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린 애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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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라는 남자는 태생이 이렇게 태어났다. 아무런 연관 없는 가닥들을 엮어 진실이라는 도안을 그려 추리라는 직물을 엮는 통찰력. 그가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언제나 진실의 여신이 그의 귓가에 속삭인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그 얼굴과 마주쳤을 때 셜록 홈즈는 이 사건의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

아이린 애들러. 아이리스가 쓴 소설에 나오는 멋진 여성이다. 오만한 셜록 홈즈가 인정하는 단 한명의 여자. 훗날 수많은 셜로키언들이 이르길 셜록 홈즈가 인정하는 유일한 여성. 홈즈는 그 부분을 읽으면서 아이리스에게 감탄한다. 총명한 아이리스는 홈즈가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 어떤 눈으로 보는지 자세하게 알고있었다. 그 사실에 뿌듯함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는 한편, 홈즈는 타자기로 입력한 단정한 글자들을 쓸으며 그의 사랑을 처음 만난 사건을 회상한다.

“달리 갈 곳이 없었습니다.”

쏟아지는 비를 막지도 않은 채로 흠뻑 젖어 비에 젖은 생쥐 꼴이 된 미코토바가 조용히 말했다. 사실, 아침에 사소한 언쟁을 하긴했지만 미코토바가 돌아올 것은 홈즈의 예상범위 내였다. 마음씨 착한 동양인은 이런 식으로 헤어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고향으로 향하는 배를 타기 전에 뛰어서 숨을 헐떡이며, 땀에 흠뻑 젖어서 꽤나 못봐줄 몰골로 한 손에는 배 티켓을, 한 손에는 캐리어 손잡이를 잡고 3분정도 머뭇거리다가 창문에서 그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로 베이커가 221B의 문을 두드리라고 생각했다. 오후에 이런 비가 내릴 줄도, 파트너가 이런 식의 비참한 얼굴로 문을 두드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뭐, 아무리 스코틀랜드 야드에 명성이 자자한 셜록 홈즈라도 틀리는 일은 있다. 그 점에 관해서는 전혀 유감스럽지 않았지만 중요한건 왜 미코토바가 예상보다 빠른 시각에, 예상보다 앙상한 몰골로 저런 소리를 하느냐다.

“항구 근처에 호텔을 잡은걸로 아네만.”

“아침엔 미안했습니다. 하지만 홈즈, 당신도 알잖습니까. 그건 제 뜻이 아니라는걸요.”

홈즈는 문에 기대서 미코토바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그를 안으로 안내했다. 딱히 그를 용서했다거나, 그를 이해했다거나, 비에 쫄딱 젖은 미토토바를 배려했다던가하는 다정한 이유는 아니다. 누굴 배려하고는 있지. 미코토바가 아닐 뿐. …그와 함께한 아리따운 레이디를 위한 것이다. 미코토바와 함께 베이커가 221B로 찾아온 초면의 레이디께서는 미코토바의 코트를 입고있어 비에 전혀 젖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날씨에 비깥에 세워둔다면 체온이 빨리 떨어질테다.

홈즈가 그를 안으로 안내하자 미코토바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잠깐, 파트너. 아무리 싸웠다고 하지만 내가 문전박대할거라고 생각한건가?―안으로 들어섰다. 젖은 옷을 벗지도 않은 채로 먼저 레이디를 소파로 안내한다. 아침에 싸운 파트너가 엉망인 얼굴로 급하게 모셔온 아름다운 레이디도 궁금했지만 삐진 셜록 홈즈에게 중요한건 그게 아니었다. 여전히 부루퉁한 얼굴로 미코토바를 바라보자, 미코토바는 자연스럽게 수건을 찾으며 눈을 마주치는걸 피했다.

“이건 제가 원하는게 아닙니다.”

“알지. 그래서 말했잖아. 나라면 너 한명정도라면 빼올 수 있다고. 하지만 그러지 않았지.”

“정부의 심기를 거스르긴 싫었어요.”

“나보다 더 중요한게 있는건 아니고?”

“어린 애입니까, 홈즈? 당신과 가족 중 한 명을 고르라면 당연히 가족을 골라야합니다. 그건 아버지로서 제 책임이에요.”

미코토바는 쥐어짜듯 괴로운 목소리를 냈다. 그것이 당연한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본인이 듣는 앞에서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미코토바의 다정한 성정으로서는 제법 괴로운 일임이 분명했다. 홈즈는 교활하게 그 점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지금껏 도망쳤잖나. 당신이 런던행을 결정한 그 날부터 오늘까지.”

“홈즈.”

“괴로운 일이 있었던 고향을 잊고…나와 대단한 모험을 했잖아. 런던에서 괴로운 일이 생기니 또다시 전부 두고 떠나겠다고!”

“…….”

“자네는 도망만 치는군.”

“그러는 당신은 어린 애고요.”

“자네 앞에선 평생 어리겠지.”

“…당신도 사랑을 하면 알 겁니다. 세상에는 도망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어요.”

“…….”

“버리는게 아니에요. 언젠가…언젠가 돌아올거라고 약속할게요. 지금은 책임져야할 것이 있습니다.”

홈즈는 주머니에서 파이프를 꺼내물었다. 생각에 잠긴 척 하고 싶을 때 곧잘하는 버릇으로, ‘네 발언을 생각해보겠다.’라고 온 몸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어차피 생각하는 시늉 뿐이란걸―왜냐면 파이프를 물고있기에는 홈즈의 사고속도는 너무 빨라서 저런 행동을 할 시간이 필요 없었기 때문에―홈즈 본인의 입으로 말한 적 있지만, 그런 사소한건 잊어버렸는지 종종 홈즈는 미코토바와 단 둘이 있을 때도 파이프를 물곤 했다. 미코토바가 해석하건데, 이건 설득이 절반정도 됐다는 말이다.

“딸 때문도 있지만 그것 뿐만이 아니에요.”

“겐신의 아들 때문인가?”

홈즈는 그럴 필요가 없을 때 눈치가 너무 빨랐다.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던 미코토바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겐신의 친우로서, 그의 마지막 부탁을 받은 자로서, 아소기의 아들인 카즈마를 책임질 수 있는 자는 저 뿐입니다.”

“솔직하게 말해도 되네. 미스터 아소기의 마지막 말을 듣고 끝까지 아들을 생각한 그와 달리 어머니를 잃은 채 혼자 남겨진 딸에게 못할 짓을 했다는 생각을 했겠지.”

“거기까지 꿰뚫어볼 필요는 없었습니다만.”

“자네가 너무 투명해서 그만.”

“무례하다는 말을 돌려말한 겁니다. ……하지만 당신이 맞아요. 우리는 함께 영국으로 왔지만 겐신과 저는 달랐어요. 전 아내가 떠오르는 일본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미스터 아소기의 마지막 결의를 보고 딸에게 돌아갈 결심이 섰다는 말이군.”

“네.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당신은 제 하나뿐인 파트너니까요. 제 결심이 아무리 이기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이해와 공감을 바라게 됩니다.”

“이기적이야. 하지만 이해하겠어. 여전히 우린…파트너니까. 그렇지? 자네가 바다 건너에 있더래도.”

아무리 스코틀랜드 야드에 명성이 자자한 괴짜 탐정이래도 아직 스물 남짓한 어린 애다. 너무나 뛰어난 통찰력과 그에 반해 그의 말미따마, ‘진실 앞에서는 불필요하기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공감능력 때문에 가진 친구라고는 미코토바가 유일. 가족 얘기는 전혀 하지 않고 주기적으로 만나는 인간관계라고는 부검하는 시신을 빼면, 같이 사는 미코토바가 전부. 그런 좁지만 안락한 우리 안에 살던 어린 셜록 홈즈에게 파트너의 부재란 세상이 무너지는 것과 같을테다. 미코토바는 그런 홈즈를 떠나는 것에 일종의 죄책감을 느꼈다.

홈즈는 파트너와의 이별을 통보받고 처음에는 투정부리다가, 애원하고, 죄책감을 자극하다가 이제 겨우, 이해해준다고 말한다. 관찰력이 좋지만 눈치는 나쁘고, 사건의 흐름은 읽지만 분위기를 읽지 못하는 이 천재적인 바보는 언제나 자신의 사람들에게 약했다. 그리고 이 대영제국에서 미코토바 유진이 누구보다도―스승인 왓슨 교수보다도 신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셜록 홈즈 단 한명이었다.

가장 귀중한 것을 맡겨야한다면. 아무리 무리한 부탁이라는 생각이 들지라도. 셜록 홈즈 밖에 없었다.

미코토바 유진은 수건을 내려놓고 겐신의 마지막 부탁을 건넨다.

“무리한 부탁인줄은 알겠지만 이 아이를 맡아줄 수 있겠습니까?”

“자네 아이인가?”

그가 처음 이 아이를 받았을 때 겐신에게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한다. 사소한 우연에 미코토바는 너털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남을 수 있다면 기쁘겠지만 저는 이제 이 나라를 떠납니다. 신원미상의 갓난 아이는 배에 탈 수 없겠지요.”

“좋아.”

“물론 무리한 부탁인건 알지만 …… 뭐라고요?”

“좋다고 했네만.”

“진심입니까? 그냥 화분을 하나 주워다 키우는게 아니에요. 갓난 아이입니다. 이렇게 작아도 사람이에요. 조금은 진지하게 고민해주지 않겠어요?”

셜록 홈즈는 사냥모자 끝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이런 날씨에, 아침엔 싸워놓고 베이커가까지 단숨에 달려온 이유가 이 레이디 때문이라는 것은 진즉 눈치챘네. 어디에서 만난 인연이라도 갓난 아이를 그냥 두고 갈 성정도 아니고, 자네는 곧 영국을 떠나지. 간단한 결론이지 않나? 자네를 문 안으로 들인 순간부터, 셜록 홈즈가 그 아이를 맡겠다…그렇게 결정된걸세.”

“홈즈…….”

“그만큼 자네를 믿으니까.”

“이 아이는……. 겐신의 마지막 부탁입니다.”

“미스터 아소기의?”

“마지막으로 면회를 갔을 때, 처음보는 곳의 주소를 주며 말했습니다. 그곳에 고귀한 신분의 부인이 만삭의 상태로 있다…부디 그를 부탁한다고.”

“하지만 자네는 단 한명의 레이디만 모셔왔지.”

“……부인은 손 쓸 방도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겐신의 마지막 부탁을 꼭 들어주고 싶었어요. 이 아이가 대영제국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서 자랐으면 했습니다……. 하지만 전 이 아이의 부모님도, 성도, 이름도, 아무것도 몰라요. 오직 아는 것은 고귀한 신분이라는 것과, 겐신과 관련있다는 점. 그리고 B로 시작하는 성이라는 것 뿐입니다.”

“B?”

홈즈의 관자놀이에 차갑고 기묘한 감각이 스쳐지나간다. 미코토바는 뛰어난 조수이자 파트너였지만 탐정은 아니다. 그는 뭔가를 놓치고 있다.

“네. 겐신이 준 주소에는 작은 오두막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만삭의 부인과 B라는 음각이 새겨진 궤짝 밖에 없었습니다. …가치가 상당해보였습니다. 아마 가문의 궤짝이겠지요.”

B.

만삭의 부인.

아소기 겐신.

“젠장.”

그 작은 실오라기가 보여준 진실이라는 직물은 그 셜록 홈즈에게도 충격적이었다.

“홈즈?”

“젠장, 파트너……이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되네.”

“네?”

어디가서 사형수의 마지막 부탁으로 만삭의 부인에게서 아이를 받아왔다고 말하나?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지만. 파트너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셜록 홈즈는 손톱을 잘근 물어뜯고는 방을 빙글빙글 돌아다녔다.

“왜 지금껏 알아채지 못했지? 너무 바보같아서 한숨도 안나오는군.”

“뭐, 뭐가 말입니까. 홈즈?”

프로페서 말이야!”

갑자기? 물론 겐신이 그런 누명―그의 친우인 미코토바는 고결한 겐신이 절대로 그럴 리 없다고, 그가 사형당한 지금도 믿고있다.―을 쓰고 죽긴했지만……미코토바는 눈을 꿈벅였다.

“유학생 신분인 아소기 겐신이 고귀한 신분의 부인을 어디서 만났을 것 같나?”

“모, 모르겠는데요.”

“바꿔서 묻지. 아소기 겐신이 고귀한 신분의 사람을 어디서 만났을 것 같나?”

평범한 유학생인 아소기 겐신은 영국 귀족들과 연이 없었다. 있어봐야 스코틀랜드 야드 사람들이나, 그러고보니 유독 친하게 지내던 검사 중……. 반직스 경. 분명 고귀한 신분이다. 이 사건의 피해자이긴 하지만. 그리고 겐신을 범인으로 지목한 그 피해자다.

“친하게 지내던 반직스 경을 통해서라면요.”

“자네는 분명 영국 귀족들의 이름 따위는 모르겠지."

“네, 네에.”

“참고로 말해주지. 그 궤짝은 부인의 가문 물건일걸세. 고귀한 신분의, 사연있는 부인이 혼자 오두막에서 아이를 낳는다면 분명 아버지가 특정될만한 물건은 가지고 가지 않겠지.”

“아이의 어머니가, B로 시작하는 가문….”

“뭐, 그정도만 기억해두게.”

그야, 미코토바가 런던 귀족들의 성까지 외울 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셜록 홈즈는 달랐다. 영국 귀족들의 성과 그들의 문화. 사건 관계자들과 그 가족들. 사건 양상. 종결.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단서들을 엮어내면 답은 하나였다.

B.

바스커빌.

클림트 반직스의 아내…….

아소기 겐신이 어떻게 반직스 부인이 어디에있는지 알았을까? 답은 하나. 클림트 반직스가 알려줬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세간에서 말하는 것처럼 무자비한 살인마와 그 희생자 사이는 아니었을테다.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비밀, 그의 부인과 자식을 맡긴 사이가 되버린다.

미코토바가 말했던 깨끗한 식도.

아소기 겐신의 커다란 반지.

변경된 담당 검사…….

심증 뿐이지만 셜록 홈즈는 100% 확신한다. 증거가 조작되었다……. 하지만 겐신은 분명 그 입으로 고귀한 사람을 죽였다 말하고 사형을 받았다.

다르게 생각하면 어떨까.

생각을 역전시켜보는거야.

‘왜 겐신이 결백을 주장하지 않았냐’가 아니라 ‘결백을 주장하지 않아도 되는, 결백을 주장할 수 없는 이유’를.

고귀한 사람을 살해했다.

클림트 반직스.

사형.

유언.

되살아난 무덤의 프로페서.

총소리.

부검의.

왓슨. 코트니. 유진. 귀국. 일본. 아버지. 자식. 사랑.

아소기……카즈마.

겐신에게는 죽을 수 없는 이유―아소기 카즈마가 존재했다. 그럼에도 그는 죄를 인정한다. 이상하지. 프로페서의 피해자들은 부패한 귀족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는 고귀한 사람을 죽였다 말한다. 추측하건데 겐신의 고결한 성격을 미루어보아 엄중한 법의 증언대 위에서 거짓말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실제로 고귀한 누군가를 죽였다. 그렇다면 마지막 피해자에서 갑자기 변한 살해방법도 설명된다. 아소기 겐신은 클림트 반직스를 죽였다. 하지만 그는 프로페서가 아니다.

그렇다면 프로페서는 누구인가? 사냥개를 이용한 살해방법. 어떤 귀족이든 가능하다. 아니, 오히려 귀족만이 사냥개를 훈련시킬 여건이 된다. 게다가 아소기 겐신을 끝으로 프로페서의 살인은 끝이 났다. 그렇다면 프로페서는……. 설마.

하지만 프로페서의 세번째 피해자는 그 남자의 은사다. 혹시, 배후가 더 있을까? 두번의 사냥 이후 갑자기 변한 피해자의 양상……. 겐신에게 ‘사법 거래’가 가능할만한 비장의 카드……. 프로페서에게는 비밀이 있었고 그걸 죽기 직전 겐신에게 알렸다면?

그렇다면 겐신에게 아이를 맡긴 것도 이해가 간다. 게다가 이 사실을 겐신이 알고있었다면 영국 법정을 대상으로 ‘사법 거래’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바로크 반직스는 아니다. 존경하는 형을 잃은 사람이니까. 상대는 그 전에 증거 조작이 가능한데다 세번째 피해자 사후 수석 판사 자리를 얻게 된 그 남자……. 프로페서의 전 담당 검사.

사형을 꾸며내고 나면…그 이상한 신문기사. 죽은 자의 부활과 총소리. 그리고 겐신은 실제로 죽었다. 마지막에 ‘배신당했다’ 혹은 ‘배신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이 꼬마 아가씨가 무사히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수많은 비밀들이 얽히고 수놓아져 하나의 큰 그림이 완성된다. 셜록 홈즈의 머리 속에 빛나는 단 하나의 문장이 남는다. 불가능한 것을 전부 제외하면 남는 것은 아무리 말도 안된다고 해도 진실…….

이 아이는……세기의 살인마의 딸이야.

그리고 오늘부터는 내 딸이다.

“홈즈?”

답지않게 깊게 생각에 빠져있자 미코토바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홈즈는 고개를 저으며 상념을 털어내고는 여느 때처럼 미소를 지었다. 증거가 없다. 그리고 힘이, 부족하다. 일개 탐정에게는 진실을 알더라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럼 오늘부터 내 딸인 이 아가씨……세번째 아버지가 이름을 지어주겠어?”

“네?”

“친아버지, 겐신, 자네, 나까지. 총 네 명의 아버지가 이 아이를 지키려고 하지 않았나. 기념비적인 현장일세! 첫번째도, 마지막도 아닌 기간한정 아버지였던 자네에게 이름을 지을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영광이지 않나.”

“그, 그렇게 말해도.”

“내가 짓는다면 아이린이라 짓겠어.”

“그건 당신이 여장할 때 쓰는 이름이잖아요?! 절대로 안됩니다!”

“자아, 그럼 자네가 정해주게나.”

미코토바는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아이리스…….”

“아이리스. 좋은 이름이군.”

“…제 아내의 이름을 영국식으로 읽은 것입니다.”

생판 모르는 기간한정 딸에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지어주다니, 미코토바도 감성적인 구석이 있었다.

“좋아, 아이리스. 너는 오늘부터 내 딸이야. 아빠라고 불러보렴, 아빠!”

“갓난 아이는 ‘아빠’같은 소리는 못합니다. 홈즈. 당신에게 맡기긴했지만, 아빠가 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부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 걱정 말게. 내가 누군가? 그 셜록 홈즈라고. 이 아이는 세계 최고의 아빠를 갖게 된 걸세.”

어린 아이리스는 홈즈의 말을 들었는지 포대기에서 고개를 살짝 홈즈 쪽으로 기울였다. 홈즈는 아이를 조심히 안아올렸다. 손에 들린 아이는 작고 연약하다. 눈도 뜨지 못한 채로 조용히 새근새근 자고있을 뿐이다. 미코토바는 쓰고있는 중절모를 살짝 내리면서 아이를 안고있는 홈즈에게서 눈을 피한다. 아마 아이와 홈즈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겠지, 셜록 홈즈는 그런 파트너에게 활짝 웃어보인다.

“이 아이가 내게 사랑을 가르쳐주겠지?”

“그러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나는 세계 최고의 딸을 얻은 셈이군. 더이상 미안해하지 말게.”

홈즈는 아이리스에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이제부터 우린 가족이란다. 내가 아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네 지붕이 되어줄거고, 너는 내게 사랑이 뭔지 가르쳐주겠지. 삶은 이제부터 완전히 달라질 것이고, 우리는 운명이라는 춤에 함께 스텝을 밟아야하는 사이가 된거야. 홈즈는 아이와 춤을 추듯 한바퀴 빙글 돌았다. 미코토바는 기절할 듯이 화들짝 놀랐지만 홈즈는 개의치않고 즐겁게 웃는다.

“홈즈!”

“됐어, 소리치지 말게. 난 지금 최고의 파트너를 잃고 첫사랑을 얻었으니까 말이야, 오늘 하루정도는 마음껏 울고싶다고.”

그렇게 홈즈는 깔깔 웃으며 아이를 잡고 집안을 뛰어다녔다. 미코토바는 홈즈가 아이를 떨어트릴까봐 불안해하며 홈즈를 쫓아다녔고, 홈즈는 시끄럽게 웃으면서 소파와 테이블을 넘나든다. 두사람은 그렇게 밤새도록 술래잡기를 하며 영국에서 얼마 남지 않은 밤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아이리스는, 그의 바람대로 그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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