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olet Memory
큰달+문대(건우), 원작 기반 저세상날조
1~320화까지 일부 스포 포함
진짜 극도의 날조와 적폐해석 주의
어디서 끊어야할지 모르겠어서 애매한 결말 주의...
[상태창.]
처음 정신이 들었던 건 아주 익숙한 목소리 때문이었다.
‘상태창’은 흐릿하게 떠오르는 의식 사이로 이어지는 말을 들었다. 그때 그 목소리가 뭐라고 했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상태창’은 자신이 무엇을 띄워줘야 그 목소리에게 도움이 될지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상태창’은 허둥거리며 정보를 정리하고 출력했다.
[이름 : 박문대 (류건우)]
Level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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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서 퐁, 작은 소리와 함께 작은 꽃 하나가 피어올랐다.
그 다음으로 ‘상태창’의 의식이 떠오른 것은 하나의 상태이상이 해결된 후였다. 성공적으로 데뷔한 박문대가 ‘진실 확인’을 누른 순간, ‘상태창’은 생각했다.
- 건우 형…?
가장 처음 떠오른 것은 그 목소리의 주인이었다. 자신이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존재. ‘상태창’은 그 이름을 뱉어내고 나서야 그게 누구였는지 확신할 수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 류건우가 첫 번째 진실확인을 보는 동안 하나씩, 그와 연관된 기억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첫 만남부터, 간간이 이어오던 연락.
다만 자신이 누구였는지는 아직도 희미했다. 그야 당연했다. 류건우와, ‘건우 형’과 만날 때 거울을 볼 일이 뭐 얼마나 있다고. ‘상태창’은 거기에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기억을 흘려보냈다. 기억 하나가 떠오를 때마다, ‘상태창’이 있는 곳에 보랏빛 제비꽃이 한 송이씩 피어났다. 드문드문 피어난 꽃들이 보였다.
‘상태창’은 조심히 작은 꽃을 쓰다듬었다. 이 꽃이 꽃밭을 이루는 날을 저도 모르게 기대하면서.
박문대가 두 번째 상태이상을 해결한 날. ‘상태창’은 두 번째 진실확인이 이루어지는 짧은 시간에 자신의 이름을 떠올렸다.
- ‘박문대’.
그리고 그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도 떠올렸다. 가족들이 불러주던 이름, 동급생들이, 선생님들이, 알바처 사장님이, … 그리고 류건우의, 무뚝뚝하지만 따뜻한 건우 형의 목소리가 부르던 제 이름을. 그리고 또 떠오른 기억은 자신이 의지했던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 간간이 연락하던 정도라고만 생각했던 기억이 구체화되면서, ‘상태창’은 감정에 대해 떠올릴 수 있었다. 슬픔, 기쁨, 행복, 불행, 절망, 희망, … 이전에 그가 느꼈을 선명한 울림들.
‘상태창’, ‘박문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커다란 덩어리들이 괴상하게 연결된 곳에서, 제 주변으로 피어난 아름다운 제비꽃들을. 기억이 선명해질수록 늘어나는 꽃들이, ‘박문대’는 좋았다.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낸 ‘박문대’는 그 이후로도 생각을 이어갈 수 있었다. 아직 모든 것이 정확히 떠오르지는 않았다. 지금은 조금 벗어났지만, ‘상태창’의 의식은 분명 어딘가에 동화되어 뭉그러진 채였기 때문에. 그래도 희미하게 떠오르는 기억에는 자신이 ‘특성 뽑기’에도 관여한 것 같았다. ‘박문대’는 허공에 띄워둔 창에서 꼭 자신이 쓴 것 같은 설명과 단어들을 보며 생각했다. 그리고 흐릿하게 보이는 잔상을 생각했다. ‘건우 형’이 겪었던, 혹은 겪을 일을. 형이라면 왠지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박문대’는 작게 웃었다.
- 그래도 뭔가,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박문대’는 ‘특성 뽑기’를 돌리는 박문대를 보며 조심스레 칸을 채워 넣었다. ‘박문대’가 채워넣은 칸에는 ‘바쿠스’라고 쓰여 있었다. 제비꽃은 오늘도 한 송이씩 피어나며 제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세 번째 진실확인이 이루어진 순간, ‘박문대’는 제 형체를 인식했다. 이제 '박문대'는 손을 꼼지락거리고, 고개를 꾸벅이고, 다리를 흔들 수 있었다.
- 건우 형…
그리고 ‘류건우’가 본 진실확인을 같이 볼 수 있었다. 거칠게 후벼파인 상처에 PTSD 증세를 보이는 ‘류건우’를 보면서, ‘박문대’ 역시 크게 동요했다. 이전의 ‘류건우’가 말해주지 않았던 것을, 그의 근간을 이룬 기억을 함께 확인하면서. 서서히 깨어나던 감정과 기억이 후드득 쏟아졌다. 그 감각이 아득하여 ‘박문대’가 고개를 한껏 들었을 때, 눈앞에 펼쳐진 건 드넓게 펼쳐진 제비꽃 물결과, 비로소 ‘박문대’가 인식할 수 있게 된 박문대의 감각이었다. 박문대의 흔들리는 시야가, 들려오는 타인의 목소리가, 느껴지는 차가운 유리병의 촉감과 떨리는 몸이 ‘박문대’의 현실감을 일깨웠다.
소리없이 피어난 제비꽃이 하늘거리며 흔들렸다. 기분 탓인지, 보랏빛이 더 짙어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번째 상태이상을 클리어했을 때. 눈앞에 펼쳐진 수많은 별의 물결을 보며, 박문대가 느낀 희열과 벅참은 그대로 ‘박문대’에게 흘러들었다. 강렬하게 몰아치는 행복에 ‘박문대’는 방긋 웃었다.
- 건우 형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
무언가가 입을 조종하듯, 기억에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박문대’는 화들짝 놀라 양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 그러나 거기에 더 놀랄 정신은 없었다. 자신이 문득 중얼거린 말에 찬물을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기 때문이다.
‘박문대’는, 큰달은 눈을 크게 떴다. 가장 중요한 조각이 맞춰졌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폭풍처럼 마지막 기억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큰달은 들어오는 기억을 잊지 않으려 눈을 부릅떴다. 살아가며 겪었던 일들, 품었던 가치관, 성격, 사고 패턴, 쌓았던 지식, 괴로움, 추억까지, '박문대'로서 살아왔던 모든 기억과 자아. 마지막으로 받았던 충격인 gun1234의 정체까지, 모든 것을.
피어있던 제비꽃과 새로이 피어난 제비꽃이 강한 빛으로 물들며 꽃보라가 몰아쳤다. 보랏빛 꽃들이 푸르스름한 공간 안을 마구마구 흩날리며 큰달의 주위를 감싸고 거대한 덩어리로부터 그를 떼어내려 안간힘을 썼다. 제비꽃은 큰달이 시스템에 붙들린 부분을 베어내고 끊어내며 한 송이씩 사라지면서도, 자아가 있는 것처럼 확실한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큰달은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다, 제 몸을 따뜻하게 감싸는 꽃잎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큰달의 손길을 반기듯 피부로 스며드는 꽃잎들에는 온기가 가득해서, 큰달은 자연히 자신이 이전에 느꼈던 온기를 기억했다. 머릿속으로 밀려드는 과거와 미래에 어지러움을 느끼면서도, 큰달 역시 자신이 해야 할 것을 깨달았다.
목숨을 빚진 것은 목숨으로 갚는 게 맞다.
그래서 네 번째 ‘진실 확인’ 창이 뜨기 직전, 큰달은 ‘코인 획득’ 선택지를 만들어내는 것에 성공했다. 직후 '박문대'의 사망을 조건으로 건 새로운 상태이상이 생성되는 것을 보면서도 큰달은 의연했다. '코인'을 대가로, 자신의 생명을 대가로 박문대를 살려낼 수 있다면. 그리고 그건 이미 한 번 성공한 적이 있었다.
비록 '건우 형'이 '박문대'를 잊었다고 해도 큰달에게는 이제 건우 형과 쌓았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큰달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하게 웃었다. 모든 기억을 되찾은 큰달은, 그래서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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