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더 블루 (完)
유료

파우더 블루 5

주술회전 고죠 사토루 네임리스 드림

*소장용 결제

운동장 끝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공을 보았을 때. 차마 피할 생각은 못 하고 그저 맞으면 좀 아프겠거니 했다. 나는 덮쳐올 충격을 대충이나마 가늠하며 눈을 꼭 감은 채로 목을 움츠렸는데, 그 순간 누군가의 손에 의해 몸이 당겨질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당기는 힘이 어찌나 드센지 그 반동에 다리가 절로 엉키고 상체부터 기우뚱했다. 그러나, 그대로 주저앉기 직전이었던 몸뚱어리를 거뜬하게 지탱하는 팔이 있었다. 나는 마치 뒤에서 끌어안듯 내 허리에 단단히 둘린 타인의 팔목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꺾었다.

“다시 물어보겠는데. 맞는 거 좋아하는 거 아니지?”

짓궂게 웃으며 오늘도 할 말과 못 할 말을 가리지 않고 내뱉는 녀석.

고죠 사토루였다.

 

완연한 가을이다.

독립한 지도 어언 3개월째. 한 번의 큰 변화를 맞이한 내 삶은 이후로도 변화의 연속이었다. 그중 가장 뚜렷한 변화는 학교 안팎으로 고죠 사토루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거였다. 나는 매사에 선하고 무결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양심이 아주 바닥인 인간도 아니기에. 어느 정도 걔한테 맞춰가려고 노력하곤 있었는데, 매번 그 노력을 내 쪽만 하고 있으니 영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언젠가 한 번 제 입으로 스스로가 기특하지 않으냐던 고죠 사토루는 나를 배려하는 척 결국은 제멋대로인 인간이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시작된 고죠 사토루의 밑도 끝도 없는 호의(인 척하는 무언가)나 어딘가 모르게 작위적인 느낌이 드는 살가움 따위에 좀처럼 익숙해지지도 못했다. 별로 원하지 않는 탓이었다. 물론 큰집 어른들의 학대에서 벗어날 수 있게끔 도와달라곤 했지만, 바란 적도 없는 물질적인 것을 끊임없이 끌고 오는 고죠를 몸소 겪을 때마다 곤란하고 난감했다. 괜찮아. 필요 없어. 사양할게. 극단적으로는 싫다고까지 말해도 걘 귓등으로도 듣질 않았다. 들어주는 척이나 하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 결과, 그저 끌려다닐 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고죠 사토루의 주도권 아래 쇼핑을 하고 외식을 하고 영화관을 가고 전시회를 간다. 새로 생긴 디저트 전문점에 가거나 산책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버스킹을 구경할 때도 있고 어떤 날에는 서점에서 반나절을 보내기도 했다. 처음 해보는 일보단 처음이 아닌 일이 훨씬 많은데도 상대가 상대인지라 새삼 모든 게 낯설게만 느껴지는 일들을 새롭게 쌓아가고 있었다. 나는 늘 앞서 거절 의사를 분명하게 밝히고도 정신 차려보면 결국 걔 손에 붙잡힌 채로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매번 같은 질문을 들었다.

‘그래서 싫었어?’

그건 의외로 칼 같은 대답을 꺼내기가 망설여지는 질문이었다. 직전까진 싫었다고 대답하려다가도 막상 직전의 직전에는 또 온몸에서 거부 반응을 일으킬 만큼 싫었나? 라며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고민을 거듭하다가 끝내 아니라며 고개를 살래살래 가로젓고 마는데, 그에 따른 고죠의 반응도 한결같았다.

‘거봐. 또 안 싫었지?’

사실 생각해 보면 그 앞에선 더는 작은 거짓말조차 하지 못하는 내가 가장 문제였다.

“이기면 소원 들어줄게.”

오늘은 게임인가.

종례가 끝나자마자 고죠에게 붙잡혀 도착한 곳은 근방에서 가장 규모가 큰 오락실이었다. 걔는 내게 시커먼 총을 건네며 입꼬릴 말아 올렸다. 우리 앞에 있는 건 어느 게임장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좀비 게임이었는데, 몇 번 해본 적은 있었다. 의외의 인물은 내가 아니라 고죠였다. 대놓고 편견이긴 하지만, 솔직히 잘난 가문의 도련님과 썩 어울리는 그림은 아니었다.

“너 이런 거 해본 적은 있어?”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설마 없을 거 같아?”

“⋯아니면 됐는데.”

“사실 없어.”

진짜 뭐 하자는 건지⋯⋯.

매일 같이 겪어도 의중을 알 수가 없다. 또 날 놀리는구나 싶었다. 어처구니없단 표정으로 쳐다보자 걔가 히죽거렸다. 그러면서 자기는 어차피 뭐든 잘하니까 경험 따윈 상관없다며 여유를 부렸다. 나는 그 자신만만한 태도 앞에서 별다른 대꾸 없이 묵직한 총을 두 손으로 들고 좀비 떼들이 등장하는 화면만 응시했다. 소원이란 두루뭉술한 내기가 그리 솔깃하진 않았기 때문에 의욕이 엄청나게 샘솟지는 않았다. 솔직히 내가 이길 수는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간 경험을 미루어 보았을 때, 나도 썩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다. 하기 싫다고 말해봤자 아마 안 통할 거다. 운이 좋으면 이기는 거고, 지면⋯⋯. 모르겠다. 고죠 사토루는 늘 내 예상 밖에 있는 인간이니 나중에 가서 생각해야지 지금 생각해봤자 아무런 쓸모도 없다. 고죠가 내 뺨을 검지 등으로 톡 건드리더니 피식 웃었다.

“잘해야 돼?”

“그건-”

“내가 이기면 선배 울 수도 있어.”

가히 등줄기가 다 서늘해지는 말이었다. 농담이래도 섬뜩했다.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자세를 잡았다. 형형색색의 불빛이 들어오는 기계 안으로 달그락, 달그락 동전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시작하기 직전에 슬쩍 곁눈질로 살펴본 고죠는 양손으로 총을 잡은 나와는 다르게 한 손만 사용할 모양이었다. 이거 한 손으로도 할 수 있는 거였나⋯⋯. 초심자치곤 지나치게 침착하고 느긋한 모습이라 거기서부터 조금 기가 죽었다.

쾅.

시작하자마자 폭발음과 함께 좀비 떼가 몰려들었다. 방아쇠를 쉴 틈 없이 당겼다. 쏜다. 장전한다. 다시 쏘고. 또다시 장전한다. 나는 억지로 시작한 것치곤 착실하게 게임에 몰입하고 있었다. 스테이지가 넘어갈수록 승패나 내기 따윈 생각나지도 않을 정도였다. 어느새 남은 목숨이 한 개인 걸 확인하고 총을 흔들어서 총알을 장전했을 때.

문득 위화감에 손이 멈췄다. 고개를 갸웃했다. 여태 놓치고 있던 게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재빨리 화면에서 시선을 떼고 옆을 돌아봤다.

“뭐야?”

고개를 돌리자마자 고죠와 눈이 마주친다.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챈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걔는 총을 들고 화면이 아니라 날 보고 있었다. 나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기계음이 난잡한 오락실 안에서도 그 특유의 웃음소리만큼은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총을 제자리에다가 내려놓고 미간을 찌푸렸다. 고죠는 내 표정이 일그러지거나 말거나 태연하게 게임 오버 문구가 뜬 화면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아쉽지 않은 톤으로 아쉬운 소릴 했다.

“날 보면 어떡해? 죽었잖아.”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너 언제부터 그러고 있었던 건데.”

“음⋯⋯. 처음부터?”

“장난하니.”

“이쪽이 더 재밌을 거 같아서. 실제로도 그랬고.”

걔는 너무 화내지 말라며, 그리고 애초에 내가 얼마나 진심으로 했으면 자신이 시작하자마자 죽은 것도 모를 수가 있냐며 능청스레 굴었다. 나는 딱히 이런 일로 화가 난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고죠 사토루의 손바닥 안에서 제대로 놀아났단 생각은 들어서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나는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고죠를 한심해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뻐근하게 당겨오는 오른쪽 팔목을 주물렀다. 팔 아프지. 걔는 게임기에 몸을 슬쩍 기대며 퍽 너그러운 음성을 떨어뜨렸다.

“힘 좀 빼지 그랬어. 이제 그럴 필요도 없으면서.”

“⋯무슨 소리야?”

“게임까지 열심히 하면 어떡해?”

“⋯⋯.”

“그러다가 병나.”

가만히 듣고 있자니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어이가 없었다. 정말 웃기지도 않는 소리였다. 나더러 지면 울 수도 있다고 한 사람이 누군데.

 

 

***

 

 

‘그러다가 병나.’

고죠 사토루의 말은 이따금 저주처럼 작용한다.

이불을 끌어안은 채 몸을 뒤척였다. 뒤척이면 뒤척이는 대로 목 안에서부터 앓는 신음이 폭발했다. 어제 고죠와 헤어지고 집에 들어온 후부터 몸이 으슬으슬한 게 꼭 감기라도 올 것 같아 미리 약을 먹어두고 잤건만, 나는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하고 앓아눕고 있었다. 밭은 숨을 색색 몰아쉬다가 몸을 다시 반대로 뒤척였다. 이젠 헛구역질은 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속이 메스껍긴 매한가지였다.

“선배.”

뜨끈한 귓속으로 익숙한 음성이 닿았다가 멀어졌다가 했다. 침대 한쪽에서 무게감이 느껴지더니 곧 흐릿한 시야에 고죠 사토루가 잡혔다. 걔는 이미 누운 상태에서도 기운 없이 축 늘어지는 내 상체를 힘으로 일으킨 뒤, 침대 헤드에 기대게끔 하곤 처방받은 약과 물컵을 내밀었다. 나는 어지러운 와중에도 군말 없이 그것을 받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그런 나를 줄곧 지켜보던 걔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팔짱을 꼈다.

“왜 병원까지 다녀왔는데 맥을 못 추지?”

“괜찮아⋯⋯.”

“안 괜찮은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건 선배 재주고.”

그렇게 말하는 고죠는 약 5시간 전에 이곳으로 들이닥쳤다. 집에 처박혀 있겠다던 내가 온종일 연락이 안 돼서 왔다고 했다. 걔는 불만스러운 티를 가감 없이 드러내며 나타났지만, 곧 온몸을 벌벌 떨며 헛구역질까지 하는 나를 보곤 약간은 당황한 듯했고, 앉아 있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나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수액과 영양제까지 달아주더니 그만 가도 된다는 만류에도 함께 오피스텔로 돌아와 지금까지 자릴 지키고 있었다.

‘혼자 사는 사람이 제일 서러울 때가 아플 때라던데.’

‘⋯⋯.’

‘왜 말을 안 했어?’

나는 열 기운에 젖어 몽롱한 정신상태로 걔가 쏟아내던 말들을 다시금 떠올린다. 말본새를 기억해보면 딱히 뭐 하나 내가 걱정돼서 하는 말 같진 않았는데 와중에도 왜 말을 안 했느냔 그 말만큼은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묻길래 헛웃음이 나왔다. 왜 안 했냐고⋯⋯. 글쎄. 누구한테 뭐라고 말했어야 했을까. 나는 상체를 미약하게 들썩이며 침을 삼켰다. 어질어질한 머릿속에서 독립하기 전까지의 일상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껏 살면서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아주 어린 시절엔 바쁜 아빠를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숨겼고,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에는 아프단 티를 내도 무시당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몸살은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참 지독하게도 앓았지만, 그때마다 혼자서 견뎠다. 말하는 방법도 몰랐고, 알아도 말할 대상이 없으니 할 수 있는 게 그뿐이었다. 반복해서 겪어도 좀처럼 무디어지지 않는 외로움과 통증을 애써 모르는 척해야만 조금이나마 덜 비참한 기분으로 지낼 수 있었다.

그런 내게 고죠 사토루는 미련하다며 비아냥거렸다. 듣고 보니 인정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아플 땐 사람이 평소보다 배는 나약해지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 말 자체가 너무나 사실이라 그랬는지 들었을 때 별로 기분 나쁘지도 않았다. 그게 불과 두 시간 전의 일이다. 떠올리자니 나도 모르게 마른 입술 끝에서 버석한 웃음이 샜다. 고죠는 그런 날 빤히 보다가 저도 싱겁게 입꼬릴 터뜨렸다.

“갑자기 막 혼자 웃네. 혹시 아파서 미친 거야?”

“너 진짜 못 하는 말이 없다⋯⋯.”

“선배는 못 할 말이라도 해보는 게 낫고.”

솔직히 할 말이 있었는데 더 받아칠 기력이 없었다. 고죠와 대화를 주고받을수록 현실과 감각이 점점 멀어지고 정신이 더욱 멍해지는 게 열이 떨어지긴커녕 더 오르는 듯했다. 게다가 나는 필사적으로 아닌 척하고 있으나, 실은 누가 나 아픈 걸 이렇게 보고 있다는 게 낯설어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병원에서부터 계속 고죠를 보내려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마냥 귀찮아서 그러는 게 아니었다.

너 이제 가도 돼. 괜찮아. 가라니까. 언제 갈 거야.

그런 식의 말을 아마 열두 번 즈음했고 전부 무시당했다. 고죠가 내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준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내가 아는 고죠 사토루는 타인의 의지로 결코 꺾을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니까.

더운 숨만 폭폭 내뱉다가 마른기침이 나올 듯하여 손등으로 입을 가렸다.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리고 몇 번 콜록댔더니 마침내 기운이 바닥난 듯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노곤함은 비우고 비워도 금세 또 밀려온다. 약도 먹었으니 슬슬 다시 누워야 할 거 같았다. 자고 있으면 알아서 가겠지. 나는 허벅지 위에 가지런히 올려 두었던 손으로 시트를 짚었다. 그 순간 열이 바짝 올라 있는 왼뺨에 냉기가 닿았다.

“읏.”

뺨 한 면을 감싸는 찬 기운에 놀라서 헛숨을 들이킨다. 가슴팍이 크게 한 번 오르내렸다. 당황한 나는 눈을 크게 뜨고 힘이 조금도 들어가지 않은 손으로 고죠의 손목을 붙잡았다.

“뭐, 뭐 하는 거야.”

그렇다고 한들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전하는 말이 뭐 얼마나 대단한 힘이 있을까. 고죠는 물러날 기색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대답 없는 녀석의 커다란 손이 내 뺨에서 자연스럽게 목 언저리로 내려가 그 부근을 잠잠히 짚었다. 이상한 감각에 한 번 더 끙끙 신음하자 고죠가 다시 뺨을 찬찬히 어루만졌다.

“고죠.”

“⋯⋯.”

“으응⋯.”

낯설다. 혀끝에서 번져나가는 소리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다정한 손길도. 입으로는 띄엄띄엄 그만하라고 말하지만, 어쩐지 진심으로 뿌리치지는 못하겠고. 고개는 자꾸만 차가운 손바닥을 파고들려는 듯이 안쪽으로 기울었다. 마치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행위를 달갑게 여기는 것처럼.

달아오른 뺨과 목선을 느릿하게 매만지는 손길이 싫으면서 싫지 않다. 좋으면서 좋지 않다. 무서우면서도 편안하다. 열을 빼앗기는 기분이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만큼 이상해서 어깨선을 타고 소름이 돋는다. 규칙적인 백색소음과 작게 앓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오는 공간 속에서 단순하고 기묘한 행위가 기약 없이 지속된다. 점차 눈을 감고 뜨는 속도가 느려진다. 어느새 하지 말라는 말도 늘어진다. 구겨져 있던 미간이 서서히 펴질 즈음 내내 침묵하던 고죠가 제 손길만큼이나 부드러운 음성을 휘둘렀다.

“시원하지.”

“응⋯.”

“좋아?”

“모⋯르겠는데.”

“하하. 그럼 알 때까지 계속 이러고 있을까?”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보다도 할 수 없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싶었다. 그저 본능적으로 커다란 손바닥에 뺨을 바짝 기대며 곧 감길 듯한 두 눈만 끔벅거릴 뿐이었다. 안정감 있는 목소리가 차분하게 이어졌다.

응? 선배. 대답해 봐.

“당신이 다시 눈 떴을 때도.”

“⋯⋯.”

“나 계속 여기 있을까.”

고죠는 그 언젠가처럼 또다시 정해진 대답을 내게 종용하며 지그시 눈을 맞춰왔다. 언뜻 보이는 입꼬리는 장난스러웠지만 날 담는 파란 눈동자엔 흔들림이 없었다.

아플 때 누군가 곁에 있어 주는 일. 가장 서럽고 외로운 순간에 혼자 남겨두지 않는 일. 누군가는 괜찮냐고 물어봐 주고, 나는 괜찮다고 대답해주는 일.

영원히 결핍된 상태로 썩어들어갈 거라 치부했지만 실은 줄곧 바랐을지도 모른다. 간절히 원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한 걸음만 내디디면 그 결핍이 충족되려고 한다. 늘 바란 적 없던 것들만 가져다주던 고죠 사토루가 내게 기꺼이 그렇게 해주겠다고 말한다. 물질적 보상보다 위대한 정신적 보상. 빈 감정이 채워지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마침내 입술은 움직였고.

“응. 그럴게.”

심장 박동과 비슷한 낮은 웃음소리가 온몸으로 다닥다닥 들러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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