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점의 나폴레옹 상.

. by .
32
9
0

셜록 홈즈는 이상한 사람이다.

그 사실은 그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변하지 않았지만, 가끔은, 아주 가끔은 그의 유일한 파트너인 미코토바 유진의 눈으로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있었다. 아침마다 바이올린을 켜대는 것도, 집에서 허가받지 않은 약물로 실험을 하는 것도, 형사들 앞에서 즐겁다는 듯이 논리와 추리의 실험극장을 펼치는 것도 이제는 익숙하다. 하지만 대학에서 밤을 새고 돌아왔더니 테이블 위에 1:1사이즈 셜록 홈즈 흉상이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미코토바는 너무 피곤해서 헛것을 보는건지 눈을 비볐다가, 볼을 탁탁 쳤다가, 자신만만하고 기묘하게 웃고있는 셜록 홈즈 흉상을 쿡 눌러봤다.

“아야.”

셜록 홈즈 흉상이 소리냈다. 이젠 진짜로 미친거군. 미코토바는 이건 너무 피곤해서 보는 환상이라고 생각하여 몸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기다리게, 파트너! 나야, 나라고. 셜록 홈즈!”

흉상이 테이블 째로 벌떡 일어났다. 테이블 아래에는 익숙한 두 발이 보인다. 그러니까 미친 쪽은 유진이 아니라 이 남자 쪽이라는 말이다.

“왜…흉상 흉내를 내고 있습니까? 아니, 그것보다, 어떻게 한겁니까?”

그야 누가봐도 석고상이었다. 석고 셜록 홈즈는 몸을 열심히 비틀어 테이블에서 벗어났다. 테이블에는 딱 홈즈가 들어갈만한 구멍이 뚫려있다. 저거, 어제 산거 아닌가? 그것도 내가.

“감쪽 같았지? 언젠가 흉상으로 데뷔할지도 모르겠군.”

“흉상만 데뷔하지 말고, 이왕이면 전신으로 데뷔하시지요. 그러면 내 테이블에 구멍을 낼 필요도 없을테니.”

“테이블은 미안하게 되었어. 아무리 진짜 같은 석고 피부를 연기해도 바닥을 더럽히는건 사양하고 싶었거든.”

셜록 홈즈는 그리 말하며 피부에 치덕치덕 붙인 하얀 덩어리들을 떼어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피부에 좋을 것 같지 않다. 옷과 머리카락에 붙은 덩어리들은 잘 떼지지 않아 미코토바가 마무리 정리를 해주어야만 했다. 당연하게도, 바닥은 엉망이 되었고 셜록 홈즈는 울상을 지으며 욕실에서 나머지 덩어리를 떼어내기로 했다.

한시간이 넘는 사투 끝에 머리카락에 엉겨붙은 덩어리들을 모두 떼어낸 홈즈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빈 파이프를 물었다. 미코토바는 밤샌 연구로 온몸이 피곤했지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면 밤샘보다 더 성가신 명탐정이 토라질 것이 분명하여 잠시 누워있던 소파에서 억지로 몸을 일으켜 셜록 홈즈를 마주봤다.

“그래서 무슨 일입니까?”

“잠입 수사의 일환으로 발명한 석고 분장 덩어리지. 감쪽 같았지? 단점이라면 이렇게 뒷처리가 번거롭다는 것이네만.”

“…그게 중요한게 아닐텐데요.”

“테이블까지 세트인 점? 하지만 전신이 석고라면 몰래 움직일 때 티가 나잖아.”

“그보다도 중요한게….”

“테이블에 구멍냈다고 그러는거야? 보기보다 속이 좁군, 미코토바.”

“그건 어제 산 테이블이었잖아요! 그것보다, 아무리 생각해도 홈즈 사이즈의 흉상이 보란듯이 있다면 잠입이고 뭐고 너무 수상하잖습니까!”

홈즈는 검지 손가락을 반짝 치켜들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전혀 수상하지 않아! 왜냐면, 셜록 홈즈 흉상 같은건 런던 어디서나 볼 수 있으니까!”

“이건 또 무슨 소리죠.”

“내 흉상의 주문 제작을 시작했거든. 그 셜록 홈즈의 흉상이니 분명 런던에서 대인기를 끌거야! 광고 효과를 위해 여섯 개정도 샘플을 만들어서 지인들에게 선물했네.”

“아하.”

…이성이 사고를 따라가기 힘들다. 미코토바는 홈즈의 흉상이 단 한 개도 팔리지 않을거라 생각하며 이해하는 척 짐짓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홈즈는 명…탐정이긴 했지만 그정도로 많이 알려진 편은 아니었다. 경찰이라면 언제나 사건현장에서 기묘한 행동을 하는 그를 잘 알겠지만 런던 시민들은 탐정은 남편의 외도를 감시한다던지,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는 직업라고 생각했다. 홈즈는 손가락을 까딱이며 미코토바에게 웃는다.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그렇습니까?”

“자네 몫의 샘플이 없어서 서운한거지?! 걱정말게, 자네 방에 배달해뒀네!”

“제 방에요?”

미코토바는 벌떡 일어나 자신의 방 문을 연다. 그야말로 악몽과도 같은 광경이었다. 좁고 어두운 방 안에 창문에 부서지는 희미한 빛, 그리고 그 빛을 받아 형형하게 빛나는 1:1 사이즈 셜록 홈즈 흉상……. 꿈에 나올 것 같다. 미코토바는 금단의 상자를 연 것처럼 스르륵 문을 다시 닫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파트너에게 내 흉상을 주지 않았을거라 생각하다니 날 너무 얕보는군.”

“네. 당신을 얕봤네요.”

이대로라면 오늘 밤은 침대 옆에서 홈즈 흉상이 그를 지켜보는 채로 자야한다……. 미코토바는 애써 웃으며 오늘 밤은 소파에서 자기로 결심했다.

그 흉상 사건 이후로 미코토바는 소파에서 자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그야 허리도 아프고 가끔은 춥기도 했지만 아무리 용기를 내도 셜록 홈즈 흉상이 바라보는 침대에서 잘 각오는 나지 않았다. 아침마다 바이올린 소리에 깨고, 밤마다 이상한 실험기구 소리에 깨긴 했지만, 슬슬 적응이 되어가고 있었다. 몇번은 흉상을 공동생활구역으로 옮겼었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되면 말끔하게, 기분탓인지 좀 더 침대 쪽으로, 원래 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그에 대해 물으면 그의 파트너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자네가 내 흉상을 깜박한 것 같아서 돌려놨네!”라고 상큼한 대답을 하는 것이다. 자고 일어났는데 분명 방 밖으로 빼뒀던 플랫 메이트의 흉상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면 대단히 곤란하다. 언젠가 심장마비가 올 지도 모른다. 유진은 잠자코 이불을 들고 소파로 피신했다.

미코토바가 소파에서 자는 것이 익숙해졌을 어느 날에, 셜록 홈즈는 새벽같이 일어나 소파에서 자고있는 미코토바를 흔들어 깨웠다. 잠기운이 아직 다 가시지 않은 채로 유진은 멍하게 눈을 비볐고, 홈즈는 외출복으로 깔끔하게 갈아입은 모습으로 소파 앞에 서서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건이네, 미코토바! 거물 살인 사건이야! 당장 가봐야하니 나갈 채비를 마치게.”

세상에 살인사건을 저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던가? 홈즈가 그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쨌든 사건이라는 말에 미코토바는 느린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홈즈는 아직 씻지도 않은 그에게 양복과 모자를 던지면서 유진을 재촉했다. 빨리, 빨리! 한시가 급하네! 유진은 속으로 입으로 비죽 내밀었다. 이미 죽은 사람이 잠깐 새 발이 달려 도망가기라도 한단말인가, 아니면 급한 응급조치가 필요하단 말인가. 대체 왜 자신을 그렇게 재촉하는지 모르는 채로 유진은 서둘러 나갈 채비를 마쳤다. 소파에서 자서 그런지 온 몸이 뻐근하고 눈꺼풀이 감겼지만 사건현장에 홈즈를 혼자 보내는 상상을 하면 오던 잠도 달아났기 때문에, 그는 어떻게든 나갈 채비를 마칠 수 있었다.

새벽 아침의 런던은 어둑어둑하고 희뿌연 안개로 가득했다. 멀리서 깜박이는 가로등이 유일한 빛으로, 마부는 용케도 목적지까지 그들을 빠르고 안전하게 안내해주었다. 미코토바는 익숙한 건물의 전경에 아연실색했다. 여긴…스코틀랜드 야드가 아닌가! 홈즈는 한치도 망설이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런던 최고의 형사들의 집결지에서 살인사건? 예삿 일이 아니다. 그렇게 긴장하며 홈즈의 뒤를 따르는 미코토바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하지만…상대가 셜록 홈즈라는걸 미코토바가 잠깐 잊은 모양이다.

“그러니까.”

그들을 의아하게 쳐다보는 형사들을 지나 야드의 깊숙한 복도 끝, 증거품 보관소에 도착한 미코토바 유진과 셜록 홈즈는 신경질적으로 피쉬앤칩스를 집어먹는 토비아스 그렉슨과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면서 미코토바를 맞이하는 겐신을 마주한다. 그리고 평소와 달리 어지럽혀진 증거품 보관소 문 앞에 처참하게 부서진 흰 조각들을 쳐다본다.

“당신이 말한 살인사건이라는게 이 흉상 말하는건가요.”

미코토바는 아연실색하여 셜록 홈즈를 쳐다봤다. 파이프를 물고 태연하게 모자 챙을 잡은 명탐정은 돌연 미코토바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말한다.

“그야! 런던 최고의 명탐정의 흉상이! 런던 제일의 형사들이 애지중지하는! 증거품 보관소에서 부서졌는데! 대사건이 아니고서야 뭐겠나?”

“거물 살인사건이라더니, 거물이 본인이었을줄이야…….”

미코토바가 눈썹을 찌푸리며 이마를 짚자 옆에서 소란을 지켜보던 겐신이 너털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자네 친구 말이 맞네. 런던 제일의 형사들이 지키던 증거품 보관소에서 물건이 파손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누가 어떻게 침입했는지, 어째서 석고상을 부수고 도망간 것인지 우린 알아야하네.”

“그래서 런던 최고의 명탐정이 왔지! 그의 파트너와 함께 말이야.”

여긴 유진이 봐야할 시체도 돌봐야할 피해자도 없다. 왜 여기까지 새벽같이 온 것인지 의문이 들었지만―셜록 홈즈의 눈빛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그런가, 셜록 홈즈는 아무리 간단한 사건이라도 혼자서 휘리릭 풀 생각이 없었다. 그가 말했듯, 그의 파트너와 함께 진실이라는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논리와 추리의 실험극장》의 차례였다. 미코토바는 셜록 홈즈만큼 번뜩이는 관찰력이나 명석한 추리력은 없었지만 셜록 홈즈보다 더 나은 점이 있었다. 몇번이고 홈즈의 추리에 어울려주는 인내심이다.

“먼저 범인의 동기를 알아볼까, 범인은 굳이 야드의 깊숙한 증거품 보관소까지 쳐들어와서 석고상을 부쉈다. 그리고 다른 증거품은 하나도 사라지지 않았어. 그럼 범인의 목적은 석고상 그 자체였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군.”

!

“하지만 왜? 석고상을 부술 필요가 있었을까? 그 이유는…바로 저 셜록 홈즈 흉상이 말해주고 있네!”

?

“당신 흉상요?”

“미코토바, 흉상을 옮겨본 적이 있나?”

그야 보름동안, 몇번이나 옮겼다. 보통 무게가 아니었기 때문에 끙끙대며 옮겼지만 다음날 아침이 되면 깔끔하게 방으로 돌아와있었다.

“네. 무거웠죠.”

“석고란건 보통 무게가 아니네. 혼자서 들기도 힘들고 옮기기도 힘들지. 그런데 범인은 굳이 남들 눈에 띄지 않는 야심한 밤에 몰래 들어와 흉상을 부쉈다. 이건 흉상에 불만이라도 있지 않는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이네!”

“흉상에 무슨 불만?”

토비아스가 입을 비죽 내밀고 말하자 홈즈는 손가락을 좌우로 까딱였다.

“흉상이 아니라 나에 대한 불만이네! 감히 셜록 홈즈에게 화풀이 할 수 없으니 이 흉상을 부수면서 화를 달랜거겠지.”

“그러고보니 이 흉상은 왜 증거품 보관소에 있는겁니까?”

미코토바가 의아하게 묻자 그 질문에는 분노에 차서 피쉬앤칩스를 먹는 토비아스가 아니라 겐신이 답해주었다.

“보름정도 전에 저 탐정이 ‘지인에게만 주는 특별한 선물이다’라며 야드로 흉상을 보내와서…어디에 둘 지 곤란해하고 있던 참에 그대로 로비에 두기 흉해서…그리고 이상한 소문도 나서, 잘 찾지않는 증거품 보관소 구석에 넣어뒀다고 들었다.”

“내 선의를! 그런식으로!”

“분명 광고 효과가 있을거라던지 그런 사족을 붙였겠지요.”

“어쨌든 형사도 아니고 탐정의 얼굴을 한 흉상을 둔다면 재수가 옴 붙을 것 같다고 여러 형사들이 말해서…….”

“그게 무슨 무례한 소리지!?”

“홈즈가 사건을 해결하면 야드의 자존심에 흠집이 나는건 사실이니…….”

“그래서, 증거품 보관소 구석으로 옮겼는데 오늘 아침에 증거품 보관소 문을 열었더니 이런 모습이었다고.”

“사건의 제 1발견자인 경관은?”

“지금은 자리에 없네. 바쁜 시기라서.”

바쁜 시기? 미코토바가 의아해하며 겐신을 쳐다보자 겐신이 친절하게도 대신 답해주었다.

“보르지니아에서 화친의 의미로 빌려준 보르지니아의 흑진주가 도난 당했네. 런던 국립박물관에서 야드의 보호 하에 있었는데, 한달 전에 감쪽같이 사라졌거든.”

“겐신!”

토비아스가 화를 내며 겐신을 노려봤다. 그정도 사건이면 신문에 크게 났을 법도 한데, 매일 신문을 사는 미코토바가 모를 정도라면 아직 외부에 유출하면 곤란한 정보일테다. 홈즈는 왜인지 전혀 놀라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미 알고 있던 모양이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수사관은 흑진주의 행방을 쫓고있어.”

그렇다면 이상해지는 상황이 있다. 유진이 세사람을 둘러보자 홈즈는 그의 의문을 알아차렸는지 파이프를 물고 활짝 웃었다.

“토비아스 그렉슨 형사와 아소기 겐신 유학생은 살인사건을 쫓고있다네.”

“그, 그걸 어떻게?”

토비아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자네가 말했냐는 듯이 아소기를 쳐다보았지만, 겐신도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흑진주가 도난당한 중요한 시기에 두 사람은 왜 증거품 보관실에서 탐정의 흉상이 깨진 하잘것없는 사건을 쫓는 것인가. 셜록 홈즈는 눈썹을 살짝 모았다.

“자네 방금 내 흉상을 부순 사건이 가벼운 사건이라고 생각했지.”

“적어도 형사 두명이 시간을 쏟을만한 사건은 아닌 것 같아서요.”

“이 흉상이 만들어진 시기는 한달정도 전으로 흑진주 도난사건과 일치하네. 한달정도 전에 경관이 살해당한 사건을 기억하나?”

“네. 기억합니다.”

겔더 상회라고 하는 런던 구석에 있는 어떤 상회에서 지금과 같은 새벽녘에 칼에 찔린 싸늘한 경관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는 한동안 화제가 됐었다. 중요한건 흉기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상회의 주인장인 겔더가 주요 피의자로 떠올랐지만 마땅한 증거가 없어 체포되지 않았다.

“죽은 피해자…피터 경관은 당시 보르지니아 흑진주의 경비를 맡은 경관 중 하나였어. 그의 다음 차례 경관이 피터와 흑진주가 모두 사라졌다는걸 발견했지.”

“아…!”

“모두가 피터가 그 흑진주를 훔쳤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를 죽인 범인에게 흑진주를 빼앗겼다…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토비아스는 묵묵히 모자챙을 내렸다. 겐신도 팔짱을 끼고 가만히 흉상의 파편조각을 바라봤다. 한달 전에 일어난 흉기 없는 살인사건, 보름 후에 완성된 여섯 점의 셜록 홈즈 조각상. 그리고 사라진 보르지니아의 흑진주. 언뜻보면 상관없는 사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당연히 상회의 주인인 겔더가 용의선상에 올랐는데, 그는 피터와는 접점이 없다고 말했네. 피터가 어째서 사망추정 시각인 이른 새벽에 상회에 갔는지는 아무도 몰라. 그 상회를 쥐 잡듯이 뒤졌지만 흑진주는 커녕 보석 비슷한 것도 나오지 않았어. 그리고 흉기도.”

“형사님과 겐신은 흉상이 부서진 사건이 살인사건과 관계가 있다고 말하는겁니까?”

“확신은 들지 않네. 하지만 이 사건과 관련된 작은 단서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을 뿐이야. 어쨌든 야드의 형사가 국보급 물건을 흠쳤다는건 야드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네. 피터가 훔쳤다면 야드의 자존심을 걸고 흑진주를 찾아야하고, 누가 피터를 죽이고 흑진주를 훔쳤는지 알아야하네.”

“하지만 벌써 한달이나 지났다는 건… 그럴듯한 단서가 없다는 말이군요.”

“목격자는 커녕 흉기조차 찾지 못한 사건이야. 쉽게 해결될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어.”

셜록 홈즈는 모자 챙을 잡고 상큼하게 웃었다. 바닥에 떨어진 하얀 조각을 하나 집어들더니, 세 사람에게 의기양양하게 내밀었다. 그 흰 조각에는 어째서인지 GEL이라고 음각이 새겨져있었다. 그리고 흐린 흔적이 있다. 오래된…얼룩? 무슨 얼룩이지?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범인은 하나의 단서를 남겼다. 바로 셜록 홈즈 흉상이지. 그는 내게 아주 강한 적의를 갖고있는 사람인게 분명해. 이곳까지 찾아와서 흉상을 부쉈을 정도니까.”

그리 말하며 홈즈는 장난기 넘치는 눈으로 미코토바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미코토바가 리듬에 맞춰 춤을 출 차례였다. 셜록 홈즈가 바라는대로.

“아니오, 홈즈. 그는 당신에게 적의를 갖고있지 않습니다. 그가 찾는건……흉상, 그 자체입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파트너?”

“애초에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것보다 더 단순하고 확실한 상황 증거가 있습니다. 당신이 내민 그 조각에 새겨진 글자… GEL……GELDER, 즉 겔더가 아닙니까? 당신이 흉상 주문 제작을 맡긴 상회는 겔더 상회였던 거지요.”

“정확하네.”

홈즈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렇다면 경관이 살해당한 그 날, 상회에는 제작 중인 셜록 홈즈 흉상이라는 목격자가 존재했다…….”

“잠깐, 잠깐, 자네는 흉상에게 목격 증언이라도 들을 생각인가?”

토비아스가 성급하게 그를 막아서며 피쉬앤칩스를 우걱우걱 집어먹었다. 미토코바는 깊이 생각에 잠겼다.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만 흉상에게는 말할 수 있는 성대도, 입도 없다……. 하지만 홈즈는 분명 이 흉상과 살인사건을 엮으려 한다. 그렇다면 명탐정은 보았지만 미코토바는 보지 못한 어떤 점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럴 때는 발상을 역전시켜보는거야.

왜 흉상을 부쉈느냐가 아니라… 흉샹을 부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미코토바가 허리를 숙여 하얀 석고 조각을 든다. 차갑고, 매끈하다. 그리고 조각조각난 홈즈의 얼굴은 반은 천장을 보고있고 반은 문을 바라보고 있다. 흉상은 높은 곳에서 떨어뜨린 듯 했다. 예를 들면 저 선반 같은…홈즈 흉상이 들어가기 딱 좋은 자리다. 저 위치에서 떨어뜨린다면 이런 모습이겠지. 그게 실제 홈즈가 아니라는 점이 다행이었다. 그러고보니, 흉상을 처음 본 날, 홈즈는 지점토였는지 뭔지 모를 것으로 흉상으로 변장해있었다. 그 흉상 안에는 홈즈가 들어있었다. 일반적인 흉상 안에는……아무것도 없다.

일반적인 흉상이라면.

“흉상에게 목격증언이……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뭐라고!?”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곳에 있었던 여섯 점의 셜록 홈즈 조각상이라면 가능합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 흉상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볼 셈인가?”

“그게 아닙니다, 그렉슨 형사.”

홈즈가 손가락을 좌우로 까딱였다. 겐신은 한쪽 눈썹을 치켜뜨며 의아한 눈으로 바라본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눈 앞의 진실 뿐이네.”

“지금 부서진 흉상 말고는 무슨 진실이 있다는건가.”

“바로 그거야! 범인의 목적은 셜록 홈즈 흉상을 부수는 것! 그것이 단 하나의 단서라네. 그렇다면 그는 왜 흉상을 부수려고 했을까?”

이번에는 미코토바가 말할 차례였다.

“흉상이 중요한게 아니라, 흉상 그 안에 단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흉상의 안?”

“한달 전, 제작 중인 셜록 홈즈 흉상이라면 이렇게 딱딱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굳기 전의 석고라면 그 안에 무언가 넣는 것 정도는 가능합니다.”

“중요한 무언가를 굳기 전 석고 안에 넣었다… 그렇게 주장할 셈이라면 대체 뭘 넣었다는 말인가?”

“그건, 바로……보르지니아 흑진주지요!”

셜록 홈즈가 춤을 추며 둘 사이를 끼어든다.

“숨길만큼 중요한 것, 흑진주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그, 그런가?”

“범인은 분명 피터 경관을 살해하고 흑진주를 제 흉상 안에 숨기고 달아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굳이 야드의 증거품 보관실로 찾아와 흉상을 부술 이유가 생기지요. 진주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그런가? 언뜻 들으면 그럴듯한 말이지만 한가지, 걸리는 일이 있다. 바로 홈즈의 눈빛이다. 마치 다음 스텝을 기다리는 것처럼 미코토바를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다. 저 눈빛을 마주보며 ‘바로 그렇습니다.’라고 말할 자신은 없다. 다시 생각하자! 분명 자신이 놓친 것이 있을 것이다!

“……범인은 어제 증거품 보관소에 몰래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저 선반 위에 올려져있던 흉상을 떨어뜨려 부숴버렸지요.”

“그렇지.”

“하지만 안에 정말로 그렇게나 귀중한 진주가 들어있다면…! 저라면 그렇게 무식한 방법으로 찾지 않습니다!”

겐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낀 반지를 돌렸다.

“진주는 충격에 매우 약해. 저런 식으로 부순다면 진주는 박살이 났을거야.”

“그렇지만 범인은 흉상을 무자비하게 부숴버렸네!”

셜록 홈즈가 미코토바에게 웃으며 얼굴을 들이댔다. 여기까지의 추리는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진주가 들어있지 않다면 뭐가 있지? 석고상에 넣어서라도 그 장소에서 없애야할 것. 다시 찾아야할 정도로 귀중한 것. 하지만 흠집이 생겨도 상관 없는 것.

“범인이 석고상 안에 숨긴 것은……사라진 흉기입니다!”

“!”

“그래서 어디에서도 흉기를 찾을 수 없던 겁니다. 흉상 안에 잠들어서……등장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기 때문에!”

“훌륭하네, 파트너.”

홈즈는 모자챙을 빙 돌렸다. 겐신은 눈 앞에서 펼쳐진 추리극이 썩 즐거웠는지 만면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반면 토비아스는 신경질적으로 피쉬앤칩스를 씹으며 성냈다.

“그래서 야심한 밤에 야드로 들어와 흉기를 가로챘다는 것인가?! 그럼 우린 야드 한가운데서 증거품과 범인 둘 다 놓친 셈이야!”

“나는 아직 그렇게 말하지 않았네, 형사.”

“방금 자네와 자네 파트너 입으로 말했을텐데? 범인이 증거품 보관소로 온 이유는 석고상 안에 숨긴 흉기를 찾기 위해서…그렇다면 어젯밤 흉상이 부숴졌을 때 흉기를 갖고 나갔을거야!”

“내 말을 기억하지 못하나? 흉상은 총 여섯 점. 사건 시간은 야심한 밤. 상회에 불이 켜졌다면 누군가 분명 눈치챘을테니 그 불꺼진 상회에서 어떤 석고에 흉기를 넣었는지 기억하는건 불가능하네. ……자신이 조각상을 직접 만드는게 아니라면!”

“!”

“하지만 그 한달동안 상회는 경찰의 조사와 감시 하에 있었어. 감히 꺼낼 생각은 하지 못했겠지…그대로 여섯 점의 셜록 홈즈는 상회를 떠났네. ”

“그 와중에 한 점은 스코틀랜드 야드로 전달되었다……. 그것도 흉기가 든 석고상이!”

“그렇다면 초조할만도 하겠지요. 아무리 석고상 안에 안전하게 넣었다고 해도 흉기가 든 석고상이 야드에서 보관된다고 한다면.”

“당장 수배서를! 겔더 상회의 겔더를 찾아라!”

토비아스는 사무실로 뛰쳐나갔다. 그에 반해 겐신은 자리를 조용히 지켰다. 홈즈는 눈을 부드럽게 휘며 웃었다.

“자네는 안가나?”

“갈 필요가 없지. 그렉슨 형사가 갔거니와, 방금 자네의 추리…아무런 증거도 없는 억측이 다 잖나.”

그건 그랬다. 어떠한 관찰과 증거를 기반으로 한 추리가 아니라 상황과 추측으로 완성된 추리다. 얼마든지 다른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 미코토바가 생각에 잠기자 홈즈는 눈을 감고 모자 챙을 한번 튕겼다.

“맞아. 그렇다면…증거를 찾아온다면?”

“뭐라고?”

“조각상을 전달하는 마차 안에서…나는 홍차를 마시는 중이었거든.”

마차 안에서? 미코토바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홈즈답다면 홈즈답지만, 달리는 마차 안에서 홍차를 마시는 것은 매우 어려웠을거다. 미코토바의 짐작대로였는지, 홈즈가 두 손을 펼치며 상큼하게 웃었다.

“그런데 마차 안에서 홍차를 쏟아버렸지 않은가.”

“…….”

“그래서…예정을 변경해서, 홍차 얼룩이 묻은 쪽을 야드에 줘버리자, 그렇게 생각했다네.”

아까 조각에 묻은 얼룩은 홍차 얼룩이었나……. 미코토바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한가지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그 말은, 마차 안에서 조각상 바꿔치기가 발생했다는 말이다……!!

“흉기가 든 조각상은…누구에게?”

“그게, 우연히도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뒀네.”

홈즈는 미코토바를 향해 눈을 찡긋였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야드의 증거품 보관실……보다? 그러다가 미코토바는 어째서 셜록 홈즈가 자신을 향해 눈짓을 보냈는지 깨달았다. 매일매일, 봤잖은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바로 셜록 홈즈의 눈 앞에.

제 방에 있는 조각상…….

겐신은 미코토바, 셜록 홈즈와 함께 베이커 가 221B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셜록 홈즈 조각상을, 겐신은 허리춤에 매고있던 검으로 깔끔하게 두동강 냈다. 그 안에서 검붉은 피가 묻은 칼이 한자루 나왔다. 푸른 색 보석으로 세공되어 있는 그 화려한 검은 장부 조사결과 사건전날 밤늦게 들어온 물건으로 밝혀졌다. 그러니까 그 피는 사건날 밤이나 새벽에 묻었다는 이야기다.

겔더는 붙잡혀서 사실을 실토했다. 그는 경관인 피터와 작당하여 진주를 훔치고 타국으로 뜰 예정이었다. 하지만 위험을 직접 감수한 피터가 겔더에게 자신의 몫을 늘리지 않으면 야드에 알리겠다는 협박을 했고, 그 말을 들은 겔더는 충동적으로 그를 살해했다……. 흉기인 칼은 석고상 안에 숨길 수 있었지만 피터의 시신을 옮기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킨다면 곤란해진다. 자신은 그 자리에 없었던 것으로 하고, 시신을 내버려둔 채로 자리를 떠났다……. 결정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에 잡히지 않을거라 생각하면서.

야드의 의심이 풀리면 영국을 떠나면 된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흉기가 든 흉상이 야드로 이송될 때는 아찔했다. 우연히라도 그 흉기가 석고상 안에 있다는걸 들킨다면, 자신은 다시 추궁당하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여 밤늦게 증거품 보관실로 숨어들어 조각상을 깨트렸다고 한다. 그 안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고 아연실색하여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 흉기를 찾아 들고 온 야드에게 당해낼 수 없었다. 그렇게 말하며. 보르지니아의 진주는 그동안 입 안에 넣어뒀다고 한다. 그 셜록 홈즈도 깜짝 놀랄만큼 안전한 곳이었다. 뭐, 홈즈였다면 분명 실수로 삼켰겠지만.

베이커거리로 돌아오는 마차에서 미코토바는 가볍게, 그동안 갖고있던 의문을 내뱉었다.

“그런데 나머지 흉상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응?”

“분명 흉상은 여섯 점이잖아요? 이번 야드에서 깨진 한 점, 내 방에 있던 한 점…….”

“아아. 나머지 말인가. 그게, 공적으로 자주 만나는 야드에는 한 점 보내자고 생각했지만, 내게 흉상을 보낼만큼 친근한 사람은 자네 밖에 없어서 말이야, 전부, 다락방에 있네.”

뭐?

“그러니까 자네 친구가 망설임도 없이 조각상을 두동강 냈더래도 너무 걱정하지 말게! 자네의 침대맡을 지켜주는 셜록 홈즈는 아직 네 점이나 남았으니까 말이야!”

뭐라고??

“아니, 괜찮습니다, 그냥 다락방에 두세요.”

“사양할 필요 없어. 미스터 아소기가 부순 다음에 벌써 한 점, 머리맡에 가져다뒀거든. 무엇보다 그 셜록 홈즈의 흉상이다. 널 지켜줄거야.”

아무래도……미코토바 유진의 소파 생활은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아이리스 왓슨은 이 《여섯 점의 셜록 홈즈 상 사건》 기록을 읽고, 소파에서 발을 흔들며 즐거워했다.

“으음~. 이건 재밌는 사건인걸! 여섯 점의 흉상과 보르지니아의 흑진주…그리고 거기에 얽힌 살인사건! 분명 재밌는 소설이 될거야! 제목은 글쎄, 홈즈 군 흉상을 부수는건 불쌍하니까, 《여섯 점의 나폴레옹 상》……. 그렇게 각색해볼까!”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Non-CP
  • ..+ 6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