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페릿

밤에

laid back by A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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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1 작성


〈 밤에 〉

몸을 뒤척이면 천이 쓸리는 소리가 났다. 부드러운 이불에는 아직도 따스한 볕의 향기가 남은 채였다. 그를 만끽하자니 한낮의 여유로움마저 떠올랐으나 실내는 어둡기만 했다. 창틀을 타넘고 새어 들어오는 달빛은 어슴푸레하고, 시계는 색을 잃어 명암만이 존재했다. 이리트는 느릿하게 눈을 깜박였다. 어둠 속에 적응한 시야 아래 그 무엇보다 앞서는 존재는 그리페였다. 평온하게 감은 눈, 규칙적인 호흡 따위가 제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

이리트는 잠든 연인의 얼굴을 응시했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 그는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시답잖은 생각을 떠올렸다. 사랑은 오래갈 수 있는 감정이 아니라고 했던가. 얼핏 들었던 말이 스치면, 이리트의 시선은 이전보다 조금 더 상세히 그리페의 얼굴을 살폈다. 함께한 지 이미 몇 년이 지난 사이였다. 이제는 일 따위의 이유로 고작 며칠간 떨어져 있을 때조차 종종 어색함을 느낄 지경이 되어 있음을 그 누구보다 저 스스로가 잘 알았다.

때때로 그리페를 별다른 이유 없이 응시하곤 했으나, 그가 잠든 모습을 한참이나 지켜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버릇이 되었다고 해도 모자라지 않을 불면의 밤은 그리페와 함께하며 횟수도 정도도 줄어들기 시작한 지 오래였다. 이리트의 얼굴에는 자각조차 하지 못한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페의 이름은 제게 있어 사랑의 또 다른 명칭이나 마찬가지였다.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낸 적 없는 말. 그건 꽤 우습게 들릴 테지만,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흐트러진 머리칼을 조심스레 쓸어 넘기면 살며시 찡그려지는 눈가. 뻗었던 손을 물리려는 순간, 손목이 그대로 붙잡혔다. 따듯한 체온은 안정감 있게 손목을 휘감고 제 쪽으로 팔을 당긴다. 분명 어둠 속인데도 마주친 눈은 푸르렀다. 시선이 얽히는 찰나에 온갖 상념은 형체조차 찾을 수 없게 녹아내리고 만다. 손을 잡아당기는 힘이 그리 강하지 않았음에도 이리트는 휩쓸리듯 다가가 따끈따끈한 품에 안겼다.

“이리트, 어서 자.”

말문이 막힌 이리트는 입을 열지도 못하고, 그저 끌어안긴 채 고개를 미약하게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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