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문대 전력] 옛날 옛적에,
늦은 밤 자리에 누워 가만히 생각해
자리에 누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류청우는 제가 처한 상황이 참으로 기이하게만 느껴졌다. 꿈에 그리던 무과 급제에 착호갑사로 임관, 고된 훈련의 연속, 그리고 며칠 전 드디어 국왕의 첫 교지를 받았다. 온몸에 힘을 준 채 한쪽 무릎을 꿇고 받아든 교지에는 익숙한 장소가 적혀 있었다. 착호갑사로서의 첫 임무를 수행해야 할 곳은 떠나온 고향 마을이었다.
교지를 받고 얼마나 놀랐던가. 아버지, 어머니와 혼기도 차지 않은 동생 연우. 활시위 당기는 법부터 화살촉 깎는 법까지, 모든 것을 가르쳐주신 스승님. 장이 설 때면 꼭 찾아오던 장사꾼들과 말린 과일을 받겠다며 마을 어귀에서부터 그들에게 달려들던 마을 아이들. 이맘때면 밭에다 다같이 모여 물길을 내던 어른들, 큰 어르신 박대감님까지…. 알고 지낸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피범벅이 된 채 떠다녔다.
덜덜 떨리는 손가락을 다스리고 말고삐를 틀어쥔 채 내달리기를 수일이 걸렸다. 안장 위에서 상념이 번잡하게 떠올랐다가 흩어졌다. 마을에 호환이 있었다면 필시 서찰을 보냈을 것이다. 아니다, 큰일이 났으니 보내지 못한 것이다. 산맥을 따라 내려왔다면 주변 마을에도 변고가 있을 것이다. 우선 관아에 가서 말과 군사를 빌리고, 목격담을 듣고, 산기슭에서 흔적을 쫓아야한다. 그보다 다친 사람은 몇이고, 물려간 사람은 몇일지…. 뒤에서 몰려오는 어둑시니를 내쫓으려 속도를 내보았지만 그것은 배가 되어 자꾸만 그의 뒤를 쫓았다. 그는 결코 끈질기게 따라붙는 공포를 쫓아낼 수 없었다.
마침내 인접한 고을에 도달했다. 험상궂은 얼굴을 한 장승 앞에 다다라 말에서 내린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석양이 타오르고 있었다. 멀리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저녁 밥을 짓는 모양이었다. 소란스럽게 깔깔거리며 웃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딘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서 들어가 네 할일을 해야지. 눈을 부릅 뜬 장승이 이빨을 딱딱 거리며 속삭였다. 나무 위의 새들이 갑작스레 푸드덕 날아올랐고, 놀란 말이 앞다리를 들어올리며 울었다. 분명 저 너머엔 고향 마을과 같은 고즈넉한 풍경이 펼쳐져있는데 제 주변엔 어딘지 모를 을씨년스러움만 느껴졌다. 겁을 먹은 탓이다, 아무 일도 없다, 류청우는 되뇌며 마을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숙박도 하실 거요?”
“예, 내일 아침 일찍 긴히 갈 곳이 있어 그러는데 말도 좀 맡아주십시오.”
아낙의 물음에 류청우는 나직하게 대답했다. 그러쇼, 류청우의 말에 주막의 여주인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투박한 그릇을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분명 관아로 제일 먼저 향해야 하는데 왠지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결국 그가 제일 먼저 향한 곳은 주막이었다. 멀리서 온 소문이 가장 빨리 닿고 회오리 바람처럼 맴도는 곳.
“그런데 나리는 어디를 가실라고?”
일부러 흘린 말에 아낙이 미끼를 물듯 말꼬리를 잡았다. 호환이 있는 집과는 창귀가 들었다 하여 대화조차 피하는 것이 보통이라 류청우는 말을 골라 그녀에게 대답했다.
“저는 이번에 성안골에 호환이 있다고 하여 내려온 갑사입니다. 들은 바가 있습니까?”
그녀는 류청우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들어본 일이 없다고 말했다. 고작 산 하나를 경계로 두고 있는 두 마을이라 주막에서 들은 적 없는 소문이라면 사실이 아닐 터였다. 류청우는 티나지 않게 조용히 안심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여인의 말에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갑사 나리가 헛고생을 했구만. 그런데 근래엔 성안골과 교류가 뚝 끊겨서….”
장정이 한 시진이면 넘나드는 두 마을인데 소식이 끊겼다면 정말 큰일이라도 있었던 것일테다. 류청우는 조급함을 숨기지 못하고 반문했다.
“교류가 끊겼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여기서 성안골은 바로 옆이지 않습니까?”
“말 그대로요. 생각해보니 한참 봄비 내리던 그즈음부턴가, 성안골 사람들이 온 걸 본 일이 없네?”
비 올 때야 땅이 질퍽질퍽하니 산 넘어가기가 힘들어 그럴 수 있는데, 요 며칠은 선선하니 날도 좋고 그랬는디 아무도 못 보았지요. 아, 내가 들은 게 있는데, 엊그저께 산나물 뜯으러 간 마을 여편네들이 귀신을 보았다고 했지요. 한둘도 아니고 여럿이 보았다고 하니 다들 헛것인지, 참말로 귀신을 본 것인지 긴가민가했답니다. 처녀귀신은 아니고 총각귀신인디 무슨 혼례복을 입고 있었다고….
혼례복을 입은 총각귀신이 여주인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별안간 류청우의 맞은 편에서 국밥을 비우던 사내가 큰소리로 말했다.
“나도 보았소. 그것이 범을 부리는 것을 보았단 말이오!”
*
범.
그리고 귀신.
류청우는 범을 부리는 귀신이란 말을 듣고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부터 산을 올랐다. 그런데 한 시진이면 충분히 넘어가는 산을 한참이 지나도록 헤메고 있었다. 떠나오기 전과 달리 수풀이 잔뜩 우거져 사람이 오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인적뿐만 아니라 호랑이, 곰, 사슴, 심지어는 곤충까지도…. 그 어떤 존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전날 마을 어귀에서 들었던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정인과 앞마당처럼 자주 들락거렸던 곳이 아닌가. 기이한 일이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먼 곳에서 수풀이 흔들렸다. 그 틈으로 주홍빛이 얼핏 스쳐 지나갔다. 필시 범이리라. 윤기 가득해 차르르하게 빛나는 그 움직임에 류청우는 묵직한 돌덩이가 뱃속에 자리한 것만 같이 긴장되었다. 혼자서라도 저 놈을 잡아야했다. 저 놈이 마을로 내려가면 온통 쑥대밭을 만들어놓을 것이다. 그는 침착하게 허리춤에서 화살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정확한 방향으로 화살을 날렸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이어 살점에 화살촉이 푸욱 꽂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찢어지는 비명이 들렸다.
사람 목소리였다.
류청우는 화살을 날린 방향으로 다급히 뛰어갔다. 그곳에는 적녹빛의 화려한 혼례복을 차려입은 남자가 화살을 맞은 어깨를 붙잡고 쓰러져있었다. 의복의 적색을 보고 호랑이라고 오판한 것이었다. 녹색 천이 피에 젖어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주변의 수풀에도 그가 흘린 피가 군데군데 떨어져있었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창백한 얼굴에 죄책감과 후회가 몰려왔다. 지혈할 게 있나? 뽑았다가 출혈이 심해지면? 다급한 마음에 류청우는 그를 안아들고 집을 물었다. 다행히 정신을 잃진 않은 듯 떨리는 목소리로 남자가 말했다.
“뱀…. 뱀을 따라가십시오.”
류청우는 그가 시키는 대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뱀은 제 주인이 걱정되는지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걱정마라, 걱정마십시오. 사내는 끙끙 앓으면서도 저와 앞서 가는 뱀을 안심시키려는 듯 계속 말을 했다. 뱀을 기르는 사내와 사람 말을 아는 것처럼 구는 뱀. 류청우는 그 기묘한 상황에도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였다. 다만 한낱 미물도 제 주인 아끼는 마음은 있구나, 하였을 뿐이다.
*
이부자리에 누워 가만히 되짚어 보니 이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 제 집 드나들듯 오고갔던 산에서 난생 처음 보는 기와집, 인기척이라곤 하나 없는데 방문을 닫고 나갔다 돌아오면 차려져 있는 밥상, 그를 만나기 전까진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는데 그의 집 주변으로 모여든 온갖 짐승들. 하나같이 이상한 것들 투성이었다. 때문에 성밗골 사람들이 이야기하던 귀신이 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이다.
- 조심하소. 범 잡는 갑사 나리래도 별 수 없는 사람 아니오? 그 산엔 범도 어찌 못 하는 귀신이 살고 있소. 범을 타고 노는 것이 어찌 사람이란 말이오!
- 그것이 성내마을 사람들을 죄다 잡아먹은 것이 분명하네. 그것이 나타나고 그 마을 사람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 산으로 들어가도 눈떠보면 산 입구로 돌아와있었다고!
하필 달은 가득 차 점점 기울어 가고 희끄무레한 달무리가 잔뜩 낀 늦은 밤이었다. 으스스한 기운에 오려던 잠도 달아나버렸다. 흐린 달빛이 방안으로 스르륵 머리카락을 들이밀었다. 귀신에라도 홀린 것인가, 가슴이 뜀박질을 시작했다. 당장 동이 트는 즉시 도망쳐야하나 고민하는 찰나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려왔다.
“나리를 믿으세요?”
“부군인데 믿어야지 않겠니.”
하나는 들어본 적 없는 어린 아이의 목소리, 다른 하나는 낮에 들었던 목소리였다. 자신을 박문대라고 소개한, 이 기이한 산속의 집에 사는 사내의 것이었다. 그는 제가 그를 다치게 만들었다는 것도 잊은 것인지 종일 달덩이처럼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사람을 홀리는 듯 나긋한 목소리로 며칠 간 머무르셔도 된다며 방 한 켠을 내어 주었다. 낮에 들었던 그 부드러운 목소리에 머리맡을 지키던 어둑시니가 꼬리를 말고 떠나갔다.
혼례복을 차려입은 총각귀신.
분명 아랫마을 사람들이 말하던 귀신이 있다면 그일텐데, 이상한 일이었다. 제 부군을 기다린다는 그 말 한 마디에 떨리던 몸이 진정되었다. 스르륵 눈이 감겼다. 갑자기 나타난 대화 상대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고요한 와중에 두런두런 들려오는 나직한 목소리에 쏟아지는 잠의 홍수를 맞이했다.
긴 밤잠을 자던 류청우는 창호지 바깥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나리, 일어나셨습니까. 세숫물을 가져왔습니다.”
이미 옅은 노랑의 햇살이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남의 집에서 염치도 없이 신세를 오래진 것에 대한 놀람과 동시에 꿈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류청우는 큼큼, 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류청우의 기침 소리를 들은 사내는 창문을 열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류청우는 몸을 일으켜 남자의 목소리가 건너오는 창을 열었다. 너른 창 밖에 사내가 전날처럼 흰 얼굴을 하고 서있었다. 그는 생긋 웃고는 물그릇을 들어올렸다.
“세수를 마치시면 아침 식사를 가져오겠습니다.”
그리고 종종걸음으로 뒤돌아 가버렸다. 그는 오늘도 혼례복 차림이었다. 어제와 다르다면 그가 쏘아 맞춘 화살 탓에 꿰맨 자국이 고운 활옷에 남아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꿰맨 자국이 없었다면 그가 크게 다쳐 흙먼지를 뒤집어 썼다는 것도 모를 만큼 깨끗하게 정돈된 모습이었다. 류청우가 멍하니 그가 떠나간 자리를 바라보고 있을 때 창문으로 무언가 쑥 들어왔다. 갈색 털이 삐죽삐죽 난 다람쥐였다. 길게 뻗은 가지에서 창까지 내려온 모양이었다.
“뱀에, 다람쥐에…. 너도 사내가 키우는 것이냐?”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지요.”
대답을 바라고 한 물음은 아니었으나 놀랍게도 대답이 돌아왔다. 어젯밤 방안을 타고 들었던 목소리였다.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는데 다시금 다람쥐가 말을 했다.
“그런데 한낱 사내가 아니고요, 문대입니다. 박 문 대.”
“다람쥐가 말을…?”
“예, 어쩌다보니 말을 하는 다람쥐가 되었습니다. 그나저나, 왜 저 분이 혼례복을 입고 계신지 아시겠나요?”
“허어, 어찌 이런 일이…. ”
“그럼요! 이유가 있지요! 다 이게 누구 때문인데.”
다람쥐는 꼬리를 부풀리며 성을 냈다. 귀여운 외모와 달리 성을 내는 꼴은 제법 위협적이었다. 그것은 박문대의 사정을 이러쿵저러쿵 풀어내었다. 남의 이야기를 이렇게 멋대로 들어도 되나 고민할 때에는 당장 얼굴을 씻으라며 재촉하였다. 그 바람에 류청우는 넋이 나간 상태로 물그릇에 얼굴을 갖다대고 눈곱을 떼어냈다. 세수를 하는 동안 다람쥐는 내내 떠들어대다가 말을 마치고 재깍 얼굴 닦을 비단을 건네었다. 웃기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네 말은 네 주인이, 그러니까 박도령이 약혼한 사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느라 혼례복을 입고 있단 말이냐? 그 사내는 무얼 하느라 여태 네 주인을 기다리게 하고 있느냐?”
“그걸 제가 알겠습니까? 나리가 아시면 제게도 꼭 좀 알려주십시오. 자, 이제 얼른 식사하러 가십시다!”
사내를 처음 본 제가 무얼 안다는 것인지. 다람쥐는 마치 류청우가 죄인이라도 된 양 자꾸만 다그쳤다.
짧은 다리로 책상을 건너가 툭 바닥에 착지하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사람이었다면 필시 무과 장원 급제하리라. 쪼르르 방안을 가로질러 문앞에 서 다람쥐는 제게 문을 열라며 재촉했다. 귀신이 아니라 실은 다람쥐에 홀린 것인가,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상황에 저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 그래. 가자꾸나.”
방문을 열고 나오자 대청마루에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반상 위에 흰 쌀밥, 온갖 산나물, 봄나물을 넣어 끓인 된장국이 놓여있었다. 앵두나무 옆에 서 잘 익은 앵두를 골라내던 남자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돌아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그 모습이 작은 토끼 같았다. 그를 끌고 나온 다람쥐는 어느새 사라져있었다.
“방안으로 식사를 들이겠습니다.”
대청마루에서 식사를 같이 들자는 게 아니었나? 류청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자가 긴 활옷의 소매를 걷어붙이며 서둘렀다. 바구니를 마루 위에 내려놓고 무겁게 차려진 상을 들어올리다가 휘청였다. 류청우는 상처가 심하던 어깨를 떠올리곤 그에게 다가가 만류했다.
“식사를 아직 하지 않으셨다면 바깥에서 같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는 입술을 씹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눈을 휘어접으며 살포시 웃었다. 야트막하게 피어오른 미소가 몹시 사랑스러웠다.
밥을 먹는 동안 그는 제게 이런 저런 것들을 물었다. 꼭 제게 관심을 가진 것처럼 꼼꼼하게. 잘 배운 티가 나는 도령이 식사 자리에서 외부인에게 지나치게 느껴지리만큼 캐묻는 게 독특하긴 했으나 산골에서 오래도록 사람을 못 만난 탓에 외로운 모양이구나, 류청우는 생각했다.
“훈련 받으시느라 고생하셨겠어요. 그러면 이 곳에 오신 것도 갑사로서의 임무 탓에 오셨습니까?”
어느 새 무과에 급제한 이야기, 착호갑사가 된 이야기까지 털어놓게 되었다. 이렇게까지 털어놓을 생각은 없었는데 진정 그가 사람을 홀리기라도 하나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류청우는 솔직하게 그가 묻는 말에 구물구물 답을 내어놓았다.
“예, 이 산 건너에 있는 성내마을에 호환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입산 전에 머물렀던 아랫 마을에서는 호랑이를 본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어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흔적이라도 있는지 이 산에 들어온 것입니다. 혹 박도령께서는 들어본 바가 있으십니까?”
“아니요, 그런데, 이 산에 호랑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러다 호환에 대해 묻자 그는 말끝을 흐렸다. 보았다가 아니라 마치 잘 알고 있는 대상을 이야기하는 투였다. 꼭 들어야할 것 같아 다그치듯 캐물었다.
“…믿지 않으실 수 있지만, 그것은 누구도 해치지 않습니다. 지금은요…. 어제 보셨던 뱀처럼요.”
미친 소리인 것 같았지만 류청우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까 보았던 다람쥐가 제 가족을 이끌고 사내의 뒷편에 있는 앵두나무 가지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네가 보고 듣는 것이 모두 진실이라 말하는 듯 했다.
“미쳤어….”
“….”
순간 류청우가 내뱉은 말에 박도령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입을 앙 다물었다. 다급하게 류청우가 손을 내젓고 말했다.
“아니, 당신을 두고 한 말이 아닙니다. 뒤에 다람쥐가….”
그러자 다람쥐가 제 얘기를 하는 것을 알고는 가볍게 그의 머리카락 위를 미끄럼틀 삼아 내려오다가 반상 위에 툭 떨어졌다. 곧이어 다람쥐 가족이 후두둑 마루 위로 쏟아졌다.
“식사 마치셨으면 이제 차를 내어오겠습니다.”
다람쥐 가족은 각자 반상 위의 그릇을 하나씩 머리 위에 짊어지고 부엌으로 달아났다.
황당한 일이었다.
황당하기는 그 또한 마찬가지인지 그 역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제가 부리는 짐승이 이런 행동을 할 줄은 그도 알지 못했던 모양이다. 류청우는 툭 하고 진심을 털어놓았다.
“어젯밤엔 하도 믿기지가 않아 박도령이 귀신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대의 반응을 보니 당신도 익숙한 일은 아닌가 봅니다.”
얼빠진 얼굴을 한 그의 하얀 얼굴이 놀리는 것임을 알고는 붉게 물들어갔다. 화르륵 타오르는 얼굴이 몹시도 놀리고 싶었다.
“이리 놀리기가 쉬우니 그대의 손속들도 그대에게 짓궂게 구는 것이 아닙니까? 주인으로서 위엄을 보이시지요.”
“그게…. 제가 주인은 아니고, 같이 어울려 지내는 것 뿐입니다.”
“허면, 이 산의 짐승은 다 그대와 어울려 지내는 것을 좋아합니까? 산을 오르는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짐승들이 죄 여기 몰려있으니 하는 말입니다.”
그를 만나기 전까진 기이하리만큼 들리지 않던 꾀꼬리 노랫소리가 아침을 열듯 허공을 흘러다녔다. 버드나무 위에 새둥지 하나가 보였다. 사내는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예, 도깨비와의 내기에 잠시 휘말린 것들입니다.”
그에게 반문하려던 류청우는 다람쥐 가족이 휘청거리며 다기를 가져오는 것을 보고는 서둘러 받아들었다. 쪼르르 마루 위로 올라온 다람쥐들이 혀로 제 털을 핥았다. 다시 보아도 황당한 꼴이었다. 그 바람에 류청우는 도깨비와의 내기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날 온종일 류청우는 집 안에 머물렀다. 관아를 찾아가거나, 아님 산을 내려가 제 고향을 찾아가야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류청우는 이 곳을 떠나면 다시는 찾아올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에 휩싸였다. 언제까지 이곳에 머무르냐는 물음에 그는 대답 대신 눈을 내리깔고 미소 지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랑스럽기보단 어딘지 안쓰러웠다.
결국 류청우는 “하루만 더 머물러도 되겠습니까?”하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류청우는 일주일이 다 되어 가도록 그 집 문턱을 넘지 않았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사흘이 나흘이 되는데도 사내는 축객령을 내리지 않았다. 다만 아침이면 세숫물을 창밖에서 밀어넣어주고, 붓 쥐는 것 외엔 쓰임이 없어 보이는 하얀 손으로 끼니 때마다 정성껏 식사를 준비해왔다. 약속한 날이 지나도록 오지 않는 정인을 기다리느라 그리도 곱게 차려입어놓고 정작 마주하는 것이 외간 사내라니…. 류청우는 차라리 제가 미련한 그를 산 아랫 마을로 데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동트기 직전까지 맑은 물 떠놓고 기도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안타까운 마음을 삭힐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류청우는 들짐승과 날짐승만이 출입하는 대문을 함께 바라보기도, 도령이 제 혼례복을 꼼꼼히 다리는 것을 구경하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짐승들이 드나드는 기이한 저택에 머무른지 일주일 째 되던 어느 밤, 류청우는 문득 떠나야함을 깨달았다.
치렁치렁 길게 늘어지는 옷자락을 밟을까 박문대가 옷벗는 것을 도와주었다. 한사코 괜찮다며 거절하던 박문대는 넘어졌다가 상처 부위가 덧날까봐 걱정이 되어 그렇단 제 말에 또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을 붉혔다. 비단 옷을 들어주니 고맙다며 살풋 웃는 그를 보니 불현듯 자신에게도 정혼을 약속한 이가 있다는 게 떠올랐다. 그러나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흰 얼굴에 붉은 입술, 다정하게 휘어지는 긴 눈매. 떠올리려 해도 자꾸만 박문대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박문대처럼 제 정인이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류청우는 가슴 한 켠이 아려왔다. 누구인지도 기억나지 않은 정인이지만 당장 찾아가야할 듯 싶었다. 일단 고향에라도 도착하면 실마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본래 왔던 것도 가족 친지들의 생사를 확인하려던 것도 있으니. 류청우는 마음이 급해졌다.
“내일은 날이 좋을 듯 싶으니 떠나겠습니다.”
전날엔 괜히 날이 흐린 것 같아 하루 더 머무르겠다고 이야기했으니 나쁘지 않은 변명이었다. 박도령은 당황한 듯 했으나 금새 얼굴을 아프게 당겨 웃어보였다. 떠날 때 드실 주먹밥이라도 챙겨주겠으니 부엌에 가보겠다고 덧붙였다.
류청우는 제가 머무르던 방으로 돌아와 풀어놓았던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려오던 날 입었던 관복, 혁대, 임금의 명령이 적힌 교지. 그런데 방 구석에 놓아두었던 활과 화살이 보이지 않았다. 방 안 곳곳을 찾아보았으나 아무 곳에서도 없었다. 류청우는 버선발로 박문대를 찾아 나섰다.
“도령! 혹시 내 활을 보았습니까?”
그리고 목도한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짐승도 사람도 아닌 것이 불에 그을린 활을 쥐고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아궁이에는 화살촉이 빼꼼 고개를 내민채 활활 타고 있었다. 류청우를 발견하고 그것은 황급히 앞발을 밀어넣어 화살을 꺼내려했다. 그러나 뭉툭한 앞발은 화살 다발을 안으로 깊숙이 밀어넣어 불쏘시개로 만들 뿐이었다. 류청우는 배신감에 분을 참지 못하고 외쳤다.
“네 놈! 네 놈이 나를 홀린 것이구나!”
노기어린 음성에 그것은 넙죽 엎드려 활을 내밀었다. 하얀 털로 뒤덮인 앞발은 어느새 인간의 피부로 되돌아와있었다. 빳빳하게 서있던 꼬리도 사라지고 사람의 몸으로 변하였다. 인간인지 짐승인지, 그것도 아니면 귀신인지. 존재가 무엇인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그것은 이제까지 들었던 익숙한 목소리로 용서를 빌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귀하신 분을 모시게 되었는데 떠나시는 것이 아쉬워 감히 이런 짓을 저질렀나이다. 새벽 동이 트기 전까지 원래대로 돌려놓겠습니다.”
부러진 화살과 재가 되어 공중에 흩어지는 화살깃, 눈앞의 그것이 내민 활.
“네 놈이 말을 무슨 수로 믿지?”
“…제게 빚진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의 말에 숨이 턱 막혀왔다. 둘 사이에선 한동안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타닥타닥 장작이 타오르는 소리만이 남아있었다.
그것에게 빚진 것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그는 여전히 한쪽 팔을 제대로 들어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나를 홀려 잡아먹으려 들면? 류청우는 그를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을 해할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예측이 빗나갈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직감을 믿고 싶었다. 류청우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마당을 가로질러 다시 방안으로 돌아갔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동안 그간은 보이지 않던 까치가 꼬리 깃을 뽐내며 대문 앞을 막아섰다. 깍깍 위협적으로 울며 날개를 펼쳤다. 어둔 밤이라 표정은 보이지도 않는 것이 성을 내고 있다는 것만은 알 것 같았다. 범이 산중의 왕이라고 하더니 진정 그랬던 모양이라고 류청우는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짐승들이 저를 막아서진 않을 터였다.
류청우는 짐정리를 마저 이어갔다. 허리춤에 어느 때고 화살이 다발로 매달려 있었는데, 밥짓는 장작이나 되어 활활 타고 있으니 속이 쓰렸다. 떠날 생각을 하니 이제와서 허전한 게 우스웠다. 진한 탈력감이 몰려왔다. 믿었던 이에 대한 배신감, 원망. 누구를 향해야 할 지 모른 채 악감정만 쌓여갔다.
류청우는 평소처럼 이불 위에 몸을 뉘였다. 두꺼운 솜이불의 감각이 불편하게만 느껴졌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마저 시끄럽게 느껴져 잠못 이루던 찰나 다람쥐 형제들이 창호지를 푸욱 찢고 들어왔다. 이런 상황에서마저 당혹스럽게 만드는 다람쥐 떼였다. 그것들은 류청우의 머리 맡에 나란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류청우 역시 이불 안에서 몸을 빼내어 마주 앉았다. 그러자 그 중 한 녀석이 절을 하며 소리쳤다.
“저희들이 한 일입니다. 도령께서도 모르시는 일입니다. 잘못했습니다아.”
그러고는 다같이 고개를 조아렸다. 비굴하게까지 느껴지는 모습에 류청우는 몹시 당황하여 물었다.
“네 주인이 시켜서 하는 말이 아니더냐?”
“아닙니다, 저희들이 한 짓입니다. 잘못했습니다. 부디 도령을 버리지 마세요…. 가지 마세요, 도령은 죽어요….”
“도령이 죽으면 필시 후회하실 겁니다. 가지 마세요.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다람쥐 형제들이 한 목소리로 엉엉 울며 잘못을 빌었다. 도령이 죽는다며 매달렸다. 류청우가 그들을 달래려 입을 열려던 순간 그가 마지막으로 박문대와 대화를 나누었던 부엌 쪽 멀리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류청우는 하려던 말도 잊고 그저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쉬잇- 너희들의 말을 알지는 못하겠으나 일단 조용히 하거라.”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대며 말하자 그것들이 히끅거리며 울음을 삼켜냈다. 류청우는 바깥의 대화 내용을 조금이라도 더 듣고 싶어서 조용히 방문에 다가가 앉았다. 며칠 전 다람쥐의 명랑한 목소리와 달리 오늘밤의 상대는 굵고 낮은 음성을 지녔다. 커다란 그림자가 문살 바깥에서 흔들렸다.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예, 알고 있습니다. 범께서는 미리 피하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제 정인께선 무예에 몹시 능하십니다.”
“네 놈이 할 말이 아닌 것 같구나. 그 도깨비 놈이 네 놈을 무엇으로 변하게 할 줄 알고.”
“범이지요. 그 분께선 착호갑사가 되셨으니까요. 그것이 말하기를, 제가 진다면 저를 그 분의 손에 죽게 만들겠다 하였습니다.”
“…빌어먹을 인간 놈이 그깟 정에 눈이 멀었구나.”
“그래도 호선생 같이 용맹함을 떨칠 수 있으니 기쁜 일이지 않습니까.”
도깨비와의 내기.
류청우는 며칠 전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을 떠올렸다. 그가 도깨비와의 내기를 했다가 반인반수의 괴물이 된 것인가. 괴력난신 같은 기이한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 속에나 나오는 말이 아니었다. 그의 눈 앞에서 히끅거리며 눈물을 참아내는 다람쥐들 덕에 류청우의 혼란은 가중되었다.
“네 놈은 정녕 네 정인이라는 놈에게 죽고 싶은 것이냐? 이미 활까지 맞아놓고 원망스럽지도 않느냔 말이다.”
한참을 말이 없던 상대는 다시금 으르렁대었다.
그런데 활을 맞았다니.
“그게 어찌 그분의 탓입니까. 미련한 제 탓입니다. 그리고 그 분 가시는 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은 일 아닙니까? 어차피 제 존재조차 기억도 못 하실 텐데요. 처음으로 잡은 범으로라도 기억에 남으면 좋겠습니다.”
박문대는 그의 말을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바라는 일이라 답했다. 활에 맞아본 것은 처음이라 이리도 아플 줄 몰랐다 하지 않았나. 등골이 서늘해졌다.
“…네 정인을 믿지 않는구나.”
“믿었습니다. 어떤 순간에도 저를 버리지 않으실 거라 떠나시기 전까지 몇 번이고 속삭이셨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눈물을 흘리는지 말끝이 자꾸만 흐려졌다. 류청우는 정인을 믿지 않는다는 말에 숨이 멎을 것처럼 더욱 죄여왔다. 왜 이리 아픈 건지, 만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내가 왜 이리 서럽게 느껴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덜컥 숨이 멎었다.
“그렇게 서러우면 따져 묻지 그러느냐.”
“하, 저를 어찌 은애하지 않느냐구요. 옛 추억을 이야기하시면서도 왜 저를 떠올리지 못하시냐구요. 됐습니다. 이제 범께서도 그만 가시지요. 저는 화살이나 만들어야겠습니다.”
어딘지 홀가분한 음성이었다. 류청우는 두려워졌다. 그가 손볼 화살이 그를 죽일 것임을 알았다. 제 손으로 그를 죽이게 될 것임을 깨달았다. 박문대가 기다려온 정인이 바로 자신이었음을 알았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손이 벌벌 떨렸다. 박문대…. 여전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류청우는 그의 죽음을 바라지 않았다. 그의 죽음을 상상하기만 해도 숨이 턱 막혀 견딜 수가 없었다.
류청우는 입안의 살점을 씹으며 겨우 정신을 차리고 방문을 나섰다. 대청마루 위에 푸르른 하늘빛이 내려앉았다. 날이 점점 밝아오고 있었다. 해와 달이 마주본 채 하늘에 걸렸다. 그 빛에 사내가 마루 위에 잘 개어 올려둔 비단옷이 반짝였다. 나를 놓지마, 잊어서 미안해. 류청우는 다시금 버선발로 내달렸다. 그가 있는 방문 너머로 촛불이 아른거렸다. 호흡을 가다듬을 새도 없이 문을 열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화살촉을 갈아내는 그에게 가 다짜고짜 입술을 겹쳤다. 붉어져 토끼눈을 한 그가 입을 맞추는 동안에도 내내 눈물을 내보냈다. 깊이 호흡을 섞다가 숨을 헐떡이는 그를 위해 류청우는 마지못해 입술을 떼어냈다.
“나는 아직 그대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허나 내가 그대를 은애하는 것만은 알겠습니다. 내기로 무엇을 빌었습니까. 내기로 나를 걸었으니 대가도 내가 지불하겠습니다.”
류청우는 박문대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박문대는 흐려진 눈으로, 여전히 눈물이 마르지 않은 눈으로 웃어보였다.
“이미 대가는 사라졌습니다. 제가 이겼으니까요.”
*
천천히 떠오르는 푸르른 달과 선선한 봄바람이 류청우의 가슴께를 자꾸만 간질였다. 박문대가 불쑥불쑥 떠올랐다. 종일 눈앞에 그를 두고 있는데도 과거의 그가 자꾸만 아른거렸다. 잃어버린 기억이 주인에게 다시 되돌아오고 있었다. 꾀꼬리 노랫소리에 시조를 읊어주는 나긋한 목소리가 아름다웠다. 말 위를 타고 내달릴 때의 이야기를 해달라며 조르는 얼굴이 살가웠고, 한낮의 뙤약볕에 땀을 닦아내자 슬그머니 품에서 떨어져나오는 그를 사랑했다. 고운 손으로 골라 놓은 앵두를 함께 나눠먹을 때는 앵둣빛으로 물드는 볼에 터져나오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입맞추곤 했다.
그동안 마음 고생을 심하게 했는지 연인의 이마에선 종일 열이 들끓었다. 그런 연인의 이마에 물수건을 올려 열을 식히고, 삼베천에 깨끗한 물을 적셔 땀을 닦아내고. 불면 날아갈까 싶어 류청우는 그를 품안에서 떼어놓지 못하였다.
그러다 까치 우는 소리에 그를 이불 위에 고이 눕혀두고 방 밖으로 향했다. 늦은 밤 찾아온 손님에 류청우는 당황하며 그를 안으로 들였다. 여동생 연우와 마을 꼬마 하나가 손을 잡고 이 밤중에 찾아온 것이었다. 대문을 열어 맞이하자마자 연우는 류청우에게 버럭 화를 냈다.
“오라버니, 어쩜 그렇게 어리석어?”
그리고 꼬마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미안하다 사과했다.
“그것은 제 잘못도 있습니다. 화살을 태워버려서 죄송합니다, 나리.”
류청우는 어리둥절해졌다. 어젯밤 화살을 아궁이에다 밀어넣은 것이 자신들이라며 엉엉 울던 다람쥐 떼가 겹쳐보였다. 성을 내는 연우의 머리 위론 까치가 빙빙 원을 그리며 날았다.
“문대 오라버니 고생 했겠다며 어머니께서 약초를 좀 가져가라 하셨어. 안방에 계시지? 내일은 마을로 데려오라 하셨어. 오라버니께서 업고 내려오면 금방이지?”
연우는 그들에게 벌어진 모든 사정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류청우는 도깨비의 내기에 휘말린 것이 저희들만은 아님을 깨달았다. 어디서부터 도깨비의 장난질이 시작되었는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러나 류청우는 제 연인을 연우에게 내보이기 위해 초저녁 찾아온 선객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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