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시오이]이혼 전문 변호사 X 이혼남
썰백업
이혼 전문 변호사 우시지마×이혼남 오이카와 보고싶음.
뭐든 마음먹기가 가장 어렵다고 했던가.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있었나. 오랜만에 시간을 내 함께한 저녁식사자리였다. 우아한 손짓으로 와인잔을 소리없이 내려놓은 아내는 가방에서 서류봉투를 내밀었다.
"토오루, 이혼하자"
"....너는 무슨 그런말을......"
"저녁은 내가 살게. 조만간 사람 불러서 네 짐 뺄거니까 알고있어. 날짜는 정해지면 알려줄게."
가방을 챙겨 한 번 돌아보지도 않고 나가는 전 아내의 자리엔 포크질 한 번 하지않은 치즈케이크가 놓여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유독 느리게 느껴졌다. 불안하게 손톱을
물어뜯다가 금방 아내가 싫어할꺼란 생각이 들어 손을 치웠다. 발끝으로 바닥을 두드리길 몇번 40층에서 멈춘 엘리베이터가 스르륵 입을 벌렸다.
"여보. 치카쨩. 우리 얘기 좀 해."
굳게 닫힌 서재 문을 두드렸다. 당연하게도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오이카와 아니, 사카모토 치카愛. 그녀는 나보다 두 살 연상의 이혼 전문 변호사였다. 평생 홀로 치카를 키우다 몇 년전 지병으로 돌아가신 장인어른은 그녀가 이혼 전문으로 유명해지는걸 보며 이름을 잘못지어줬다며 마른 몸으로 호탕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녀도 나도 알고있었다. 치카를 낳다
돌아가신 그녀의 어머니, 아이愛 씨를 기억하기 위한 그 나름의 방법이였다.
그래서 그녀는 이름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제 명함을 보며 사람들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작게 미소지을 수 있고 기억하지 못하는 어머니지만 같이 있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사랑했다.
우리의 인연은 20년도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기억하는 그녀의 가장 어릴때 모습은 초등학교 입학식이었다. 이웃사촌이었던 우리는 바쁜 그녀의 아버지를 대신해 우리 엄마와 내가 입학식에 참석했다. 사립 시라토리자와 학원 초등부에 입학한 그녀는 보라색 자켓을 입고 내 손을 꼭 쥔채로
사진을 찍었다. 사립학교를 다니면서 우수한 성적과 원만한 교우관계로 어딜가든 주목받던 그녀는 나의 동경이었다. 어머니는 늘 치카 누나를 보고 배우라 했고 어린 나는 막연히 그녀가 제일 멋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스러운 치카는 본인이 누리는 모든것이 본인의 힘만으로 얻은게 아니란걸
빨리 깨달았다.
그녀는 보답해야 한다고, 실망시키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치카는 시험기간에 꼭 나에게 치즈 케이크를 사오라 시켰는데 볼 때 마다 코피가 나서 나는 가게의 냅킨을 두툼히 집어갔다. 대입을 준비할땐 머리카락이 빠진다며 짧게 잘라버렸다.
나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온
나의 첫사랑이 행복하길 바랐다. 수면부족과 스트레스로 코피를 쏟고, 머리카락이 뭉텅으로 빠지지 않아도 그녀가 행복하길 바랬다.
그래서 그녀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결혼식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말과 함께 내민 혼인신고서에 군말없이 도장을 찍을 수 밖에 없었다.
"치카. 문 좀 열어봐. 여보."
한참을 애타게 부르자 굳게 닫힌 서재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홈 웨어차림으로 안경을 쓰고 있던 치카는 안경을 벗으며 한숨쉬듯 물었다.
"무슨 얘기?"
"갑자기 왜그러는건데?"
"갑자기...맞아. 갑자기야. 미안해. 하지만 난 원래 결혼따위 할 생각없었어."
그녀는 서재 밖으로 걸어나왔다. 몸을 비켜서자 내 앞을 지나쳐 침실로 걸어갔다.
"아버지 가시기전에 결혼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 그게 목표였어. 토오루 너도 알잖아."
"같이 지낸 3년동안 나는 그냥 동네 꼬맹이일 뿐이었어?"
그녀를 따라 걸으며 추궁하듯 물었다.
내 목소리에 그녀는 뒤를 돌아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늘 정장구두를 신고있던 그녀의 눈 높이가 조금 낮았다.
"너는 나한테 평생 예쁜 동생일거야. 그리고 나는 너 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을 거야. 나는....그런 사람이야. 미안해."
치카는 내 어깨를 살짝 밀었다. 그녀는 나보다
훨씬 작았지만. 그 때만큼은 꼭 절벽에서 날 밀치는 듯한 느낌이었다. 침실의 문이 닫혔다.
거실의 커다란 6인용 소파에 몸을 뉘였다. 치카는 퇴근 후엔 구두로 혹사당한 발과 다리가 아프다며 소파에 누워 팔걸이에 다리를 올려놓곤 했다. 나는 조금 떨어져앉아 반대쪽 팔걸이에 느슨히 기대어 저녁을 보내곤 했다. 그녀의 취향으로 점칠된 집은 이젠 나만이 기억할 추억으로 가득했다.
다음날 출근 준비를 하는 그녀를 잡았으나 차갑게 지나쳐갈 뿐이었다. 나는 다급하게 알고 지내던 치카의 동료에게 연락을 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로 그녀를 보낼 순 없었다.
"어, 오랜만이야, 잘지냈어? 그....부탁할게 있는데...."
그는 한참을 고민하는듯 하더니 정중하게 거절을 표했다.
치카를 이길 자신도 없거니와, 부담스럽다는 이유에서 였다. 나는 그런 그를 이해하며 다른 사람의 소개를 부탁했다. 그는 구하기 힘들거라며 나를 걱정했다.
"할 수 있는 건 다해야지."
전화를 끊고 나 또한 집을 나섰다. 현실은 내 기분에 따라 멈추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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