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생각

엔란 by 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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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금색 눈동자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로 빛나고 있었다. 호즈노미야 란은 그 눈동자가 좋았다. 빛에 따라 샛노랗게 빛나기도, 호박색으로 물들기도 하는 그 눈동자가 자신을 열렬하게 바라보는 그 순간을. 사실은 그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매끄러운 결의 갈색 머리카락이 좋았다. 머리카락 사이로 얼굴을 묻으면 옅게 풍겨나오는 샴푸향이 좋았다. 쉽게 붉어지는 두 뺨이 좋았다. 어루만지면 희미한 열기가 느껴져 손끝이 뜨거워지곤 했다. 다정하게 건너오는 목소리도 좋았다. 이름을 불러주는 것도, 차분하게 책을 읽어주는 것마저. 당연하다는 듯이 팔을 잡아오는 손이, 환하게 번지는 미소가.

그냥... 네가.

란은 한 손으로 턱을 괴며 이엔을 바라보았다. 바라보는 것 또한 좋았지만 이제는 자신을 봐주기를 바랐다.

"뭐 하고 있어?"

"아...."

곧 금빛 눈동자에 온통 자신만이 담기고 만다. 짧은 희열이 그를 스친다.

그의 세계는 아주 좁았다.  열 걸음의 방. 손이 잘 닿지 않는 창문. 멀리서 들려오는 타인의 소리. 흑백의 세계. 그러나 그 바깥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세계는 급격하게 넓어지고 또 넓어져서.... 전부를 집어삼키고는 결국 하나의 점으로 귀결했다. 호즈노미야 이엔.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나의 이엔. 그를 바라보면, 끝없이 추락하는 것처럼 심장이 떨렸다. 때로는 숨이 막혔고, 때로는 눈물이 났다. 온통 그에게만 푹 잠겨있는 것처럼. 그의 세계는 그가 전부였고, 전부가 그였다. 이엔이 가볍게 웃었다. 란도 따라 웃었다.

 "형님 생각이요."

 "내 생각?"

 "네에……."

 란은 얼굴을 붉히며 몸을 웅크리는 이엔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평소에도 늘 하는 거지만... 부끄럽다는 듯이 덧붙이는 목소리. 조금 입이 말랐다. 손을 뻗어서 그의 손목을 잡았다. 더듬거리며 어루만지면 둥근 뼈가 손끝에 닿았다. 그는 그에게 말하지 않은 게 너무 많았다. 예를 들면 지금. 너의 대답에 마음이 설렜다고. 너의 고백에 여유같은건 금방 사라지고 만다고. 고개를 기울여 그의 뺨에 입술을 대었다. 모든 것을 이야기하기에 그는 너무나 많은 감정을 품고 있다. 그것들은 지나치게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하나씩 끄집어낼 수가 없었다.

 "형님도……."

 "응?"

 "…형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수줍은 목소리와 뺨에 와닿는 입술. 빠르게 돌아간 고개와 붉어진 귓가. 지나친 감정. 지나친 사랑. 이엔. 나는 언제나 네 생각뿐이야. 이 말만으로는 부족했다. 좀 더 그에게 잘 설명할 수 있는 언어는 없을까. 란은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수 십 권의 책을 썼지만 이 말만은 도저히 구체화할 수 없이 벅차고 컸다. 발이 잘 닿지 않는 현실에서 온전하게 붙잡히는 것은 이엔 뿐이었다.  그냥 너뿐이야. 그냥 그것뿐이야.

대신 그는 그의 허리에 팔을 감싸 끌어안고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순순히 그가 품으로 폭 안겨들어온다. 심장이 크게 뛰는 소리가 들릴까. 들린다면 키스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는 한 손으로 붉어졌을 얼굴을 어루만졌다. 조금 당기며 고개를 기울이면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끄는 대로 고개를 돌린다. 입술이 맞닿는 것은 순간이었다. 다정함만을 주고 싶지 않았다. 얽혀있는 모든 것을 그에게 주고싶었다. 그 대신 그의 것을 전부 가져오고 싶었다. 이 사랑은 익사라고 표현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란은 그냥 눈을 감아버린 채로 그대로 그에게 가라앉아 버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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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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