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마감 글 커미션' 완성본

[하이큐] 키타 신스케 HL 드림

린님 커미션, 23.08.08 작업물

몰아치는 돌풍이 작은 어선을 쉴 새 없이 휩쓴다. 심상치 않은 격랑을 느끼고 선실에서 나온 신스케는 이미 제멋대로 풀려 나부끼고 있는 돛을 발견한다. 바다 위에서 돛이 망가진다는 것은 곧 대양을 헤쳐나갈 원동력을 잃는다는 뜻. 신스케는 무서운 각도로 뒤흔들리는 갑판 위를 거의 기다시피 하면서 돛을 갈무리했으나, 밧줄을 단단히 틀어 매기도 전에 배의 중심이 크게 기운다. 바다의 분노 앞에서 미약하게 쓰러진 인간은 다음 순간, 어선보다 훨씬 높은 크기의 파도를 마주한다.

아, 여기서 끝이구나.

눈 깜짝할 새에 배가 뒤집히고 하늘이 역류하며 바닥이 곧 바다가 된다. 신스케는 달빛 한 줌 받지 못해 시커멓게 일렁이는 바닷속으로 추락한다. 자연에 생업을 기댄 사람이 으레 그렇듯이 언젠가 자신 또한 바다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고는 생각했으나 차가운 수온에 온몸이 잠기는 순간, 뱃머리를 바다로 향할 때마다 두 손 모아 기원하던 작은 소망이 기억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바다에 삼켜진 신스케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고 부족한 호흡 속에서 서서히 정신을 잃어갔다. 그 탓에 신스케는, 바닷속에서 거대하게 빛나는 은은한 휘광이 몸을 감싸 안는 순간을 목도하지 못하고 의식을 놓았다.

 

 

손끝에 스치는 보드라운 천, 온도와 습도가 적절하게 어우러진 공기, 아주 먹먹하게 들려오는 파도 소리, 얼굴로 쏟아지는 다정한 태양 빛 속에서 신스케는 의식을 찾는다.

"……윽."

"키타, 눈을 뜬 게냐?"

시선을 옳긴 신스케의 눈에 든 것은 마을 의원의 얼굴이다. 신스케는 짧은 신음성을 내뱉으며 뻑뻑한 눈을 대충 문지른다. 신스케는 어렵지 않게 이곳이 어촌 마을에 딱 하나 존재하는 환자들을 위한 공간임을 깨닫는다. 내가 왜, 여기 있지?

"정신을 차려서 다행이구나. 하루를 꼬박 깨어나지 않길래 읍내의 의원에게 연통을 넣어야 하나 고민하던 중이었다."

"……의원님."

"조금 더 누워있거라. 어린 것이 어찌나 놀랐을꼬."

"제가…… 와 여기 있는데예?"

"해변에 쓰러져있던 것을 마을 사람이 발견해서 데려왔다. 바다에 빠졌던 게냐."

신스케는 그제야 정신을 잃기 전, 어떤 비극을 겪었는지 떠올린다. 밤늦게 배를 타고 나갔다가 폭풍에 휩쓸렸었지. 근데 살아있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육지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나가서 그물을 내렸는데 멀쩡한 성인 남성의 체중이 파도에 가라앉는 대신 해변으로 떠밀려 왔다니. 의식이 사라지기 전에 마주쳤던 폭풍은 흡사 인간의 침범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분노에 가까웠다. 날씨를 미처 파악하지 못한 인간의 오만을 보아 넘기지 않겠다는 듯이 몰아치던 파고에서 살아남다니. 대체 어떻게? 신스케가 주어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침묵하자, 의원은 그저 말없이 신스케에게 이불을 더욱 두텁게 덮어 주며 말한다.

"아무튼 푹 쉬어라. 큰 부상은 없으니 잘 자고 일어나면 될 게야."

"……예, 감사합니더."

상황을 따라잡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스케는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다. 소금기 하나 없이 뽀송뽀송한 몸뚱이는 자신이 바다에 빠졌다는 것조차 꿈이 아닐까 의심하게 만든다. 신스케는 자신의 목숨을 비껴간 비극의 인과를 이해하지 못한 채, 다시 바다로 향한다. 새로운 배를 마련하고 항해에 나서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치는 데 정확히 석 달이 걸렸으며, 원수처럼 몰아치던 바다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음에도 신스케는 다시 뱃머리를 돌리는 날, 바다를 향해 두 손을 모은 채 공손하게 기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신님, 목숨을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부디 좋은 바람을 주십시오.

 

 

한번 사고에 휘말리면 다시는 바다에 나가지 않는 사람도 많다. 삶을 향한 의지는 태곳적부터 이어져 온 가장 강력한 본질이기 때문이다. 조상 대대로 뇌리에 새겨진 안전의 욕구를 배제하고 일생을 위협하는 자연의 공포를 극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신스케는 많지 않은 사람 중의 하나였다.

인간의 운명은 모두 자연의 변덕에 달렸다는 안이한 배짱과 더불어서, 신스케는 바다가 인간에게 허락하는 수많은 경탄과 경이를 무시하며 살아갈 수 없었다. 햇볕에 반사되는 윤슬과, 따스한 기온에 달궈진 갑판의 목재 내음. 묵직한 그물을 끌어 올릴 때 손끝을 파고드는 생명의 무게와 일생을 바다에서 보내온 사람의 본능적인 향수를 접어두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신스케는 바다에서 죽다 살아났음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파도를 탄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날이었다. 보름달 밤에는 늘 그렇듯이 심야라는 시간대가 어색할 정도로 휘영청 빛나는 자연광이 바다 위를 내리쬔다. 그물을 내리고 인내하는 시간 동안 키를 조정하던 신스케는 깨진 거울 조각처럼 빛나는 물결에 시선이 팔린다. 연이어서 그는 발견하고야 만다. 바다 깊은 곳에서 천천히 떠오르는 거대한 빛덩이를.

빛무리의 정체를 가늠하기도 전에, 정체 모를 휘광은 신스케가 타고 있는 배 전체를 감싸 안는다. 기이한 기적에 놀랄 새도 없이 바다에서 무언가가 서서히 떠오른다. 신스케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넋이 빠진다. 바다에서 나타난 무언가는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감히 인간 같은 미물에게 빗대는 것이 걱정될 정도로 거대한 생명체는 신스케를 응시한다. 달빛을 떼어다 놓은 것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밀빛 머리칼, 창공의 색채를 닮은 두 개의 눈동자. 파도 소리마저 멎은 것만 같은 고요가 지나간 이후, 마치 세계를 울리는 듯한 음성이 신스케의 머릿속을 파고든다.

「다시 바다로 나왔구나. 용감한 인간이네.」

이 세계의 존재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경이로운 생명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문을 연다. 인지할 수 있는 어문이 뇌리에 박히자, 신스케는 온몸을 휘감은 비현실감과 괴리에서 벗어나 흡사 신이라 불려도 좋을 광채를 마주한다.

"……다, 당신은."

「놀랐니? 두려워하지 마. 나는 널 해칠 생각이 없단다.」

거대한 생명체는 분명 신스케에게 말을 걸고 있었으나 인간의 의식을 향해 직접 말을 거는 것처럼 구순을 열지 않았다. 인간을 닮은 바다 생명체, 거대하고도 경이로운 위용, 의식으로 전달하는 의사소통. 몇 가지 단서가 하나의 전설로 수렴함을 깨달은 신스케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연다.

"……인어 신?"

「날 알고 있구나. 놀랍네. 이제 인간들은 전설을 떠받들지 않는 줄 알았는데.」

어릴 적의 신스케는 조부모님의 입을 통하여 수생의 모든 것들을 수호하며 인간에게 축복을 내린다는 인어 신의 전설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인어 신을 향한 기원과 숭배가 활발하던 옛날과 달리 이제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전설을 경시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안타까워하던 어투마저 생생히 기억난다. 인어 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니. 초월적인 존재, 이 세상을 구성하는 일말의 이격과 대화를 하고 있다니. 경험하면서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신스케는 말을 잃는다. 그 모습을 마주한 인어 신은 고요하게 미소 짓는다.

「살아있어서 다행이야. 오늘은 사과를 건네러 왔어.」

"……사과?"

「얼마 전에 바다에 휩쓸려 죽을 뻔했잖니? 해류를 뒤섞기 위해서 힘을 좀 썼는데, 네가 바다에 나와 있다는 것을 미처 확인하지 못했어.」

그 말은 바다를 뒤흔든 폭풍의 힘은 인어 신의 권능이었다는 뜻이다. 신스케는 신격의 존재가 자신에게 사과를 건네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동시에 자신이 어째서 바다에 가라앉지 않은 채 해변에 밀려오는 기적을 겪었음을 이해한다. 이 인어가, 날 살려주었구나.

"사,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더. 바다에 휘말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운명이니까요."

「그래도 너처럼 착실한 인간의 목숨을 실수로 앗아가는 것은 옳지 않아. 이 바다에 기대어 사는 아이들은 내가 최대한 지켜줘야 하는걸. 그래서 오늘은 가호를 내려주려고 왔단다.」

"가호……?"

「그래. 작은 아이야, 내가 두렵지 않다면 이곳으로 와보겠니?」

인어 신은 거대한 손을 들어 올린다. 하늘에 떠오른 달빛과 같이 백색으로 하얗게 빛나는 광채가 뱃머리에 와 닿는다. 신스케는 마치 홀린 듯이 걸음을 옮긴다. 인어 신의 손바닥 위로 올라가자 자신이 얼마나 작디작은 존재인지 실감한 신스케는 헤아릴 수 없는 경이 앞에서 마른침을 삼킨다. 긴장한 모습마저도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인어 신은 조심스럽게 손을 가까이 끌어당겨, 거대한 구순으로 신스케에게 입을 맞춘다. 살결이 닿았다기보다는 마치 따스한 빛에 감싸인 듯한 감각이 온몸을 감돈다.

「너에게 좋은 해풍을 약속할게. 가호가 남아있는 한, 너는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지 않을 거야.」

평생 바다 위에서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파고와 파형에 온 인생을 맡겨야 하는 뱃사람에게 다시 없을 축복. 신스케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거대한 것을 언약한 인어 신은 시선을 가볍게 휘어내린다.

「착한 아이야. 날 믿어주어 고맙구나. 사실 너를 아주 오래전부터 지켜봐 왔어.」

바다에 나가기 직전에 언제나 좋은 바람을 기원하는 기도와 신을 향한 감사를 전한다는 것도 알고 있지. 그물에 잡힌 작은 물고기는 놓아주고 함부로 살생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아. 바다에게 존중을 표하는 인간은 기꺼이 자연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단다.

「잊혀가는 전설과 도리를 지키는 너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니.」

신스케는 조부모님이 강조하던 조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이, 신님이, 언제나 보고 있단다.’ 어릴 적부터 그 말을 신념처럼 섬긴 신스케는 모든 일을 허투루 하지 않았다. 반복되는 일과일수록 정성과 진심을 담아서. 답을 주지 않는 바다에게 감사를 전하는 일도, 이미 옛 시절의 표상이 되어버려 잊혀져가는 규율을 지키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신스케를 미련하다 비웃었으나 바다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수호하는 초월적인 존재는 신스케의 신념을, 일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바다의 의지에게 인정받는 순간, 신스케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벅차올라 눈물을 흘린다.

「아이야, 우는 거니?」

"아, 저는……."

대쪽같이 지켜왔던 오랜 고집이 축복으로 돌아오다니. 감히 규정할 수도 없는 자연의 의지가 그의 일생을 긍정하다니. 이토록 강렬한 위로가 또 있을까. 신스케는 혹여 눈앞의 인외가 당혹할까 봐 다급히 눈물을 훔치면서 대답한다.

"그저, 감사해서… 그럽니더."

「무얼. 오히려 내가 네게 감사하단다. 어린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잊지 않아 주어서.」

인어 신은 아름다운 미소를 아끼지 않으며 신스케를 다시 갑판 위로 내려주면서 묻는다.

「그래, 아직 네 이름을 알지 못하네. 괜찮다면 널 무어라 명명하는지 알려주지 않겠니?」

"아, 저는… 신스케. 키타 신스케입니다."

「그런 어감을 가지고 있구나. 알려주어 고맙다. 그럼 나는 이만 가보마. 바다의 축복이 너와 함께할 것이니 그 마음을 잊지 말렴.」

다정한 충고를 덧붙인 인어 신은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광채를 내보이며 바닷속으로 사라진다. 바다를 다스리는 가장 아름다운 빛무리가 떠나가자 파도 위에 남겨진 뱃머리에는 하나의 고요만이 남는다. 그날 이후, 신스케가 돛을 올리는 날에는 거센 북풍이 불지 않았다. 그가 나이가 들어 오랜 친우였던 배를 떠나보내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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