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단청려] Dearest

재시작 전 옥상 | 단엋

단편 by 토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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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est라는 곡의 초반 가사를 보고 작성한 글입니다. 하지만 막상 내용은 가사랑 큰 관련이 없습니다. 

*사망 소재 주의

w. 토룡이.

*

남자는 이지적인 치를 연기하였으나 그것이 단지 그가 연기한 극의 연장선임을 알았다. 그는 스포트라이트가 꺼지면 무대 아래로 내려갈 배우였다. 4년 간 아이돌로 활동하며 대본을 수없이 되뇌었다. 과할 만큼 연습을 할 것. 무대에선 늘 침착하게 굴 것.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제 몫이 아니라 여기고 포기할 것. 전부 브이틱의 '주단'을 만든 불문율이다. 그러나 연기자로서의 기질이 아무리 뛰어날지언정 지도자의 도움 없인 재능을 꽃 피우지 못 했을 터였다. 하교 후 골목 분식에서 떡볶이를 먹던 중학생이 아이돌이 된 데엔 '각본가'의 기여가 결정적이었다.

"아이돌 할 생각 있어요?"

중학교 2학년의 남자가 억척스럽게 떡을 씹는 행위를 멈췄다. 툭, 추락해 명을 다 한 떡볶이는 안중에도 없었다. 촘촘히 자리 잡은 속눈썹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미려한 빗장이 그 얼굴에 음영을 드리웠다. 남자는 다소 성마른 시선으로 아름다운 면면과 마주하곤 홀리듯 고개를 추어올렸다. 이내 소담스러운 웃음이 둘 사이의 줄눈을 메웠다. 봄날 새벽녘 조용히 움튼 싹처럼 깨끗한 미소다. 

"내 이름은 신재현이에요. 그쪽은?"

"⋯ 정우단입니다."

"그래요, 우단 씨."

애석하게도 당시의 남자에겐 낯선 이를 경계할 정신이 없었다. 가장 유려한 빗장 너머, 새까만 별을 좇기 급급했다. 

이후 남자를 무대에 오르도록 이끈 '각본가'가 아이돌 청려가 되고 남자가 주단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할 뿐이었다. 남자, 주단은 데뷔를 기점으로 한 극의 배우가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종래엔 스스로가 사람인지 결함 없이 기능하는 금속 덩어리인지 지리멸렬한 혼란에 빠졌다. 주단의 혼란에 개의치 않고 청려가 연출한 모든 무대는 성황리에 마무리 됐다. 청려의 말 한마디에 어떤 고루한 책임자도 낯빛을 바꿨으며 대중은 끝없는 찬사를 보냈다. 컴백 전쟁이 한창인 시기에 거물을 피해 성공적으로 컴백했다든가 음향 장치에 문제가 있단 게 리허설 때 발견됐다던가 등 갖은 고역을 '우연히' 잘 넘겼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참 이상했다. 수많은 무대 중 어떻게 단 한 번도 어려움에 봉착하지 않았나. 위화감을 자각한 후부터 주단의 혼란이 깊어져 갔다. 검은 눈에 미지를 담고서 능란히 '청려'를 연기하는 사람. 주단은 신재현이라는 사람을 알고 싶었다.

그러나 작은 바람을 옹송그릴 수밖에 없었다. 데뷔 4주년을 맞이하자마자 브이틱은 험한 풍랑을 맞닥뜨렸다. 정확하겐 브이틱 멤버 몇몇이 자초한 자멸이었다. 성추행으로 고소 당한 멤버 하나, 불법 도박에 발을 담갔다가 덜미 잡힌 멤버 하나. 브이틱은 그간 '완벽해 보였던' 것이었다. 청려도 알고 있었을 터다. 그럼에도 멤버들의 눈을 감겨 문제를 덮었다. 

그 전경을 볼 때마다 주단은 청려와 알바트로스를 겹쳐 보았다. 큰 날개를 한껏 펼쳐도 응달로 몸을 숨기지 않는 새끼를 둔 공통점 때문일까. 아무리 날개가 크면 뭐 하나. 새끼는 태양을 만끽하길 바란다. 다가올 비상 대신 산화를 택하는 건 솜털로 창공을 가르려는 짓과 마찬가지다. 어미는 수천 번의 투신을 목도하며 다음 해의 산란을 기약할 것이다.

브이틱은 솜털이 송송 난 채 수 차례의 투신을 감행했다. 

*

비상이 걸려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는 직원들이 간간이 스쳐 지나갔다. 연습실 시계 초침 소리가 잔상을 남겼다. 째깍, 분침이 자정을 향해 갈급히 도약한다. 잡음이 다다른 길 끝에선 익숙한 인영이 복도를 가로질렀다. 훤칠하게 큰 키와 잿빛 옷가지. 

청려였다. 

어제 입은 옷을 그대로 걸친 상태에 의구심이 먼저 움텄다. 그 '청려'가 환복하지 않고 소속사 사옥을 활보하다니. 그것도 자중을 표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주단이야 사옥 내부 연습실에 뒀던 물품을 숙소로 옮기느라 걸음했지만 청려가 사옥을 방황할 명분은 없었다. 사장과 얘기도 진작 끝나서 청려의 방황이 더욱 당황스러웠다. 

주단은 한창 스케줄을 소화할 시기에 한가로이 사옥 옥상에 올라 겨울 바람을 맞는 취미를 갖진 않았다. 다만 고즈넉한 밤에 청려를 사옥에서 볼 일이 없는지라 한 발 앞서 옥상으로 향한 인영 뒤를 밟았다. 살을 에는 추위가 전신을 쪼갠다.

"주단이니."

어떻게 발소리만 듣고 그 주인이 누군지 알아맞히지? 종종 청려가 같은 인간이 맞는지 헷갈려 SCP 사전을 뒤져 본 게 수십 번이나 방금처럼 소름끼친 적은 드물었다. 공기 반, 숨 반이 섞인 답이 폐부 끝까지 치밀다 느리게 침잠한다. 선연한 얼굴에 달빛이 희끄무레하게 드리운다. 주단은 불현듯 청려가 밟고 있는 바닥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옥상 출입구와 난간 사이의 거리가 멀어 펜스를 넘어 위태로이 선 작태가 이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어째서?

위험하다고 소리치기에 앞서 애써 수장시킨 번민이 치밀었다. 더 이상 완벽한 브이틱이 아니더라도 천천히 극복해 나갈 것이라 여겼다. 채율도, 신오도 괜찮다는 청려의 말 한마디에 이미 수천 번 반복한 안무를 되짚었다. 주단 역시 둘을 따라 평연히 처신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을 다독인 청려는 저승의 문지방을 넘으려 들었다.

"⋯ 형."

불안이 범람한다. 

목 언저리에서 넘실거리는 것을 못 본 체 대화의 물꼬를 틀었다.

"제가 중학생 때 형이 절 찾아오신 거 말입니다."

불안을 억누르고 한 차례 정제된 발화를 이어나갔다. 일순 검은 인영이 휘청이는 듯해 헛숨을 삼켰다. 뒤늦게 기우에 불과했단 걸 알아챘다. 하지만 그 잔재는 주단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말해 보라는 듯 청려가 시선을 측면으로 틀었다. 언제 청려가 도로 시선을 돌릴지 몰라 두렵다. 죽음을 직시하지 않도록 불을 키울 땔감이 절실했다.

"처음부터 절 멤버로 들일 걸 상정하고 찾아오신 겁니까?"

  청려는 태어날 때 의연하게 구는 법을 터특한 사람 같았다. 그가 으레 짓던 미소는 완연히 자취를 감췄다. 내도록 침묵을 일관하던 이가 짧은 허밍을 흘린다. 말을 고르는 과정에 불과했으나 주단은 터분한 감상에 빠졌다. 어디 들어나 보자, 달관을 표명한 걸 물리고 하늘을 달리길 택할까 봐. 주단에겐 최후의 보루와 다름 없는 질문이 경색을 초래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시간을 돌리더라도 똑같이 행동했을 터였다. 브이틱이 저물어 가는 시점에서 '주단'으로서 입을 열길 바랐다.

하릴없이 괜찮다고 멤버들을 다독인 뒤엔 옥상에 올라 몇 번이나 밤을 관조하였나.

혹여 이번이 마지막이지 않을까? 예로부터 신이 인간계를 관조하다 개입할 시 목숨을 담보로 내놓아야 했다. 주단은 청려가 신은 아니어도 적강한 선녀 쯤은 될 것이라 보았다. 죄를 지어 천계의 정수를 잃고 인간계로 내려온 것이다. 브이틱을 성공시킨다는 천명을 달성해야만 돌아갈 수 있는 선녀. 왜 끝까지 비현실적이지 못하는지, 지극히 오타쿠스러운 사고회로가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5년 간 동고동락한 바로는 청려는 천계의 사람이 아니라 명백한 인간일 뿐이었다. 끝없이 몸을 움직여도 지치지 않는 모습과 냉정한 면모도 수많은 인간군상 중 하나로 설명 가능하다. 천명을 이루지 못해 밤하늘에 발을 디뎌 봤자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주단의 발걸음에 조급함이 서렸다. 대답을 듣기 전부터 착실히 청려와의 거리를 좁혀 나갔다. 이윽고 두 걸음이 남았을 때, 선연한 음성이 정적을 갈랐다.

"그래."

거리가 채 살라먹히기 전에 단출한 대답이 마침표를 찍었다. 당황스러워할 재간 없이 미처 좁히지 못한 간극을 기웠다. 뒷모습만 내보인 모습이 멍에에 묶인 듯하다.

"바람이 찹니다."

"가능하긴 한 일인지는 안 궁금한가 봐?"

"들어가죠. 계속 바람 맞으면 목에 안 좋다고 하셨잖습니까."

격동하는 심장 탓에 따라붙은 말이 무엇인지 파악할 겨를이 없었다. 건강을 끔찍이 신경 쓰는 사람이 곧이곧대로 바람을 맞기만 하니 두렵다. 무료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을 제대로 보고 싶었다. 절실한 부름에도 밤을 응망하는 이는 계속해서 별을 셌다. 도시의 빛으로 인해 애당초 별이 보이지도 않건만 검은 하늘 너머를 꿰뚫으려 든다. 육감이 시키는 대로 가느다란 손목을 붙들었다. 애써 감춰 둔 조급함이 균열을 비집고 나왔다. 청려는 평소처럼 주단, 하며 나직이 주단을 통제한다든가 눈맞춤으로 자중하라 지도하지 않았다. 주단은 감이 좋은 편이다. 오늘 비가 오겠군, 하면 정말 비가 내릴 때가 대부분이었다. 감과 더불어 센스도 뛰어나 앨범 기획 회의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기도 했다. 주단은 뛰어난 제 감과 센스를 제물로 삼아 청려가 아무 말이든 해 주길 빌었다. 

"형."

한 음절에 응축된 울분이 담겼다. 고저 없는 어조였으나 떨리는 입술은 감정을 여실히 드러냈다. 부름이 펜스를 사이에 두고 일방적인 호소로 변주되었다. 그새 말라버린 몸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더운 숨이 청려의 살결에 닿아 응결된다. 청려를 안고 나서야 청려의 시선에 편승했다. 수만 개의 불빛이 혀를 날름거렸다. 

"이번에도구나."

"⋯⋯ 예?"

둘의 감상이 상치된다. 반면 결코 닿지 못할 듯했던 호소는 수신자에게 닿았다. 

"좀 떨어져야 내려갈 수 있지 않겠니?"

"아."

화급히 몸을 물렸다. 그러자 청려가 멀끔한 낯을 한 채 안전 지대를 밟았다. 그러고 나선 붙지도 않은 먼지를 털어내는 모습이 한 세월 전 이야기 같다. 청려는 저를 끌어안은 망동의 책임을 묻지도 않았다. 아무 일 없었다는 양 유유자적 출입구로 향하는 뒷모습이 은거했다 관직에 복귀한 문인을 연상시켰다. 주단은 다시 청려의 뒷모습을 보기가 두려워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면서 브이틱의 복귀 가능성을 점쳤다. 옥상엔 먹이를 놓친 불빛만 남아 입맛을 다셨다.

다음 날, 청려는 자택에서 목을 매달았다.


https://youtu.be/VFSeESRAPKU?si=i9j5I7QFLWIq7d6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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