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성녀는 개종하기로 했습니다 11화
추락한 성녀 11
*본 작품은 어한오 팀의 오리지널 창작 작품입니다. 무단 도용 및 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본 작품은 포스타입, 글리프에서 동시 연재 중에 있습니다.
추락한 성녀 11
루블, 보쓰, 히즈
***
“아트레우스. 이거 헬레니온 님께 전달해줘.”
“잔심부름이라면 됐어. 나 바빠.”
“네가 비서면서 비서 일을 안 하면 어쩌자는 거야.”
“아, 몰라. 보스 외유 동안 내가 얼마나 시달렸는지 옆에서 봐놓고도 그래? 나도 당분간은 땡땡이 칠 거니까 그렇게 알아.”
하여간 단순 무식한 자식이라며 구시렁거리는 동료를 지나치려는 찰나.
“아트레우스. 땡땡이냐?”
“록시······.”
아트레우스가 결코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상대와 마주치고 말았다.
“록시! 잘 됐다. 이 자식 좀 말려봐. 내가 더 잔소리했다간 저 근육질로 목을 졸라댈 기세라고.”
“아트레우스, 너 보스 일은 어쩌고 네가 외출이야? 보스한테 다 보고하겠어.”
“참 나. 보고를 핑계로 얼굴이나 한 번 더 볼 수작은 아니고? 어?”
“너 말 다 했어? 이따위로 일할 거면 비서직이라도 나한테 넘기던가. 하기 싫으면 관둬버리라고!”
역시나 이번에도 결국은 다투게 되었다. 옆에서 듣던 동료는 금방 끝나지 않을 기세를 감지하곤 슬그머니 발을 뺐다. 전에 괜히 말리려고 끼어들었다가 두 사람에게 들들 볶인 자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 비서 일이 이런 서류 작업만 있는 줄 알아? 난 호위도 겸해. 너보다 세서 하는 거라고, 이 자리!!”
“너 지금 나보고 약하다고 지껄인 거야? 아주 작정을 했지? 좋아. 바라던 대로 다시 서열 잡아줄 테니 연병장으로 나와. 내가 오늘 누님 소리 듣고 말 거니까!”
“하이고, 늙어서 좋으시겠어요. 보나 마나 또 내가 이길게 뻔한데 이쯤에서 꼬리 말고 도망가지 그래.”
둘의 으르렁거림이 심해지자 복도에는 두 사람을 둘러싼 큰 원이 생겼다. 싸움 구경을 하러 모여든 인파는 저들끼리 키득거리며 내기를 걸어댔다.
결국 3시간은 지나서야 아트레우스는 별장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아트레우스. 너 몰골이 그게 뭐니?”
그레이스는 멀리서부터 느껴지던 기운으로 방문자가 아트레우스임을 알아보았다. 아마 일부러 기척을 내준 듯했다.
그레이스는 그것이 신호임을 눈치채고 저택 밖으로 아트레우스를 맞이하러 갔건만.
“또 싸운 게냐.”
“·····대답 안 할래요.”
퉁퉁 불어 터진 얼굴에 군데군데 멍 자국도 보이는, 그야말로 정상이라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재생을 한 게 이 몰골인 거니?”
“아니, 걔가 재생을 막아둬서·····. 하여간 성질은 더러워서. 그러니 남자도 못 만나지.”
그레이스는 불만 어린 중얼거림에서 대략 있었던 일이 보였다. 그녀가 알기론 이런 능력을 가진 건 록시, 단 한명이다.
“너희 둘은 처음 만난 이후로 달라진 게 없구나.”
사고친 아들이라도 바라보듯 은은한 미소로 압박하는 그레이스를 앞에 두고, 아트레우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헬레니온 님의 명령으로 온 게냐?”
“아, 예. 지금 보스가 바쁘셔서요. 방문을 할 틈이 없어서 대신 저를 보내셨습니다. 그·····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정확한 호칭을 생략했으나 어차피 서로 알아듣고 있었다. 그레이스는 대답 대신 들어가자며 이끌었다.
“아마 들었겠지만 지금은 성녀가 아닌 헬레니온 님의 손님이다. 일단 해를 입히진 말거라.”
“충분히 경고 듣고 왔어요. 난 그냥 보스 말씀만 전하러 온 거고 여기선 아무 것도 못본걸로.”
“잘 아니 다행이구나. 네가 경거망동할 아이는 아니지.”
다른 동료들이 들었다간 경악할 소리를 해대는 그레이스의 표정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물론 아트레우스 또한 당연한 발언이라는 듯 시큰둥했다.
“그보다, 뭐라고 불러야 합니까? 지금은 성녀도 아니거니와 그렇게 부르고 싶지도 않습니다.”
“가명을 쓸 생각이다만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내가 먼저 말씀드려보마.”
저택 문을 열려는 그레이스의 어깨에 아트레우스의 손이 올라왔다.
“사실 그보다 궁금한 건, 보스가 무슨 생각으로 보호하는지입니다. 에버렛 씨는 알고 계시죠?”
그레이스는 작게 한숨을 내쉰 채 표정을 지우고 돌아섰다. 영영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란걸 알고는 있으나 행여나 헬레니온에게 오점이 될까 두려웠다.
“나도 잘은 모른다. 다만 의심은 하고 있지. 너도 그리 생각한다면 언동에 더 주의해라.”
자신의 예상보다 온건한 그레이스의 반응에 아트레우스는 아직 본인이 우려하던 시기는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이만하면 괜찮겠지. 그나마 그레이스가 옆에서 감시할 테니.
생각을 정리한 그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직접 문을 열었다.
예상 외로 그 인물은 응접실에 나와 있었다. 하지만 기대로 빛나던 눈은 아트레우스를 발견하고는 금세 시무룩해졌다.
눈치가 빠르다는 건 안 좋은 점도 있다. 이를테면 눈앞의 껄끄러운 인물이 실망한 기색을 감추려 애쓰는 것을 알아채 버렸을 때라든가.
“그레이스. 이 사람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그레이스에게 묻는 아마데아를 잠시 관찰하던 아트레우스는 이내 대신 대답했다.
“그때 옆에서 한 번 봤지요. 보스 옆에 있던 아트레우스라 합니다. 보스의 비서를 맡고 있습니다.”
“기억 나요. 저는 아마데아·····.”
“그 이름이 아닌 것으로 압니다만.”
아트레우스는 말투는 그럴싸하지만 호전적인 태도를 숨기지 않은 채 말했다. 그 말인 즉.
‘내게 가명을 쓰라는 건가.’
사실은 가명이 필요함을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정말 이름을, 여신의 이름으로 된 성을 포기하는 순간 빛과의 연결고리가 영영 사라져버릴까 겁낸 탓이었다.
‘하지만 이젠 받아들여야겠지.’
가짜 성자가 진짜로 둔갑하고 아마데아는 수배가 내려졌다. 이 이상 붙잡고 있는 게 미련한 짓이라는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있었지만·····.
“그렇군요. 제가 실수했네요.”
아마데아는 자연스러워 보이길 바라며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아직은 정하지 못했어요. 그냥 아가씨 정도로 불러주면 좋겠군요.”
“·····그렇습니까.”
둘은 어색한 상태로 응접실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차를 나른 그레이스가 옆에 서 있었지만 선뜻 먼저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아 서로 연거푸 차만 마셔댔다.
“저는 헬레니온 님의 지시를 받고 왔습니다. 그분이 꽤 바쁘셔서요.”
“그런가요. 그런 근시일 내에 오겠다는 말은 그대가 온 것으로 대신 하나 보군요.”
“그게····· 그렇긴 하지만.”
딱히 눈앞의 여자에게 좋은 감정은 없지만 보스의 연애 사업을 위해서 변명이라도 해둬야 하지 않을까. 변명 같은 건 질색인 아트레우스는 잘 떨어지지 않는 입을 움직였다.
“아닌 게 아니라 보스께선 정말 직접 오고 싶어 하셨습니다. 최근 정세가 심각한지라, 그게·····. 그래서 빠져나오기 힘들어지셨기에 따로 저를 불러 아가씨께 정보를 전달하라고 지시하신 겁니다.”
변명에 이어 거짓말까지. 아트레우스는 머리라도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저 여자 앞에서 그런 꼴을 보일 순 없었다.
“이해하니까요. 그보다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예. 물어보시죠.”
아트레우스는
“저를 증오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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