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흔적
유료

(제목 없음)

 

“내가 당신을 다시 부른건 실력도 좋지만 전에 같이 일했기도 했고, 그리고 이곳은..”

“...”

“당신의 모든 것이 있는 공간이잖아요.”

“수아 선생님....”

 

테쎄라의 몰락으로 모든일은 일사분란하게 정리되었다. 여하단장은 실종처리로 계속 수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물론 행방은 아무도 모를테지만. 지옥불 아이, 대제님은 봉사활동을 다니며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하러 다녔다. 프시히는 자신의 모든 죄를 인정했다. 그의 곁에 있던 나는 참고인 조사를 받았지만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말하지 못했다. 프시히와 약속했기 때문이다. 너만은 무사해야한다며 모른다고 대답하라고 부탁한 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재판을 받으면서도 프시히는 ‘그 여자애는 아무것도 모른다’며 말을 반복했다. 숨막히던 시간이 끝나고, 실형 1500년이 판결났다. 왜, 어째서. 참아왔던 마음속의 말들이 정리되지 않고 쏟아져나왔다. 수갑에 묶인 채 표정없는 얼굴로 여하단원을 따라가는 프시히에게 뭐라고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지마,프시히, 네가 왜. 여하단장도 실종인데 네가 왜? 발악하다가 주변 경호원들에게 저지당했고 그대로 눈앞이 암전됐다. 정신을 차리니 눈 앞은 매일 보던 익숙한 천장이었다. 프시히와 내가일하던 마나협회 6실. 내게는 너무 익숙한 그 공간.

 

“일어났네요. 걱정했어요.”

“.....”

“...프시히 레테가 수감됐지만, 나는 당신의 역할과 지위는 그대로 두려고 해요.”

“어째서.. 나는 그들의 악행을 보고도 묵인한 사람이잖아요. 협회에서 내쫓아도 시원찮은 놈일텐데요.”

“...이해하니까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던 이유를.”

“.......”

“ 여기에 제일처음 와서 자리 잡았잖아요. 라니아씨.”

“.....맞아요, 이곳에서 자고 일어나 일하고, 프시히의 옆에서요.”

 

내가 프시히를 떠나 카신과 히아센 진영에 간다고해도 첩자로 의심받았을것이다. 단장에게 갔었다고 해도 프누르에 의해 죽었을지도 모르지. 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이것이 최선이었으니까. 그렇다 해도 테쎄라의 명령으로 움직인 일은 한번도 없었다. 어쩌면 모른척 한 잘못이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나의 모든 것이 있던 마나협회와 프시히를 떠날 수 없었다. 나마저 그의 곁에 없으면 그대로 무너질것만 같아서. 마지막까지 이성을 유지하던 그는 여하단원과 함께 취조실로 떠났다. 협회를 잘 부탁한다는 말과함께.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수감실은 많이 추울텐데. 혼자 남겨져서는 외로울텐데. 잊고있던 생각들이 떠올라 괴롭다. 눈물에 습기가 차자, 수아 선생님은 내게 손수건을 건냈다.

 

“진정되면 나중에 다시 연락주세요. 라니아 씨. 협회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고마워요..”

 

앞으로 1500년, 전에는 마르니였지만 이제 내 몸은 신이니까. 분명 정신없이지내다보면 그가 출소하는 날이 올테니까. 기다릴 수 있다. 그 과정이 힘들겠지만 나는 아직 협회에 있고 프시히가 남겨놓은 것들이 있기에 생을 포기할 수 없었다. 한번 나온 눈물은 계속해서 떨어졌고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에 대한 감정이 흘러나왔다. 겨우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까닭은 프시히의 곁에있어서. 서로가 버팀목이 되었기 떄문일까. 터져나오는 설움을 막기는 힘들었고 흐느끼던 울음은 점점 커졌다. 마법으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한 뒤, 울기로했다. 금방이라도 자리를 비운것같은 그의 향수향기가 느껴져서, 내가 앉아있는 침대에도 그의 흔적이, 온기가 남아있는 것만 같아 그리웠기에. 우리가 다시 만날 그날이 올까. 150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나는 너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많은 세월을 지나온 너에게는 짧은시간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렇게라도 우리가 만나는 날이 가까워질수 있다면. 나는 언제까지고 이곳 협회에서 너를 기다릴거야.

 

‘....하랑아, 마나협회를 부탁한다.’

 

네가 마지막으로 수감실로 들어가면서 한 부탁이었으니까. 협회만은 지키도록할게, 아니. 6실이라도. 우리의 추억이 담긴 그 공간들을.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차츰 정신을 추스렸고 협회일은 금방 복귀할 수 있었다. 완전히 새로운 일이 아니었기 떄문이다. 내가 하는 일은 비슷했으니까, 차트를 읽고. 회진을 돌고. 종종 중증 환자 치료를 하고. 시간은 꽤 빨리갔다. 워낙 협회에서 하는 일이 많아 야근이 자주 있었고, 쓰러지듯 잠에 들었다. 내 거처는 프시히가 사용하던 6실을 수아쌤이 내어주었다. 일반 진료실이었던 사무실을 남는 방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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