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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이게 잘된 게 아니면 뭐지?

정리는 간단했다. 노래에 이어 춤까지 검증한 LeTi는 류건우에게 데뷔조 합류를 전제로 한 연습생으로 계약하길 원했다. 미션을 깨려면 오히려 잘된 일이라 류건우는 그 자리에서 바로 사인했다.

그리고 지금.

“이제 설명할 때도 되지 않았나?”

“음.”

“신재현.”

“후배님. 마지막 기억이 뭐예요?”

“그야 콘서트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

“그 길에서 당신은 죽었어요.”

“….”

완만한 하향곡선을 그리던 VTIC이 먼저 흐지부지 흩어지고 전성기를 달리던 테스타마저도 결국 은퇴를 고민하던 시기였다.

그해 마지막 콘서트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 박문대는 죽었다.

흔한 사고였다. 예전, 그때처럼.

다만 시스템의 끝으로 두 번째 천운이 없었을 뿐.

창백하게 질린 류건우의 뺨을 다정하게 쓸어내린 신재현이 말했다.

“견딜 수 없었지. 어떻게 견딜 수 있겠어요? 당신이 없는데.”

“…설마.”

“그래서 우리는 합의할 수밖에 없었어.”

“우리?”

“그래요. 테스타. 그리고 저.”

“…”

모두가 바란 회귀라는 말이었다.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달래듯 손을 겹쳐잡은 신재현이 엄지로 손등을 살살 쓸며 말했다.

“그게 말하기를 ‘상태 이상’이라는 게 마치 슬럼프처럼 비활성화가 됐다가 활성화가 되기도 한다더라고요.”

그래, 비활성화가 있었으니, 활성화도 있었다. 선아현이나 김래빈처럼. 실제로 선아현은 몇 번이고 상태 이상이 도지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네 상태 이상은 시스템으로 인한 거잖냐.”

“그게 무슨 상관이지. 써먹을 수 있는 건 써먹어야지.”

“아니 그래도 그게, 되나?”

“안돼도 되게 해야지.”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는 걸 멍하니 보고 있자 신재현이 손을 뻗어 머리칼을 쓰다듬어 왔다. 그 손길을 힐끔 살핀 류건우가 눈가를 찌푸리며 말했다.

“말이 안 되잖아.”

“안될 건 또 뭐지.”

고개를 기울인 신재현이 심드렁하게 말을 이었다.

“그거한테 힘이 남아있었어요.”

“힘?”

“당신이 시스템이라고 부르는 것의 힘.”

그 말에 눈을 끔벅였다.

시스템은 과거의 시간 축에 고정해 뒀는데 그 힘을 끌어다 썼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됐다.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해 보려 애를 쓰는 류건우의 뺨을 쓸어내린 신재현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마음에 들지 않아요?”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떠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거다.”

“네가 시스템이라고 부르는 것과 얽혔을 때 상식이 통했던가.”

비일상을 얘기하는 신재현의 말에 한숨을 쉰 류건우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개새끼야. 지금 이게 말이 되냐고. 시스템은 과거에 고정됐는데. 우리가 있던 시간대에는 없어졌다고.”

“어쩔 수 없었어요. 당신이 없었잖아.”

“일이 틀어졌다면 진짜 죽을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음. 그렇긴 했어요. 그게 설명을 그렇게 하긴 했거든. 죽을 수도 있다고. 어쨌든, 도박이었죠.”

선선히 수긍한 신재현이 말을 이었다.

“뭐, 결국에는 돌리는 데 성공했으니까. 잘된 일이죠?”

“이 미친놈이….”

“음? 뭐가 문제예요?”

고개를 기울인 신재현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문제 될 거 없잖아.”

“왜 없어. 지금 모든 게 문제다. 그 망할 시스템이 살아있잖아.”

“그게 큰 문제가 되나? 어차피 미션을 클리어하면 다른 사람한테 넘어가잖아요?”

“그게 문제라는…!”

“후배님은 타인을 너무 신경 써요.”

류건우는 항상 효율이 떨어졌다. 똑똑한 머리를 냉정한 시선으로 굴리며 이것저것 재고 판단하다가도 맹탕처럼 온정어린 선택해 버리고 마니까.

그리고 신재현은 그런 류건우의 성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번쯤은 후배님만을 생각하는 선택을 해도 되잖아.”

“그래서 이게 날 위한 거란 말이냐.”

“그래요.”

깔끔하게 떨어진 대답에 신경질적으로 진저리를 친 류건우가 품을 빠져나가려고 하자 빠져나가지 못하게 힘줘 끌어안은 신재현이 애교를 부리듯 어깨에 이마를 부볐다.

“왜 그래요. 응? 전부 잘 됐잖아요?”

“이 씨발 새끼가….”

“이상하네. 이게 잘된 게 아니면 뭐지? 이제 당신이 살아있잖아.”

그 작은 속삭임에 류건우가 한숨을 참으며 팔을 움직여 신재현을 마주 끌어안았다.

“…개새끼야. 분명히, 현실을 살아가기로 했잖냐.”

“그랬죠. 하지만, 그것도 콩이가 있고, 후배님이 있는, 내가 아이돌인 곳이어야 의미가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신재현의 초연한 낯 위로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 허망한 표정이 스쳤다.

‘개새끼가 뭐라 말도 못 하게….’

눈앞에서 괴로워하는 신재현을 보니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신재현. 그것들이 널 이루는 요소긴 하지만 네 전부는 아니다. 분명히 버티는 법을 배웠잖아.”

신재현은 열을 내는 류건우를 가만히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류건우의 말대로 신재현은 나아가는 법을 배웠다. 실패를 받아들이는 것도 배웠다. 하지만, 상실은 아니었다.

콩이가 떠났을 때는 어떻게든 버텨냈다. ‘박문대’가 함께 있어 줬기에, 신재현도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돌이라는 빛나는 우상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 신재현은 박문대까지 잃게 되자 다시금 시계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내 옆에 없는데 어떻게 살아가요?”

단호하게 말하는 신재현의 얼굴에 류건우는 한숨을 참았다. 극단적인 새끼.

“…내가 없어도 충분했잖아.”

“그건 후배님을 모르던 예전 얘기고.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않나?”

“….”

“평생을 약속한, 사랑하는 연인이 죽었는데 어떻게 버텨요?”

그 말에 할 말이 없어졌다. 이마를 짚은 류건우가 골치가 아프다는 듯 말했다.

“…분명 못 돌린다고 했는데.”

낮게 내리깔린 류건우의 말에 고개를 기울인 신재현이 의아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돌렸잖아.”

“너무 결과론적이란 거다.”

“그러면 뭐 어때요? 돌릴 수 있게 돼서 돌렸을 뿐인데.”

“돌릴 수 있다고 돌리는 그 버릇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거잖냐.”

“하하! 후배님, 그곳에 홀로 남느니, 차라리 재시작하는 게 나아요.”

여전히 말이 안 통하는 새끼였다. 미간을 찌푸린 류건우가 끓어오르는 속을 삼키며 한숨을 참자, 신재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이르듯이 말했다.

“화내지 말아요. 난 그저 가치를 말하는 거니까.”

“가치라니….”

“다른 것들보다 후배님이 내게 가장 가치 있단 거지. 생각해 보세요. 재시작하면 후배님도 있고 콩이도 있고 아이돌도 다시 시작할 수 있잖아요.”

빛나고 행복했던 그 순간에 좀 더 머무를 수 있었다. 더 행복할 수 있었고 완벽한 VTIC에 다다를 수도 있었다. 눈앞의 박문대, 아니 류건우가 있다면.

“영원한 건 없어. 알잖냐.”

“음.”

그 말에 신재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영원한 건 없다는 걸 머리론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왜….”

재시작으로 쌓아 올린 시간들은 단단한 지층되어 신재현이라는 존재의 일부가 되었다. 다만 그 지층엔 금이 가기도 하는지라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박탈당할 때마다 조금씩 무너져 내리곤 했다.

콩이가 떠났을 때, 아이돌의 자리에서 내려왔을 때 끔찍할 정도로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박문대가 없었다면 죽었을지도 몰랐다. 그저 옆에 머물러주는 온기와 함께했던 추억만이 저를 살아가게 했다. 그렇게 박문대는 위로를 줬으며 추억으로 살아가는 법을 알려줬다.

하지만.

“…후배님이 사라져 버렸을 때 숨이 안 쉬어지더라고.”

그렇게 인간성의 이정표가 되어주던 사람이 없어졌을 때의 상실감은, 도저히 혼자서 견딜 수 없는 것이라서.

신재현은 눈을 감고 그때의 감각을 곱씹었다.

“어쩔 수 없었어요. 후배님이 보고 싶어서 죽을 거 같았거든.”

“….”

“이해자가 없는 삶이 얼마나 답답할지, 알잖아요.”

그렇게 말한 신재현이 원망스럽다는 듯한 목소리로 투정부리듯 말했다.

“나는 오직 당신하고의 미래만 그렸는데 당신은 그렇게 가버리고. 저보고 후배님 없이 살아가라고요?”

“…그래. 그게 맞는 거니까.”

“야속한 소리 하지 말고요. 후배님도 저 보고 안심했잖아요.”

“이 씨발 놈이.”

차라리 몰랐으면 모를까, 이미 온기를 알게 되었는데 어떻게 포기할 수 있을까.

“하하, 다시 시작하고 눈을 떴을 때, 기뻤어요. 후배님도 다시 볼 수 있고 더는 멈춰있지 않아도 되는구나 싶어서.”

“…멈춰있다고 생각했냐.”

“그래요. 이전에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지.”

“반쯤 은퇴한 후에 취미도 만들고 그랬잖냐.”

“그건 그저 시간을 흘려보낼 뿐이었다는 걸 알잖아요.”

“…회사도 있었고.”

“그건 별개죠. 별 가치 있는 일은 아니니까.”

단호하게 말한 신재현은 살아있는 류건우의 온기를 느끼며 한숨을 쉬었다.

“좀 더 다른 방식도 있었을 거고….”

“그런 건 없어요.”

“그렇게 아등바등 쌓아온 시간을 나 때문에 간단히 포기했다고.”

“간단히는 아니지. 더는 가치 있는 것을 못 찾았으니까.”

이 삶을 왜 유지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가치 없는 삶이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청려’라는 존재가 가져야 할 목표, 이상을 전부 잃어버린 채 이정표도 없는 바닷속으로 내던져졌다.

대적자, 이해자, 가족, 직업….

이 모든 게 전부 없어지자 견딜 수 없는 허무가 덮쳐왔다.

'박문대'가 죽은 후로는 끝없는 슬픔과 함께 그런 감정들이 정점을 찍었다.

“혼자 남기 싫었어요. 괴로웠고, 후회됐고.”

“너….”

“이런 방식이 아니라면 후배님이 없어졌을 때, 내가 어떻게 해야 했는데?”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말을 고르는 걸 눈치챈 신재현이 뺨을 쓸어 올리며 덤덤하게 속삭였다.

“난 이런 거밖에 몰라요.”

“신재현….”

“그러니까 당신이 이해해요. 죽음도 우릴 갈라놓을 수 없단 걸 받아들이라고.”

“씨발, 누가 들으면 내가 자살한 줄 알겠다.”

“하하!”

신재현에게 ‘죽음’은 포기가 아니었다. 기회였지. 그렇기에 마지막 기회를 붙잡은 것뿐이었다.

‘그냥 죽을 수도 있어요.’

‘그쪽도 죽으려 하지 않았나?’

‘그건…그래도 형이 원하지 않을 텐데…’

‘그런 건 상관없어요. 중요한 건 할 수 있냐 없느냐지. 그때처럼 그쪽이 조금만 도와주면 난 할 수 있다고 보는데.’

그렇게 밀어붙인 건 신재현이었다.

위시즈의 세계에서, 건물 붕괴 때도 그리고 JSA에서 이상한 일을 벌인다, 싶던 그라면 뭔가 할 수 있을 거라고.

절박했으니까.

소중한 것을 전부 잃어버린 이는 미쳐버리기에 적당했다.

“신재현…너 진짜.”

말없이 울먹이는 신재현의 얼굴에 류건우는 한숨을 삼킬수 밖에 없었다. 그 마음이 너무나 이해가 돼서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류건우는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미치지 않고 버티기 위해 애써야 했던 신재현의 모든 시간을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같은 것을 겪은 류건우는 신재현의 유일한 이해자였기에.

빛을 내뿜는 커다란 전광판 아래의 신재현을 기억하고 있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옅은 담배 연기 그리고 이어지는 추락.

수없이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이가 죽음을 그만두고 생을 살아가기로 했다. 류건우는 그 옆을 지키는 숙적이자 이해자, 그리고 연인이 되어 처음 살아가는 생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이 혼자 남겨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견디기 어려운 일임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기에.

류건우는 한숨을 참았다.

“난…네가 또 그 고통을 겪어야 했다는 게 싫다.”

기다리고 있다가 난데없이 홀로 상실을 맞이해야 했던 신재현이 안타까웠다. 이미 충분히 고통받았으니까.

“고통이 아니에요. 기회지.”

“이 새끼가….”

“돌릴 때마다, 완벽해지잖아요. 이렇게.”

신재현은 뭐라 하려는 류건우의 말을 자르며 맛이 간 눈으로 웃었다. 재시작 버튼이 눌린 신재현의 멱살을 붙잡은 류건우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완벽은 지랄. 또 돌리느니 뭐니 하면 진짜 가만 안 둘 거니까 정신 좀 차려라 새끼야.”

“하하!”

타박에도 기분이 좋은지 류건우를 꼭 끌어안은 신재현이 실실 웃었다.

“저도 더는 안 할 거예요. 잘 모르겠거든. 그거 없이 돌렸다가 후배님이 이대로일 수 있을지.”

“씨발. 너는 진짜 대체 뭐가 문제냐….”

지금 당장 죽겠다고 목숨으로 협박할 수도 있는 놈을 눈앞에 둔 류건우는 암담했다.

재시작을 할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 일이 틀어지면 또 죽을 수도 있었으니까. 걱정하는 제 속도 모르고 처 웃는 신재현이 꼴도 보기 싫었다.

“이래도 용서해 줄 거잖아요. 응?”

용서야 하겠지. 이해가 갔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 저 미친 새끼의 말대로 용서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이 사람을 등신 만드는군.’

이게 다 저 미친놈과 연인이 된 죄였다. 제 죽음이 버튼이 된 이 상황이 부담스러웠으나 이미 닥친 상황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한층 누그러진 기색을 느낀 신재현이 앙다물린 류건우의 입술을 매만지며 나긋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미 새로운 삶은 시작됐어요. 그러니까 받아들여요.”

“난….”

“변하는 건 없잖아요. 이렇게 돼도 후배님은 어떻게든 원하는 대로 할 방법을 찾겠죠.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요.”

반박할 수가 없었다. 짜증이 난 류건우는 마주 끌어안은 신재현의 등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삼켰다.

‘미친 새끼….’

전으로 돌아가려고 해 봤자 될 거 같지도 않았다. 이건 이미 다른 시간 축이었으니까. 이 이상 신재현을 갈궈봤자 터진 일을 주워 담을 수가 없단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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