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사건

사건번호 014

짭근친 제모플

이소이 하루키가 우츠기 노리유키와의 대련에서 승리했다.


전 호스트들이 있는 장소에서 하던 공식적인 대련에서 말이다. 하루키가 우츠기의 위에 올라타 그의 이마를 툭 건드리자, 우츠기의 눈이 커졌다. 일종의 승전보인 그 행위에 잠시 대련장엔 조용한 고요가 감돌았다. 이내 모든 소대원은 드디어 하루키가 우츠기를 이겼다며 축하해주었다. 그래, 십몇년을 넘게 배워왔는데 이제 이길 때도 됐지. 오늘은 고기 먹자. 하루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많은 사람의 얼굴에 웃음이 서려 있었다.


“뭐 어때, 우츠기도 나이가 나이잖아.”


누군가는 별 상관없다는 듯 넘겨버렸다.


“대련이야 완전히 완력 싸움이니까 이제 져도 상관없지 않아요?”


타당한 의견이었다.


“하루키만큼 진심으로 대련에 임하는 호스트도 없고, 슬슬 질 때도 됐잖습니까.”


대표적인 의견 중 하나였다. 


어차피 우츠기는 이제 현장에서 뛸 계급도 아니었고 하루키와 함께 싸울 날도 거의 남지 않았다. 그렇게 이 이슈는 사그라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며칠이 지난 후에도 우츠기의 명확한 입장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 ‘우츠기’는 나름대로 고위직이었으며 하루키는 고위직이라 하기엔 어린, 하츠토리 하지메의 인자를 물려받은 알파일 뿐이었다.


고위직, 그것도 자기 스승이었던 자를 이겨 먹은 제자라는 말이 돌았다. 어떤 이들은 하루키가 우츠기의 눈 밖에 난 게 분명하다고 수군거렸다.


옆 테이블에서 또다시 우츠기와 하루키의 이야기꽃이 한창 피어나고 있었다. 노아는 부러 그들의 옆에 탁 소리 나게 쟁반을 올려두었다.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두 사람은 놀란 표정으로 노아를 힐끗거렸다. 노아는 여전히 옆 테이블을 날카롭게 노려보며 쟁반 위에 놓인 사과주스를 빨대로 쪽 빨아 먹었다.


“우츠기가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노아는 느린 속도로 사과주스를 반쯤 다 들이키다 나지막이 물었다. 하루키는 입에 소시지를 욱여넣은 채 눈을 끔벅거리다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그게요, 음…”

“대련이 끝난 후에 우츠기랑 아무 말도 안했어?”


노아의 말에 하루키는 입술을 달싹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우츠기 님이… … 따로 부르시지 않으셔서.”


노아는 놀란 표정으로 큰일이네, 큰일이야… 하고 중얼거리더니 잠시 생각에 빠졌다. 하루키는 그 모습을 보고 괜히 풀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우츠기님께서 자존심에 상처라도 입었을까요?”

“그건 아닐거야 우츠기가 그 정도로 쪼잔하긴 해도~... 무엇보다 대련에서 쓸데없는 자존심을 세우던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럼 왜….”

“다른 점 없었어? 우츠기가 평소랑 다르게 행동하거나, 이상했다거나….”


하루키는 입을 다물었다. 노아는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며 그의 표정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창백한 흰 피부 위 왼쪽으로 올라가는 붉은 눈동자는 여전히 자신의 생각을 잘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노아는 굳이 그에게 캐묻지 않았다. 제가 말하라고 따지지 않아도 언젠가 이소이 하루키는 참고 또 참다 제 성에 못 이겨 속사정을 털어놓을 사람이었다. 노아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샌드위치를 조금씩 베어 물어 우물거렸다.


조용한 식사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하루키는 기억을 복기해보았다. 사실 그는 우츠기가 어째서 잠적했는지 아주 짐작이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다만 우츠기가 대련이 끝나고 지었던 표정이 잊히질 않았다. 우츠기는 웃지 않았다. 화나 보이지도 않았다. 다만 아주 얼떨떨해 보였다. 이 상황이 말도 되지 않는다는 듯이.


창문 밖에 이카로스가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을 본 사람처럼.


그리고 우츠기는 어째선지 슬픈 표정을 지었다. 하루키는 잔뜩 기대에 부풀어 올라 ‘봐요, 제가 이겼어요!’ 하고 말하려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점차 웃음기가 사그라들었다. 그는 우츠기를 붙잡았던 손을 놓고 어색하게 몸을 일으켰다. 습한 나무 바닥 냄새와 땀 냄새가 섞여 불쾌한 냄새가 공기 중에 퍼져갔다.


주변 사람들이 말을 한 마디씩 얹었지만 들리지 않았다.


우츠기가 왜 그런 표정을 지었을까?


왜 우츠기는 아무 해명도 해주지 않을까?


그래도 우리는 가족이고 그는 제 아버지가 아니었던가?


하루키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알아내지 못한 채로 일주일을 보냈다. 그는 워낙에 적극적이지 못한 사내라 –특히나, 노리유키와 관련되면- 그는 기다리면 우츠기가 올 것으라 생각했다. 한 번도 오지 않은 적 없었으니까, 이번에도 올 줄 알았다.


하지만 일주일 후, 하루키는 다른 사람의 입으로부터 우츠기가 다른 먼 지역으로 파견을 나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하루키는 그가 제게 한마디 언질조차 주지 않고 떠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날은 온종일 꿈을 꾸는 것 같이 붕 뜬 기분이었다. 


노아는 결국 그날 연설이 있던 하루키를 그냥 쉬게 하고 본인이 강당에 섰다. 평소 같으면 이 정도는 괜찮다며 남았을 하루키지만, 그날만큼은 무언가에 홀린 듯 집에 돌아갔다. 개인실로 돌아오자 미지근한 공기가 코끝으로 스쳤다. 그가 없단 걸 평소보다 높은 온도가 알려주고 있었다. 


그런데도 하루키는 발걸음을 옮겨 우츠기의 방 앞으로 갔다. 그의 방문을 잡고 한참을 머뭇거리다 천천히 열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왜?’


하루키는 텅 빈 우츠기의 방 앞에 서서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봤던 우츠기의 표정, 우츠기의 검은 눈빛, 점점 멀어지던 우츠기의 뒷모습까지.


생각을 거듭할수록 이해가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꼬인 실타래를 푸는 것처럼 머릿 속은 점점 더 엉켜만 갔다.




 하루키를 처음 봤을 때 그가 보통내기는 아님을 직감했다.

노리유키는 당시 고작 20대 초반이었다. 하루키는 10대 초반이었고, 막 성인이 된 사내와 사춘기에 접어들기 전 소년은 굳이 부딪히진 않았지만 가까워지진 않는 애매한 거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닮은 점이라면 사랑받지 못한 이들이란 점이었다. 집으로부터, 아버지로부터, 사람으로부터.

정갈한 식사가 연달아 나왔다. 노리유키는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조차 내지 않고 조용히 식사를 이어갔다. 그의 형과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가족이 형식적으로 식사를 하는 날엔 항상 이런 분위기가 감돌았다. 노리유키는 이 분위기가 익숙했다.

"저번에 데려왔던 그 애는 어떻게 됐지?"

"...잘 크고 있습니다."

"괜히 어린 애 하나 때문에 시간을 버리진 말고.“

"네."

"그 애가 게으름이나 피우고 도둑질 같은 건 일삼지 않고?"

"... ...네."

 하루키를 뭐로 보는 겁니까? 노리유키는 말로 내뱉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금방 일어날 자리였다. 굳이 힘을 빼지 않아도 금방 끝날 테니 조금만 참으면 됐다. 제가 그 애를 위해서 화까지 낼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걱정이 많았는데 나쁘지 않게 지내고 있다는 걸 들으니 그나마 들어줄만 하군. 우츠기 집안의 사업에 제일 집중하면 좋겠지만 뭐, 네게 큰 기대는 않는다."

노리유키는 조용히 샐러드를 젓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참깨 소스가 톡 쏘면서도 고소한 맛이 났다. 양상추는 아삭아삭했다. 고급 일식집이니 이런 간단한 것에도 신경을 쓰는 모양이었다. 노리유키는 이 모든 게 참 진부하단 생각을 하며 네, 아버지. 하고 대답했다.

체할 것 같은 식사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우츠기 님.”

“네, 하루키 군.”

“... ...면도기는 편의점에서 파나요?”

노리유키는 하루키에게 면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노리유키가 조심조심 하루키의 턱을 밀어주자 그는 매일 같이 이 귀찮은 짓을 해야 하냐며 살짝 투덜거렸고, 노리유키는 귀찮으면 이틀에 한 번만 하라고 말해주었다. 참 잘하는 짓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성실하고 선량한 하루키는 그런 꼼수는 쓰지 않고 매일매일 꾸준히 면도해서 매끈한 턱을 유지했다. 꺼끌꺼끌해지는 감각이 싫다는 게 그 이유였다.

“보통 이런 건 아버지가 가르쳐주죠?”

 여느 날 아침처럼 하루키는 노리유키와 면도를 하던 중 넌지시 물었다. 노리유키는 거울에 비친 하루키를 가만히 보았다. 하루키는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빤히보다 노리유키와 눈이 마주쳤다. 노리유키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도리질 쳤다.

“저는 형이 가르쳐줬습니다.” 

“그렇군요.”

하루키는 면도 크림을 물에 쓸어 보내었다. 노리유키는 하루키의 한마디가 어째 참 쓸쓸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해버린 것이다.

“저도 부모님과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닙니다. 뛰어난 형에 비해선 반푼이 소리를 들었고 붙임성 좋고 활발한 동생에게 또 비교를 당했죠.”

“네? 정말요?”

“아버지께서 대학에 가라하셔서 좋은 대학을 간 것 뿐, 이유도 없이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중에 이유가 생긴 것 뿐이고요.”

“누구였는데요?”

하루키가 똑바로 고개를 들고 물었다. 우츠기는 고개를 잠시 숙였다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게요. 누굴까요.”

그를 더 이상 알 수 없는 지금에는 누구라고 답하는 게 맞을까. 

“어쨌든 면도 가르쳐 준 사람은 딱히 없었겠네요.”

“...그렇군요.”

하루키는 거품을 다 닦아내고 수건으로 제 턱을 탑탑 닦아내었다. 깨끗해진 채로 그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럼 됐습니다. 저는 앞으로 우츠기님한테 더 배워가면 되죠. 우츠기 님도 제가 있으니까 가족한테 배울 수 있는 걸 물어봐도 돼요.”

노리유키는 그의 웃는 얼굴을 보며 짧게 웃음을 터트렸다. 가족이 없는 건 피차일반이네. 노리유키는 그리 생각하며 저도 짧게 웃었다. 고작 한 연구소에 사는 것만으로 좋은 관계가 될리 없었다. 같은 지붕에 살던 형제들과도 좋은 사이를 유지하지 못했던 노리유키는 그리 생각했지만 하루키와는 이상하리만큼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하루키를 사랑하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그는 순수했고, 심지가 곧았고, 정직했다. 노리유키 주변에 있던 사람들처럼 속을 알 수 없거나 약아빠졌거나, 이기적이지 않았다. 

“그를 잘 돌보고 있습니다. 그의 진짜 아버지와 다르게 말입니다.”

그렇게 말해버린 것도 어쩌면 하라다 미노루에 대한 분노보다 천대받는 하루키에 대한 분노가 더 컸다. 하루키는 태어나 처음 가져본 가족이었고 노리유키는 태어나 처음 선택할 수 있던 가족이었다.

둘은 서로가 필요했다.

노리유키는 하루키와의 만남을 복기해보다 눈을 감았다. 검은 시선 너머로 작은 아이가 웃고 있었다. 우츠기님, 이라고 부르던 어린아이, 대주교님이라고 부르며 굉장하다 말하던 가끔 값이 조금 나가는 간식이라도 먹여주면 좋아하던 아이가…. 하지만 곧이어 대련에서 이긴 사내가 떠올랐다.

어릴 때와 다르게 길어진 머리카락, 단단해진 이목구비, 어찌보면 오만한 웃음. 하루키는 한 손으로 우츠기의 양 손목을 잡아챘다. 노리유키는 하루키를 바라보다 어색하게 웃었다. 기뻐야 할 일인데 어째 기쁘지 않았다. 슬펐나? 아니다, 슬픈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어린아이가 언제 이렇게 컸더라? 이질감에서 공포가 느껴졌고, 한 손으로도 제압 가능해진 제 꼴이 혼란스러웠고, 더 제가 사랑하지 않더라도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것 같은 그가 싫었다. 두려웠다. 노리유키는 ‘하루키’라는 어린아이가 사라진 이후를 상상해본 적 없다. 그가 영원히 아이일 줄 알았다.

그와 대련할 때 한 손이 아닌 양손을 쓰기 시작했을 때, 어느 순간부터 적당히가 아니라 진심으로 싸울 때조차 느끼지 못한 감정을 그가 자신을 이겼을 때 비로소 실감해버리고 만 것이다.

하루키가 성장해버렸단 사실을.

그 사실을 온몸으로 실감해버린 노리유키는 하루키에게서 모든 애정을 거두고 싶었다. 그가 성장하는 게 무서웠다. 자신보다 훌쩍 커버려서 멀리 떠나버릴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게 두려웠다. 애정을 두고 있으면 상처를 받을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먼 출장을 떠났다. 하루키에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하루키가 조금이라도 자신을 더 미워하기 편할 것 같았다. 

혼자가 된 밤에는 차가운 침대 위에 몸을 길게 뉘어 생각했다. 그가 없어도 괜찮은 것 같다고. 한 달이란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노리유키는 타지에서 홀로 지냈지만 크게 힘들다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1소대와 떨어져 있는 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하루키에게 주던 애정도 거의 떼어냈다 확신했을 때쯤, 한 달이 지나갔다.

노리유키는 마중 나온 호스트들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가장 앞에 있는 하루키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가 자신을 봐서 순수하게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과 함께 우월감이 모두 사라지는 걸 느꼈다. 그 웃음을 보고 난 이후에야 우츠기는 깨달을 수 있던 것이다.

하루키는 단 한 번도 결핍된 적 없었다. 항상 채워지지 않는 건 자신이었다. 그는 항상 성장하고 있었다. 멈추어 있던 건 본인이었다. 자라지 못한 건, 어른이 되지 못한 건, 행복하지 못했던 건 오로지 그 자신 뿐이었다.


“우츠기 님이 보고 싶었어요.”

하루키는 우츠기와 얼굴을 마주하고 식사를 하며 밝게 웃었다. 오랜만에 우츠기가 왔기에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

“어라, 우츠기 님. 면도 안하셨어요?” 

"아, 오늘 해야겠군요.

하루키는 손을 뻗어 우츠기의 턱을 문질렀다. 우츠기는 그의 손길에 움찔, 하고 굳었다 자연스레 그의 손을 잡아 뿌리쳤다.

"티가 많이 납니까?"

 우츠기는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루키는 그의 턱을 가만히 보다 고개를 도리질 쳤다.

"아니요. 그닥."

 “당신이 면도를 하지 않았다면 티가 많이 났겠지요, 분명.”

노리유키는 그리 덧붙였다.

"우츠기 님, 면도 해드릴까요? 예전에 우츠기님께서 대신 면도하는 방법 가르쳐주고 그랬잖아요."

하하, 하루키가 애써 즐겁게 웃었다. 오랜만에 받아볼까요, 하고 말하는 우츠기의 목소리가 가벼웠다.

"하루키 군, 혹시 제모도 합니까?"

"... …너무 개인적인 질문 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요."

"안 해요…. 부끄럽네요. 원래 하는건가요?"

노리유키는 그 말을 듣고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노리유키의 의미 모를 시선이 하루키에게 꽂히자 그는 시선을 굴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해줄까요? 면도기로 하면 될겁니다."

평소 같았으면 분명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 말하는 노리유키가 어째 너무도 고요하게 웃고 있어서, 그 속내를 도저히 읽을 수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하루키는 그를 거절하기엔 너무도 순종적인 어린 아이였다.


하루키는 노리유키의 턱에 물과 면도 크림을 꼼꼼히 발라 면도기로 삭삭 밀어내었다. 일련의 과정이 끝나고 나서 우츠기는 손을 뻗어 하루키의 바지 버클을 향했다. 하루키는 당황한 태도를 감추지 못했지만 곧 바지를 내리는 그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노리유키는 하루키의 바지를 내렸다.

"자, 잠깐만요. 우츠기님. 잠깐…."

"제모, 하기로 했잖습니까."

노리유키는 뭐가 문제냐는 듯이 하루키를 바라보았다. 하루키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다 겨우 붙잡고 있던 바지를 놓아주었다. 노리유키는 그의 바지를 내리고 면도 크림을 들었다. 그의 다리 사이 물건에는 음모가 자라 있었다. 노리유키는 그 위에 물을 뿌리고 크림을 살살 발랐다. 하루키는 간지럽고 묘한 기분에 감히 흥분할 것 같았지만 속으로 성가를 불러가며 참아냈다.

"...제모는 보통 다리나…. 겨드랑이 쪽을 하지 않아요? 거기까지 하나요?"

하지만 그가 대답도 하지 않고 웃는 표정에 하루키는 더 묻지 않았다.  하지만 노리유키는 너무도 즐거워 보였다. 그의 다리 사이를 밀어내는 내내 그는 웃고 있었다. 그의 아랫도리가 민둥하게 밀어지자 하루키는 꽤 부끄럽단 생각을 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우츠기는 물로 씻어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하루키 군."

"네?"

"크지 마세요."

노리유키의 시선이 제 아랫도리에 꽂혀 있는 걸 본 하루키는 그제야 노리유키가 하고 싶은 말을 직감했다. 아버지의 앞에서 다리를 벌리고 앉은 자신과 그 사이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노리유키. 그래, 이런 자세를 보통의 부모와 자식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루키는 그의 얼굴을 더듬어 턱으로 손을 뻗었다. 노리유키의 얼굴이 들어 올려졌다. 하루키는 그의 푸른 눈과 시선을 마주쳤다.

"당신도 나도 이제 어른이잖아요."

 노리유키는 하루키의 눈을 가만히 마주치다 눈을 감았다. 하루키는 그 긴 속눈썹을 보고 아까까지 만져지던 아랫도리로 갑자기 피가 쏠리는 게 느껴졌다. 방금까지만 해도 아무 느낌이 없었는데 갑자기 후끈거리며 정신을 못 차릴 것 같았다.

하루키는 고개를 숙여 감히 자신 아버지의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퍼즐의 조각이 맞추어지듯 하루키와 노리유키의 입술이 포개어졌다.

"멋대로 커서 당신을 떠나지 않을게요. 정말로요."

하루키는 노리유키의 손을 잡고 말했다. 노리유키는 그를 끌어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당신의 어린 아이를 떠나지 말아요, …”

하루키는 노리유키의 등을 토닥거렸다. 노리유키는 아득한 걱정들이 모두 잠재워지는 걸 느껴졌다. 세상 어느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런 종류의 위로를 받겠는가. 노리유키도, 하루키도 제대로 된 아버지가 있어 본 적 없었다. 아들도 생겨본 적 없었다. 그러니 이 아버지와 아들의 최선은 이것이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짓이란 건 알고 있었다. 미련한 짓이라도 좋았다. 그의 사랑하는 아들은 영원히 그 잔을 채우려 애를 쓸 것이다. 그럼 혹시 아는가, 그 독이 부서지고 그가 더 이상 쏟아지는 애정이 필요하지 않게 될지, 그날에는 그 자체가 바다가 될지. 




‘면도’는 성장의 한 종류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크면서 당연히 털이 나고, 그걸 제모하는 방법을 알아가며 더 커가죠. 유일하게 제모하지 않는 곳은 아랫도리 뿐입니다…..

생각해보니까 개꼴린겁니다. 아랫도리를 밀어주면서 크지 말라고 명령하는 우츠노리. 가 보고 싶어서 그냥 써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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