 빠르게 슬쩍 한 발짝 빠지듯 묻는다.

“문대문대, 진짜 뭐 보면 안 되는 비밀은 아니지?”

……X발. 나는 그냥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 암묵적 허가의 의미를 찰떡같이 알아들은 큰세진 놈은 씩 웃으며 스마트폰의 화면을 켰다.

“어디, 우리 문대문대를 고민하게 만든 원인이 뭔지 좀 볼까~”

그리고 스크롤을 한 번, 두 번.

“…….”

될 대로 돼라. 뭐, 내가 쓴 것도 아니고. 나는 자포자기와 정신승리를 동시에 시전하며 소파에 풀썩 주저앉아 팔짱을 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가리 위에서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려왔다.

“…흡, 하아. 하…….”

“…이제 만족했냐?”

“으하하하! 하, 흐읍, 박문대 너…… 으하학!”

나는 팬들 사이에서 소위 티벳여우라고 불릴 표정으로 놈을 쳐다봤다. 짜게 식은 내 표정을 보고도 큰세진은 실실 웃으며 내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뭘 보나 했더니. 이거 처음 봐? 깜짝 놀랐어? 신세계였어~?”

아니다, 새끼야.

싸늘하게 바라보자 놈은 어깨를 으쓱하고선 스마트폰을 다시 내게 돌려주었다.

“하긴, 모니터링 장인 박문대 씨가 이걸 처음 봤을 리는 없구나.”

“…너도 알고 있었냐?”

“당연한 거 아냐?”

그러더니 또 뭐가 웃긴지 한참 더 웃는다.

“뭐가 그렇게 웃기냐.”

“응? 아니~ 그냥 뭐가 좀 생각나서.”

“……뭔데.”

왠지 물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에 등골이 서늘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큰세진은 히죽 웃으며 상쾌하게 말했다.

“너랑 나, 테스타 알페스 커플링 중에 꽤 메이저다?”

……X발, 알고 싶지 않았다.

*

“하…….”

며칠 뒤, 웨이트를 끝내고 샤워실로 향하는 길이었다. 아직 완전히 가다듬어지지 않은 심장 박동이 귓가를 울리는 것을 느끼며 걷고 있자니 반대편에서 크게 손을 흔드는 녀석이 보였다.

“문대~ 웨이트 끝났어?”

“어.”

“이야, 부지런하네~ 나는 이제 들어가는 길인데. 어우, 지금 들어가면 언제 나오나~”

태평한 소리를 지껄이는 큰세진을 향해 어깨를 으쓱하곤 가던 길을 마저 갔다. 엄살은, 누구보다도 몸 관리에 진심일 놈이. 하지만 얼마 못 가서 어깨를 붙잡혔다.

“왜.”

“문대야, 오늘 오후 일정 있어?”

이놈이 이건 왜 묻지? 그런 생각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쳐다보자 큰세진이 하하 웃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아니, 스케줄 없으면 나랑 잠깐 나갔다 와줄 수 있냐고 물어보려고 했지~”

“어디 가는데.”

“우리 여사님 생신 선물 고르러?”

흠. 턱을 매만지고 있으니 큰세진이 계속해서 말했다.

“다다음 주가 어머니 생신이거든~ 다른 일정 잡혀서 바빠지기 전에 미리 살짝 전해드릴까 싶어서.”

“그걸 왜 나랑 같이 가는데.”

“선물 레퍼토리가 떨어져서. 우리 아이디어 뱅크 박문대 님이시라면 뭔가 새로운 선물을 추천…… 아, 문대문대! 어디 가~ 이럴 거야? 우리가 남이야?”

나는 큰세진을 뒤로 하고 다시 샤워실로 향했다. 일단 땀을 흘린 게 찝찝하니 씻어내는 게 우선이었다. 선물은 이따가 저놈 나와서 다시 얘기하면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

*

결과부터 말하자면, 선물로 낙찰된 것은 안마의자였다.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마스크까지 쓴 수상한 차림새로 백화점을 한 바퀴 돈 의미가 전혀 없는 결정이었지만…… 어쨌든 선물을 하는 사람과 받는 당사자가 만족하고 있으니 됐나.

선물을 배송받은 큰세진의 어머니는 기쁜 얼굴로 영상 통화를 걸어 오셨고, 얼결에 나까지 생일 선물을 같이 골라줘서 고맙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머쓱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드리고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와 스마트폰을 쥔 찰나, 띠롱 하고 알림이 울렸다. 화면을 켜 보니 테스타의 SNS 계정 업로드 알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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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이모티콘)

역시 팬사랑하면 박문대! (박수치는 이모티콘)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한 박문대가 팬에게 사인해주는 사진(살짝 흔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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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백화점에서 나올 때다. 미리 불러둔 택시가 교통 체증으로 늦는지 잠시 기다리는 사이, 우리를 알아본 사람들 서너 명 무리가 다가와 사인을 부탁하기에 짧게 해줬는데.

‘그새 사진을 찍었네.’

먼저 사인을 마친 큰세진 녀석이 그 짧은 틈에 찍은 모양이다. 덕분에 좀 흔들린 것 같고. 그 뒤엔 곧장 택시가 도착해서 자리를 떴었지. 어차피 백화점처럼 사람이 많은 곳에 갔으니 목격담은 당연히 떴을 거고, 나름대로 일상적인 SNS 업로드였기에 별 의미를 두지 않고 넘겼다. 하지만 그날의 모니터링에선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ㅁㅊ... 엊그제 큱세하고 곰머 둘이 나란히 찍혔더라니 진짜네

- 얘네 사이 진짜 좋은가봐 오프때도 같이 다니고

- 테스타는 가족이다... 반박 안받음

- 하... 큰머 너무 맛있다^^ 마를 날이 없는 떡밥^^

└ ㄹㅇ 예능 같은 데서도 둘이 눈빛으로 소통하고 막 진짜;; 그들만의세상을 보는 나... 화면에서 버림당함... 그래도 너희가 행복하면 다 됐다

└ 큱세가 ㅌ틈만 나면 문데 어깨에 팔 걸치고 있잖어 진짜 미친듯ㅋㅋㅋ

└ 문데 스킨십 별로 좋아하는 타입 아닌 것 같은데 그걸 또 받아주는 게 개꼴맛집인 부분

‘너랑 나, 테스타 알페스 커플링 중에 꽤 메이저다?’

“…….”

X발. 떠오르지 않았으면 좋았을 말까지 다시 떠올라버렸다.

‘메이저라고? 왜?’

납득할 수 없었다. 내가 저놈이랑 그렇게 친해 보였다고? 진짜로?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잠시 고심하던 나는 SNS 검색창에 ‘그 단어’를 입력했다.

그리고 검색 결과를 쭉 훑었다.

- 2x1130 큰머 (박문대에게 귓속말 하는 이세진 GIF)

└ 하... 진짜 얘네 무슨 비밀얘기를 이렇게 많이 하는거냐 미쳐버리겠네

└ ㄹㅇ 둘이서 완전 그사세라니까

└ 이 다음이 더 찐이야 얘들아 저거 듣고 문데 피식 웃는다 ㅋㅋㅋ

└ 미친거아니야??? 무슨얘기했는데??? 나도 알려줘 ㅅㅂ

└ 아무 얘기나 해도... 막 웃음이 나오나보지...^^

- 사랑의 작대기 게임에서 서로 지목하는 큰머 (이미지)

└ 뭐야 진짜 작작해 얘들아; 고마워

└ 아나 사랑의 작대기 아니잖아요 이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ㅅㅂ 이거 기억난다 팀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 고르는 거였는데 ㅋㅋㅋ 문데 처음에 셀프로 자기자신 찍었다가 뭐하는 거냐고 큱세한테 한소리 듣고 큱세 뽑아줌ㅋㅋㅋㅋㅋㅋ

└ 엎드려 절받기냐고 ㅋㅋㅋㅋㅋㅋ

- 긴 말은 생략한다. 큰머. (이세진이 박문대 뒤에서 어깨에 턱 올리고 백허그하고 있는 캡처)

└ 하............... (말을잇지못함)

└ 얘네 이거 진짜 자주 함 캡처가 볼때마다 다 달라 ㅋㅋㅋㅋㅋ

└ 신경쓰기 지겨워 그냥 그렇게 살다 죽어 내가 너희 사랑의 역경이고 비운의 커플인냥 살아 나는 종교에 미친년이고 신은 동성애도 이해해줄 거고 구원은 이미 받은 거니까 결국은 천국을 가겠거니 착각하면서 지옥에 떨어져도 좋으니 오늘만 누리고 살아 내가 뭐라고 남의 인생에 관여를 하고

└ 둘이 키차이땜에 그림이 존1나 좋다 시바;;

└ 큱세 이름값 하는 거 너무 좋아... 크다... 하... 오빠...

└ 갑작스런 나페스 ㅋㅋㅋㅋㅋ 내 남자친구에게 남자친구가 있는데요 박문데라고...

- 야 비상이다 너네 큰머 이거 봤어??? (팬사인회에서 옆자리에 앉은 박문대 끌어당겨서 어깨 맞대고 팔로 하트 그리는 이세진)

└ 할머니 언젯적 짤이에요

└ 근데 또봐도 좋다 ㅅㅂ..

└ 고전명짤^^

- 와... 큰머 이거 뭐야? 진짜같아;; (박문대 껴안고 등 두드리는 이세진 콘서트 백스테이지 클립)

└ 어어 신입 왔니?

└ 아유.. 잘오셧읍니다..^^ 여기가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입니다...^^

└ 굶어죽을 일은 없을 겁니다 대신 배가 터져서 죽을 수는 있음 (입에 크림 잔뜩 묻히고 볼 부풀린 채 웃는 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쳣나봐 근데 찐임

- 진짜 이 홈마누나 정말 압도적 감사다... 진짜 웅니 당신이 제 큰머 라이프의 빛이고 소금이고 만수무강하시고 평생 꽃길돈길만 걸으시고 (박문대와 이세진의 트윈 홈마스터 홈페이지 로고가 박힌 사진 여러 장)

└ 나도 맨날 이분 계신 방향으로 절함 큰머의 홈마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분 진짜 둘이 붙어있는 사진들 너무 기깔나게 잘 뽑아주심... 큰머 둘이 애초에 케미가 좋아서 뭘 찍어도 그림처럼 나오긴 하겠지만...

└ 222 팀내 최고의 분위기메이커 멤버와 최고의 티벳여우 멤버... 환상

└ 최고의 티벳여우 미쳣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

└ 특별히 큰머 cp적 의미의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도 좋아... 그냥 둘이 같이 있는 샷을 찍어주셔서 늘 감사드립니다......

홍수 같은 검색 결과가 화면에 들어찼다. 잠시 머리가 핑 도는 것 같아서 이마를 짚었더니 마침 방문을 열고 들어오던 류청우가 괜찮냐고 물어오기 시작했다. 멀쩡하다고 간신히 안심시킨 뒤에야 다시 침대에 드러누워서 스마트폰을 볼 수 있었다.

‘…정말 메이저이긴 한가본데.’

뭐…… 내가 특별히 신경 쓸 부분은 아니다. 그래. 이걸 괜히 신경 써서 큰세진을 멀리 하거나 하는 게 더 이상한 꼴이지 않나. 그렇다고 일부러 더 떡밥을 주자고 비게퍼 같은 걸 할 필요도 없고.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된다. 하던 대로만.

하지만 마냥 내 생각대로만 일이 흘러가지는 않았다.

*

- 오늘자 이거 뭐야...? (뒤에서 익숙하게 껴안으려는 이세진 슬쩍 피하는 박문대 GIF)

└ 헐... 나만 느낀게 아니었구나

└ 헐 나도 이거 내가 잘못봤나 싶어서 그냥 넘겼었는데 다시보니까 확실히 피하네

└ 뭐야??? 둘이 무슨 일 있나??

└ 근데 싸웠다기엔 둘이 이 다음엔 사이 너무 좋은데 평소처럼 말도 잘 하고...

- 지금까지가 다 비게퍼였던 거지 뭘 또 분석하고 있어 얘들아 ㅋㅋㅋ 비게퍼 한두번 보니

└ 응 다음 회사가 멤버한테 비게퍼 시킨다는 망상~

└ 응 같은 팀 멤끼리 사귄다는 진짜 망상 잘 봤구요

└ 조용히해 나가서 싸워 지금 분위기파악이안돼?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큰머러들 운다 그만 때려

……다들 이걸 또 귀신같이 알아채시는구나. 나는 미간을 좁히며 방금 감고 나와 살짝 물기가 남아 있는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목덜미에 걸고 있는 수건을 만지작거리며 화면을 노려보고 있는데 마침 주방에 들어오던 큰세진이 화들짝 놀라며 불을 켰다.

“어우, 깜짝이야! 박문대, 불 다 꺼놓고 여기서 뭐 해?”

……너 때문에 내가 더 놀랐다, 자식아. 갑자기 켜진 불에 눈부셔하며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니 금방 빙글빙글 웃는 얼굴이 된 큰세진이 옆 의자를 꺼내 앉았다.

“또 스마트폰 보고 있네? 우리 문대 연락하는 사람 생긴 거 아니지? 형은 박문대 믿는다~”

“그만해라.”

“그럼 뭔데? 문대 혹시 스마트폰 중독이야?”

“아니라고. 모니터링 중.”

“또 모니터링이야? 문대문대는 너무 성실하다니까~ 근데 왜 여기서 혼자 불 꺼놓고 보고 있어?”

“청우 형 잠들어서.”

거실에선 차유진과 김래빈, 선아현이 공포 영화를 보고 있었다. 선아현이야 안 무서워하는 것 같지만, 다른 둘은 쫄면서도 굳이 보려고 하는 게 희한했다. …아무튼간에 거실에는 가까이 가고 싶지 않다. 빠르게 사정을 눈치챘는지 큰세진은 씩 웃고선 식탁에 턱을 괴고 있던 팔을 풀고 엄지로 제 독방을 가리켰다.

“주방에서 혼자 청승 떨지 말고~ 내 방에라도 와서 볼래?”

“독방이잖아. 좁아.”

“에이. 어차피 금방 자러 들어갈 거 아니야? 잠깐 앉아서 보다 가면 되지!”

“내가 왜?”

“음~ 세진이가 심심하니까?”

개소리를 하는 걸 보니 멀쩡한 모양이었다. 나는 물끄러미 큰세진을 바라보다가 그러든가, 하며 녀석의 독방을 향해 걸어들어갔다. ……사실, 방금 본 브이로그 클립이 조금 신경 쓰였기 때문에 떠보려고 온 것이다.

‘내가 저랬었나?’

갑자기 뒤에서 팔을 감아오길래 반사적으로 몸을 빼내기는 했다. 하지만 아주 잠깐이었고, 큰세진 놈도 잠시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뜨긴 했지만 곧바로 아무렇지 않은 듯 어깨동무를 하며 대화를 이어 나갔던 것이다. ……X발, 역시 검색 같은 걸 하지 말았어야 했다.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의식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 얘네 이거 진짜 자주 함 캡처가 볼때마다 다 달라 ㅋㅋㅋㅋㅋ ]

……전혀 눈치 못 챘다. 저놈이 나한테 그렇게까지 달라붙었다고……? 그리고 나는 그걸 또 하나도 안 피하고 있었다고……??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음을 넘어서 황당한 수준이다. 익숙해지는 것도 정도가 있지. 아무리 이 녀석들이 편해졌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 편해질 셈이냐. ……도대체, 어디까지.

문을 열고 들어와 커다란 갈색 곰인형이 놓인 큰세진의 침대에 털썩 앉았다. 제 자리를 뺏기고도 큰세진은 뭐가 좋은지 실실 웃었…… 그럼 그렇지. 바로 옆에 와서 앉는다.

‘이 새끼는 퍼스널 스페이스라는 게 없나.’

가히 인싸의 귀감 같은 놈이다. 나는 곧바로 스마트폰을 다시 들여다보는 대신 팔짱을 끼고 벽을 바라보았다. 옆에 앉은 놈은 체온이 높은 덕에 존재감을 더운 기운으로 한껏 과시하고 있었다. 한참이나 내가 그러고 있자 큰세진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가까이 해 왔다.

“문대문대~ 모니터링 한다며?”

“다 했어.”

“으잉? 그럼 왜… 설마 진짜 세진이 놀아주려고??”

“그만하고.”

손을 뻗어 놈의 얼굴을 밀어내며 나는 살짝 큰세진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틀어 앉았다.

“야.”

“응?”

“너 이거 혹시 관리하는 거냐?”

싱글싱글 웃던 큰세진의 얼굴에 얼핏 알듯 말듯하다는 표정이 스쳤다.

“…뭘 관리해? 문대야, 정확하게 말해야 내가 대답을 해 주지~”

“하…….”

나는 마른 세수를 하며 놈을 떠보기 위한 말을 떠올려냈다.

“…일부러 나랑 비게퍼 하고 있는 거냐고.”

떠보는 게 아니라 돌직구가 되어 버렸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걸 뭘 어떻게 돌려서 물어본단 말이냐, X발. 하지만 일단 이놈의 의중을 확실히 알아둬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내 앞으로의 행동 방침을 정할 수 있으니까.

싫어하는 팬들도 많지만, 비게퍼는 의외로 아이돌의 이미지 구축에 꽤 큰 기여를 한다. 머리 좋고 기민한 큰세진 놈이라면 얼마든지 써먹을 수 있는 카드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확인해야만 한다.

막상 직접적으로 묻자니 꽤나, 아니 상당히 민망했다. 머쓱해서 잠시 바닥으로 눈을 굴리고 있는데, 당장이라도 유들유들하게 대답이 튀어나올 것 같던 놈이 조용했다.

‘뭐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큰세진을 쳐다봤다. 거기에는 정말로 알듯 말듯한 얼굴을 한 녀석이 있었다. 드물게도 애매한 미소를 입가에 띄우고 있던 큰세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했어, 문대야?”

“…….”

이건…… 비게퍼가 아니었다는 확언이나 다름없는 대답이군. 그런 판단이 머릿속을 느리게 굴러갔다. 나는 주먹을 말아쥐며 큰세진의 입이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았다.

“혹시 뭔가 신경 쓰였어? 그러고 보니까, 얼마 전에 우리 커플링 이름 찾아보고 있었지. 그거 본 뒤로 갑자기 불편해졌어?”

아니다. 그냥…… 이놈이 그렇게까지 나한테 치대고 있었다는 걸, 새삼스럽게 눈치 챘을 뿐이다. 그리고…… 내가 그걸 또 다 받아주고 앉아 있었다는 걸 알았을 뿐. 그래서 충격을 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할 수는 없었다. X발, 당연하잖은가. 하지만 내 침묵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큰세진의 입가가 비뚜름해졌다.

“…혹시 이 새끼가 나한테 비벼서 인기에 좀 탑승해 보려고 하나…… 뭐 그런 생각 했어?”

“……이세진.”

“박문대. 너 진짜 그런 거면 나한테 너무한─”

X발, 진짜.

나는 손을 뻗어 놈의 멱살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

입막음용으로 갖다 붙인 입술은 제법 효과적이었다. 짧게 붙었다 떨어진 입술에 큰세진은 물벼락이라도 맞은 듯 충격 받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동공에 지진이라도 난 것 같다. 뭘 그렇게 놀라는 거냐, 이 새끼야.

“……그래서.”

“…뭐, 뭐?”

“그래서, 나랑 비게퍼 한 거 맞냐? 아니냐?”

입을 뻐끔거리던 큰세진의 목덜미가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너무 잘 보여서 정말이지… 문제였다.

“……아니야.”

“그러냐? 그럼 됐네.”

나는 큰세진의 멱살을 붙잡았던 손을 탁 놓아주고선 스마트폰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문을 향해 걸어가 문고리를 붙잡았다.

“그래도 사귀는 건 안 돼.”

“…어……어?”

“안 된다고, 새끼야.”

몸을 살짝 틀어 활짝 웃어주고선 문을 쿵 닫고 방을 나왔다. 잠시 그대로 문에 등을 기대고 서 있자니, 방 안쪽에서 외마디 탄식 같은 것이 들려왔다. 마침 거실에서는 그와 비슷한 비명 소리가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나는 저 소리에 류청우가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길 바라며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손에 쥔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이제 진짜 모니터링은 작작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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