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문대

날개와 어리광

청우문대, 완결 후 if, 날개와 마법과 노랫소리

티온랩실 by 티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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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우문대 16회 전력: “내일 만난 너를 오늘 내내 생각해”

분량이 짧습니다. 원작 인용 구절이 있습니다!

언제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류청우는 홀로 숙소 거실에 앉아 있었다. 어둑해진 바깥에도 불을 켜지 않아 캄캄한 거실 한가운데에, 다른 멤버들은 모두 모종의 이유로 외출해 아무도 없는 빈 곳에.

스티어, 데뷔 5년차 남자 아이돌 그룹. 그럼에도 제대로 낸 앨범이라고는 몇 장 되지도 않는, 성적은 나쁘지 않지만 앞으로 성장할 동력은 남지 않은, 과거의 명예를 허무하게 끌어안은 채 그저 그렇게 침몰해가는, 이제 곧 재계약 따위 없이 해체될 굴레. 류청우는 문득 답답해지는 가슴께 너머 아주 희미한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스티어를 조직적으로 까내리던, 말이 스티어지 실상은 그가 나름 아낀 막내들을 이유없이 까내리던 렉카 채널이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해 사라졌던 그 날의 기억을.

 

- 내일 만난 너를 오늘 내내 생각해

- 낮처럼 파란 꿈을 꿔

 

그리고 류청우는 이제 그 일을 한 사람이 누군지 안다. 지금 그의 품에 안겨 세상모르고 자는 그의 연인, 이제는 그들의 기억 속에만 남은 그 시간선에서부터 지금까지도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 류청우가 기꺼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연장자이자, 그럼에도 나눌 수 없는 단 하나의 아픔을 상징하는 사람.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 류청우가 사랑하기로 결심한 사람. 류청우는 입술을 살짝 벌린 채 잠든 그의 연인에게 조심스레 입을 맞추었다. 반듯한 이마의 부드러운 감촉을 멋대로 즐기던 류청우는 밀려오는 수마에 저항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 All that time, 아마 필요했던 거야

- 미래로 가는 마법이

- 그래서 난

 

류청우는 눈을 떴다. 진동으로 설정해둔 스마트폰의 알람을 끄고 비어있는 화장실을 찾아 꼼꼼하게 세안을 하고 몸을 씻어냈다. 아직 막내들은 자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아니, 미래와는 달리 이젠 든든하게 식사를 할 여유 따위는 없다. 류청우는 조금이나마 더 잠들라고 놔두었던 동생들을 깨웠다. 스케줄을 위해 이동하는 차 안에서, 류청우는 어제 발견한 위튜브의 렉카 채널에 접속했다. 다른 찌라시 사이사이 끼어있는 그들의 루머를 앞에 두고 그는 제 눈치를 보며 저들끼리 조용히 투닥거리는 동생들을 흘끔 보았다. 알게 해야 할까, 아니. 그랬다간 이제껏 그들을 통제하기까지 하며 지키던 것의 의미가 없다. 류청우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물밑의 어느 커뮤니티에는 그 렉카 채널의 루머들이 고스란히 기정사실처럼 되어 있었다. 해명을 하려 해도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고, 아무리 반짝이려 애를 써 봐도 그들에게 밀어닥치는 것은 과거의 위명만을 요구하는 무언가 뿐. 류청우는 더 타들어갈 것도 없이 모든 것이 새하얀 재가 되어버린 폐허에 서 있었다. 그가 바란 건 오직 하나, 꿈이란 것이 타지 않고 살아 숨쉬던 그 시절의 마음을 되찾는 것. 그러나 그런 미래 따위는 없을 것임을 알기에 류청우는 감히 마법을 꿈꾸었다. 오래도록 그를 괴롭혔던 지독한 열기에 깃털 뿌리마저 모조리 녹아 타버린 날개로라도 하늘을 나는 마법을.

 

- 미래로 빠져들어 조용히

 

익숙한 감각에 눈을 뜬 박문대가 저를 잠결에도 꽉 안은 류청우를 본다. 무슨 꿈을 꾸는지 미간이 잔뜩 찌푸려진 그 모습을 본 박문대는 아직 잠에서 덜 깨어 조금 아득하게 느껴지는 팔을 움직여 류청우의 미간을 살살 펴 주었다. 악몽이라도 꾸는 걸까, 박문대는 팔을 다시 뻗어 류청우의 너른 등을 부드럽게 토닥였다. 그리고는 아주 예전의 희미한 기억을 뒤져 자그마한 목소리로 자장가도 불러주다가, 흘러가듯 그들의 첫 노래를 불렀다. 몽환적인 선율을 가진, 그들의 마법소년.

 

- Cast a spell

- Make a wish come

- True true true

 

스케줄이 없는 날. 류청우는 습관처럼 이른 시간에 눈을 떴다. 주방에 가서 물을 한 잔 마시고, 느릿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조작해 위튜브를 켰다. 그러나 검색 결과에는 더 이상 그 렉카 채널이 뜨지 않았다. 류청우의 눈이 조금 커졌지만, 그뿐이었다. 빛을 잃은 눈은 느리게 깜박이며 화면을 보다가, 이윽고 전부 꺼 버렸다. 회사는 더 이상 그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기에 어느 팬이 직접 파고들어 그들을 지웠다는 것을 류청우는 알았고, 그래서 그 채널이 사라진 것에서 류청우는 아주 짧은 순간 희미한 사랑을 느꼈으나 그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류청우는 발이 꺼지는 것 같은 느낌에 고개를 숙였다. 발밑은 온통 암흑이었다. 숙소 바닥이 원래 이런 색이었나? 아니, 기억나지 않는다. 류청우는 굳은 눈을 들어 주위를 살폈다. 어디선가 희미하게 낯익은 듯 낯선 노랫소리가 그를 감싼다. 연분홍빛으로 물들던 주위는 어느덧 화려한 황금빛과 자줏빛을 넘어 푸르게 반짝였다. 노랫소리처럼 낯선 듯 낯익은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류청우는 눈을 떴다.

 

- 꿈으로 빠져들어 파랗게

 

눈앞에는 잠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한 그의 연인이 있다. 류청우는 무언가의 공포에 휩싸인 채 박문대를 꽉 안았다. 박문대는 류청우의 어리광에도 싫은 기색 하나 없이 그를 다독이고 달래며 사랑을 건넸다.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언제까지나 너를 떠나지 않을 것처럼, 지워진 미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내일 만난 너를 오늘 내내 생각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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