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문대

[청우문대] 사랑은 타이밍!

양식장 by 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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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청우."

"응. 왜?"

"이게 다 뭐냐?"

"음? 아, 형을 향한 내 마음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그걸 왜... 박문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놀이공원에 가서 놀자고 했지 누가 놀이공원을 빌려?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하며 류청우를 바라보았다. 제 마음이 어떤지도 모르고 해맑게 웃고만 있는 저놈의 얼굴을 어찌하고 싶었지만, 나름대로 생일이라며 돈까지 써가며 축하하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모든 놀이기구를 타는 데에도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은 이 넓은 테마파크를 어찌 빌렸단 말인가... 매번 사람 구경을 하러 오는 것과 별반 다를 거 없는 이곳이 이렇게나 텅 비어있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박문대는 감하다 못해 무서워질 지경이었다. 그러다 결국 류청우의 손에 이끌려 텅 빈 놀이공원을 걸었다.

"계속 그러고 있을 거야? 우리 머리띠부터 사자."

"어...응..."

귀여운 탈을 쓴 캐릭터가 반기는 기프트 샵으로 들어온 류청우는 곧장 동물 머리띠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음.. 뭐가 좋지? 잔뜩 고민을 하더니 이내 노란색 강아지 귀 모양의 머리띠를 집어 들었다. 실실 웃으며 문대에게 씌워주고는 자신은 남색 털을 가진 늑대 머리띠를 썼다. 하는 짓이 꼭 대형견 같은 게, 자신에게 씌워준 머리띠로 바꿔치기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늑대가 제법 잘 어울려 그대로 두기로 한 박문대였다. 큼, 잘 어울리네.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기프트 샵을 나왔다. 그러니까, 저를 보면서 애교부리는 류청우의 모습을 보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는 말이다. 류청우는 활짝 웃으며 느긋하게 박문대의 뒤를 따랐다. 귀 끝을 붉힌 채로 뛰어가는 뒤통수에 입술을 묻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지만 애써 참았다.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귀여운 강아지 머리띠를 쓴 박문대는 느릿하게 잡아 오는 늑대의 손에 깍지를 끼며 요란하게 번쩍이는 불빛이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알록달록한 조명이 반기는 회전목마 앞에서 류청우는 익숙하다는 듯 놀이기구를 관리하는 직원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인사성은 밝네. 청우를 따라 가볍게 고개를 숙인 문대는 백마 모형 위에 올라탔다. 제 대각선 옆의 말에 올라탄 류청우는 코트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요란한 음악 소리가 나오며 덜컹, 움직이기 시작한 회전목마는 느릿하게 빙글빙글 돌기를 반복했다. 박문대는 이게 뭐가 재밌냐며 무표정한 얼굴로 청우를 바라보았지만, 잔뜩 신이 난 듯 몇 번이고 사진을 찍어대는 모습을 발견하곤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해주었다. 박문대는 슬쩍 웃음을 흘렸다.

몇 분 동안 빙글빙글 돌던 회전목마는 이내 제자리에 멈추었다. 류청우는 휴대폰을 빤히 쳐다보며 웃음을 흘렸다. 눈을 가늘게 뜬 박문대는 그의 휴대폰을 낚아채고는 손을 잡아끌었다. 형? 거침없이 다른 놀이기구 앞으로 향하는 박문대의 뒷모습을 보며 류청우는 그 행동의 뜻을 이해하기라도 한 듯 활짝 웃었다.

"사진 속의 박문대도 박문대인데, 어떻게 자기한테 질투를 해?"

"...그런 거 아냐."

"그래? 그럼 뽀뽀해 줘."

뭐? 길을 걷다 말고 우뚝 선 박문대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청우를 바라보았다. 류청우는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채로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어. 작게 문대의 귀에 속삭인 청우는 살며시 웃었다. 입술이 스칠 듯한 거리까지 다가간 뒤 살며시 눈을 감았다. 얼른 해달라는 듯 조르는 그의 입술에 쪽- 짧게 입을 맞추고 떨어졌다. 부끄러운 듯 빠르게 몸을 뺀 문대를 꽉 끌어안은 류청우는 그대로 길을 걸었다. 청우의 품에 안겨 매달린 꼴이 된 박문대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버둥거렸지만 어림도 없었다. 결국 그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몸에 힘을 뺐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K익스프레스도, 바이킹도 아무런 기다림 없이 바로 즐길 수 있었다. 어떤 놈이 사치를 잔뜩 부리는 덕분에 기다릴 걱정 없이 탈 수 있었다. 거대한 바이킹이 텅 비어있는 채로, 양쪽 끝에 위치한 두 사람을 데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박문대는 약간의 틈이 남는 안전바를 손이 터져라 부여잡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저 멀리 반대쪽에 탄 류청우는 손을 번쩍 들고는 신난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자신감 있던 얼굴은 어디로 갔는지 슬슬 바이킹이 아찔한 높이로 올라가기 시작하자 사색이 된 문대는 경치 좋은 테마파크의 광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얼른 내리고 싶었다.

"박문대!“

”사랑해!!!!!“

박문대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도 없는 놀이공원이라 해도 저 아래 바이킹을 움직이고 있는 직원이 있었다. 마침 배가 내려간 사이 기계를 작동시키는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어색하게 고개를 돌리며 모른 척을 했다. 저놈을 어찌하면 좋을까... 장난치는 걸 좋아한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박문대는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끝도 없이 올라가는 바이킹에 눈을 꾹 감았다. 어이가 없는 와중에도 자꾸만 웃음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박문대는 오늘 이곳에 도착하여 걸음을 걷는 와중에도 모른 척 피해 가던 곳이 하나 있었다. 으스스한 분위기를 잔뜩 풍기는 폐건물에 붉은 핏자국이 잔뜩 묻은 외관의 곳을 발견하고는 눈에 보이지 않는 척 류청우의 팔을 세게 붙잡고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눈치가 빠른 청우는 그런 박문대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슬쩍 웃음을 지었다. 본능적으로 무서워하면서도 같이 가자고 하면 괜히 자신 있는 척을 할 모습을 상상하며, 슬쩍 걸음의 방향을 틀었다.

"형 무서우면 안 들어가도 돼."

"...무섭긴 뭐가 무서워? 어차피 다 기계잖아"

붉은 선이 잔뜩 그어진 출입구를 멍하게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리고는 정말 자신 있다는 듯 성큼성큼, 입구 바로 앞까지 걸어갔다. 물론 휙 뒤를 돌아보며 류청우를 제 앞에 세워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얼굴을 묻긴 했지만. 어두워 앞에 제대로 보이지 않는 귀신의 집에 들어간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한 채 발을 내디뎠다. 정말 기계만 있는 것인지, 가끔 뻥뻥 터지고 드르륵,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박문대는 한편으로는 안심했지만, 자꾸만 뒤가 서늘한 것만 같은 감각에 긴장을 풀 수 없었다. 그때였다.

'터벅터벅터벅,'

어딘가 자신을 향해 빠르게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몸을 흠칫 떨며 뒤를 돌아본 박문대는 흉흉한 얼굴로 걸어오고 있는 정체 모를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소리를 지르는 대신, 류청우를 제 앞에 끌어다 놓았다. 영문도 모른 채로 귀신과 눈이 마주친 류청우는 박문대의 행동을 단번에 이해하며 웃었다. 류청우에게서 아무 반응이 없자 재미가 없어진 듯한 귀신은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류청우는 자신을 꽉 끌어안고 눈을 감고 있는 박문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방패가 아닌데..."

"야 빨리 좀 나가봐..."자신 있게 말할 때는 언제고, 어느새 기가 쭉 빨려 흐물흐물해진 박문대는 류청우의 옷깃을 꼭 잡은 채로 함께 그곳을 나왔다. 출구 직전에 쭉 뻗은 복도에서는 불행하게도 뒤편에서 쫓아오는 귀신 덕분에 류청우가 박문대를 안고 전력 질주를 했다. 어두운 곳에서 나와 다시 맞이한 맑은 하늘이 너무나도 반갑게 느껴진 박문대였다. 저를 품에 안고 있는 류청우의 가슴에 주먹을 꽂아 넣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문대가 귀엽다는 듯 피식 웃은 청우는 손깍지를 낀 채로 자신이 준비한 식당으로 함께 걸어갔다. 신난 듯한 표정을 한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어느새 얼굴에는 긴장감이 묻은 듯해 보였다.

식당에 도착하여 자리를 잡으니 창밖에 해가 지는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박문대는 붉은 노을이 화려한 놀이기구를 비춰 붉게 물드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류청우는 슬쩍 웃으며 테이블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직원에게 작게 손짓했다. 그러자 손에 무언가를 가득 들고 오는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놀이공원 푸드코트에서 볼 수 있는 음식의 퀄리티가 아니었기에 박문대는 의심의 눈초리로 청우를 바라보았다. 류청우는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아무래도 푸드코트 음식은 좀 별로일 것 같아서. 출장쉐프를 불렀어."

박문대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제 앞에 놓인 때깔 좋은 음식들을 바라보았다. 이래야 류청우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포크를 집어 들고는 빵을 쿡.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류청우는 웃으며 빵을 오물거리는 박문대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맛있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이던 문대는 줄줄이 나오는 코스 요리를 먹어 치웠다. 온전히 박문대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꾸려진 코스요리는 제법 만족스러웠다. 문대는 물로 입을 헹궈내며 웃었다. 푸드코트에서 먹는 미슐랭 요리라... 박문대는 너무 생뚱맞은 것 같다며 웃었지만 내심 좋은 듯했다.

"많이 준비했네. 맛있었어."

"그래? 다행이다. 고마워."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

그래라. 박문대는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다는 류청우를 보내주며 놀이공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의 난간에 기대어 섰다. 어느새 해가 져 어둠이 내려앉은 놀이공원에는 각기 다른 색으로 번쩍거리는 불빛들이 보였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던 박문대는 멍하게 야경을 바라보았다. 곧 불꽃놀이를 할 것이라 하던데, 빨리 오겠다던 류청우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박문대는 입술을 깨물며 주머니 속의 무언가를 만지작거렸다. 언제 오려나.. 생각한 순간 뒤쪽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휙, 뒤를 돌았다. 박문대는 화장실을 다녀온다는 것 치고는 너무 오래 걸린다 싶었는데, 그 이유를 단번에 알아챘다. 피식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류청우는 하얀 꽃이 예쁘게 위치한 꽃다발을 들고 서 문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에게 내민 꽃다발을 받으며 가지런히 정리된 꽃을 들어 향기를 맡아보았다. 향긋한 꽃향기가 코끝을 맴돌았다.

"웬 꽃이야?"

"형하고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칼라꽃이야."

박문대는 활짝 웃었다. 저를 생각하며 꽃을 골랐을 류청우를 생각하니 괜히 웃음이 흘러나오는 것만 같았다. 하여튼, 귀여운 놈이라니까.

"칼라 꽃말이 뭔지 알아?"

"뭔데?"

"당신은 나의 행운입니다."

멋지네. 박문대는 꽃다발 속의 칼라꽃을 한 송이를 집어 들어  꺼내고는 류청우의 귀에 꽂았다. 박문대는 그의 볼에 짧게 쪽- 하고 뽀뽀했다. 가볍게 붙었다 떨어진 입술에 류청우는 고장이라도 난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덩달아 박문대도 할 말을 잃어버렸다.

"...."

분명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어디로 갔는지, 어느새 어색한 공기만이 둘 사이에 맴돌았다.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듯 우물쭈물해 하고 있던 류청우는 코트 주머니 속에 숨겨둔 무언가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박문대를 바라보았다. 박문대는 그런 류청우의 눈을 마주 보며 뒷짐을 졌다. 마찬가지로 손에 무언가를 숨겨두고 있었다. 그리고는 동시에 입을 열었다.

"형, 나ㄹ..."

"류청우, 나..."

서로의 앞에 내민 네모난 케이스를 바라보던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그것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형 먼저 해.. 아냐 너 먼저 말해.. 어색하게 들고 있는 반지 케이스에서 시선을 거두고는 이런저런 실랑이를 벌였다. 이내 먼저 웃음이 터진 박문대 덕에 덩달아 류청우도 웃음을 흘렸다. 이게 뭐야.. 하하 그러게... 어색하게 내밀고 있던 반지 케이스를 동시에 연 두 사람은 가지런히 담겨있는 커플링을 보고 웃었다.

"우리 통했네?"

"그러게"

류청우는 웃으며 반지 하나를 꺼내 들었다. 살짝 긴장한 듯 손을 떨며 박문대의 손에 은색 반지를 끼워주었다. 마찬가지로 박문대도 제가 가져온 반지 하나를 꺼내어 류청우의 손에 끼워주었다. 미리 사이즈를 잰 것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반지에 뿌듯함을 느꼈다. 제 손에 끼워진 서로 다른 디자인의 반지를 바라보던 두 사람은 어느새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어이없다는 듯 웃고는 이내 서로를 바라보았다. 서로 손을 맞잡고 반지를 쓸어주었다.

'펑! 펑,'

조용하던 놀이공원은 이내 폭죽 소리로 가득 찼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웃다가 이마를 맞대었다. 펑펑 처지는 불꽃을 뒤로한 채 서로 사랑을 속삭였다. 짧게 입을 맞추고 떨어졌다.

"형, 나랑 결혼할래?“

"형이랑 결혼할까, 청우야?“

미처 하지 못했던, 준비한 멘트를 나눈 청우와 문대는 피식 웃으며 서로를 끌어안았다. 빈틈없이 꽉 끌어안고는 호흡을 맞추었다. 느릿하게 입을 맞추었다. 새하얀 꽃의 향기가 코끝을 맴돌았다. 눈을 지그시 감고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했다.

"우리 이제 부부인건가?“

“그래,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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