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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션온_캐릭터_2명으로_커플연성

2016. 10. 30. 작성 | 공백 미포함 4,973자 | 스가와라 코시X아카아시 케이지

"헤이, 헤이, 헤-이! 밥 먹으러 가자!"

"넵! 수고하셨습니다─!"

"치비쨩은 여전히 기운이 넘치는구먼."

"뭐, 체력 바보니까요."

"뭐라고, 츠키시마!!!"

"다들 돌아가면 수분 보충 제대로 하세요. 히나타, 츠키시마 너희도."

야단법석 소란을 피우며 나가는 네 사람에게 한 마디 하며 아카아시는 체육관 문을 닫았다. 육중한 철문이 크기에 걸맞은 소리를 냈다. 해는 이미 넘어간 지 오래고, 어느새 달이 그 빛을 뿜어내고 있다. 다른 부원들은 일찌감찌 들어가서 쉬고 있을 시간까지 이들은 질리도록 연습을 해댄 것이다. 원래 있던 리에프가 야쿠에게 끌려나간 후에도 말이다. 이 중 유일하게 스파이커가 아닌 아카아시는 4명분의 토스를 올리느랴 고생한 손가락을 주물럭거렸다. 스타일이 제각각인 스파이커들, 익숙하지 않은 멤버. 몸은 고단했지만 다양한 토스를 올릴 수 있어서 아카아시는 나름 즐거웠다.

"거기 네 명~ 곧 있으면 식당 문 닫힌다?"

"안돼애애!"

지나가던 매니저의 말에 보쿠토가 앞장서서 달려가 버리고, 그 뒤를 히나타가 눈을 빛내며 쫓았다. 그다지 밥 생각이 없던 츠키시마는 슬쩍 숙소 쪽으로 빠지려 했지만, 눈치 빠른 쿠로오가 그를 가로막았다. 어깨동무를 한 채 거의 끌려가다시피 하는 츠키시마를 향해 아카아시는 밥은 챙겨 먹으란 말을 던졌다. 아카아시마저 이러자 츠키시마의 미간이 더욱 찌푸려졌다. 동생다운 모습에 아카아시는 살짝 웃었다. 훈련에 정신이 팔려 잊고 있었지만 말하고 나니 엄청 허기가 졌다. 아카아시는 금방이라도 소리가 날 것 같은 배를 문지르며 입맛을 다졌다. 밥, 얼마나 남아있으려나. 사람 수가 많은 데다 다들 건장한 남고생이다 보니 식당에 늦게 가면 밥이 조금밖에 안 남아있곤 했다. 그래도 그걸 고려해서인지 밥만큼은 무식할 정도로 많이 해놓기는 했다. 모자라면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주먹밥 만들어먹어야겠다며 아카아시는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오야?"

갑자기 아카아시가 멈춰 섰다. 그러고는 그 날카로운 눈동자로 한 곳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왜 그래, 아카아시?"

"뭘 좀 두고 왔습니다. 먼저 가세요."

말 건 쿠로오를 보지도 않고 아카아시는 바삐 걸어가기 시작했다. 멀어져가는 아카아시의 등을 바라보던 쿠로오와 츠키시마는 짜기라도 한 듯이 눈빛을 주고받았다.

"아카아시상 두고 온 것 없었죠."

"응. 뭘 두고 올 성격도 아니고 말이야.  뭐, 그렇지만~"

찾고 싶은 건 있겠지. 쿠로오는 입꼬리를 삐죽삐죽 올리며 능글스럽게 웃었다. 츠키시마는 그런 그를 보고 질렸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카아시가 어디 가는지 정도는 츠키시마 역시 눈치챘다. 눈치챘기에 악마 같은 그의 모습이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만 가죠. 식당 문 닫습니다."

"흐응~? 츳키 배 안 고픈 거 아니었어?"

"쿠로오상한테 시달릴 바에야 차라리 밥을 먹겠습니다."

"내가 뭘 한다고. 나는 친절한 사람이라고 아무리 나라도 뒤밟기는 안 해."

정말이라니까? 츠키시마가 의심스럽게 노려보자 쿠로오는 그저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흘끗 아카아시를 쳐다본 후 쿠로오는 츠키시마를 끌었다. 츠키시마도 잠시 그 시선이 닿은 곳을 바라보다 조금씩 발을 떼었다. 두 사람의 시선의 끝에는 아직도 불이 켜진 체육관이 있었다.


"아직도 연습하고 계셨던 겁니까?"

"어라? 아카아시?"

너도 아직 남아있었구나! 시원시원하게 웃는 스가와라를 보며 아카아시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스가와라는 손에 들고 있던 마지막 배구공을 통 속에 넣고는 서둘러 문밖으로 나왔다. 문을 잠그자마자 선선하게 불어오는 밤바람에 스가와라가 잘게 몸을 떨었다. 여름이 끝났다는 걸 알리고 싶은지 공기가 제법 찼다.

"땀 제대로 닦지 않으시면 감기 걸립니다."

"아아, 응. 고마워."

스가와라는 아카아시가 건넨 수건을 받아들여 목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아, 저거 내가 썼던 건데. 뒤늦게 그 사실을 떠올린 아카아시는 표정을 갈무리하며 뒤돌아섰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스가와라는 이내 이유를 눈치채고 소리 없이 웃었다. 자신보다 키도 크고 어른스러운 아카아시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이라니. 희귀한 모습을 눈에 담으며 스가와라는 그의 앞에 섰다. 아카아시의 가는 눈이 크게 떠졌다. 곧이어 희고 흰 수건이 아카아시의 목에 감겼다. 미약하게 따뜻하고 촉촉한 느낌에 아카아시의 몸이 움찔거렸다. 하얀 수건의 끝에 스가와라의 맑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아카아시의 숨이 잠시 멈추었다.

"하하. 너무 놀라는 거 아니야, 아카아시?"

"갑자기 다가오니까 그런 겁니다. ...좀 떨어져 주세요."

"가까워서 그래?"

"..."

대답 대신 시선을 피하며 뒤로 물러서는 아카아시를 보며 스가와라는 작게 웃음소리를 흘렸다. 아무리 어른스러워도 연하는 연하다. 스가와라는 태연하게 밥 먹으러 가자며 먼저 앞장섰다.  뒤따라오는 아카아시의 그림자가 스가와라 옆에서 일렁거렸다.


"아, 이런."

스가와라는 목을 긁적였다. 불이 꺼진 채 단단하게 닫힌 식당 문이 야속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래도 아까 온 히나타네를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꼬르륵거리는 미약한 소리에 스가와라는 고개를 돌렸다. 아카아시가 허기진 배를 매만지며 부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런 표정도 짓는구나. 점심이나 간식 먹을 때 볼 가득히 음식을 오물거리는 모습을 떠올리자 납득은 갔다. 사실 스가와라도 지금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었다. 계속되는 연패에 딸려온 플라잉, 추가적인 자율연습 후에 공복이라니. 우카이 코치가 알면 한바탕 잔소리를 들을 일이었다. 스가와라는 잠시 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달빛이 밝다. 눈을 감았다 뜬 후 스가와라는 그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말했다.

"아카아시, 우리 나갈까."


"근처에 편의점이 있어서 다행이야. 배는 채울 수 있겠어."

"요새는 어디를 가든 편의점이 있으니까요."

"우리 학교 근처에는 편의점 없어."

"네?"

"그래서 맨날 사카노시타 상점에서─아, 그러니까 코치네 가게에서 만두 사 먹곤 해."

"...그렇, 습니까."

상당히 생각지 못한 이야기였는지 아카아시의 표정이 미묘했다. 스가와라는 살짝 웃고선 모락모락 김이 나는 호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폭신한 호빵 밑 야채 속이 짤짤하게 혀를 감쌌다.

"아카아시는 뭐 샀어?"

"삼각김밥을 몇 개를 좀..."

"헤에~ 무슨 맛?"

불쑥 다가오는 얼굴에 아카아시가 주춤거렸다. 땀 냄새에 미약하게 샴푸 냄새가 섞이어 아카아시의 코를 자극했다. 헛숨을 삼키는 아카아시에게도 아랑곳하지 않고 스가와라는 삼각김밥을 살펴보았다. 아무렇게나 집어온 건지 맛이 가지각색이었다.

"아! 이거 맛있겠다. 고추장 불고기. 한국에서 넘어온 건가?"

"드실래요?"

"엇, 아냐 아냐. 너도 배고플 텐데."

"다른 것도 샀으니 괜찮습니다. 스가와라상이야말로 지금까지 연습하셔서 배고프잖아요."

아카아시가 더 군말 없이 담담하게 내민 삼각김밥을 보고 두 눈을 깜박였다. 지금 나보다 배고픈 건 아카아시같은데. 아카아시는 거의 반강제로 스가와라의 손에 삼각김밥을 쥐여주고는 다른 삼각김밥을 꺼내 베어 물었다. 두입? 세입? 몇 번 만에 삼각김밥이 손에서 사라지고 양 볼이 부풀어진 마법을 보며 스가와라가 풋 하고 웃었다. 역시 아카아시가 더 배고픈 거 맞네.  그렇지만 받은 삼각김밥을 돌려줄 마음은 없었다. 스가와라는 삼각김밥을 꼭 쥔 채 한 입 베어 문 호빵을 반으로 갈라 아카아시에게 내밀었다. 아카아시는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입은 열심히 움직였다. 햄스터 같아. 그 말 대신 '답례'라고 짤막하게 말하며 아카아시가 그러했듯 스가와라도 반강제로 손에 호빵을 쥐여주었다. 아직도 김이 나는 호빵은 따뜻하기만 했다. 당황한 아카아시가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다 포기한 듯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반듯한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만 같았다.

편의점이 가까워서인지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땐 시간이 그리 지나있지 않았다. 부원들도 아직은 쌩쌩하게 깨어있을 터였다. 먹을 것은 아직 남아있었고, 남고생의 식욕은 왕성했다. 곧장 방으로 들어가 봤자 기껏 산 식량이 뺏길 것을 알기에 두 사람은 일부러 운동장을 거닐기로 했다. 어두컴컴하고 가로등도 드문드문 있어 무서울 만도 하건만 둘은 태평스럽게 걷고 있었다. 은은하게 들려오는 벌레 소리에 자박거리는 발소리가 살며시 얹혀졌다. 한 발자국 남짓, 애매한 거리를 두고 아카아시는 스가와라를 훔쳐보았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경기 때에도 카라스노의 세터는 거의 카게야마였기에. 하지만 딱 한 번. 카게야마의 체력과 기분을 고려하여 코치가 세터를 교체한 적이 있었다. 세터란 지휘자가 바뀌자 자연스레 카라스노의 공격 스타일도 바뀌었다. 날카로운 카게야마와 달리 부드러운 그의 스타일. 하나하나 신중하게 팀원을 고려하여 올리는 세심한 토스, 그런 토스로 점수를 따냈을 때의 그 표정까지. 여태껏 멀리서, 혹은 시야의 바깥에서만 보던 그를 고작 네트를 두고 다시 보았을 때 눈앞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 아카아시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퍼져나갔다. 뜨듯미지근한 무언가가. 그 기분을 느끼게 한 그가 지금 자신의 바로 곁에 있다니. 아카아시는 도로 시선을 거두었다. 아카아시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 무언가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위인이 되지 못했다.

"츠키시마, 히나타랑 같이 있었던 거지?"

"네?"

"자율연습 말이야. 총 6명이서 스파이크랑 블로킹 연습한다고 히나타가 좋아하더라. 우리 애들이 민폐 끼치진 않았지?"

"네. 둘 다 좋은 아이인걸요."

짧은 칭찬에 스가와라가 씨익 웃었다.

"이야, 정말. 히나타야 워낙 적극적이고 친화력이 좋아서 별걱정 안 했지만 츠키시마까지 그렇게 자율연습을 할 줄은 몰랐어. 그 둘과 어울려줘서 고마워, 아카아시."

"천만에요. 그 둘을 끌어들인 건 제가 아니라 보쿠토상과 쿠로오상이기도 하고."

"그 두 사람에 후배들까지 챙겨주고 있는 거잖아.  정말 수고가 많아."

보쿠토와 쿠로오. 그 두 사람의 행동을 떠올린 스가와라는 질린다는 듯이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거기다 6명 중 유일한 세터. 같은 세터로서 팀원이 아닌 낯선 이와 호흡을 맞춘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그는 알고 있었다. 감사와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의미를 담아 가볍게 아카아시의 어깨를 두드리자 그는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그러는 스가와라상은 그 시간까지 무슨 연습을 하고 있던 겁니까?"

"나? 나는 스파이크 연습."

"스파이크, 요?"

"그래, 그래. 스파이크."

예상치 못한 질문에 아카아시가 멍한 표정을 짓자 스가와라는 예상대로의 반응이라며 키득거렸다.

"나는 카게야마같은 센스도, 기술도 없어. 하지만 내가 가진 카드가 늘어난다면 카라스노에게도 힘이 될 테니까."

주먹을 꽉 쥐고 스가와라는 아카아시를 보았다. 밝은 달빛을 받아 스가와라의 은발이 빛이 났다. 올곧은 그 눈빛에 아카아시는 뚫릴 것만 같았다. 1학년 천재 세터에게 레귤러 자리를 빼앗긴 비운의 3학년 세터. 보통 사람이었다면 그 사실을 견디지 못했을 거다. 어쩌면 폭력과 같은 큰 갈등이 빚어졌을 지도 모른다. 허나 스가와라는 달랐다. 분하지만 팀을 위해 받아들이고, 분하기에 더더욱 정진한다. 외유내강. 그를 너무나도 잘 나타내는 네 글자를 속으로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 눈에 카라스노의 성장은 괴짜 콤비 두 사람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을 것이다. 허나 아카아시는 스가와라에 집중했다. 같은 세터로서, 같은 부주장으로서. 그의 성장은 그의 말마따나 카라스노에게 힘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 중요한 전략을 저에게 말해도 괜찮은가요."

"괜찮아. 아직 중요한 전략이라고 할 정도도 아니고, 또 우리 애들이 신세 진 것도 있으니까."

"아뇨, 오히려 저희가 신세를 지고 있는 것도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히나타 덕분에 우리 에이스의 기분이 쉽게 안떨어진다던가."

"하하하. 무슨 소리인지 알 것 같아. 히나타 자신도 모르게 사람 띄워주는 거 잘하니까."

"네. 그래서 다른 답례라 하긴 뭐하지만..."

아카아시 답지 않게 말끝을 흘렸다. 이런 말 해도 되나. 입술이 소리 없이 오물거린다.

"아카아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아카아시는 고개를 바로 했다. 바로 가까이 보이는 갈색 눈동자가 얼마든지 말해보라고 격려해주고 있었다.

"괜찮다면 토스,  올려드릴까요."

말했다. 아카아시는 안 그래도 큰 스가와라의 눈이 더 커지는 것을 보며 숨을 들이마셨다. 괜한 제안이었나. 후회가 고개를 내민다.

"정말? '괜찮다면'이라니 오히려 내 쪽에서 부탁하고 싶은걸!"

"...그렇습니까."

"물론이지! 니시노야한테는 미안한 얘기지만 니시노야의 토스는 아직 불안정하니까 안 그래도 낯선 스파이크가 더 힘들었거든. 그런데 아카아시 너같이 뛰어난 세터가 토스 올려준다는데 사양할 리가 없잖아. 고마워!"

상쾌한 스가와라의 미소에 아카아시의 후회는 순식간에 사그라져 내렸다. 아아. 말하길 잘했다. 아카아시는 눈꼬리를 휘어 보이며 희미하게 웃었다. 가로등이 합숙소를 향해 두 사람을 안내했고, 그 둘은 이젠 헤어져야 할 길목에 서게 되었다. 아쉽긴 했으나 아쉬울 것은 없었다.

"그럼 내일 점심 먹고 어떤가요."

"응. 좋아. 그럼 푹 쉬고 내일 보자, 아카아시."

아카아시의 어깨를 가볍게 치고선 스가와라는 카라스노 합숙실로 향했다. 점점 멀어져가는 그의 등을 보는 아카아시의 눈이 어둠 속에서 날카롭게 빛났다.

"네, 내일 봬요. 스가와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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