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갈래요

집에 돌아갈래요 3

빙의는 처음이라 3

공백 by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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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전학은 물 건너갔다. 오늘은 2월 24일. 며칠만 더 있으면 개학이었다. 저녁에 돌아온 낯선 얼굴의 부모님께 솔직하게 기억을 다 잃어버렸다며 말씀드렸지만, 그 즉시 병원에 이송 되어 입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상급 병원에 바로 입원할 수 있다니. 이전의 몸은 건강하긴 더럽게 건강해서 가본 병원 중 기억에 남는 곳은 소아과와 정형외과 뿐이었는데, 이런 큰 병원에 바로 입원이 가능한 줄은 또 처음 알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의사인 것도. 그래서, 바쁘시구나. 돈은 많겠다.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나 본데.

의사라는 건 알겠는데. 무슨 의산지는 물어보질 않아서 모르겠지만 검사 내내 다른 의사 분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면 이 병원에서 어느 정도 유명한 분인가 싶었다. 바로 검사할 수 있는 기초 검진들을 저녁에 싹 해치우고 다음 날 아침부터 MRI며 CT며 이상한 기계에 넣었다 빼지고 어느 방에선 상담사분과 그림 맞추기와 이상한 미술 교실을 가지기까지 했다.

기억을 잃었다고 한 게 잘한 걸까. 이 검진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갑자기 두려워졌고, 황지현의 부모님의 걱정스러운 말에 죄책감이 들었다. 저는 당신들의 아들이 아니지만, 오늘부터는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살겠습니다. 리셋된 김에 다시 쌓아 올리면 되겠지. 보니까 단란한 가정처럼 보이는데. 제 탓에 흔들리면 안되니까. 공부는 좀 못하고 머리가 안 좋지만 가족에게는 잘하는 그런 아들이 되겠습니다. 라며 혼자 다짐을 하고 있는 새에 전학에 대한 이야기는 진행도 되지 않고 있었다.

"해리성 기억상실 인 것 같습니다. 검사상으로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외상보다는 스트레스가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그게 아니라 그냥 사람이 바뀌어서 그래요 선생님. 설명을 듣는 아버지는 본래 온화한 얼굴이었지만 표정이 굳어 처연하게 보일 정도였다. 어머니는 조금 성깔이 있어 보이는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완전 화가 난 듯 미간을 구기고 뇌의 사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기억이 돌아오는 것은 확실하지 않지만, 심적으로 안정을 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아."

어머니가 노려보던 눈매를 풀고 제 어깨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지현아. 어디 따로 아픈 곳은 없고?"

"네 전 괜찮아요. 그런데, 곧 개학이잖아요."

"그래. 네 말대로 전학을 처리해주곤 싶은데,"

우선은 나가자며 몸을 일으키는 어머니의 손길을 따라 진료실에서 나와 어제부터 입원 중이던 1인실 같은 2인실 침대에 걸터 앉았다. 일어서면 어머니보다는 큰 키지만, 이렇게 앉으니 올려다봐야 했다.

"기관 소속 학교는 이 지역에 그 학교 뿐인 것 알지? 그래서 기관 학교에서 다른 곳으로 가려면 다른 기관 학교로 가야 한단다."

"잠, 잠시만요. 기관 학교라고요? 무슨 기관인데요?"

못 들을 걸 들었다는 듯이 질문을 들은 두 사람의 표정이 엄청 이상해졌다. 아니, 이제야 심각성을 확실히 자각한 사람들 처럼 보인다고 해야 할까.

"당연히, 국가 협회에서 만든 에스퍼 기관의 부속 학교를 말하는 거지."

"에, 에스퍼요?"

내가 빙의한 곳이 정말 판타지였나보다. 그렇다면 나도 이제부터 초능력을 쓸 수 있다는 건가? 이걸 기뻐해야 해 말아야 해? 에스퍼에 대해서도 잊어버린 것이라 생각한 것인지 간단하게 초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며 덧붙였다.

"능력을 쓰는 건 아는데, 그럼 혹시 저도 능력이 있어요?"

"음, 그건 아니야. 지현이 너는 보조반이니까."

"보조반이요?"

"능력자들을 케어하고, 일종의 매니지먼트가 되는 거지."

나는 능력이 없고, 에스퍼의 전담 매니저가 되기 위한 반에서 공부하고 있었나보다. 그냥 거의 비서 교육을 미리 받는 거잖아? 굳이 기관에 다녀야 하는 건지 되려 의아했다. 부속이라고 하는 걸 보면 입학은 까다로워 보이지만, 나오는 거야 관계 없지 않나? 

"그렇다면 기관에 계속 있을 필요는 없지 않나요?"

"기관에 한 번 소속되면 성인이 되어서 계약서를 쓰지 않는 이상 나오기 어려워, 에스퍼들의 사항은 기밀사항이라, 네가 기억 상실이라고 해도, 이미 전담이 있는 와중에 다른 학교로 나가기도 애매해지고."

"제가 전담이 있다고요?"

"그래. 서진이가 있잖아. 네 전담 에스퍼도 기억 나지 않아?"

서진? ㅂㅅㅈ 이라는 게 걔였어? 어쩐지 좀 대화가 밍숭맹숭하더니. 내가 걔 비서라서 그런 거였구나! 결국은 따까리가 맞는 거잖아요! 

"걔 성이 뭐예요?"

"백서진. ... 기억이 안 나나보네. 어쩌지. 네가 기억을 잃었으면 걔도 난리칠텐데."

"난리친다고요?"

"마음에 들지 않는 게 하나라도 있으면 못 견디는 성격이잖아."

대체 무슨 관계이기에 부모님이 그런 걸 다 알고 있지? 부모님한테도 그 이상한 성격을 다 보여주고 다녔던 건가?

"올해 방학만 해도 그래. 전담인데 왜 같은 집에서 안 사냐면서 두 사람의 명의로 오피스텔까지 계약해 왔는데, 기억 나니?"

"진짜 미친놈 아니에요? 앗. 아."

식겁해서 본래의 제 말투가 나와버렸다. 입을 텁 막으며 고갤 저었다. 그 녀석의 얼굴도 기억 안 나고 걔의 목소리도 능력도 전부 모르겠는데. 이 얘기만 들어도 무섭다. 돈이 얼마나 많길래 그 지랄을 한 거야?

"그, 래서 그 집은 어떻게 됐어요?"

"갈 길이 먼 것 같네."

어머니는 상태가 정말 좋지 않다는 듯. 눈을 날카롭게 번뜩이며 간이 의자를 끌어와 앞에 앉았다.

긴긴 이야기를 들어보면, 기관에서 운영하고 있는 수명중 수명고는 에스컬레이터 학교로 기숙사제 중고일관교인데, 6년의 과정이 끝나면 협회에 취직이 보장되는 것은 물론, 전담이 없는 일반 학생들은 대학교 진학에도 많은 이점이 있거나, 바로 연구소로 취직할 수 있단다. 하지만, 결국에 성적이 중요하긴 하지만, 이미 전담이 있는 자신은 성적보다는 에스퍼 케어로 바로 취직이 가능하다는 말이지.

이렇게 보니까 역시 전담이 있는 쪽이 더 좋은 것 같은데?

에스퍼들은 전체적으로 국가의 협회에서 보호하며, 팀을 가꾸고 있기 때문에 협회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인증을 받고 활동하는 팀으로 들어가도 된다고 한다. 에스퍼들이 하는 일은 하늘에 구멍이 생겨나는 홀 이라는 이상현상에 대응하여 그 홀을 닫는 역할을 한다고.

이런 내용의 웹소설과 웹툰들을 한 100개는 본 것 같은데, 전부 30화를 넘긴 적이 없는데다가 주인공들의 이름이라곤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백서진? 얘가 주인공인가? 제가 전담인 걸 보면, 자신의 역할이 악역이거나, 아니면 조력계? 일지도 모른다.

제일 중요한 점은 백서진과 황지현이 어쩌다가 전담을 하게 된 건가 였는데. 만일 백서진이 말한 것처럼 정말 둘이 연인이면 어떡하지? 그렇다면 나는 진짜 백서진에게 못할 짓을 하는 사람이 되는 걸지도 모른다. 전담이라는 거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는 듯 한데. 아까부터 들던 이상한 기시감이 이거였다. 

전담이라서, 전담은, 전담이니까. 특혜를 받을 정도라면 엄청 요란한 거 아닌가? 가벼운 말로 넘기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니까 저는 다음 주에 다시 기숙사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인 거죠?"

어쩐지 생활비가 많이 남아있고 적금도 꽤 들어가 있더니. 교통비는 무슨, 그냥 간식 먹는 비용 빼곤 다 적금으로 들어가는 거였잖아. 황지현 이자식, 돈을 이렇게 관리하다니. 알바비를 벌고도 맨날 술 먹고 놀러다니기만 바빠서 계좌를 두 개 이상 만들지 않았던 자신과 다르게 학생이면서 알뜰하게 살고 있었다.

이젠 이게 내 몸이지만.

XX.

지금 제일 무서운 것은 백서진의 연락을 받고 자신이 그따구로 답을 해둔 상황이란 거다. 여기서 제가 기억 상실이라는 걸 알게 되면 반응이 어떠려나. 걍 망한 것 같은데. 지금 죽으면 다시 어제로 돌아갈지도 몰라. 빙의 특전이 그걸지도 몰라. 아니다 차라리 그 녀석 얼굴 한 번 보고 죽어야 자연스럽지 않을까? 나 지금 우나?

"저, 공부는 잘했나요?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는데 수업에 못 따라가면 어떡하죠?"

"퇴학은 안 당할 테니 괜찮아. 거기다 서진이가 있으니, 보충 수업도 피할 수 있을 거야. 학교에다가는 엄마가 연락을 넣어둘게 알아서 편의를 봐주겠지. 이미 전담이 있는 아이를 놓을 수는 없을테니까."

"잠깐! 저, 백서진이란 애랑 룸메인가요?"

"전담이니까."

그놈의 전담! 미치겠네. 그게 뭐길래.

"전담은 끊기 어려워요?"

"어렵진 않아. 능력으로 이어지거나 한 게 아니라 단지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니까. 하지만 그 계약하는 과정이 결혼 과정이랑 비슷해서 잘 하지 않는 것 뿐이지."

"뭐라고요?"

결, 결혼이요?

"그래, 신고서를 작성해서 전담 신청을 하고. 전담 신청이 끝나면 증인을 하나씩 세워 서약을 읊어야 해. 그리고 서약의 증표를 나눠 끼우지. 네 반지가 그 서약의 증거란다."

그 말에 바로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바라봤다. 다행히도 왼손 검지에 끼워진 은색 반지에 안도를 했다.

"전담을 깨는 게 이혼과 비슷하다. 이런 거군요?"

"그래."

"전담할 때 엄마랑 아빠는 안 말렸어요?"

"우리에겐 일언반구 없이 너희가 진행해버렸다."

"왜, 왜지?"

"뭐, 전부 서진이가 한 일이겠지만. 네가 전담을 해지하고 싶다면 언제든지 지지해 줄 테니 너무 걱정은 말고."

... 아, 울고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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