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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댕뵤] 배세진은 그 매니저가 껄끄럽다

어딘가 수상쩍은 신입 매니저 박문대 X 드림K 소속 배우 배세진

*배세른 앤솔로지 <배른 생활 길잡이> 문대배세로 참여했던 글입니다.

*모브 캐릭터의 분량이 꽤 있으니 주의


“오늘부터 함께 일하게 됐습니다. 박문대라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무표정으로 꾸벅, 고개를 숙이는 청년을 배세진은 떨떠름하게 바라보았다. 그 와중에 전속 매니저는 신이 나서 떠들어댄다.

“이야~ 세진이 너 이번에 대박 영화 찍는다고 대표님이 특별히 사람 하나 더 붙여주셨다. 수습이긴 해도 없는 것보단 낫지 않겠어? 나도 좀 편해지고.”

아마 전속 매니저에게 의미 있는 건 마지막 문장뿐일 것이다. 툭 하면 스케줄 중간중간 사라지는 주제에 마치 과도한 업무에 시달린 양 구는 모습이 참으로 얄미웠으나, 배세진은 한숨조차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기대한 적이 없었으니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 수습 매니저 역시 그렇다. 듣자 하니 매니저 업무는 이번이 처음이라 하던데 신입의 기세는 어디다 갖다 버렸는지 심드렁한 얼굴로 고개나 까딱이고 있다. 물론 신입이니까 무조건 긴장하고 살라는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앞으로 함께 일할 사이인데 조금은 의욕을 보여도 되지 않나?

이런 식으로 지레짐작하는 건 좀 그럴지 몰라도, 배세진은 박문대가 소속사의 연줄을 이용해 낙하산으로 들어왔을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아, 나는 잠시 볼 일이 있어서 나갔다 올 테니까 둘이 서로 말 트고 해.”

실실대며 나가는 꼴을 보아하니 또 한동안은 돌아오지 않겠구나. 배세진은 어깨를 늘어뜨리며 시선을 대본으로 돌렸다. 하나부터 열까지 엉망진창인 이곳에서 유일하게 가치 있는 것. 배세진이 이 모든 것을 감내하는 단 하나의 이유. 대본을 쥔 손에 무심코 힘이 들어갔다.

연기만 계속할 수 있다면. 그 외에는 바란 적도 없건만, 이조차도 너무 큰 꿈이었던 걸까. 지독한 무력감이 몰려오려 하자 배세진은 고개를 내저었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자. 지금은 눈앞에 있는 일에만 집중하는 거다.

그 눈앞에 일 중에 수습 매니저와 말 트기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또다시 속을 불편하게 했지만 말이다.

“저기, 박…문대 매니저님?”

“편하게 부르셔도 됩니다.”

언뜻 건방져 보이는 태도와 달리 박문대는 배세진을 깍듯하게 대했다. 사실은 이게 당연한 거긴 하다만…. 워낙 기대가 없던 탓인지 그것만으로도 배세진은 기분이 조금 누그러졌다.

“저, 그럼 나이가….”

“23살입니다.”

23살이면 배세진보다 2살이나 어렸다. 그는 새삼 박문대의 얼굴을 뜯어봤다. 표정 때문에 잘 몰랐는데 다시 보니 앳된 티가 많이 나긴 했다. 그러고 보면 저야 특수한 직업 환경 탓에 어렸을 때부터 일을 시작했지만, 평균적으로는 저 나이대에 사회로 나오겠지?

어쩌면 박문대의 표정이 굳어 있는 건 과도한 긴장 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며 배세진의 가슴에는 작은 기대가 싹텄다.

“호, 혹시 저한테 묻고 싶은 거나 궁금한 거라도…?”

조금 밝아진 말투로 말을 건네는 배세진에 박문대는 기다렸다는 듯 답한다.

“아, 그럼 화장실은 어딘가요?”

“…….”

“…….”

“나가서… 오른쪽이요.”

감사합니다. 인사만큼은 절대 잊지 않는 박문대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터벅터벅 방을 나섰다. 덜렁 혼자 남아버린 배세진은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다 이내 상황을 이해하고 화르륵 얼굴이 달아올랐다.

역시 믿는 게 아니었는데!

 

 방을 나선 박문대는 반사적으로 주위를 살피고 왼쪽으로 몸을 돌렸다. 어차피 이곳의 지리는 들어오기 전부터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CCTV 위치를 확인하며 그는 자연스레 비상계단으로 나갔다. 창문으로 슬쩍 밖을 확인하니 건물 그늘에서 업무는 내팽개치고 동료로 보이는 자들과 킬킬대며 담배나 뻑뻑 피워대는 배세진의 전속 매니저가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이 소속사의 돌아가는 사정을 파악하긴 충분했다. 박문대는 시선은 매니저에게 고정한 채 주머니에 손만 넣어 메시지를 완성했다.

[잠입 완료]

이번 타깃이 탑급 배우라고 했을 때는 어쩌나 싶었는데 소속사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어렵지 않게 자리 잡을 수 있겠는걸.

슬쩍 입꼬리를 들어 올린 박문대는 자연스레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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