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문대

열매와 기다림

청우문대, 완결 후 if, 죄책감과 기다림과 깨달음

티온랩실 by 티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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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우문대 6회 전력: “난 기다림이 좋아”

감사합니다!

류청우는 며칠째 병실 앞을 초조한 걸음으로 서성이고 있었다. 그 안으로는 이따금 사람이 드나들었고, 류청우가 그들을 붙잡고 안의 상황을 물으면 그들은 아직이라며 고개를 저어보였다. 그래도 류청우는 사람이 오가며 잠깐 열리는 좁은 틈새로 병실 안을 엿보려 애썼다. 알싸한 약 냄새가 그의 몸을 덮쳤으나 신경쓰이지 않았다. 문틈으로 보이는 박문대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박문대가 모종의 사건을 겪고 지독한 감기에 걸린 지 6일, 그 사실에 지대한 공헌을 한 류청우는 박문대를 향한 걱정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박문대는 언제나 바빴다. 몸도 머릿속도 바빴다. 이른 나이에 홀로서기를 한 탓인지 독립심이 강했고, 자존심도 강했다. 다르게 말하면, 그 누구에게도 쉬이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비교적 나아진 지금까지도 그러했다. 그런 박문대의 마음을 열기까지 류청우는 멤버들과 함께 아주 오랫동안 박문대의 곁에 머물렀고, 수많은 사건을 같이 헤쳐나왔으며, 깊은 곳에 묻어둔 흉터와 말하지 못했던 속마음을 공유하기도 했다. 아니면 공유당한 걸지도. 어쨌든, 그래서 류청우는 자신이 박문대의 행동 패턴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청우 형, 오늘 미팅 있던가요.”

“응, 맞아. 오늘은 매니저 형이랑 나만 가서 일정 조절하고, 다음 미팅에 네가 같이 가게 될 거야. 왜?”

“저도 같이 갔으면 해서요.”

“왜, 문대야.”

“그 피디, 소문이 너무 안 좋아서. 제가 같이 가면 좋을 것 같아요.”

 

그날따라 박문대의 얼굴이 유독 창백했다는 것을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텐데. 류청우는 그럼 그러자며 손을 내밀었었다. 혹여라도 자신이 눈치채지 못한 함정에 걸리기라도 할까봐 염려한 마음은 알았으면서, 그런 기색은 전혀 읽지 못했다. 박문대의 예상대로 미팅에는 함정이 가득했고, 박문대는 류청우가 빠뜨린 부분을 완벽하게 커버했다. 그래서였을까.

미팅이 끝나고 돌아가려는 길, 먼저 차에 가 있겠다는 박문대를 매니저와 함께 보낸 뒤 류청우는 다른 제작진과 추가사항을 간단히 조율했다. 창 밖은 구름이 잔뜩 끼어 흐렸고, 해가 들지 않아 기온이 상당히 낮았기에 미리 차에 가 있겠다는 것이 딱히 이상하지도 않아서 내린 판단이었다. 그 피디가 보이지 않았지만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다. 피디가 개입해야 할 부분은 미팅에서 전부 이야기했으니까. 류청우가 이상을 느낀 것은 추가적인 조율까지 마치고 차로 돌아가려던 때였다. 막 회의실에서 나온 류청우의 눈에 허겁지겁 달려오는 매니저가 보였다.

 

“청우 씨, 문대 씨 여기 안 왔죠?”

“네, 다른 제작진 분들과 이야기 마치고 나온 참인데. 왜 그러세요?”

“문대 씨가 추워보여서 로비에 앉아계시라고 하고 따뜻한 음료 좀 사오려고 잠깐 자리를 비웠는데, 로비에 안 계셔서… 주차장에 먼저 가셨나 싶어서 차에 가 봤는데 아무도 없어서요. 전화도 안 받으시고, 문대 씨가 말도 없이 어디 가실 분은 아니니까 혹시나 해서 찾아왔는데...”

 

류청우의 얼굴이 대번에 굳었다. 매니저는 숨을 고르고는 애타는 눈으로 류청우를 보았다.

 

“청우 씨, 혹시 건물 안에서 문대 씨 찾으면 연락 줄 수 있어요? 저는 주변을 찾아볼게요.”

“네, 알겠습니다. 부탁드려요.”

“네!”

 

매니저가 뛰어나가는 것을 본 류청우는 주변을 꼼꼼히 살피며 층을 한 바퀴 돌았다. 오늘 박문대의 개인 스케줄이 있었던가? 아니, 그랬다면 매니저가 먼저 알았을 거다. 이 층에도 없고, 매니저의 말에 따르면 로비에도 없었다고 하고... 류청우는 먹먹해지는 마음을 애써 숨기며 다음 층을 확인했다. 그들이 접근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층에서부터 한 층씩 내려오며 확인하던 류청우가 2층에 다다랐을 무렵, 매니저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가 너무도 간절히 기다리던 연락, 박문대를 찾았다는 연락이었다.

 

“어딘가요.”

- 주차장이에요. 벤 있던 층 말고, 가장 아래층, 직원 주차장이요.

 

류청우는 즉시 엘리베이터 로비로 달려갔지만, 사람이 많은지 엘리베이터는 굼벵이마냥 느렸다. 초조함을 이기지 못한 류청우는 결국 비상계단으로 지하 마지막 층까지 달려내려갔다. 이상할 정도로 가슴이 조이는 기분에 넥타이를 풀었지만, 그 기분은 마치 응어리처럼 걸려 토해지지 않았다. 류청우는 몇 번이고 깊은 숨을 내뱉었다. 매니저의 등에 업힌 박문대를 보는 순간, 류청우는 이상할 정도로 긴장과 초조, 당황과 공포로 심하게 얼룩진 마음을 그제야 조금 놓을 수 있었다.

박문대는 정확히 그날 저녁부터 앓기 시작했다. 박문대가 사라졌던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무언가 있었다는 것은, 박문대의 스마트폰 화면에 뜬 피디의 짧은 사과 문자로 알 수 있었다. 문자를 확인한 류청우는 가만히 몸을 돌려 열에 들떠 잠든 박문대의 몸을 미지근한 물로 밤새 마사지하고, 중간중간 깨워 약과 물을 먹이며 밤새 간호했다. 새벽에 들어온 다른 멤버가 너까지 감기 옮기 전에 쉬라고 보내지 않았다면 아마 병원에 데려가는 것도 류청우였을 거다.

잠깐 눈을 붙인 류청우가 시간을 확인했을 땐 이른 오전이었다. 병원 문이 막 열었을 때쯤. 박문대의 침대가 빈 것을 확인한 류청우가 침착하게 전화를 걸었다. 박문대에게 건 전화를 대신 받은 매니저가 류청우에게 박문대의 감기 증상이 심해 일단 입원했다고 전했다. 류청우는 곧바로 옷을 갈아입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가는 길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류청우는 그게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 검사 돌리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요. 문대 씨는 이쪽 병실에 있어요. 쉬세요, 청우 씨도 얼굴색이 안 좋네요.”

“아뇨, 괜찮습니다. 매니저님도 고생 많으시네요.”

 

매니저는 쓰게 웃다가, 의사의 호출에 잠시 실례한다며 자리를 비웠다. 류청우는 박문대가 있다는 병실에 조용히 들어갔다. 링거를 맞은 채 잠든 박문대는 아직 열이 있는지 얼굴이 발그레했다. 소리를 최대한 죽인 채 침대 옆의 의자에 앉은 류청우는 손등을 조심스레 박문대의 이마에 대었다. 날씨는 추웠고, 병실은 서늘했고, 박문대는 홀로 뜨거웠다. 류청우는 망연한 눈으로 박문대를 한참 보고만 있었다.

 

다시, 박문대가 입원한 지 일주일이 되던 날. 드디어 멀쩡하게 눈을 뜬 박문대를 본 류청우는 그대로 박문대의 손에 제 얼굴을 묻었다. 힘없는 손이 류청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흐릿한 웃음소리에 류청우가 고개를 들자, 박문대는 제법 장난스런 말투로 말을 걸었다.

 

“오래 기다렸냐.”

“... 응.”

“나 때문이니까 괜히 힘들어하지 마라. 제일 아플 때 봐준 것도 너라면서. 고맙다.”

“...!”

 

제 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저에게 면죄부를 주는 박문대를 본 류청우는 복잡한 심정이 되어버렸다. 그런 류청우의 머리가 또 한 번 헤집어졌다.

 

“그 피디랑은 제대로 해결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아. 이 복잡한 마음이 어디에서 왔는지, 류청우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상할 정도로 초조하던 마음도, 조이던 가슴도, 다 한 곳에서 온 것이었다. 그래서 류청우는 그 한 마디에 끝도 없이 복잡해졌고, 끝도 없이 단순해졌다.

 

“일정도 우리한테 맞춰서 진행될 거고, 계약도 우리 손해 없이 잘 됐어. 알잖아.”

 

죄책감은 여전했지만, 무언가 풀린 기분이다. 류청우는 조금 허탈하게 웃었다. 제 표정 변화가 너무 빨랐는지, 박문대의 얼굴에 의문이 깃드는 것을 보고서야 류청우는 정신을 차렸다.

 

“왜, 괜찮아? 밤새 간호했다던데 감기 옮았나. 열은?”

 

박문대의 사늘한 손이 제 이마에 닿자, 류청우는 참지 못하고 배시시 웃어버렸다. 이놈 진짜 아픈가, 하는 얼굴이 좋아 또 웃어버렸다. 그래, 류청우는 이 순간을 위해 지금껏 기다렸던 모양이었다. 일주일은 길었고, 또 죄책감에 힘들었지만, 그 기다림 끝에 얻은 결론은 달콤했다. 그 결론이 가져올 여파는 쓰디쓰겠지만, 지금 거기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류청우는 기다림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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