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렌틸콩
“네가 그걸 왜 갚아. 내가 쓰고 싶은 데에 내 돈 쓴 건데.” “…선배 진짜 미쳤어요?” 사채빚 때문에 호스트바 웨이터로 일하는 강은재는 업소에서 우연히 사채업자 유이경을 만난다. 그런데 그가 뜬금없이 학교 선배로 나타나더니, 이상할 정도로 호의를 베풀기 시작한다. 이건 그저 돈 많은 사채꾼의 변덕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 강은
해가 진 뒤 하나둘씩 켜지던 화려한 네온사인들이 어느새 길거리를 가득 채웠다. 낮에 보는 네온등은 때와 먼지가 덮여 구질구질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밤이 되면 불타오르듯 빛나며 벌레부터 사람까지 모든 것을 끌어당긴다. 한편 쓰레기와 담배 냄새, 젊은이들과 취객들이 넘쳐나는 구도심 번화가를 벗어나 8차선 대로변으로 나오면 또다른 풍경이 나왔다. 일반 빌
낯선 향 다음으로 도착한 것은 베이지색 코트를 입은 남자였다. 그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들어섰다. “네, 박 실장님. 그러면 R2룸 비워주세요. 지금 보낼게요.” 그 남자는 말하는 도중에 강은재의 어깨를 가볍게 누르고 눈을 마주쳤다. 아마도 가만히 있으라는 뜻 같았다. 그리고 남자가 말하는 ‘박 실장’은 이 호스트바의 마담이었다. 마담이랑 아는
“화석이 있군 그래. 1학년 강의를 또 듣고 있나? 내 얼굴이 그렇게 보고 싶던가?” 출석을 다 부른 뒤 교수가 나름대로 농담을 했다. 강의실에 작게 웃음이 터졌다. 강은재는 뒤를 흘긋 돌아보았다. ‘유 실장’은 입꼬리가 조금 올라가 있었다. 이 강의실에 ‘화석’이 몇이나 있는지는 몰라도 유 실장이 화석인 건 확실했다. 그의 이름은 ‘유이경’이었다
등나무 벤치에서의 대화 이후로, 강은재는 유이경이 입고 다니는 코트와 비슷한 옷자락만 봐도 신경이 곤두섰다. 그가 자신이 하는 일을 떠벌리고 다닐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자기에게 빚을 졌다는 말도 반쯤 농담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의 대화가 ‘뭘로 받을지 생각해 보겠다’로 끝나버린 탓에, 유이경을 보기만 하면 그가 대체 뭘 달라고 할지가 신경쓰
강은재는 수업을 마치고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들어오자마자 가방을 벗어놓고 작은 침대에 낑겨 눈을 붙이려는데, 유이경이 했던 말이 첫 글자부터 마침표까지 빠짐없이 재생되었다. 그는 갖은 애를 쓴 끝에 겨우 잠들었다. 그런데 저녁 10시가 되어 눈을 뜨자, 그 순간부터 유이경이 한 말이 도돌이표를 그리며 다시 머릿속에 울렸다. 샤워를 할 때도, 버스를 타고
폭탄주는 더럽기도 더러웠지만 양이 상당했다. 그러나 유이경은 숨 한번 돌리지 않고, 또 단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그걸 한 번에 마셨다. 강은재를 비롯한 모두가 크게 오르내리는 그의 목울대만 멍청하게 쳐다보았다. 자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 상황을 모르던 테이블에서도 이쪽을 보고는 수다를 멈추었다. “뭐야, 뭔데?” “저 선배가 과대 흑기사 해준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