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대른

[엋문/청려문대] 반쪽짜리 인어 박문대

물갈퀴가 있는 팔과 발, 비늘이 돋아난 몸.

인어라기엔 꼬리가 없고 사람이라기엔 비늘이 돋아난 존재가 박문대였다.

심해까지도 자유롭게 오가는 평범한 인어들과 달리 자신은 인어들의 거주지까지는 들어가지만 한번씩 물 밖으로 나와 숨을 쉬어줘야 했다.

그렇다고 물 밖에서 계속 숨을 쉴 수 있느냐 하면 또 그것도 아녔다. 그는 결국 인어였으므로 물 밖에만 있다가는 보통의 인어보다는 느리게, 그렇지만 결국엔 말라 죽을 것이 뻔하였다.

다른 인어와 다른 제 모습에 무력감을 느끼는 것은 이미 옛날에 끝내었다. 저는 그럼에도 아이들을 사랑했고, 사랑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내가 행복한 것이 바다의 진노를 산 것일까 하늘이 노여워 한 것 일까. 달도 뜨지 않은 밤 나를 배려해 수면 위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꼬리가 없어 헤엄이 느린 저를 두고 가지 못해 저와 함께 인간에게 붙잡혔다.

처음엔 제게 상품 가치가 없어서 버린다느니 또 특이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느니 하는 말에 자신을 데려가라고 말했다.

데려가. 나도 데려가야 그 아이들을 살리지. 날 버리지 못해 잡힌 그 아이들을 바다로 돌려보내지.

제 목숨 따위는 상관 없었다. 그 아이들을 바다로 돌려보내고 살릴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비록 제겐 세이렌과 같은 능력은 없었지만...

저와 같이 잡혀 온 아이들을 세이렌이라 착각한 것인지 모두 작은 수조에 하나씩 갇혀 재갈이 물리고 손이 묶여있었다. 그나마 저는 세이렌은 커녕 제대로 된 인어로도 보이지 않기에 재갈을 물리지 않아 그들과 대화를 할 수 있어 저 아이들은 세이렌이 아니라고 재갈과 구속을 풀어달라 부탁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내게 살려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라 했다. 왜? 저 아이들이 무슨 잘못을 했기에...

그들이 보기에 나는 수조가 필요하지 않아 보였기에 목줄만 매어 구석에 처박혀있었고 그러던 어느 밤에는 한계를 느낀 몸이 고통을 토해내며 숨을 쉬지 못하자 아이들은 그 작은 수조에서도 내 자리를 만들어 들어오라며 열심히 꼬리 짓을 해댔다.

나는 죄인이었다.

내가 저 아이들을 저렇게 만든 것이다.

내가 아니면 아이들이 잡힐 일은 없었을 텐데...

그러던 어느 날 인어들이 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주가 만들어지지 않자 계속 이상하게 여기던 자들이 내게 물어왔고 나는 조금의 희망을 가지고 답하였다. 저 아이들은 아직 너무 어려 진주가 나오지 못한다. 저 아이들에게서 진주가 나오려면 인간의 햇수로 족히 100여년은 걸릴 것이다. 그러니 저 아이들을 놔달라고 말을 했다.

돌아온 것은 폭력이었다.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인어를 잡은 것에 대한 분노, 감히 내가 아이들을 풀어달라 요구했다는 분노, 애초부터 상품 가치가 없던 나를 데려왔던 분노...

그 분노에 못 이겨 저도 모르게 진주를 흘렸고 그에 내 쓸모가 조금은 올라갔다. 비록 내 진주는 내 생명력을 갉아 먹지만 그들이 원하는 만큼 진주를 내주고 아이들을 돌려보내 달라 요청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들은 내게서 진주가 나왔음에도 100년을 키우니 마니 하며 계속해서 싸워대고 있었고 또 다른 자들은 지금 이것의 진주라도 뽑아내자며 내게 폭력을 가하며 진주를 얻어내고 있었다. 아, 아이들이 슬퍼할 텐데...

쾅 하는 큰 소리와 함께 계속해서 휘두르던 폭력이 멈춘 것이 느껴졌다. 돌아오지 않는 정신을 붙잡으려 노력하며 흐릿한 눈으로 앞을 보니 어느새 우리를 잡아 왔던 이들이 모두 피를 흘리며 죽어있었다.

아이들, 아이들은 수조에 튄 핏줄기를 보며 겁에 질려있기는 하지만 다행히도 모두 무사했다.

이제 또...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며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깨어났을때는 수조였다. 내 상태를 잘 아는 듯이 얕은 바닷물에 몸을 반쯤 담가둔 상태였고 그 덕에 오랜만에 편안히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렇게 숨을 고르고 있길 몇 분 머리맡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퍼뜩 놀라 일어나다 수조에 머리를 박았다.

"음, 안녕하세요?"

"...... 안녕."

"인어들이 당신도 물이 필요하다고 해서 수조에 눕혔어요.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상처는 인간의 약을 써도 될지 몰라서 그대로 뒀어요."

"... 아이들은?"

"바다로 돌려보낼 준비 중이에요. 납치된 탓에 경계심이 심해 구속만 풀고 그대로 두었어요."

"아이들을, 바다로 돌려보내 줘..."

"당신은요?"

"... 상관없어."

내가 바다로 돌아가봤자 또 이런 일이 생기지 않으리란 법이 없었다. 나는 내 행복이 있는 고향을 등지고 뭍에서 생을 마감하기로 마음 먹었다.

"아이들에게는 내가 죽었다고 말해줘. 그렇지만 아이들이 가는 걸 내 눈으로 봐야겠어."

"걸을 수 있죠? 인간의 옷을 준비해줄게요. 머리를 자르고 색을 바꾸면 그들도 눈치채지 못 할 거예요."

"... 그래."

남자는 문을 열고 누군가에게 말을 전하더니 옷가지와 가위, 약을 들고 금세 돌아왔다.

"일단 입어볼래요? 도와줄게요. 입고 머리를 자르도록 해요. 머리색은 일단 지금 색이 너무 짙어서 색을 빼야 해요.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일단 색만 빼고 염색은 나중에 하는 게 좋겠어요.

"... 마음대로 해."

"인어들을 돌려보낼 준비는 거의 다 되었어요. 최대한 인어들에게 충격이 가지 않게 수조채로 바닷속에 넣었다 수조를 건질 예정이에요. 아까 나가면서 당신이 죽었다고도 전했어요."

몸의 물기를 닦아내고 정신없는 그의 말을 들으며 인간의 옷을 입고 머리를 잘라내니 정말로 내가 물을 떠나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 따가울 수 있어요."

나를 자신의 허벅다리에 눕힌 남자가 한 손으로 내 눈을 가리고 약품을 머리 위로 부었다. 이리저리 머리를 돌려가며 아낌없이 부은 남자가 머리를 파고들고 슬슬 쓰다듬더니 금세 물을 뿌렸다.

"여기 수건으로 머리 말리고 있어요. 저는 옷만 좀 갈아입고 올게요."

남자가 손을 치우면서 얼굴 위로 수건을 덮어주었고 곧이어 일으켜 세웠다. 일어난 자리에는 몇알의 진주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금새 돌아온 남자와 함께 아이들을 보내는 곳으로 가고 있자 뜬금없이 통성명을 하기 시작했다.

"저는 신재현이예요. 여기서 쓰는 이름은 청려. 당신 이름은 그대로 쓸 건가요?"

지나가는 길 마다 늘어선 사람들이 남자, 청려를 보고 고개를 숙인다. 인간들의 위치에서 꽤나 높은 모양이지...

"예전 이름은 버려야겠지."

"머리 탈색이 잘됐어요. 햇빛에 비치면 금색같이 빛나네요. 음, 문대. 박문대가 어때요? 따듯할 문에 햇빛 대 에요. 지금 당신에게 잘 어울리네요."

"... 그래."

통성명을 마치며 문을 열자 눈을 찌를듯한 햇빛이 들어왔다.

아까 청려가 말했듯 아이들은 바다 위에서 수조채로 내려보내는 듯했다.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담긴 얼굴이었지만 묘한 우울감이 감돌고 있었다.

내 탓이겠지만 더 이상 나로 인해 아이들을 위험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건우형을 돌려줘! 죽었다면, 유해라도 돌려달라고!"

... 납득하지 못한 아이가 있는 듯했다. 그래, 이세진. 너만큼은 저 말을 따르지 않을 줄 알았지. 죽었다는 말은 당연히 믿지 않는 듯이 수조를 깨부술 듯 난동을 피우고 있었다. 기꺼웠지만, 그래서는 안된다.

"조용히 좀 가라. 수조 부수겠다."

"... 형...?"

눈이 마주친 녀석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류건우의 모습은 모두 지웠을 텐데도.

"뭍에서 죽겠다고 했다. 니가 부르는 류건우인지 뭔지 하는 녀석이. 그러니 조용히 좀 가라."

"... 왜..."

물 속에서도 방울져 흩어지는 눈물이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건 알 거 없고, 가라. ... 너라면 류건우를 더 이상 찾지 않게 할 거라 믿는다."

답은 듣지 않은 채 녀석까지 모두 바다로 돌려보냈다. 해명을 바라는 눈빛은 바다에서도 계속하여 나를 괴롭혔다. 청려에게 돌아가자 말하며 도망치듯이 선실로 들어와 마음속에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되새겼다.

성이 같다는 이유로 천애 고아가 된 반쪽짜리를 받아준 류청우, 인간 세상에 관심이 많아 내게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얼굴을 붉히던 배세진, 그 어떤 인어보다 아름다우며 고운 마음씨를 지닌 선아현... 이 녀석이 제일 많이 울었겠지. 다행히 이번에 잡히지 않은 차유진과 김래빈도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많이 울겠지. ... 그리고 이세진, 내가 가장 믿고 있는 아이. ... 너라면 날 이해해주겠지. 미안하다...

상념이 끝날 때쯤 노크 소리와 함께 청려가 들어왔다.

"이제 배를 돌리고 있어요. 문대씨는 앞으로 어떻게 할 건가요?"

"... 글쎄."

"그렇다면 일단 저희 집으로 오지 않을래요? 바닷가 근처에 지하에는 수영장이 있어 해수를 담아둘 수 있어요. 당신이 원하는 만큼 머물도록 해요."

"...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건데?"

"음, 진부한 말이지만... 인간이 벌인 일은 인간이 책임져야죠. 그리고 당신에게 조금 흥미도 생겼고요?"

말을 마치며 눈웃음 짓는 남자를 보니 뭐 아무러면 어떤가 싶었다. 그렇게 인간 신재현과 반쪽짜리 인어 박문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더 이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잇는 다면 꾸금이 되겠죠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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