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청우문대

이번주 전력 주제 보고 비슷한 소재인 것 같아서 예전 글 가지고 왔습니다~

짧아용


어느 순간부터 류청우의 시선 끝에는 박문대가 놓였다. 그리고 방금 전 박문대가 휙- 제 쪽을 돌아보지 않았다면 영영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류청우는 제 눈동자가 박문대를 쫓는 게 꽤 오래 된 것 같다 생각했다. 박문대와 눈이 마주치기 전에 그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다시 앞을 보고 갸웃거리는 박문대를 보며 류청우는 시험문제를 컨닝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목이 탔다. 텀블러를 들고 물을 마셨지만 갈증은 딱히 해소되지 않았다. 창밖에 비행기가 하얀 궤적을 남기며 날아갔다. 파란 바탕에 하얀 선. 류청우는 그것이 꼭 제가 입은 하복 같았다. 줄무늬가 하나, 둘, 셋, 넷. 어느새 류청우는 박문대의 교복 줄무늬를 세는 의미 없는 짓을 하고 있었다. 류청우가 박문대를 바라 본다. 아무 의미 없는 것일까? 그는 느릿하게 그 이유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오지 않아 불이 꺼진 교실 안은 먹구름이 드리운 바깥처럼 눅눅하게 가라앉아있었다. 류청우는 느긋한 걸음으로 익숙한 맨 뒤 창가 자리로 향했다. 딱딱한 플라스틱인데도 물먹은 나무 마냥 습한 기운이 드는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세찬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렸다. 그 사이에 단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물먹은 공기 탓에 복도를 지나다니는 이들의 발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발소리가 문을 타고 들어왔다. 우리 반이었네. 형광등이 켜졌다. 그렇지만 폭우가 쏟아지는 터라 교실의 공기는 여전히 답답하고 먹먹하게만 다가왔다.

 

 "어- 일찍 왔네."

  

멀찍이서 들리는 목소리에 류청우는 고개를 돌렸다.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을 들고 박문대가 교실 앞에 서있었다. 놀란 목소리. 불이 꺼져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누군가 있어서 당황한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눈이 마주치자 그는 말간 미소를 지었다. 비갠 하늘 같은 오늘 날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얼굴. 아, 저 얼굴 때문이었나. 나한테만 친절한 저 얼굴.

  

"비와서 버스에 사람 많으면 불편하잖아."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겠으나 류청우는 굳이 박문대에게 대답했다. 류청우는 박문대의 웃는 얼굴을 좋아했다. 형광등이라도 두어 개 쯤은 삼킨 것 같은 그 표정. 남들에게 다 지어주는 무뚝뚝한 미소가 아니라, 눈꼬리까지 휘어지는 그 미소. 제게만 보여주는 웃음. 또 웃는다. 위로 당겨진 박문대의 입매가 벌어졌다.

  

"그건 그래. 그래서 난 집 갈 때는 버스 안 타."

  

괜한 소리를 덧붙였다 생각했는지 얼굴이 붉어졌다. 웃는 얼굴은 곧 사라지고, 이제는 표정에 뻘쭘하다고 쓰여있었다. '우리 반 반장 무뚝뚝해.' 같은 소리나 듣는 주제에 제 앞에서만 꼭 그는 순진한 반응을 보였다. 음, 그동안 딱히 얼굴 맞대고 대화하는 사이는 아니었지. 과제 제출할 때나 몇 번. 그것도 일방통행으로 끝나는 말. 류청우는 그것을 인지하자 박문대와 대화를 나누는 지금 이 상황이 유쾌해졌다.

  

"그럼?"

 "응?"

 "그럼 어떻게 가? 비오는데 걸어가?"

 "응"

  

박문대는 배싯 웃었다. 류청우는 이번엔 제 얼굴이 붉어졌을 거라고 추측했다. 거울을 보지 않았으나 확신할 수 있었다. 저번과 같은 묘한 갈증이 느껴졌다.

 

"같이 갈래? 오늘 학교 끝나고. 우산 안 쓰고."

  

류청우는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폭우 속을 우산도 안 쓰고 걸어가면 그야 말로 비에 젖은 생쥐꼴이 될 게 뻔했다. 그렇지만 그 바보 같은 생각도 꽤 해볼만 하다 여겼다. 박문대와 함께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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