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타이

엔란 by 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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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봄부터 이엔과 란은 같은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표면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동거를 시작한 건 아니었다. 이엔이 합격한 대학이 마침 고아원에서 꽤 먼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도 란이 지내던 집의 계약이 그 맘때쯤 완료되었다. 다들 사이가 좋은 호즈노미야 내에서도 유달리 친했던 두 사람이 같이 살게 되는 건 꽤나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같이 살았던 건 고아원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애써 그렇게 둘만의 생활을 아무것도 아닌 척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방은 두 개. 거실 하나와 부엌 하나, 그리고 창고 하나. 곳곳에 세워진 책장들. 늘어져 있는 책들은 두 사람의 공간임을 증명하는 듯 하다.

 일상은 빠르게 익숙해졌다. 이엔은 1교시가 있는 날이면 란이 운전해주는 차를 타고 등교를 했고, 란은 그대로 회사에 출근을 했다. 란이 저녁과 주말에 틈틈이 글을 쓰면, 이엔은 마주 앉아 책을 읽거나 과제를 하고는 했다. 이미 책이 나온 적도 있는 작가라는 사실을 알지만, 그렇게 그가 글을 쓰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와타누키 류우의 책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도 느꼈던) 신기함과 놀람이 여전히 느껴졌다. 물론 글을 쓸 때 말고는 특별히 작가라는 직함이 이마에 붙어있거나 한 게 아니지만.

 "작가 모임에 간다고요?"

 "응."

 "형님... 사람 많은 곳 싫어하시잖아요."

 "출판사에서 하는 거라... 얼굴만 비치고 금방 올거야."

 이런 순간에는 어쩐지 조금 특별함이 느껴지고 마는 것이었다. 감탄한 표정의 이엔을 바라보며 란은 조금 쑥스러운 기분에 휩싸였다. 별 거 아닌데... 그렇게 속삭이면 이엔은 정작 당사자인 란보다 조금 더 흥분한 태도로 대단함을 피력한다. 그럴 때면 이미 다 커버린(이엔은 성인인데다가 란보다 키도 컸다.) 이엔이 사랑스러운 강아지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란은 이엔을 보며 다정하게 웃어버렸다.

 늦은 오후, 이엔은 조별과제 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란이 대충 외출할 시간이었다. 형님이 나가기 전에 배웅해드리고 싶었는데... 벌써 가버렸을까봐 이엔은 조금 허둥지둥거리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돌아오면 때마침 란이 외출준비를 끝낸 참이었다. 아, 이엔. 어서와. 하고 그가 가늘게 눈을 휘어 웃었다. 이엔은 입을 벌리고 만다. 란의 얼굴에 언제나 걸쳐져있던 안경이 없었다. (사실 안경을 쓴 건 고등학생때부터지만 이엔이 보기에는 언제나였다.) 적당히 셔츠와 가디건, 니트만 돌려입던 단정한 차림 대신 정장을 입고 있었다. 재킷에 베스트까지 갖춰진 차림이었다. 게다가 머리는 뒤로 넘긴 건지 반듯한 이마가 바로 드러나 있었다. 이엔을 발견하기 전, 잠시 짓고 있었던 무표정한 얼굴과는 어울렸지만 평소의 호즈노미야 란이라고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뭐...예요?"

 "딱 맞게 잘 왔네. 이엔, 넥타이 맬 줄 알아?"

 "알지만..."

 그가 이엔에게 손짓을 하면, 이엔은 홀린듯이 그의 앞으로 걸어가고 만다. 이엔은 넥타이를 손에 쥔 채로 란을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란은 여전히 다정한 미소를 띠고 있다.

 "그... 드레스 코드예요?"

 "대충 비슷하긴 한데... 다른 사람들이 길에서 알아보는 게 싫어서..."

 자신도 평소와는 이미지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안다는 태도였다. 이엔이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넥타이를 매어주고 있었기 때문에 란의 시선에는 이엔의 머리카락이 살랑거리는 것이 보였다. 란은 넥타이가 어떻게 매어지는 지는 관심도 없이 보이지 않는 이엔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엔도 그 시선이 느껴지는지 몇 번이나 헛손질을 했다. 다른 사람을 매어주는 건 처음이니까 당연히 어설플 수 있다고 변명하면서도 손길이 점점 더 느려졌다. 이윽고 매듭을 조이고 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란이 이엔의 등을 두 손으로 감싸서 제 품으로 꾹 밀어넣듯이 끌어안았다. 그는 이런 스킨쉽이 잦았다.

 "다녀올게...."

 "네에..."

 "금방 올거야."

 느릿하게 속삭이는 목소리는 조금 낮았다. 대답하는 목소리는 조금 작았다. 품 안의 체온은 조금 높았다. 란은 만족스럽게 미소짓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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