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사건

사건번호 013

자부 짭근친

*교주 하루키X호스트 우츠기

*달새님의 커미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신의 사랑, '아토'가 시험관 속에 잉태된 건 고작 7년 전 일이었다.

7년 전 지고천연구소는 알파, 이소이 하루키와 주교, 우츠기 노리유키의 유전자를 섞어 신의 사랑과 다를 것 없는 아토의 베타를 만들기로 했다.

 

요컨데 인간을 만들겠다는 말이었다. 터무니 없는 계획이었지만 이미 인간과 흡사한 수준의 인형을 만드는데 이미 성공한 지고연은 자신들이 인간을 만들 수 있을거라 확신하는 듯 보였다.

 

"어차피 결정권은 없는거, 알지?”


이소이 하루키나 우츠기나 지고연의 윤리관을 딱히 믿는 건 아니었다.


모든 종교단체가 그렇듯 지고연도 뻔뻔한 구석이 있었다. 굳이 두 사람에게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라 생각한 면도 없잖아 있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오늘, 드디어 인공 난자에 정자를 수정시키는 것에 성공했단 소식을 들었다. 하루키와 우츠기는 7년 전 그 일에 대해 거의 떠올리지 않고 지냈기에 그 소식에 꽤 놀랐다. 지고연의 연구원, 카노는  하루키와 우츠기를 불러세우고 말했다.


"시험관 속 인공 난자에 두 분의 정자를 수정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일단 10개월만에 성인 정도의 외형을 띌테지만 그 위나 아래의 외형을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나이든 두 분과 닮은 사람이 나오겠지요.“


가장 우수한 인간이라니, 우츠기는 그 말이 꽤 오만하다 생각했다.


"현재 진행상황은 순조롭지만 꾸준히 경과를 지켜봐야할겁니다. 저희 연구진은 안정적인 '인간'이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 말한 연구원은 두 사람에게 몇가지 사진을 건네었다. 그의 외형을 예상해 출력한 것이었다. 우츠기는 흥미롭게 그의 외형 예상안을 보며 웃었다. 하루키 씨랑 나를 섞은 것 같네. 당연하죠. 유전자를 뽑았는걸요. 생명을 만든 이들치고는 참으로 가벼운 대화였다.


"완벽한 신이 될까요?"

"그렇겠죠.”


우츠기는 아무 생각 없이 묻고 돌아온 짧은 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 지금 생각해보면 틀린 질문이었다. 만약 지금 다시 한번 그런 종류의 질문을 할 수 있다면 우츠기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가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냐고.


하루키는 거의 매일같이 유리관 속에서 커져 가는 생명체의 성장을 지켜보았다. 매일, 빠지지도 않고 말이다. 우츠기는 그런 하루키를 따라 자주 보러 가려 노력했지만, 가끔 일이 너무 고된 날에는 굳이 보러가지 않았다. 그는 하루키만큼이나 그에게 관심이 있지 않았다.


"하루키씨는 저 인간이 좋나요?”


그리 물은 우츠기에게 하루키는 평소처럼 무난한 표정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그냥, 의무감입니다. 일단 어찌되었든 간에 이소이의 유전자를 타고 난거니까 내 후손이잖습니까.“


"하루키 씨랑 내가 결혼한 것도 아닌데 후손까지라고 할 게 있나요…”


우츠기는 나름 장난삼아 한 말이었지만 하루키는 가만히 시험관만 바라보았다.


“그래도 일단 생명체가 만들어진 이상, 최선을 다하고 싶을 뿐입니다. 누구와는 다르게.”


제법 책임감 있는 말이었다. 아마 그의 아비로부터 비롯되었겠지. 우츠기는 짐작하며 눈을 빙 굴렸다.


“이름은 뭘로 할건가요?”


“고민중입니다. 이름을 짓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대충 지어도 상관 없지 않아요. 뭐, 우리가 결혼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신경 쓰는겁니까. 저도 우츠기 군의 혼사를 막을 생각은 없습니다.”


하루키는 뒤를 돌았다, 걸음 소리 없이 나가온 그에 놀라서 흠칫하고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우츠기는 그의 양볼을 감싸고 눈을 마주쳤다.


꼭 토파즈를 닮은 노란색 눈-...


그는 그런 식으로 말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루키는 그게 그답지 않다 생각했다.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정보값은 그저 호르몬의 분비 일 뿐이다.


하지만 고요한 지금은 부정할 수 없이 행복한 순간이었다.




"지능이 지나치게 높아요. 특히 우뇌의 발달로 도형, 그러니 뛰어난 공간 지각 능력을 타고 날겁니다. 돌연변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건 좋은겁니까, 나쁜 겁니까?”


하루키가 물었다.


"...글쎄요. 저희 연구진들도 지금 회의 중에 있습니다. 정확한 건 어떤 생명체가 태어나든 간에 저희 지고천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이 인간을 끝까지 책임질 것입니다.“


우츠기는 그 말에 당연하지, 싶어 고개를 끄덕였으나 하루키는 시선을 빙글 굴릴 뿐이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폐기하지는 않는건가요? 실험의 변수는 일종의 실패일텐데요."


"어떤 일이 벌어져도 폐기할 예정은 없습니다. 특별한 사고가 없다면 정해진 수명, 약 93살까지 살고 자연사 할 것입니다."


"왜죠? 완벽한 인간이 아니잖습니까.“


우츠기는 하루키가 왜 저런 질문을 하는 건지 처음에 이해하진 못했지만 차츰 그의 목소리가 연하게 떨리는 건 눈치챌 수 있었다.


"처음 각서에서 완벽한 인간이든, 월등한 인간이든 상관 없이 H사에서 교육시키기로 약속했으니까요. 이 부분은 본 실험체의 담당 연구원께서 기제한 사항입니다.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면 그분께..."


"아니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 조항이 없어야한다 생각하지도 않아요.”


“이해해주셔서 기쁩니다.”


하루키는 느리게 손사레를 치며 그를 물렸다. 그의 반응에 연구원은 웃음짓고 돌아갔다. 그의 구두소리가 점점 멀어지자 하루키는 소파에 다시 앉았다.


그가 만들어진지 6개월째, 작은 아기의 것과 같았던 신체는 어느새 사춘기 소년 정도로 커 있었다.


"하루키 씨."


“공간 지각 능력이 뛰어나단 건 수학적인 재능을 갖는단 뜻일겁니다. 수학과 어울리는 단어가 뭐가 있을까요..”


“하루키 씨.”


우츠기가 한번 더 같은 말을 하자 그제서야 하루키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입니까?”


"아까 왜 그런 말을 한거에요?"


"...무슨 말을요.“


하루키는 여전히 이름 사전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우츠기는 그가 저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에 제 표정이 멋대로 굳어가는 걸 느꼈다.


"완벽한 인간이 아니면 폐기하지 않냐는 말 말이에요."


"그냥, 궁금했을 뿐입니다.”


"그런 것 치고-..."


왜 그런 반응이냐고. 제 눈을 보지 않느냐고.

우츠기는 묻지 못했다. 하루키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요만이 맴돌았다.


그는 수족관 같은 구조로 만든 인공자궁에서 태어났다. 시험관에 있는 양수와 최대한 비슷한 환경으로 구성하기 위해 물 속에서 시험관 문을 열기로 결정했다는 모양이다.


수압이 강해지지 않도록 물은 그의 키 정도로만 채우고 우츠기와 하루키는 그 수족관 앞에 앉아있었다.


시험관 안에 든 사내는 10개월 만에 인간과 같은 크기로 자라있었다.


시험관을 열자마자 그는 물 속에서 조심스럽게 두 발로 내딪었다. 처음에는 잘 걷지 못했지만 담당 연구원이 그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음을 이끌자 제법 능숙하게 걸어나갔다.


루이-담당 연구원- 이 유리창 너머로 OK 사인을 보내자 옆에 서 있던 카노 연구원이 말했다.


”거의 성공이군요. 심장 박동 정상, 혈압 정상, 손 발 중 이상 있는 곳도 없고요.“


그의 탯줄로 쓰이던 가느다란 선들이 등에서 뽑혀나갔다. 연구원은 저 자국은 곧 아물거라고 말하며 웃어보였다. 그는 물 위로 보트와 같은 것 위에 무사히 안착했다. 물에 젖은 긴 머리카락이 그의 허리 위에 착 달라붙었다. 우츠기는 그 과정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우츠기는 그에게 성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가 싫었다기보다 제 성을 싫어했다.


”그가 성을 갖고 싶어할까요?“


이소이 하루키도 마찬가지로 제 성을 좋아하지 않았다.


”물어봐야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둘 나름의 결론이었다.


하루키는 그의 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며 중얼거렸다.


물 밖으로 나온 사내의 하얀 피부가 드러나고 머리가 빠져나오자 그의 얼굴이 하루키와 우츠기의 얼굴을 절묘하게 섞은 것과 같다는 걸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둘의 유전자를 섞은 것이라고 눈치챌 수 있을 것이었다. 하루키는 그의 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며 무어라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은 하루키의 이목구비를 빼다 박은 것 같았고, 골격은 하루키의 것과 우츠기의 것을 절묘하게 섞은 것 같았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둘의 아들이란 사실을 알 정도로 말이다. 그는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 쪽에 있는 우츠기 씨, 그리고 하루키 씨가 제 유전자 제공자가 맞나요? 네. 시험관 속에서 들었습니다... 두 분께서 지어주신 제 이름은 아직 없고요. 아, 성은 괜찮습니다. 저는 성을 사용하지 않을거라서요.“


그의 손짓은 정확하게 하루키와 우츠기를 가리키고 있었다. 연구원이 그의 눈가를 닦아내자 그는 그제서야 천천히 눈을 떴다. 누군가를 닮은 새빨간 붉은 색이었다. 불온하리만큼 짙은 그 눈, 하루키는 제 것과 같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루키는 어째 불쾌한 기분을 느꼈지만 굳이 드러내지 않았다.


"몸은 처음이라 어떻게 다룰지 잘 모르겠지만 며칠간의 훈련을 거치면 어지간한 사람만큼 활동할 수 있을겁니다. 걱정했던 이상은 대부분 느껴지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는 제 몸을 천천히 움직이더니 말했다.


"그렇군요. 호흡기나 관절부분에서 위화감은 느껴지지 않나요?“


그는 가볍게 제 손목을 돌려보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곤 고개를 도리질 쳤다.


"아뇨. 평범한 인간과 같습니다.“


연구원은 차트에 무언가 슥슥 적고 보트의 줄을 당겨 지상으로 내려왔다. 하루키는 그 모습을  가만히 보다 시선을 돌렸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선택받은 부모니까요. 제 이름은 아토로 하겠습니다.“


하루키는 무언가 말하려다 멈추었다.

누구에게 말하지 못할 의문이 머릿속에 머물렀다.

감히 어떤 인간이 자신의 성을 고를 수 있던가… 그런 쓸모 없는 생각이.


아토는 며칠간의 간단한 훈련을 거치고 걷는 방법이나 사물을 쥘 정도로 힘을 주는 방법, 실제 지고연에 대해 알아갔다.


지식은 시험관 속에 있을 때 삽입했기에 굳이 다시 넣을 필요가 없었으나, 그는 가끔 도서관에 있는 책을 뒤적거렸다.


“아토 님의 실험은 성공적입니다. 지난 2주간 모든 수치가 안정적이었습니다. 경과를 지켜볼테지만 앞으로도 평범한 인간처럼 살 수 있을겁니다.”


연구원은 환하게 웃음 지었다. 그가 건넨 자료엔 다양한 실험 과정과 그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하루키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료를 읽어내렸다.


“다행이네요. 생각보다 쉽게 끝나서. 7년 전엔 이렇게 본격적으로 만들거라고 생각 못했는데 말이에요.”


그는 하루키에게 자료를 건네주었다. 하루키는 자료를 읽어보다 그의 감정인지 부분을 살펴보았다. 그의 감성적 발달 수준은 평범한 사람과 같았다.


그래, 평범하게 감정을 느낄 수 있고 기분 나쁜 날엔 짜증을 낼 수 있으며 기분 좋은 날엔 웃고 다닐 수 있는, 세상에 있는 여느 사람과도 같았다.


그 그래프를 보고 나자 하루키는 아랫배에서 형용할 수 없는 불쾌한 감각이 이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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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신은 태어난지 한 달도 되지 않아 풀리지 않은 수많은 수식과 물리학 법칙을 밝혀냈다. 우주의 미지로 알려졌던 몇가지 명제는 순식간에 쉽게 설명되었다. 몇몇 사람들 중 그를 신이라고 추앙하는 무리도 생겼다.


그는 침대에 누운 채로 눈을 슬 감았다. 그때 옆에서 큰 소리로 누군가 부르는 목소리를 듣지 못했더라면 그대로 잠들었을 것이다.


”하루키 씨. 씻고 자지 그래요. 오늘 안 씻었잖아요.“


”씻었습니다...“


"목욕을 해보란 의미에요. 요즘 기운이 없잖아요.“


우츠기는 하루키의 옷을 하나씩 벗기고 그를 들어올려 욕실 안 욕조 속에 집어넣었다. 나이 든 고양이마냥 하루키는 굳이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욕조에 들어갔다. 욕조에 하루키가 담기자 반쯤 차 있던 따뜻한 물이 끝까지 올라왔다.


"...무슨 생각하세요?"


"별 생각 안합니다.”


"하루키 님은 거짓말 할 때 볼을 만지는 버릇이 있어요.”


“...사기꾼은 못 되겠습니다, 우츠기 군.”


하루키의 웃음어린 말에 우츠기는 따라 웃음을 터트렸다.


"하루키 씨가 무슨 생각을 하는진 몰라도 그 상상들은 다 실제로 거의 안 일어날거에요. …장담하진 못하겠지만, 저는 그랬거든요.”


"일어나면?”


"음, 그럼 그건 미지수가 되겠네요.“


우츠기는 하루키의 몸에 거품칠을 하고 그의 칫솔에 치약을 짜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하루키에게 칫솔을 건네 주었다.


"하지만 하루키 씨, 당신이 만약에 모든 경우의 수를 예측해도 그 중 가장 최선의 방안을 선택하지 못한다면… 저처럼 될거에요."


"...꼭 그런 적이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하루키는 말없이 웃으며 칫솔을 입안에 밀어넣어 양치를 시작했다. 솔이 이빨을 스치며 박하냄새가 코를 찔렀다. 한참동안 말이 없던 우츠기는 하루키가 거품을 뱉을 때 쯤에야 입을 열었다.


"하루키 씨가 무슨 일을 겪었든 간에, 지금 이렇게 됐다면... 그게 최선이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만약 이게 최선이 아니라면 저는  하루키 씨를 만나지 못했을테니까.”


하루키는 입에 물을 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물을 뱉자 불투명한 흰 액체가 입 밖으로 뱉어졌다.


“저는 하루키 씨를 만났기 때문에 지금보다 최선은 없었을거에요.“


그리 말하는 우츠기를 가만히 바라보던 하루키는 입가를 닦았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우츠기는 잠시 휘청거리다 축축하게 젖은 그의 등을 끌어안고 가만히 입맞춤을 받아들였다.


"제가 잘 하고 있나요?“


하루키가 물었다. 우츠기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선 채 속삭이는 목소리가 욕실에 울려퍼졌다.


"응. 언제나요.“


두 사람의 신체가 희뿌연 연기로 가득 찬 욕실에서 천천히 희미해진다.

우츠기는 젖은 하루키를 기꺼이 끌어안았다. 욕조의 물이 천천히 식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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