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더 블루 (完)
유료

파우더 블루 2

주술회전 고죠 사토루 네임리스 드림

*소장용 결제

어린 목덜미를 잡아채던 우악스러운 손길. 둔탁한 소리. 벽지와 바닥에 이리저리 튀던 핏방울. 마지막으로 나를 감싸 안았던 아빠의⋯⋯.

현실로 도망치듯이 눈 뜬다. 보이는 건 푸르스름한 새벽 천장.

나는 입을 크게 벌리고 서둘러 불규칙한 호흡을 가다듬었다. 악몽의 잔상이 남아서 안 봐도 하얗게 질렸을 얼굴이 안정을 갈구하며 몹시 일그러졌다. 심장 뛰는 속도가 무척 빨랐다. 오감을 타고 느껴지는 모든 게 비현실적이었다.

그렇게 마른 입술을 한참 벙긋거리다가 보면 몸이 점차 안정에 접어드는 것을 느낀다. 손끝, 그리고 발끝. 이내 흔들리는 시선을 내리깔고 간신히 손가락 하나만 까딱할 수 있는 팔을 내려다봤다. 날갯죽지에 힘을 줄 때마다 한숨 같은 신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간밤에는 잘 모르겠더니⋯⋯.

지금은 온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달리 거창하게 표현할 말이 없는, 그저 평범한 가정이었다. 원하는 걸 전부 가질 순 없었지만, 그래도 웬만큼 모자람 없는 형편에서 아빠와 단둘이 살았다. 내가 때때로 엄마의 빈자리를 알아차려도 크게 슬프다고 느끼지 않을 만큼. 그렇게 둘만으로도 우리는 참 단란하게 지냈다.

아빠는 무난하게 좋은 아빠였다. 잘한 일이 있으면 아낌없이 칭찬해주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 엄하게 다그치는. 직업 특성상 늘 바빴지만, 어린 딸이 올바른 환경에서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이따금 섬세함이 부족한 탓에 어설픈 모습을 보여주긴 했어도. 너무 바빠서 나를 혼자 두는 시간이 많았어도. 우리가 함께 있을 때만큼은 내게 단 한 번도 소홀한 적 없었다. 함부로 대한 적도 없었다.

우리 아빠는 나쁜 사람들 혼내주는 사람이에요!

그 커다란 손을 꼭 붙잡고 동네를 걷다가 어른들을 마주칠 때면 버릇처럼 그런 말을 했다. 너희 아버지 경찰인 거 너한테 골백번은 더 들었다는 어른들의 웃음에도 어린아이의 자랑은 그칠 줄 몰랐다. 나는 그만큼 아빠가 나의 아빠라는 게 좋았다. 장래 희망에 아빠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적을 정도였으니 말 다 한 셈이다. 얼마나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아빠와 함께 있을 때면 행복이 아주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반대의 불행은 늘,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계획적 범죄. 보복 살해. 칼부림. 범인은 범행 직후 도주하였으나 인근 지역에서 덜미를 붙잡혀⋯⋯.

듣기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단어의 나열. 그 기막힌 이야기들은 바리케이드가 칭칭 감긴 주택의 익숙한 문패에서부터 이어진다. 가지각색의 얼굴로 수군대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울었던가, 울지 않았던가.

강력계 형사였던 아빠가 6년 전에 검거한 범인은 출소한 지 한 달 뒤, 자신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아빠와 그의 딸인 나를 노렸다고 진술했다. 단출해도 화목하기만 했던 가정을 찢고 들어온 흉포한 칼부림은 하나뿐인 가족의 죽음이라는 처참한 결과를 내 앞에 들이밀었고, 고작해야 당시 11세였던 나는 절망적인 현실이 믿기지 않음에도 그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한순간에 둥지를 잃은 어린 새라는 표현이 썩 잘 어울리겠다. 아빠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도 내 삶은 순탄치 않았다. 나는 꽤 긴 시간을 너도나도 책임지기 싫어하는 어른들의 혓바닥 위에서 돌아다니다가 종국엔 등 떠밀리듯 오랫동안 왕래가 없던 큰아버지에게 맡겨졌다. 그러나 가족이란 울타리로 묶여 있으면서도 왕래하지 않았던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라. 나는 내게 주어진 최소한의 의식주만을 누리며 있는 듯 없는 듯 살았고.

“선배.”

그래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날 싫어하는 사람들이 나를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지.

“우연이야.”

“알아.”

“우연이라니까.”

“왜 자꾸 강조하니. 알겠다고 하는데.”

“알겠다고 하는데 안 믿는 얼굴이라.”

고죠는 그렇게 말하며 내 손에 들린 책을 가볍게 빼앗아 들더니 대충 아무 책장에나 꽂아 넣었다. 그걸 내가 도로 빼내려고 하자 그 손을 툭 걷어내며 저지하기까지 했다. 또 어느 부분에서 마음이 상한 건지 알 수 없다. 결코 좋게는 안 보이는 심보에 인상을 찡그리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기대지 마세요!> 라는 안내 문구를 무시하고 책장에 기댄 고죠가 느긋하게 고개를 꺾어 날 쳐다봤다.

지난날 좋고 싫음의 기로서 굳이 선택하자면 날 싫어하는 쪽에 가깝다고 고백했던 고죠 사토루는 더는 나와 상종하지 않을 거란 예상을 뒤엎고 이후로도 틈만 나면 내 주변을 맴돌면서 전과 다를 바 없이 행동했다. 마치 그날 학생회실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내가 너 하나쯤 싫어하는 게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냐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그런 고죠 사토루를 이해할 순 없었지만, 결과적으론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말해봤자 내 입만 아플 거고, 말한다고 해도 들을 녀석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였다. 어쨌든 서로 부딪혀 온 시간이 있는지라 나도 내 나름대로 걔를 대하는 방법을 터득해나가는 중이었다. 예전만큼 고죠의 언행 하나하나에 신경 쓰며 열 올리지 않기나. 일정 부분에 대해서는 그냥 체념하기 같은 거.

“선배.”

그래도 지금처럼 정말 아무 때나 아무 일로 시비를 걸어올 땐 마음의 여유를 잃는다. 나는 걜 따라서 맞은편 책장에다가 등을 기댔다. 우리는 이제 마주 보게 되었다. 일부러 비스듬하게 피하던 눈을 마주치자 묵묵히 일자를 유지하던 고죠의 입꼬리가 만족스럽다는 듯 휘었다.

“심심하니?”

“오늘 스구루가 결석했거든.”

“⋯⋯내가 알아야 할 일은 아니잖아.”

“심심하단 뜻이야. 선배가 물어봤잖아.”

“나랑 이러는 건 재미있고?”

“없진 않지.”

“나 싫다며.”

“좋진 않고.”

사고방식이나 마음 따위가 맞지 않는 인간 둘이 말을 주고받으려니 영 시답잖은 대화만 이어졌다. 와중에도 질질 끌려가는 사람은 나라는 게 어처구니없을 뿐이었다. 하지만 굳이 네 탓을 해서 뭐 하겠니, 그냥 내가 여길 괜히 왔지. 그런 생각을 하며 조용히 탄식할 무렵이었다. 내내 가만히 있던 고죠가 한 손으로 제 턱을 감싸 쥐고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선배.

“어디 아파?”

그러더니 별안간 뜬금없는 질문이 날아들었다. 천진한 음성에 오른쪽 손가락이 절로 움찔했다. 그렇다, 혹은 아니다로 판가름 날 단순한 질문이었지만, 아무래도 상대가 상대인지라 답하기에 앞서 질문을 하는 의도는 무엇인지. 그리고 대답했을 때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에 대해 먼저 생각하게 됐다. 친절이나 걱정 따위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건조한 어투에 섣불리 입을 떼지 않고 있으면 걔는 여유가 묻어나는 낯짝과 달리 나를 기다려 줄 생각이 없는지. 이번엔 바지 양쪽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물었다.

“아프냐고.”

“⋯아니.”

“안 아파?”

“그래. 안 아파.”

“그래?”

메아리 같은 대답 뒤로 늘어진 침묵이 날 몹시 불편하게 했다. 내게 무슨 대답을 바라는 건지는 모르겠고, 솔직히 알고 싶지도 않지만, 아니라는 대답에도 계속해서 되묻는 꼴을 보니 제 딴에는 또 뭐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음⋯⋯. 미묘한 비음만 줄줄 흘리던 고죠가 혀를 내어 입술을 쓸었다. 나를 내려다보는 표정은 이제 마냥 웃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어려웠다.

“그렇구나.”

알맹이 없는 대화에도 에너지는 분명하게 소모된다. 내 기분은 착실히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이 대화를 이어갈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고죠 사토루에게 시간을 빼앗기고 있었다. 손해 보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더는 이 애와 대면하고 싶지 않다는 결과를 도출해냈다. 이에 서둘러 자리를 옮기려고 발을 떼는 순간이었다. 얄궂게 키득대던 고죠가 손을 뻗어 내 한쪽 팔을 잡아당겼다.

과연 예상 밖의 행동이었다. 놀랄 틈도 없이 이끄는 방향대로 힘없이 딸려 간 나는 고죠의 품에 안겨지기 직전, 잡히지 않은 나머지 팔로 책장을 짚으며 아슬아슬하게 불상사를 모면했다. 당황과 황당을 동시에 느낀 심장이 뭍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팔딱였다. 헉. 숨을 몰아쉬며 올려다본 얼굴이 능청스러웠다. 피식하는 의미심장한 숨소리가 머리 위에서 발끝으로 가만가만 떨어졌다.

“팔.”

“⋯⋯.”

“아픈 줄 알았어. 착각했네~.”

고죠 사토루의 말은 대부분이 천진난만한 음성으로 감춘 흉기다. 나는 몸 안쪽에서부터 쿵 하는 기이한 소리를 듣는다. 어정쩡하게 무너진 몸을 신경질적으로 바로 세우는 내내 토할 거 같은 기분이 몰아쳤다. 배려 없이 잡아당겨진 오른팔과 어깨가 욱신거렸다. 나는 고죠를 매섭게 노려봤지만, 실은 알고 있다.

“⋯⋯알았으면 좀 놔 줄래.”

아픈 건 그의 탓이 아니었다.

 

 

***

 

 

큰아버지에겐 외아들이 있다. 이름은 히로토. 나이는 나와 동갑이지만, 진학한 학교는 다르다.

히로토는 공부를 잘했다. 어릴 때부터 천재 영재 소리를 듣더니만, 중학생 때부터는 전교 1등을 놓쳐본 적이 없었다. 녀석의 키워드를 대충 나열해보자면 성실하고, 착하고, 모범적인. 부모님 속깨나 썩인다는 질풍노도의 시기도 표면상으론 무던하게 지나간 히로토는 그야말로 큰아버지와 큰어머니의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자식이었다. 어딜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그런 자식 말이다.

그러나, 내게 히로토는 좀 달랐다. 개새끼. 어쩌면 개보다도 못한 새끼. 순한 양의 탈을 쓴 교활한 뱀. 나는 녀석의 순하고 맑은 인상 뒤에 숨겨진 시커먼 폭력성을 알고 있다.

처음엔 신체 일부를 밀치거나 툭툭 건드리는 거로 시작했다. 미움은 쉽게 전염되는 감정이라 제 부모님도 날 투명 인간 취급하니 걔 역시 내가 어지간히도 거슬리나보다 싶었다. 그래도 처음엔 손찌검이라고 해 봤자 적당히 참을 수 있는 수준이었으므로 군말 없이 감내했다. 건드리면 건드리는 대로 조금 싫은 내색은 했지만, 열이면 열 전부 침묵했다.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는 기회만 있으면 언제라도 날 내보내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었기에 애지중지하는 아들에게 큰소리 한 번 쳤다가는 꼼짝없이 쫓겨날 거 같아서 그랬다.

하지만 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다. 히로토의 폭력성은 날이 갈수록 짙어졌다. 이제는 단순히 재미 삼아 건드린다는 수준이 아니었다. 머리나 뺨을 건드리기도 했고 발길질도 서슴없었다. 아마도 학업 스트레스를 폭력으로 푸는 듯했다. 문제는 그 대상이 사람이라는 것과 그 사람이 나라는 것, 그리고 제 부모가 그걸 은연중 알면서도 묵인한다는 거였다.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해도 문제인 폭력을 그 이유조차 없이 받아냈다. 도망쳐야겠다거나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은 늘 생각으로만 그쳤다. 현실적으로 제대로 된 보호자가 없는 미성년자의 독립이 어떻게 가능할 수가 있을까. 내겐 도움을 요청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그러니 버텨야지. 졸업하기 전까지만 버텨야지. 어차피 내가 성인이 되면 가족으로서, 어른으로서 책임은 다했다며 내보낼 그들인 게 뻔했다.

“⋯⋯.”

와이셔츠 소매 단추를 풀어서 조심스럽게 걷어 올린다. 팔목 가득 시커먼 피멍 자국이 보였다. 낮에 고죠가 건드렸던 오른팔이 특히 심했다. 간밤에 몸을 웅크린 방어 자세로 두들겨 맞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애써 괜찮다며 참고 있지만, 실은 어깨며 팔이며 근육이 놀란 것처럼 작은 움직임에도 큰 통증이 일었다.

‘팔.’

‘⋯⋯.’

‘아픈 줄 알았어. 착각했네~.’

‘⋯⋯알았으면 좀 놔 줄래.’

‘응. 당연히 그래야지.’

나는 낮의 일을 떠올리며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도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얼굴에 상처가 남은 날엔 마스크로 가렸다. 한여름날 다리에 상처가 남으면 긴 바지를 입었고, 팔이면 겉옷을 껴입어가며 학대 사실을 감추었다. 오늘처럼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엔 하복 대신 춘추복으로 바꾸어 입어 멍 자국을 가렸다. 집에서 사랑받는 자식인 척은 안 해도 결코 미움받고 있단 티를 내진 않았다. 그러니 생각할수록 고죠의 눈썰미가 소름 끼쳤다.

습관처럼 입술을 깨물었다. 초조함이 부풀었다. 고죠 사토루가 판타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초능력자가 아닌 이상 겉으로 드러난 외상만으로 그 자세한 내막까진 알 수 없을 텐데 왜인지 모르게 불안했다. 끝에 가서 자신이 착각했다는 둥 모호하게 마무리 지은 말조차도 그가 고죠 사토루이기 때문에 오히려 꺼림칙하게 다가왔다.

물론 내 가정 환경은 결코 열려서는 안 될 판도라의 상자가 아니다. 알려지면 치명적일 약점 또한 아니지만,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알려져서 좋을 일도 아니었다. 밝혔다가 더 큰 일이라도 당하면 낭패가 아닌가.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로 보복이란 단어는 늘 무서웠으니 차라리 숨기는 게 나았다.

⋯⋯젠장. 원치 않는데도 어쩔 수 없이 머리통에 고죠 사토루만 가득 차오른다. 답답함에 애꿎은 손톱을 괴롭히고 있으면 책상 위에 올려 둔 휴대전화가 부르르 떨었다. 지잉. 지잉. 지잉. 연달아 세 번 울린다.

발신자는 고죠였다.

 > 오늘은 안 가니까

> 보고 싶어도

> 기다리지 마

나는 반갑지 않은 발신자의 헛소리 가득한 메시지에 미간을 좁히다가 굳게 닫힌 학생회실 출입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당최 헛웃음도 나오질 않는다. 고죠 사토루는 평소 자신이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에 대해 자각이 없는 게 분명했다. 아니면 일부러 내 속을 뒤집으려고 이러는 걸지도 모른다.

도대체 내가 누구를 보고 싶어 하고, 누구를 기다린다는 건지. 착각도 자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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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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