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문대 전력] 소나기

소나기

- … 한반도 남쪽 바다에 머무르고 있던 장마전선이 북상함에 따라 중부 지역에서도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당분간 아침 출근길에 우산 챙기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날씨였습니다.

 

류청우는 아침 운동을 나온 참이었다. 아파트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잔뜩 끼어 금방이라도 세차게 비가 내릴 것 같은 날씨였다. 그러나 그의 손엔 우산은 들려있지 않았다. 물통 하나가 전부였다. 그는 아파트 입구를 향했다. 주차장에 세워둔 그의 차도 흘낏 보고는 스쳐지나갔다.

류청우는 아파트 밖에 나서자마자 곧장 달리기 시작했다. 숙소에서 근처의 공원까지 달리는 게 그의 주 런닝 코스였다. 이른 새벽에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특히 선호했다.

이제 슬슬 본격적인 여름이었다. 그의 살갗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호흡은 여전히 안정적이었다. 꽤 오래 유지해온 코스라 그런지 페이스 조절이 익숙했다. 그는 아무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달리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가 막 공원 입구에 도착했을 때, 툭 빗방울이 떨어졌다. 착각인가 싶을 만큼 가벼운 빗방울이 뺨에 닿았다. 그는 공원으로 들어가 한 바퀴를 더 도는 대신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에 젖은 신발이 바닥에 자국을 남겼다가 비에 쓸려 지워지길 반복했다.

류청우는 곧장 숙소에 들어가지 않고 어느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전 발견한 무인 카페였다. 가게 유리문에 흠뻑 젖어 물에 빠진 생쥐 같은 그가 비쳤다. 그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웃고 있었다.

바깥은 여전히 비가 내렸다. 다행이었다. 그는 물 묻은 손을 대충 털고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통화 연결음이 한 번 울리자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웃음이 나왔다. 류청우는 웃음을 꾹 참고 상대에게 말했다.

“문대야, 우산 좀 가져다 줄 수 있을까?”

- …네, 그 카페 맞죠. 금방 갈게요.

“응, 오늘도 고마워. 커피 사놓을까? 뭐 마실래?”

- 아메리카노요, 따뜻한 걸로요. 이따 봐요.

 

요즈음 여름 날씨는 참 이상했다. 비가 잔뜩 쏟아지다가도 금새 그쳐버리곤 했다. 또 잠깐 그쳤다가 다시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콸콸 쏟아내기도 했다.

박문대와의 전화를 끊자 빗줄기가 차차 약해졌다. 비 맞지 않고 왔으면 좋겠다는 누군가의 바람이 구름에 전달된 걸까.

“문대가 이 꼴을 보면 어이없어 하겠는데.”

류청우는 무덤덤한 낯으로 잔소리를 하는 박문대를 상상하다가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카페 안쪽으로 향했다. 박문대가 말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사야 했다. 그는 익숙한 움직임으로 커피 2잔을 내렸다.

매일 같은 시간. 그는 이곳을 들렀고, 박문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럼 문대는 졸린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우산 2개를 손에 든 채로 그가 있는 곳으로 왔다. 처음 전화를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산을 안 가져왔다는 그의 말에 ‘어딘데요?’라 묻지 않았던가. 매일 같은 변명에도 박문대는 우산을 좀 가지고 다니라는 등의 잔소리는 하지 않았다.

 

류청우는 지금 이 시간이 좋았다. 이제 막 나온 커피 두 잔을 앞에 두고, 문대가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 세 번, 네 번 울리던 통화 연결음이 이젠 한 번 울리는 건, 귀찮은 요구에도 매번 기꺼이 와주는 건 어떤 마음일까, 기대를 갖는 시간.

 

하지만 아직은 장마전선에 걸린 빨랫감 같은 마음을 전하고 싶지 않았다. 소나기가 지나가고 나면 그땐 물어볼 수 있지 않을까. 너는 그때 어떤 마음이었니,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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