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모음

번아웃 온 박문대

강아지를 힐링시켜주세요

박문대는 다른 멤버들에 비해 예민한 편이었음.

배세진과 비슷한 성향처럼 보이지만, 연예계 생활을 평생의 목표로 두고 그것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과는 결이 다른 예민함이었음. 무엇보다 사고 후 체력이 다른 멤버들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도 있었음.

그러니까, 평생을 운동을 해온 류청우나 선아현, 평생 아이돌을 목표로 한 이세진, 외부 자극으로부터 무던한 김래빈이나 오히려 그 자극을 즐기는 차유진과도 다르게, 박문대는 오랜 활동기로 쌓인 예민함과 불안함, 그리고 피로도에 번아웃이 왔음. 물론 번아웃이라는 걸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채.

활동기의 마지막 스케줄이 끝나고, 다들 휴가동안 본가에서 지내기 위해 분주히 짐을 챙겼음. 그런 멤버들을 보면서 박문대는 소파에 엎드려있었음.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싫은 기분에 평소에 열중하던 모니터링도 하지 않음.

원래라면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씻고 침대에서 편하게 핸드폰을 만졌을 문대가 소파에 엎드린 채 눈만 굴리는 모양새에 청우가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심스럽게 물어봤음.

"문대야, 졸려도 씻고 자야지."

멤버들 중에서 가장 청결에 신경쓰기도 하고, 게으르게 늘어지는 걸 좋아하지만 씻는 걸 귀찮아하지 않는 걸 알아서 청우는 더 말을 얹지 않고 그냥 뒀음. 부지런한 사람도 가끔 귀찮을 때가 있기도 하고, 한 번 말했으니까 문대가 알아서 몸을 일으킬 거라고 생각했음. 그렇게 멤버들은 들떠서 한 명씩 순서대로 씻고 각자 방으로 들어갔고, 마지막으로 거실에서 물을 마시던 이세진은 문대 앞에 쪼글 ㅕ앉아 볼을 찔렀음.

"문대문대 자는 거 아니지? 씻고 잘 거지?"

"어."

"씻기 귀찮아? 세진이가 씻겨줄까?"

"자라."

"힝... 알았어. 문대문대도 잘 자."

어디 아픈가 싶어서 꼼꼼히 살펴보다가 이세진은 몸을 일으키고 거실 불을 끄고 들어갔음. 고요하다 못해 적막감만 맴도는 거실에서, 박문대는 여전히 소파에 엎드린 채 멍하니 상태창을 바라봤음. 누군가는 허공을 바라봤다고 생각하겠지만 푸른 빛을 띈 상태창을 보던 문대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점점 깊은 늪에 빠지는 것만 같았음. 몸을 일으켜서 씻어야 한다고, 오늘 할 일을 끝내야 한다고 계속 생각은 하지만 누군가 자신을 옭아매어 늪으로 점점 깊이 끌고 들어가는 느낌에 움직일 수 없는 것 같았음.

누군가는 운동중독자라고 말하는 테스타의 리더 류청우는 평소처럼 가볍게 아침조깅을 하기 위해 일찍 눈을 떴음. 누군가에겐 일찍일 수 있는 새벽 7시, 류청우는 나름대로늦잠을 즐기고 일어났음. 룸메이트가 소리에 깰까 조용히 준비를 마치고 주방에서 물 한 컵을 마시려던 류청우는 거실 소파에 있는 인영에 놀랐음. 어제와 같은 옷, 같은 자세로 눈만 깜빡이는 박문대에게 다가간 류청우는 자연스럽게 이마에 손을 올렸음.

"문대야?"

휴가 때마다 아픈 어른스러우면서도 자기 몸 하나 챙기지 않는 동생이 이번에도 아플까 걱정이 됐음. 조금 썰렁한 거실에 오래있어서 그런지 문대의 이마는 평소보다 낮은 체온이었지만, 걱정할만큼은 아니었음. 여전히 눈만 깜빡이던 박문대는 류청우의 손이 이마에 닿자 겨우 주변을 살폈음. 푸른 빛이 커튼 사이로 새어들어왔고 시야는 밤보다 훨씬 밝고 또렷해졌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안 잤어?"

"그냥 생각할 게 있어서요."

썩 틀린 말도 아니었음. 이젠 정말 몸을 움직여야 할 것 같은데 여전히 온 몸에 무거운 추를 단 것 같은 느낌에 한숨을 삼켰음.

"... 문대야, 휴가동안 우리 집 갈까?"

이렇게 무력해보이는 박문대는 처음이라 조심스레 권유했지만 고개를 저은 박문대가 그제야 청우랑 눈을 맞췄음.

"괜찮아요. 늦었는데 운동 안 가세요?"

잠깐 머뭇거린 류청우는 그가 혼자 있고 싶다고 생각을 한 건지 몸을 일으켰음. 그리고 다시 머리를 쓰다듬었음.

"얼른 들어가서 제대로 쉬어. 운동 다녀올게."

가볍게 인사를 하곤 피곤함에 뻑뻑해진 눈을 굴렸음. 그 다음은 공항으로 출발하는 차유진이 일어나서 박문대를 봤음.

"문대형! [안 잤어요? 피곤해보여요. 괜찮아요?]"

"어. 조심히 다녀와."

"형 너무 걱정 많아요. 걱정 조금만 해요."

시간을 확인하던 차유진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곤 엎드려있는 박문대를 안았다 놔주겠지.

김래빈은 소파에서 박문대가 자는 것으로 알았는지 기웃거리다가 이불을 덮어주고 조용히 나갔고, 선아현과 이세진은 부산스레 같이 일어나서 나오다가 여전히 어제와 같은 모습을 한 박문대를 보고 놀랐음.

"문, 문대야! 여기서, 잔, 거야?"

"문대문대 괜찮아? 어디 안 좋아?"

"얼른 가라."

귀찮음에 고개를 젓고는 다시 한숨을 삼켰음. 그리고 이런 대화 속에서 일찍 일어났지만 방에서 나오지 않았던 배세진은 고개만 내밀어 거실을 살피다 마찬가지로 박문대를 보고 놀랐음.

"박문대 너 아파?!"

"아뇨, 그냥 생각할 게 있어서요.

"문,대야, 그래도 잠,잠은 자야 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일어날 생각이 없던 박문대를 바라보다가 이세진은 몸을 일으키며 이불째 들어올렸음. 그제야 늪에서 빠져나와 정신이 들어 몸을 비틀었음.

"야!"

"문대문대, 세진이는 너어어무 걱정돼서 안 되겠어. 나랑 이번 휴가 같이 보내자. 일단 씻고~ 아현아현이랑 세진형님은 얼른 가보세요. 연락드릴게요!"

버둥거리다가 포기하고 씩씩거리는 박문대를 보던 선아현과 배세진은 걱정스럽긴 하지만 머뭇거리다가 숙소를 나갔음. 자기 침대도 아닌 이세진 침대에 눕혀진 박문대는 숨을 고르고 그제야 몸을 일으켰음. 어쩐지 어지러움에 이마를 잡았고, 오랜시간 같은 자세로 있어서 생긴 뻐근함이 그제야 느껴졌음.

"이번엔 무슨 문제야?"

"별 일 없어. 그냥, 귀찮았어. 그러니까 너도 얼른 가. 씻고 쉴게."

심각한 말을 하지만 제 덩치를 아는 이세진은 몸을 낮춰 침대 밑 바닥에 앉아서 물었음. 사실 박문대도 문제가 뭔지 몰랐고, 그저 기분이 가라앉을 뿐이었음. 어깨를 주무르던 박문대는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이세진 손에 의해 다시 침대에 앉혀졌음. 자기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이세진에 괜히 찔렸지.

"...이번 휴가 나랑 놀자."

"가족들하고 보내는 거 아니었냐?"

"어차피 난 본가가 가까워서 활동 중에 들려도 되니까. 그러니까"

둘이 대화하는 사이에 숙소 현관이 열리는 소리와 박문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음. 이세진의 방에서 박문대를 찾은 류청우가 문가에 기대서 둘을 바라봤음. 류청우는 이세진이 자신과 같은 마음인 것 같다고 생각했음.

"바다보러 갈래? 씻고 나올 테니까 짐만 간단히 챙겨."

이세진은 그 말을 듣고 박문대 겨드랑이에 손을 껴서 벌떡 일으켰음. 물론 온갖 짜증을 냈지만 그냥 그대로 들려서 화장실에 넣어졌음.

"옷 갖다줄게! 씻고 나와."

원치않게 옮겨진 거긴 하지만, 여전히 팔다리가 무거웠지만 몸을 움직여 씻었음. 그리고 훨씬 나아진 걸 느꼈지. 문 앞에 높인 옷을 대충 껴입고 거실로 향하자 이세진과 류청우는 미리 싸둔 짐을 문 앞에 뒀고, 통화를 끝낸 류청우가 핸드폰을 내리며 방에서 나왔지.

"문대야 짐은?"

"저 때문에 괜히 그러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아냐. 나도 오랜만에 바다 보고 싶었어."

"세진이도~"

옷소매를 만지작대던 문대가 가방에 대충 짐을 싸기 시작했음. 일주일이란 휴가긴에 맞춰서 있을 거란 말에 짐이 조금 많았지만. 둘을 따라 숙소를 나서자 늪에서 빠져나온 기분이 들었음. 그냥 그 둘을 보고 걷다가 류청우의 차가 아니라서 의아한 표정을 짓자 웃으며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엔 배세진이 뛰듯이 걸어왔음.

"단톡방에 올렸더니 같이 간다고 해서. 내 차는 너무 좁잖아? 얼른 타."

이세진은 박문대 손에서 짐을 뺏어서 밴에 실었고, 배세진과 박문대는 뒷좌석에 앉았음. 차에 시동이 걸리고 움직이자 창 밖에 멍하게 시선을 두었음. 앞에서는 이세진과 류청우가 일정에 대해 얘기했지만 귀에 들어오진 않았음. 배세진은 박문대의 손등을 건드렸고 박문대가 그제야 시선을 옮겼음. 여전히 걱정이 담긴 눈이지만, 배세진은 크게 티 내지 않으면서 손에 물을 쥐어줬음. 반쯤 뚜껑이 열린 패트를 보다가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몸을 더 편하게 늘어트렸음. 그리고 창 밖은 여전히 익숙한 풍경이었고, 회사 앞에 멈추더니 김래빈이 차에 올랐음. 짐가방을 든 채로.

"데리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익숙하게 제 자리를 찾아 앉은 김래빈을 보고 차는 다시 출발했음. 이제 정말 바닷가에 가나 싶었지만, 투어 때마다 들려서 익숙한 길을 가던 차가 공항 앞에 멈췄음. 그리고 두 명이 올라탔음. 그제야 의아함을 느낀 박문대가 핸드폰을 보려고 했지만 숙소에 두고 온 걸 깨달았음. 하지만 이미 숙소에 다시 가기엔 늦은 걸 알았고, 의아한 표정으로 밖을 봄.

"아현형이랑 같이 쇼핑했어요! 간식이랑 김밥이에요. 먹어요?"

"바보야! 형님들께 먹어요가 아니라 드시겠습니까 라고 물어봐야지!"

"Hmm~ Whatever!"

뒷좌서에서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익숙한 소음 속에서 박문대는 그제야 긴장이 풀렸음. 슬슬 눈이 감겨오기 시작했음. 박문대를 살피던 배세진은 멤버들에게 신호를 보냈고, 언제 시끄럽게 투닥거렸냐는 듯이 데시벨을 금방 낮췄음. 선아현은 자신의 자리에 있던 담요를 문대에게 잘 둘러줬음. 도착까지 단 한 번도 깨지 않았던 박문대는 자신을 흔드는 손길에 눈을 떴음. 푸른 바다를 보며 이미 신나서 저 멀리 뛰어간 멤버들이 보였고, 그 다음엔 자신을 깨우던 류청우와 선아현이 보였음.

"문대야 피곤해도 내렸다가 밥 먹고 다시 자. 숙소 먼저 들어갈 거야."

"맞,아! 밥 먹어야,해."

꽤 단호하게 말하는 둘에 몸을 일으킨 박문대는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자 그제야 자신이 번아웃이었다는 걸 인정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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