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더 블루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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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더 블루 외전 : 파스텔 블루 3

주술회전 고죠 사토루 네임리스 드림

*소장용 결제

졸업한 후의 일상에 대해 총평하자면 솔직히 무어라 말 얹기조차 숨이 가쁘다. 이전보다 더 바쁘면 바빴지, 덜 하진 않았던 거 같다.

나는 늘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여전히 여유를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쏟아졌던 과제. 시험.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한 아르바이트. 인간관계를 쌓고 또 유지하기 위한 사사로운 모임. 그 틈에서 나는 고죠 사토루의 애정 어리지만, 못마땅한 시선까지 견뎌냈다. 아주 정신이 없었다.

나의 시간은 그런 하루에 하루가 더해져 속절없이 흘렀다. 시곗바늘은 이따금 소란하고 또 이따금 평온하게 도는가 싶더니 1년은 아예 없는 것처럼 지나갔다. 지금 내 나이는 스물하나였고, 고죠 사토루는 스물이었으며. 우리가 숨 쉬는 계절은 또다시 겨울이었다.

 

  

고민은 일주일 전부터 했다.

가진 게 많은 사람에게는 무엇을 선물하면 좋을까. 그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못 가진 게 없는 사람에게는 무엇을 선물하면 좋을까. 며칠 동안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고민했지만, 역시나 어려운 일이었다. 남자친구의 생일 선물을 사 보는 것도 처음인지라 더 그랬다. 이런 일에 있어 나보다는 야마자키가 나을 거 같아 연락했더니 그 애 역시 어려워했다. 그냥 걔가 좋아하는 브랜드라던가⋯⋯. 말해주었지만, 눈앞이 더욱 캄캄해질 뿐이었다. 나는 고죠 사토루가 평소에 걸치고 다니는 것들을 기억하긴 하나, 명품을 잘 모르는 나도 한눈에 알 정도로 터무니없이 비싼 것뿐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고민에 야마자키는 문득 의아해하며 물었다. 작년에는 어떻게 준비했느냐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작년 생일은 챙기지 못했으니까. 사실 고죠 사토루의 생일을 작년에 처음 알았다. 그마저도 걔가 전화로 ‘내 생일이 언제냐고? 음⋯⋯ 오늘이야.’라고 말해서 알았다. 선물은커녕 함께 있어 주지도 못했다는 뜻이다.

맞대는 머리가 하나에서 둘로 늘고, 둘에서 셋으로 늘어도 결론은 쉬이 나지 않았다. 끝에 가선 그냥 정성을 보이는 거로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정성이란 것도 역시 돈에서 나오고 돈으로 보이는 법이 아닌가. 결국, 나는 백화점을 둘러보며 내 재정 형편에 비해 조금 무리하기로 했다. 어차피 뭘 해도 그동안 내가 고죠에게 받은 거에 비해 새 발의 피도 안 되는 수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 그럼 못 만나?”

[하하. 내 생일인데 왜 이렇게 아쉬워해.]

우리에게 뜻밖의 변수가 발생한 건 하루 전이었다. 나는 내일 우리가 함께할 거란 사실을 전제로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고, 내 이야기를 잘만 듣던 고죠 사토루는 대화 속에서 위화감을 찾아냈다며 저는 그날 가족 모임이 있다고 전했다. 친인척까지 다 모여서 큰 파티처럼 한다고. 그럼 나는 “가족 모임?” 하고 반문하였다가 금세 얼굴이 홧홧해졌다. 그러니까 나는 조금⋯⋯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작년엔 양쪽에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으나, 올해는 고죠 사토루가 제 생일을 당연히 나와 함께 보낼 거란 자만심. 착각했다고 생각하니 뭔가 부끄러워져서 대놓고 기죽은 소리를 내자 스피커 너머로 웃는 소리가 들렸다.

[왜? 선물 준비했어?]

“응⋯⋯.”

[응? 준비했다고?]

“그것도 그렇지만, 그냥⋯⋯ 같이 있고 싶었어.”

고죠는 단 한 번도 내게 물질적인 것을 바란 적이 없었으므로. 선물을 준비했다는 내 말에 예상치 못했다는 듯이 말끝을 올렸지만, 나는 단언컨대 선물로 골머리 앓던 시간이 아까웠던 건 아니었다. 나름 정성껏 고르긴 했지만, 객관적으로 보았을 땐 그리 대단치 못한 선물이니 그런 것쯤이야 언제라도 전달할 수 있었다.

다만, 고죠 사토루의 특별한 날에 함께 하지 못한다는 사실만은 좀 아쉬웠다. 작년의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사라졌다는 것도.

나는 신발 앞코로 바닥을 툭툭 건드리며 여전히 잘 모르는 그쪽 세계에서 이루어질 성대한 파티와 나를 비교해보았다. 솔직히 비교선상에 놓는 것 자체가 우스울 정도로 내가 너무 작았다.

“어쩔 수 없네⋯. 그럼-”

[뭐가 어쩔 수가 없어.]

아쉽긴 했으나, 거기서 그치기로 했다. 곧 죽어도 얼굴을 봐야겠다고 애처럼 떼쓰고 싶진 않았다. 여태까지 그래 본 적도 없었다. 세상엔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일이 많이 있고, 나는 이미 그걸 몇 번이나 겪어 보았다. 애초에 고죠 사토루는 가진 게 많은 사람이다. 내게 늘 최선을 다했지만, 내가 늘 우선일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다고. 그 정도로 아쉬움을 정리하려는데 고죠 사토루가 내 말을 대번에 끊어냈다. 조금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말투이면서도 한 편으론 나를 달래는 것처럼 굴었다.

[싫다고 하지 않았잖아, 내가.]

“시간이 돼?”

[정리되는 대로 만나러 갈게. 시간이야 내면 되지.]

그리고 나 말이야. 자주 말하고 있지? 쉬운 걸 어렵게 생각하지 마. 나 고죠 사토루인걸. 오만하게 덧붙이는 문장이 가슴께를 간지럽게 했다. 자상하게 웃는 소리가 마저 넘어온다. 나는 고죠의 선물이 담긴 쇼핑백 끄트머릴 한 번 쥐었다가 놓았다.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부푼 마음이 쪼그라들지 않은 지도 어느덧 3년째였다.

 

 

***

 

 

약속 시간이 되어 도착한 건 고죠 사토루 본체가 아닌 예정보다 늦을 것 같다는 메시지였다. 나는 은연중에 예상했던 일이라 괜찮다는 답장을 보내고 케이크를 도로 냉장고에 집어넣었다. 진심으로 서운하진 않았다. 그저 못 오게 되었다는 메시지가 아님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렇게 1시간이 더 지났을 무렵.

여전히 새로 온 연락은 없다. 역시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것처럼 단순한 가족 모임이나 생일 파티 따위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지만, 고죠 사토루는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니 다른 걱정은 안 했다. 다만, 곤란한 건 내 사정이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 아날로그 시계를 쳐다봤다. 일정한 고저의 초침 소리가 눈꺼풀을 무겁게 눌렀다. 앉아서 공부라도 할까 싶었지만, 이미 선택지를 정한 몸은 책상 앞에 앉길 거부하며 축 늘어졌다.

휴대전화 홈 키를 한 번 누르면 배경 화면이 깨끗하다. 이번에도 새 메시지는 없다는 뜻이다. 그럼 좀⋯⋯ 자도 괜찮겠지. 그 자문자답을 끝으로 나는 앉은 몸을 길게 누워 편한 방향을 찾아 뒤척였다. 어느 정도 자세가 고정되면 두 눈을 감고 몸에 힘을 뺐다. 째깍. 째깍. 일종의 수면 음악과 같은 초침 소리에 완전히 기대는 순간 의식은 빠르게 멀어진다. 하루가 무척이나 길다. 다시 눈 떴을 땐 고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깼어?”

그리고 걔는 늘 나의 바람을 현실로 가져오는 사람이었다.

원치 않게 각인된 경험과 감정은 무섭다. 나는 예전부터 잠결에 누군가가 나를 건드리면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곤 했다. 께름칙한 꿈이 겹치거나 심할 땐 비명을 지른 적도 많았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비명까진 지르지 않았지만, 어깨를 건드리는 손길에 놀라 흠칫하며 눈을 떴다. 빛에 익숙지 못한 시야가 새까맣게 물들면 잇새로는 오랜 습관처럼 “히-” 하고 조막만 한 음절이 샜다.

“나야.”

그러나 뺨을 어루만지는 손길이 분명하게 말한다. 이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고.

상냥하면서도 단호한 두 음절이 혼탁한 시야를 서서히 맑게 했다. 비 갠 하늘에 먹구름이 걷히듯 온종일 기다린 얼굴이 망막에 맺힌다. 고죠 사토루가 왔다. 인지한 순간 나는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고죠의 목을 잽싸게 껴안았다.

“자기야.”

“⋯⋯.”

“자기야?”

제대로 듣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걔한테 매달리는 것에만 급급했다. 두 팔로 두꺼운 목을 꼭 껴안고 탄식하듯 숨만 내뱉었다. 대답 대신 목을 껴안은 두 팔에 힘을 주었더니 목 안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뜨끈한 손이 등으로 슬금슬금 기어올랐다.

“선배.”

“⋯⋯.”

“더 세게 안아.”

“⋯⋯.”

“그래야 어디 안 가지.”

이미 숨 막히게 끌어안았다고 생각하는데도 고죠는 아직 여유 있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충분히 그러고 있다며 한쪽 어깨에 얼굴을 묻고 비비적대자 걔가 커다란 손으로 내 등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러더니 그게 아닐 거라며 이번에는 저가 되려 나를 당겨 안았다. 두 팔에서 힘이 절로 풀리고 입에서 헛숨 터지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걔는 마치 나를 제 몸의 일부로 만들겠다는 것처럼 강하게 껴안았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덕분에 조금 붕 떠 있던 정신은 또렷해진다. 먼저 시작하긴 했으나, 나는 아프다는 말을 다섯 번이나 하고 나서야 겨우 그 품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해방감과 함께 헛기침하는 입술 위로 고죠가 장난치듯 제 입술을 부딪쳐왔다. 걔는 잠시만⋯⋯. 하고 밀어내는 손바닥에다가도 쪽쪽 소리 나게 입술을 붙였다가 뗐다.

“다 깼어. 나 다 깼어⋯⋯.”

“알아. 그냥 애교 부리는 거야. 내가 너무 늦어서.”

고죠 사토루는 매번 미안하다는 말을 이렇게 한다. 선선히 받아주지 않고는 못 하게끔. 내 생각을 충분히 하면서도 조금은 강제성이 있다.

소파 아래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걔가 내 양쪽 발목을 붙잡았다. 오래 기다렸지. 물론 그렇게 물어봐 놓곤 내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무릎에 머리부터 콩 기댔다.

“다들 날 안 보내주려고 해서 큰일이었어.”

“그야 네가 주인공이니까.”

“최대한 다 뿌리치고 왔더니⋯⋯. 이번엔 차가 막히네.”

“⋯⋯.”

“선배 혼자 두는 거 싫어하는데. 그치.”

지나간 한때를 정확히 겨냥하는 듯한 발언에 부끄러워진다. 얘는 이런 와중에도 나를 놀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는 언제 적 이야길 꺼내는 거냐며 애꿎은 고죠의 머리만 쓰다듬었다. 결 좋은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를 부드럽게 스치는 느낌은 마치 잘 관리한 동물 털을 만지는 듯했다. 고죠가 말없이 키득거리더니 내 손을 겹쳐 잡곤 그대로 깍지 꼈다.

“슬슬 보여줘. 준비한 거.”

“아.”

“저쪽 방에 있어? 계속 쳐다봐서.”

웃으면서 하는 말에 쿡 찔린다. 나도 모르게 눈길이 계속 그리로 갔던 모양이다.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고죠가 턱을 약간 치켜들곤 입술을 동그랗게 모았다가 쭉 풀었다. 그 모습은 저 혼자 허공에 키스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뻔뻔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

“얼른.”

갈 거면 제게 뽀뽀라도 하고 가라는 뜻이었다. 오늘따라 뭘 많이 요구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늘은 고죠 사토루의 생일이니. 얘가 바라는 대로 해주는 게 나도 속 편할 터였다. 나는 순순히 상체를 숙여 호선을 그리는 입술 위로 짧게 입을 맞추고, 걔는 이내 ‘말 잘 듣네.’ 하는 얼굴로 깍지 낀 손을 놓아주었다.

내가 준비한 선물은 팔찌였다. 발 아프게 백화점을 돌아다니면서 이것도 골랐다가 저것도 골랐다가 종국엔 모 명품 브랜드의 팔찌 하나만을 구매했다. 같이 간 지인들에게 이만하면 괜찮을 거 같다는 통과 사인도 받았다.

그러나, 나는 방에서 나옴과 동시에 쇼핑백을 뒤로 감추고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자세히 보니 고죠 사토루가⋯⋯. 그러니까 걔가 한껏 멋을 낸 차림이었기 때문이다.

선물을 고르기 전부터 예상을 못 한 건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내가 준비한 선물은 고죠 사토루 앞에서 훨씬 더 약소하게만 느껴졌다. 내가 지금까지 주었던 것 중에선 가장 비싸다고 할지라도 얘가 가지고 있을 물건 중에서는 가장 초라할 것 같다는 확신이 섰다. 얘가 이걸 찬다고 해서 제대로 보이기나 할까. 그런 걱정에 허리 뒤로 손을 꼼질대고 있자 앉은 자리에서 고개만 갸웃하던 고죠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러고 있으면 나더러 뺏어가라는 거야?”

“아니⋯. 생각해 보니까 정말 별거 아니라서.”

“에~. 그럴 리가 없잖아.”

고죠는 능청 떨며 팔을 뻗었다. 나는 안 된다며 잽싸게 몸을 틀어 피했다. 안 된다니. 소리쳐 놓고도 어처구니없다. 갑자기 후회가 물밀듯 하는 탓이다. 돈을 조금 더 쓸 걸 그랬나. 원래 사려던 선물이 따로 있는데, 역시 그걸 살 걸 그랬나. 덜컥 겁을 먹고 못 주겠다며 고개를 도리도리 가로저으니까 고죠가 황당함을 피력하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일종의 대치 상황에서 고죠의 입술이 먼저 피식하고 바람 빠지는 소릴 냈다.

“있잖아. 작년 포키 데이 기억나? 그때 나한테 만들어줬지. 수제 포키. 엄청 귀여운 거.”

“⋯⋯그래. 너는 일류 파티쉐가 만든 초콜릿을 줬고.”

“그걸 아직도 못 먹었어. 아까워서.”

“⋯⋯.”

“별거 아닌 건 없다는 뜻이야.”

당신이 주는 거잖아. 고죠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금 오른손을 내밀었다. 와중에도 당시 먹으라고 준 걸 아깝다는 이유만으로 1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 가만 놔두고 있었다니. 이걸 감동이라고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아무튼 나는 그러고도 몇 번을 더 꾸물거리다가 마지못해 백기를 들었다. 허리 뒤에 감춘 쇼핑백을 쭈뼛쭈뼛 건네자 걔는 당연히 그 자리에서 풀어 보았고 정말이지⋯⋯.

“예쁘네.”

⋯⋯말마따나 저가 더 예쁘게 웃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기존에 차고 있던 팔찌 -모르는 사람의 눈에도 상당한 고가로 보였다- 를 빠르게 풀어서 대충 바닥에 휙 던지더니 내가 선물한 것을 대신 차는 모습까지 보였다. 진심으로 마음에 드는데. 이렇게 예쁜 거 주면서 왜 그랬어? 화사하게 웃으며 그런 말을 하니 그제야 안도감이 스민다. 동시에 괜한 민망함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냥 서 있는 고죠를 뒤로하고 이러다가 네 생일이 지나겠다며 서둘러 케이크만 꺼냈다. 최대한 바쁜 척 테이블 위에 케이크를 올리고 중앙에 초를 꽂는데, 어느새 뒤따라온 걔가 뒤에서 나를 덥석 껴안아 왔다. 내가 자리에서 굳으면 어깨를 안았던 고죠의 팔이 천천히 아래로 미끄러지더니 끝으론 내 양쪽 손목을 누르듯 쥐었다.

“부끄러운 건 알겠는데. 그만 도망가. 같이 있고 싶다고 했잖아.”

“도망간 거 아니야, 더 늦기 전에 너 이거. 케이크부터 해주려고.”

“이거 고를 때, 내 생각 했어?”

내 말을 가로챈 나직한 음성이 달아오른 귓바퀴를 따닥따닥 에워싼다. 고죠의 기다란 손가락은 내 손등을 툭 툭 은근하게 간질인다. 내 신체 일부를 한 번씩 건드릴 때마다 손목에 찬 팔찌로 후덥지근한 시선이 붙는다. 성냥개비를 쥔 다른 손에 절로 힘이 실렸다.

“그게 제일 궁금해, 나는. 당신이 내 생각을 했는지.”

“그럼 누굴 생각하니⋯⋯. 네 선물인걸.”

햇수로 3년을 봐오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고죠 사토루에 대해 모르는 면이 잔뜩 있어서. 얘가 왜 당연한 그게 가장 궁금한 건지. 내게 어떤 의도로 묻는 건지. 솔직히 이해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대답하자면 진심으로 네 생각뿐이었다. 오늘 하루를 같이 하고 싶다는 말도 진심이었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오르면서도 내 뒤를 버젓이 지키고 서 있는 고죠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어 솔직하게 대답했더니 걔가 내 한쪽 어깨에 얼굴을 묻고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잠깐만, 사토루. 얼른 소원⋯⋯.”

“고백해줘.”

“뭐?”

고죠가 단숨에 촛불을 끄고 나를 돌려세웠다. 나는 소원을 제자리에서 대놓고 말하는 사람도 처음이고, 그걸 어딘가에 존재할 신이 아닌 내게 들어 달라고 말하는 사람도 처음인 지라. 순간 넋을 놓았다가 파라핀 냄새가 코끝을 스칠 때쯤에 정신 차리고 되물었다.

고죠는 다시 한번 또렷하게 말했다.

“소원 빌고 있어. 고백해달라고. 그때처럼.”

“그걸 보통⋯ 나한테 비니?”

“신까진 필요 없어서. 믿지도 않고.”

만면에 짓궂은 미소가 피어있으면서도 말투는 더없이 진지해서 이게 장난인지 아닌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그때처럼이라니. 울어 달라는 건가? 당황스러운 마음에 입술만 벙긋거리고 있자 고죠가 살살 보채왔다. 선배. 얼른. 곧 자정이야. 날 부르는 호칭 또한 다시 그 시절처럼 선배로 돌아갔다. 이건⋯⋯ 무엇보다 진심이란 소리겠지. 생각해 보면 얘는 늘 약속을 잘 지키는 만큼 말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었다.

가끔은 그게 사람을 조금 버겁게 하지만⋯⋯.

“생일⋯ 축하해.”

“⋯⋯.”

“⋯⋯좋아해.”

나는 이런 고죠 사토루를 좋아했다.

어쩌면 이런 고죠 사토루라서 많이 좋아했다. 테이블을 짚은 손바닥이 기묘한 긴장감으로 인해 촉촉이 젖어간다. 그때처럼 애타는 눈물은 없을지라도 감정은 여전했으리라 믿는다. 고죠 사토루를 향한 내 감정은 여전히 어리숙하고, 여전히 벅차다고. 조금도 낡고 변모하지 않았다고. 이윽고 다음 대사를 기억하며 읊으려는 순간이었다.

고죠가 손을 뻗어 내 뒷머리를 받쳤다. 그 애의 입매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휘었다.

“응. 나도.”

이어질 문장은 묵음이 되어 서로의 입속으로 영원히 사라졌다.

생일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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