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바람은 유하며,

번외: 목동은 지치지 않는다

“어디 보자. 피피는 도난이 아니라 가출이구, 여행가방은 잘 있구, 대검도 잘……, 어마나, 창이—!”


어딘가에서 높은 비명 소리가 들린다. 커다란 여행 가방을 뒤적이던 목동이 놀람에 펄쩍 뛴 탓이다. 평소와 달리 그 곁을 지키던 것 중 꼭 두 가지가 부재하였는데, 첫째는 서른 하고도 일곱 번째로 집을 나가버린 아기 양 피피요, 둘째는 요정들이 훔쳐간 게 틀림없을 연습용 창이리라.


무어, 요정들이 치는 장난이라는 것이 그런 류이므로 양치기 또한 무언가를 잃었단 것은 놀라울 일이 아니다. (피피는 더욱 그러하다. 그 야무진 새끼 양은 언젠가 제 스스로 목동의 곁에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예의 그 장난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창은 청년이 항시 등에 짊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 젊은이에게는 이 일이 저에 대한 도전이요, 기사의 자존심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 정도 되려나.


끙 소리를 낸 창술사가 몸을 일으켰다. 당황에 이리저리 떨리던 풀빛 눈은 어느새 호승심으로 반짝이고 곱슬머리 올려묶는 손이 야무지다. 단련을 위해 옷을 갈아입은 참은 아닌지라 여즉 진녹색 치맛자락이 나풀거렸으나, 기실 고향에서 늑대들을 두들겨 쫓아내던 때와 크게 다른 차림이 아니었으므로 그가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그래요, 이렇게 나오신다 이것이지요…….”


후, 하고 숨을 내뱉고는 그 손에 목동의 지팡이를 들었다. 제 입으로 폭력도 금지요, 과한 꼬장도 금지라 하였으니 그 지팡이를 휘두를 생각은 없었을 테다. 그저 그것은 그의 도약에 아주 조금, 조그마한 도움을 제공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이 푸른들판의 알레이, 숨바꼭질에 성심성의껏 임할 수밖에요!”


단단한 다리가 대지를 박찬다. 청년은 의심 없이 바람에 사랑받는 이였고, 그것은 실력이 특출나지는 않으나 틀림없이 즐거웠던 달리기로 보답할 수 있었다. 분명 제일로 빠른 이는 되지 못했다. 그저, 멈추지 않는 발걸음과 지치지 않는 체력에 자신이 있었을 뿐.


자아, 알레이 에버그린의 출격이다. 과연 그는 제 일부와도 같은 무구를 되찾을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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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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