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문대

작전과 안도

청우문대, 캠퍼스 판타지, 작전과 착각과 바람

티온랩실 by 티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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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우문대 18회 전력: 인어

엔딩이 모호합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하, 겨우 떼어놨네.”

 

인간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깊은 바다 속 어딘가. 그곳에서 박문대는 거칠게 뛰어드느라 아직 공기가 방울방울 매달린 꼬리를 대강 흔들었다. 바닷물에 푸르게 물든 햇빛이 희미하게 꼬리의 비늘에 맞닿으며 은은한 빛을 뿜었다. 그런 꼬리를 살랑거리며, 박문대는 아직도 벌렁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고는 정말로 정체를 들킬 뻔했던 방금 전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게 말하는 미친놈이 싫은 건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너무 좋아서 문제였다. 그리고 박문대는 그러면 안 됐다. 왜냐면 박문대는 인어고 그 미친놈(좋은 뜻)은 인간이니까.

 

“이걸 알아도 어디다 말할 놈은 아니겠지만, 준비 잘 해둬서 나쁠 건 없지.”

 

박문대는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해야 저를 죽어라 쫓아다니는 저 인간, 류청우와 자연스럽게 입을 맞출 수 있을지.

 

그렇게 시작된 박문대의 류청우 기억 지우기 프로젝트는 세 가지 작전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작전은 우연을 가장한 노림수. 조금 다르게 말하자면 넘어지는 척을 하며 입술이 맞닿는 순간을 노리는 아주 고전적인 수법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작전은 장렬히 실패했다.

 

“문대야, 괜찮아?”

“… 네, 괜찮아요. 형은 어디 다친 곳 없으신가요.”

“응, 나는 괜찮아. 문대야, 넘어지지 않게 조금만 더 조심하자. 다치지 말고.”

 

인어인 탓에 인간체일 때에도 뼈대가 가느다랗고 곧은 박문대의 몸은 저 두툼하고 강건한 류청우의 몸을 흔들기엔 역부족이기 때문이었다. 박문대를 조심스레 부축한 채 걱정 한 마디를 건네는 따뜻하고 다정한 눈빛에 박문대의 심장만 눈치없이 두근거렸고, 그래서 박문대는 시원하게 이 작전을 포기했다. 사실 성공할 거라 생각했던 것도 아니었다…….

 

다음 날 시행한 두 번째 작전은 개구리 왕자,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인어 왕자 작전. 상세 내용은 잠든 류청우 몰래 입맞추기. 결과는 첫 번째 작전과 동일했다. 그래도 나름 진일보한 성과에, 박문대는 세 번째 방법은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키진 않았지만 어쨌든 가능성이 있다면 해야 했으니까.

 

“청우 형?”

“…….”

 

류청우의 맞은편에서 정신없이 과제를 하던 박문대는 문득 제 맞은편이 너무 조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박문대가 고개를 들며 조심스레 류청우의 이름을 부르자 잠시 눈살을 찌그러뜨리는 것 같았지만 그것도 말 그대로 잠깐이었다. 박문대는 눈으로 류청우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전날 제대로 잠들지 못했는지 눈 아래가 조금 퀭했고, 이따금 제 이름이 들린다 싶으면 눈가가 조금 움찔거렸다. 자기 이름은 자면서도 알아들으면서 왜 박문대가 이렇게 빤히 보는 건 모르냔 말이다. 괜히 류청우가 얄미워진 박문대는 류청우를 깨우려 뻗으려던 손을 거두었다. 마침 작전을 수행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기도 했고. 어쨌든 그렇게 한참 류청우를 보다가, 류청우가 깊은 잠에 빠졌다는 것을 확신한 박문대는 소리없이 류청우를 향해 몸을 내밀었다. 가닥가닥 뽕실 튀어나와 이마를 반쯤 덮은 머리카락이 박문대의 머리카락과 맞닿고, 속눈썹이 깜박이는 모양마저 그대로 눈에 담길 만큼 가까운 거리까지. 잠에 취한 이들 특유의 잔잔하고 고른 숨결이 목덜미를 잡아채는 듯한 느낌에 박문대는 떨리는 마음을 애써 눌렀다. 지금 박문대가 하려는 건 연인들이 으레 하는 그런 달콤한 것이 아니었다.

 

“…… 으음…….”

“… 얼른 끝내야지.”

 

끝내고선 곧바로 튈 거다. 날치처럼 홀라당 날아 류청우 앞에서 사라질 거다. 박문대는 마음을 굳히고 조심스레 제 입술을 류청우의 입술에 대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류청우와 눈만 안 마주쳤다면, 아니면 적어도 그걸 몰랐다면 기꺼이 입을 맞췄을 것이다…….

 

“… 문대야?”

 

잠에 취해 조금 흐트러진 목소리가 박문대를 부르고, 역시 잠 기운 가득한 눈이 박문대를 보며 부드럽게 휘어졌다. 기꺼이 제게 입이라도 맞춰줄 듯 구는 류청우 때문에 박문대는 화들짝 놀라 본래 앉아있던 의자로 물러났다. 류청우는 손으로 제 얼굴을 문지르고는 한결 잠이 달아난 표정으로 박문대를 보았다. 그 시선을 올곧게 마주하기엔 조금 민망해서, 박문대는 괜히 타는 입을 커피로 대충 적셨다.

 

“머리카락에 뭐가 묻었는데 형이 주무시는 것 같아서요, 그러니까.”

“하하, 그랬구나. 알려줘서 고마워.”

 

그러면서도 조심조심 제 입술을 더듬는 류청우는 아무래도 방금 상황을 제대로 기억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상황을 대충 얼버무린 박문대가 다시 과제에 코를 박았다. 박문대가 과제에 정신이 팔린 사이 류청우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박문대를 보다가, 또 슬쩍 제 입술을 매만졌다.

 

그 후로 박문대는 괜히 류청우를 피했다. 같은 수업이 있는 날은 어쩔 수 없이 인사를 나눴지만, 수업 시작 전이나 수업이 끝난 후 류청우가 말을 걸기라도 하려 하면 곧바로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곤 했다. 물론 당연하게도 겹치는 수업이 없는 날에도 류청우는 박문대를 볼 수 없었다. 그런 생활이 한 달쯤 반복되고, 슬슬 박문대의 마음도 끝없는 과제와 시험에 풀려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문대야.”

 

아, 망했다. 박문대는 어떤 목소리에 제 심장이 바닥까지 떨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못 들은 척 가려고 했지만, 그 다음번엔 성큼 다가온 목소리가 박문대의 발을 옭아맸다. 안 그래도 물에 못 들어간 지 한참이라 묵직하던 다리가 그 족쇄에 옳다구나 하며 제 몸을 맡겼다. 그래서 박문대는 어쩔 수 없이 류청우와 마주했다. 평범하게 다정한 인사와 가벼운 안부를 짧게 나누고, 조금은 초조하게 느껴질 정도로 절박하게 터져나온 그 마음과 마주했다. 왜? 뭐 때문에? 박문대는 조금 혼란스러워졌고, 그 탓에 류청우가 제 손을 잡은 것도 조금 늦게 알아챘다.

 

“문대야, 내가 뭐 잘못한 게 있을까?”

 

이 다정함이 네 잘못이라면 고쳐주긴 할 건가? 박문대는 잠깐 그렇게 생각했다. 혼자 좋아하느라 제멋대로 들뜨고 가라앉을 마음은 결국 먼저 인간을 떠나보낼 인어에게 독이나 다름없어서, 더 무거워지기 전에 그냥 입맞춤이나 한 번 하고 끝내려고 했을 뿐이었는데 대체 뭘 기억하는 건지 류청우는 박문대를 놔주지 않았다. 혹여라도 박문대가 아플까 세게 붙잡지도 못한 손이 덜덜 떠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로 기분이 싱숭생숭해진 박문대는 결국, 반쯤 충동적으로 세 번째 작전을 실시했다. 가장 마음에 안 드는 작전을.

 

“청우 형.”

“으, 응?”

“우리 사귈래요?”

“?!”

 

덜컥 굳은 손에 그럼 그렇지, 하며 그냥 해 본 말이었다고 말하려던 박문대의 입에 무언가가 닿았다. 평범한 피부라기엔 조금 더 촉촉하고 말랑하고, 그러면서도 좀 까슬거리는. 어라? 오감이 보내는 경고에 박문대는 눈을 부릅떴다. 그런데 경고와 위험이 동시에 터져도 되는 건가? 아니 애초에 이게 위험한 건 맞나? 박문대는 너무 쉽게 성공해버린 세 번째 작전에 긴가민가 하면서도 일단 찾아온 기회를 마음껏 활용하기로 했다. 부드럽게 침범해오는 혀를 얽고, 문지르고, 타액을 섞고, 낯선 점막을 살며시 건드리는 것을 톡톡 두드리기도 하면서. 흐릿하게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입술이 떨어지는 순간 류청우는 박문대를 잊을 것이다. 저를 가득히 채우던 부피감이 천천히 빠지고, 박문대는 눈을 감았다 떴다.

 

“응, 그러자. 그러자, 문대야.”

“형?”

 

입맞춤이 제대로 끝났는데 왜 기억이 지워지지 않았지? 박문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류청우는 싱그럽게 웃었다. 그러고는 조심스레 박문대의 몸을 끌어당기고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도 인어니까.”

 

아, 그러니까 박문대는 처음부터 인어와 인간은 어쩌고 하는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던 거였다. 아니 인어는 개체수도 그렇게 많지 않은데 누가 뭍에서 다른 인어를 만날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냐고. 그럼 류청우는 처음부터 내가 인어인 걸 알고 있었나, 그럼 대체 나는 알아보지도 못 하고 뭘 했나. 뭐 그런 생각을 하던 박문대는 저를 단단히 붙잡는 류청우를 보고는 그냥 한숨을 폭 쉬었다.

 

“종강하면 같이 바다로 갈까?”

“그럴까요.”

 

네가 가진 정보를 잘 털어먹어주겠다는, 뒤에 생략된 말을 잘 알아들었는지 류청우가 멋쩍게 목덜미를 문지르며 웃었다. 그 모습을 보던 박문대는 류청우의 손을 살짝 잡아당겼고, 기꺼이 허리를 숙여 박문대에게 제 귓가를 내어준 류청우는 이어진 말에 활짝 웃으며 박문대의 어깨에 마음껏 이마를 부볐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 마음을 가진 게 혼자가 아니라서.

 

* * *

박문대가 두 번째 작전을 시행하던 그 때. 

과제를 하던 그 잠깐 사이, 깊이 잠들었던 듯 의식이 몽롱했다. 류청우는 잠에 취한 의식 너머로 흐릿하게 느껴지는 온기를 저도 모르게 좇았다. 다른 향으로 덮어 아주 흐리게 느껴지는 그리운 향이, 머리카락을 가볍게 건드리는 연한 진동과 긴장한 듯 살짝 떨리는 숨결이 피부를, 아니 어쩌면 피하에 숨겨둔 비늘을 간지럽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처음 보았을 적부터 가까워지고 싶어 멀리서라도 관찰하던 결과를 통해 어렴풋이 짐작만 해 왔던 것이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확신을 느낀 것이. 그래서 류청우가 애써 눈꺼풀을 끌어올리자, 반쯤 감긴 채로 저를 향해 훌쩍 다가온 박문대가 거기 있었다. 박문대는 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화들짝 놀라 제자리로 돌아갔으나, 류청우는 박문대의 얼굴 한켠에 자리잡은 안도감을 민감하게 잡아냈다.

그랬다. 류청우는 그 날의 모든 것을 아주 선명하게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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