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

[미야카게] 칠석제

- 미야카게 전력 '데이트'

- 종종 만날 때는 효고와 미야기의 중간인 도쿄에서 만났다는 설정.

- 아직 둘 다 고등학생.

- 얼마 전이 칠석이라 그냥 썼는데, 검색해보니 일본의 칠석제는 8월 초에 열리더라고요. 어쩔 수 없지.

 까만 머리의 청년이 툭툭, 게다 끝으로 바닥을 두드렸다. 축제 거리에 들어서기 전의 골목 입구에서 가만히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본 지도 30분. 설마 약속을 잊은건가, 입을 비죽 내밀며 뒤의 나무에 살짝 기대섰다. 칠석제를 맞아 미야기에서 큰 축제가 열린다는 말에 그럼 올라갈까? 하고 통화했던 것이 일주일 전이었다. 하긴 생각해보니 효고에서 미야기는 너무 먼데. 차라리 도쿄에서 만나자고 할 걸 그랬나. 헐렁한 유카타 소매자락을 잡으며 뒤늦은 반성을 했다. 아마 차로는 10시간 정도 걸렸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하얗게 얼굴이 질린다. 그냥 도쿄에서 만나자고 할걸! 허둥지둥 전화기를 꺼내 1번을 길게 눌렀다. 잠깐 신호가 연결되는 소리가 들리더니 전원이 꺼졌다는 안내음이 들려온다.

 쿵. 희미하게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진짜로? 오다가 화나서 돌아간 건 아니겠지. 당황한 소년이 빠르게 문자를 켜 화면을 톡톡 두드렸다. [미야상, 어디에요.] [오고 있어요?] [저희 오늘 만나는 것 맞죠?] [화나서 폰도 꺼두신거에요?] 끊어서 보내던 손이 삐끗하더니 폰이 미끄러지며 그대로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헉, 하는 소리를 내며 폰을 주우려 허리를 숙이자 누군가 먼저 제 폰을 줍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내렸던 고개를 천천히 들며 눈 앞의 사람을 천천히 올려본다. 진한 청색의 칠부 바지 위로, 그림과 글씨가 가운데 적혀있는 흰 반팔티를 입은.

 “…미야상.”

 “좀 늦었네, 미안 카게야마.”

 먼지를 툭툭 털어 카게야마가 떨어뜨린 폰을 내민다.

 “안에서 먼저 구경하지 그랬어. 라고 하기엔 만나기가 힘들었겠다 그치?”

 “저, 저, 미야상이 오늘 약속 잊은건가 해서, 그래서”

 “뭐? 잊을리가 없잖아. 내가 먼저 오겠다고 한 약속인데.”

 “그래도, 저기 효고랑 미야기는 차로 10시간은 떨어진 곳이잖아요. 그거 오늘 생각나버려서..”

 “응? 아, 하긴 만날 일 있으면 중간의 도쿄에서 만났으니까. 그래서 비행기 탔어.”

 비행기..! 생각해보지 못한 교통수단에 카게야마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 눈을 본 아츠무는 잠시 할 말을 잊은 듯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 풋,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카게야마군? 그 표정은. 내가 미련하게 차로 10시간 왔을까봐?”

 “아, 아뇨, 그게…비행기 타본 적이 없어서…”

 카게야마의 마지막 말에 웃느라 올라갔던 입꼬리가 미약하게 경련하더니 손으로 제 눈을 덮으며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얼굴을 가리는 아츠무에게 놀란 카게야마가 고개를 숙여 그를 살폈다.

 “괜찮으신가요, 미야상?”

 “으응, 괜찮아. 내가 돈 많이 벌어야겠다.”

 “네?”

 “아냐 들어가자.”

 무슨 생각을 했던 건지 귀끝이 새빨갛게 변한 채로 고개를 든 아츠무가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자연스레 잡은 카게야마가 고개를 갸웃하자 그를 이끌고 입구로 들어가며 아츠무가 웃었다. 내가 너 비행기 태워준다고. 그 말에 카게야마가 눈이 커지며 고개를 빠르게 끄덕거린다. 저보다 미묘하게 낮았던 눈높이가 게다 덕분인지 조금 올라가 시선이 평소보다 위를 향한다. 나풀거리는 소매자락에 훑던 시선이 잡아끌렸다.

 “옷 예쁘네.”

 “아, 감사함다.”

 애인을 보자고 비행기 표를 끊어서 달려온 것 까진 좋았는데. 막상 손을 잡고 이렇게 쫄래쫄래 따라오는 유카타 차림의 카게야마를 보고 있자니 자꾸 혀 밑으로 침이 고였다. 아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선 안 되는데.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을 지나 야시장을 벗어나자 그제야 축제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화려한 등불이 거리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가게 앞마다 작게 장식된 소원나무에 걸린 종이들이 풍등처럼 희미하게 흔들리는 모습에 아츠무와 카게야마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센다이 칠석제는 유명하다더니. 크네.”

 도로를 막아놓고 한가운데 만들어진 무대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을 보며 아츠무가 작게 중얼거리자 카게야마가 그러게요, 하고 맞장구친다.

 “..혹시 와본 적 없는 건 아니겠지 카게야마?”

 “와, 와봤거든요?! 가족들이랑..”

 입을 비죽이며 대답하는 카게야마를 보던 아츠무가 픽 웃었다. 그래, 그럼 카게야마가 안내 좀 해줘. 맞잡은 손을 흔들며 눈을 가늘게 접자 애인의 얼굴이 붉게 물든다. 표정에 다 드러나는게 여간 귀여운게 아니었다. 괜히 헛기침을 하며 배는 안 고프세요? 화제를 돌리며 앞장서는 카게야마의 뒤를 느릿하게 따라가며 아츠무는 생각에 잠겼다. 언제부터 저렇게 귀여워보였더라. 유스에서 처음 만났을 땐 이런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주변을 돌아보다가 힐끔힐끔 뒤를 살피는 그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슬쩍 웃어주다가 맞잡은 손이 눈에 들어왔다. 손을 놓았다가 깍지를 껴 다시 잡았다. 그 움직임에 손끝이 경직하는게 눈에 들어와 아츠무는 또 웃었다. 지나가던 길에 당고를 사서 한 꼬치씩 먹으며 카게야마의 안내 끝에 다다른 곳에는 엄청난 크기의 소원나무가 있었다. 아츠무가 저도 모르게 우와, 라고 할 만큼.

 “여기다가 소원 적어서 달면 돼요.”

 “저 위에는 어떻게 단 거야?”

 “아, 밑에 너무 많이 달리면 걷어서 사다리 타고 올라가서 다는 모양이던데요.”

 쪽지를 적는 테이블로 그를 데려가며 카게야마가 어깨를 으쓱했다. 저도 자세히는 몰라요. 한번도 본 적은 없거든요. 그런 카게야마의 대답에 흐응, 하고 커다란 나무를 슬쩍 올려본 뒤 동전을 넣고 종이를 꺼냈다. 옆에 놓인 펜으로 간단히 소원을 적는 모습을 한발짝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카게야마를 뒤늦게 눈치 챈 아츠무가 눈썹을 올리며 이리 오라는 손짓을 하자 카게야마가 고개를 살랑살랑 젓는다. 왜? 입모양으로 묻자 소매 안쪽에서 접힌 종이를 꺼내 보여준다.

 “..설마 집에서 써왔어?”

 “네.”

 희미하게 비치는 글을 보니 붓으로 쓴 모양이었다. 문구점에서 파는 펜으로 쓴 자신의 소원종이를 보던 아츠무가 허탈하게 웃었다. 너무 정성들이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우물쭈물 대답을 얼버무리고는 아츠무에게 보여주기 부끄럽다며 반대편 나무에 종이를 달고 오는 카게야마를 보는 아츠무의 생각은 복잡해졌다. 이렇게 귀여워서 어떡하지. 저와 덩치 비슷한 남자아이와 사귀게 될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두 손을 모아 짧게 기도하고 눈을 뜬 카게야마가 아츠무와 눈이 마주쳤다.

 “더 구경하실래요?”

 “…아니. 구경은 이제 됐어.”

 “어, 그치만 비행기까지 타고 오셨는데”

 “축제 말고, 너랑 단둘이 있고 싶은데. 카게야마군.”

 카게야마의 손바닥 안쪽을 긁어 올리며 아츠무가 웃었다. 숙소 잡아뒀는데, 가자. 작게 속삭이는 입모양을 읽은 애인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혀로 입술을 핥았다. 손을 잡아 끌자 시선을 어디 둬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카게야마가 종종거리며 끌려왔다.

 애인을 보자고 비행기 표를 끊어서 달려오기를 잘했다. 아츠무의 눈빛이 까맣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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