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laus
클라우스 와이즈 (Klaus Wyse)
수용시설과도 같은 대형 고아원의 문앞
한 아이가 두터운 철문을 두드린다. 꾀죄죄한 몰골에 산발을 한 검은 머리, 그 사이로 희번덕 빛나는 새빨간 눈. 간헐적으로 휘청거리는 아이의 맨발이 자갈 섞인 모래바닥을 때릴 때마다 황색 땅 위로 시퍼런 흔적이 천천히 퍼져나간다. 한참 후에야 느릿느릿 걸어 나온 한 어른이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먼저 입을 연 것은 아이 쪽이었다. “이곳에서 지내고 싶어요.” 꼴에 비해 지나치게 차분한 목소리가 듣는 이로 하여금 위화감을 불러일으켰다.
아이가 받은 옷에는 복잡한 기호와 숫자가 난잡하게 조합된 일련번호만이 새겨져 있었다. 원생들은 이름 대신 이 번호로 불렸고, 공석이 생기면 새로 들어온 아이가 그 번호를 이어받았다. 직접적인 학대는 없었지만, 원생들은 그저 정부의 지원금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써, 최소한의 교육조차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나마 양심이 남아있던 한 교사가 아이들을 불러 모으더니, 글자가 빼곡하게 적힌 종이를 펼쳐 보이며 말했다. “마음에 드는 이름을 골라보렴.” 그곳에서 글을 읽을 줄 아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모두가 뜸을 들이는 그 와중에, 존재감이 옅어 있는 줄도 몰랐던 검은 머리의 아이가 손을 뻗더니 자신과 가장 가까운 한 단어를 짚는다.
키가 문고리를 겨우 넘어서는 나이
“클라우스”는 이 이름을 특히나 좋아했다. 처음으로 가져본 온전한 나의 것. 그러니 더욱 완벽해지기 위해 타인의 흔적을 모두 지워야 한다는 그릇된 신념이 생겨난 것 또한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것이 타고난 “색“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클라우스는 곧장 욕실 청소용으로 쓰이던 화학 약품을 몰래 가져와 머리에 들이붓기 시작했다. 단백질이 타들어 가는 역한 냄새에 수없이 구역질을 해댄 후, 이윽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거울 속 푸석한 백금발의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다가가 입을 맞췄다.
이름조차 없던 소년은 그날, “클라우스”와 사랑에 빠졌다.
조금 빨랐던 퇴소, 그리고
아직은 이른 나이, 클라우스는 일찍이 퇴소를 결정했다. 또래들 사이에서 보기 힘든 성숙함이 그의 자립에 큰 도움을 주었고, 이는 곧 어린 나이에 유능한 해결사라는 지위를 얻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만, 그는 정서적인 측면에서 아직 독립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통제자의 역할을 하는 자들이 사라지자 어려서부터 품었던 삿된 가치관들이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몸집을 불려갔다. 클라우스는 타인을 심리적으로 조종하고 싶어 했으며, 그들의 격한 반응을 이끌어내고, 이윽고 터져 나오는 감정들에 흥분했다. 그 과정에서 본인이 입는 상해 조차도 즐길 정도로.
더 완벽한 “나”를 위해
완전히 하얗게 염색한 머리, 고급스러운 코트, 광이 나도록 닦은 구두, 허리춤에 걸린 두 자루의 핸드건. 언제부터인가 그의 명함엔 그럴듯한 성(姓)까지 추가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아니, 단 하나, 거울을 볼 때마다 마주치는 시뻘건 안광의 눈이 그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만 제외한다면.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의 주 무대는 육체의 변형이 제법 상용화된 땅이었다. 고민할 틈도 없이, 그는 얼마 전 구매한 연분홍빛 의안 한 쌍을 들고는 튜닝샵으로 향했다.
아무리 윤리관이 희박한 땅이라 할지라도, 이상이 없는 눈을 적출한 뒤, 별다른 기능도 없는 기계 의안을 껴달라는 요구는 꺼려지기 마련이었다. 장장 네 번의 퇴짜를 맞고 찾아간 다섯 번째 샵에서도 고개를 젓자, 클라우스는 웃으며 말했다.
“멀쩡한 눈을 뽑는 게 찝찝하다고? 그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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