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갈래요

집에 돌아갈래요 2

빙의는 처음이라 2

공백 by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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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롱-

ㅂㅅㅈ: 왜 보고 답이 없어?

"으악!"

메시지 알람음에 무심코 미리보기를 보자마자 핸드폰을 던질 뻔 했다. 그러지 않은 이유는 당연히 핸드폰이 신형이었기 때문이다. 바꾼지 얼마 안 된 건지... 아니면 관리를 잘 한 건지 제 핸드폰과는 달리 아주 깔끔하고 깨끗했다. 남고생 핸드폰에 필름 깨진 흔적도 없고 기본 케이스라니. 방을 봤을 때도 그랬지만, 이 황지현이라는 몸 주인은 은근히 깔끔한 구석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 근데 이걸 진짜 어떻게 하냐."

읽기야 읽었지만, 어떻게 답을 해야 할 지 몰라서 미뤄두고 있었던 메시지에 이렇게 또 연락이 올 줄은 몰랐다. 아니, 나는 네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만나서 어쩌라는 거냐고. 애초에 답 안했다고 이렇게 독촉하는 게... 친구인가? 그렇다면 나는 고딩때 친구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다른 놈들은 다 이렇게 살았단 말이지? 

아아아악!!! 진짜 어쩌라는 건데!!

머리를 벅벅 헤집으며 침대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생각하기 너무 싫었다. 어쩌라는 거지. 나 이 몸으로 어떻게 살아야하지? 학교 공부라고는 하지도 않고 친구 무리 애들이랑만 어울리고 살아와서 모르는 놈들한테 살갑게 굴 자신이 없었단 말이다. 면접도 아르바이트 면접만 봤지 대학교나 회사 면접이라곤 한 번도 본 적 없는데다가 학교 수행평가에서 발표를 맡은 적도 없었다.

아까 읽어보니 정말 단답이라곤 하나도 없는 메시지들만 오갔던데 이게 친구 맞냐고. 아!!! 나는 ㅇ,ㄴ,ㅋ 이 세 개만 보내고 살아왔다 지현아. 날 믿어? 네 친구를 내게 맡겨도 되겠어?

누웠던 상체를 튕겨 일으키고 눈을 크게 떴다. 혹시, 이거 괴롭힘 당하는 거 아냐? 만나서 삥뜯기는 거 아냐? 헐. 생각해보니 그럴듯하다. 이렇게 사근사근 이름을 부르는 관계인 것부터, 자신이 연락을 잠깐 답 하지 않았다고 독촉하는 것까지!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보통 이런 소설에서는 빙의한 사람이 사이다를 위해 빙의한 캐릭터를 위해 괴롭힌 이들을 무찌르겠지만. 황제현은 평생 몸싸움이라곤 해 본 적도 없고 형에게 대들어본 기억도 없는 몸치라는 게 문제였다.

만일 이 황지현이라는 녀석이 일기라도 쓰면서 다른 녀석을 저주하는 글을 남겨뒀다면야 편하겠지만. 이녀석은 역시 남고생답게 그런 거라곤 하나도 없었다. 자신과 다른 점은 그래도 공부를 하는 모양인지 책장에 문제집들이 꽂혀 있다는 점일까. 

본래 제 방의 책장엔 형의 문제집과 책들이 있었다. 그 중 제가 펼쳐본 것은 하나도 없었다. 

ㅂㅅㅈ: 지현아?
ㅂㅅㅈ: 내일 시간 없어?
ㅂㅅㅈ: 이게 그렇게 고민할 일이야?

띠롱 띠롱 띠롱

제 맘이라곤 하나도 모르는-당연하다- 메시지 알람 소리가 자신을 점점 압박하고 있었다. 젠장. 진짜 내가 이녀석의 따까리가 맞는 것 같은데?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어떻게든 답을 해야겠다.

안녕하세요. 핸드폰 주인과 무슨 사이신가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결국 보내버렸다. 그리고 보내고 나서야 이상함을 감지했다. 

아. 그러고보니 핸드폰 지문인식이었지. 

XX. 

나는 진짜 멍청한 놈이다. 하지만 이것도 엄청 큰 고민 대박 쩌는 고민 끝에 보낸 메시지였다.

지우기에는 이미 사라진 1에 마른 침을 꿀떡 삼키며 속으로 울음을 삼켰다. 진짜 울고 싶었다. 진짜 어디 콱 대가리를 박아서 기억상실이라고 우길까. 부모님들에게도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진퇴양난이다. 한마디로 거시기되어버렸다. 

방금까지 계속 연락하던 녀석이 갑자기 조용해지니 더 무서웠다. 지금 이 따까리가 대체 무슨 수작질일까 하고 상한 심기를 표현하고 있는 기분이란 말이다. 입 안이 쩍 말라서 혀에 가뭄이라도 오려는 찰나에 다시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건 마치 고백하고 상대의 답장을 기다리는 상황같은데.

ㅂㅅㅈ: 애인입니다.

실화냐고.

긴장의 끈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얘, 여자인가? 

미치겠다. 

어느 누가 여친을 초성으로 저장해두지? 그러고보니 본인이 남고에 다녔다고 해서 황지현이 남자 애들이랑만 같이다닐 거라고 생각한 게 문제였다. 아, 얘 여자일지도 몰라. 어쩐지 그런 희망이 불편했던 마음 속 불안감을 물리치려고 했다. 

황지현 이자식 너 꽤 하잖아.

다음 메시지만 아니었다면.

ㅂㅅㅈ: 남친인데 혹시 제가 어떻게 저장되어 있는지 알려주실래요?

아무리 봐도 이 몸이 여자는 아니지 않아?

이거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장난치는 거다. 이거 어디서 본 적 있는 멘트같아. 전생에서 유행했던 대답같다니까?

그래, 상대가 황지현이 핸드폰 잠금을 한 지 안 한 지 모를지도 모른다. 보편적으로 지문인식으로 잠궈둔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당 수의 사람들이니까. 지금 이녀석 뻔뻔한 내 메시지에 진짜 속은 거야!

휴,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다시 마음이 편안해졌다.

핸드폰 주인에게 연락이 와서 돌려드릴게요.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아주 잘하는 짓이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현타에 침대에 널브러져 누웠다. 소득 하나 없이 끝나버린 연락이 눈물겨웠다. 들키진 않은 것 같다. 혹시 전화라도 오면 어쩌나 싶었는데, 그렇게까진 아니라 다행이다. 심장이 아주 쫄깃해졌다.

겁 많고 멍청하고 어딘가 조금은 모자란 평범한 성인 남자. 군대까지 다녀온 군필이지만, 여전히 가족들은 황제현을 애처럼 대했다. 그런 가정환경에서 살아와서 그런지 이렇게 혼자 낯선 곳에서 눈을 뜨니 여러모로 무섭기도 하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엄마가 보고싶다. 정말 갑자기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어젯밤을 떠올리거나 그 일주일을 떠올려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단조로운 날들이었다. 유행하는 OTT 드라마를 시청하고 아르바이트를 다녀왔다가, 집에 돌아와서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웹툰을 몇 편 보다가... 친구들의 단톡에서 학교 생활에 대한 푸념을 들어주는 것이 거의 하루의 일과였다. 

먼저 독립해버린 형의 자취방에 종종 들어가서 뒹굴다가 시켜준 배달 음식을 먹고 하룻밤 자고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과 술 한 잔 하는 그런 답 없지만 마음 편했던 생활을 떠올리다 지금 닥친 상황은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형... 엄마... 아빠... 나 집에 가고싶어."

대체 이 몸의 주인은 어디로 간 거지? 정말 몸의 주인이 자신의 몸에 들어갔고 나 대신 내 삶을 살고 있다면 뭐가 이득인건데? 사고가 난 것도 지병이 있던 것도 불우한 가정사를 가진 것도, 소설에 미쳐 살거나, 미연시를 하거나 작가에게 메일을 보내거나, 이 주인공을 내가 행복하게 해주고 싶거나, 내가 글을 쓴 적도, 댓글 하나 남긴 적도 없는 삶이었는데. 왜 나는 지금 이런 상황에 놓여있는 거냐고.

관리자 나와! 빙의를 이따구로 시켜도 되는 거냐! 제발 지금이라도 나와주세요. 얘 부모님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느 빙의자들은 이야기의 내용이라도 알고있지. 제현이 아는 것이라고는 황지현이라는 녀석의 이름 뿐이다. 보통 빙의하면 뭐 퀘스트 창이라도 뜨는 거 아닌가? 아니면 몸의 기억이라도 이어 받을 수 있던 것으로 아는데, 지금 제 상황에는 아무것도 해당되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정말 기억상실이라고 말하는 수밖에 없다. 어느 웹툰에서 빙의하고 기억상실이라고 말하는 건 하수나 하는 짓이라고 했는데. 그 방법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잖아!

난 진짜 억울하다고! 꼬우면 니가 빙의하던가!

걔도 빙의를 하긴 했었지.

아니, 혹시 자신의 삶이 소설이었다면? 물론 그 태평한 생활의 제가 주인공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제 형이라면 가능성이 있었다. 중고등학생때도 여친이 몇 명 있었고, 엄청 잘생겼다고 하기엔 저와 같은 핏줄이니 객관적으로 생각하기에도 애매하다.

...잘생겼나? 

그래도 운동을 꾸준히 하고 살집 없고 키도 185가 넘어가는 스펙을 가지고 있다면. 주인공을 맡아도 되지 않을까?

형이 주연은 아니어도 조연은 되겠지. 아니면, 주조연? 보통 빙의하면 주인공으로 빙의하진 않고 그 주변인으로 빙의해서 구질구질했던 인생을 펴는. 그럼 내가 구질구질한 인생이었단 말이야? 작가 이자식이.

하...

결국 그것도 다 소설이라는 가정 하가 아닌가. 

이런 미친 생각을 하는 자신도 슬슬 미친 게 맞는 것 같지만. 미치지 않고서야 못 버티겠다. 이런 생각을 해서 내가 무슨 이득이 있는데! 으아악. 바다에서 갓 잡은 생선마냥 침대에서 펄떡였다.

결국 그 세상이 소설이라고 해도 거기가 내 집이란 말이다! 억울함이 치솟아 침대를 퍽퍽 쳐댔다.

그래도 이제 내 방이라고 침대에서 나가고 싶지 않은 기분이 제일 우울했다. 황지현의 부모님이 오면 제대로 말하자. 기억상실이라고. 그리고 전학을 가고 싶다고 말하는 거야. 수명고에 자신을 아는 녀석이 있을 지도 모르니까. 근데 언제 돌아오시지?

일단 저 ㅂㅅㅈ이라는 녀석만큼은 만나고 싶지 않았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절차를 다 마쳐놔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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