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더 블루 (完)
유료

파우더 블루 1

주술회전 고죠 사토루 네임리스 드림

녹다 남은 눈 by 잔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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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용 결제

여기서 사람이 죽었다면서? 세상에. 뭘 좋은 일이라고 옆 동네에서 구경까지 오고 그래요? 아니, 내가 또 이 동네에서 오래 살았었잖아. 나 참⋯⋯. 들어보니까 죽은 양반이 경찰이라던데. 어휴, 말도 말아요. 내가 진짜 그 양반만 생각하면 마음 안 좋아 죽겠어. 사람 참 좋았는데. 내 말이! 하늘도 무심하지. 그 좋은 사람을 왜 그렇게 빨리 데려갔나 몰라. 제 피붙이 하나만 달랑 남겨두고⋯⋯. 애만 불쌍하게 됐죠.

그 어린애가 자기 아버지 죽는 걸 눈앞에서 봤다잖아요.

“서.”

고저 없이 툭 던진 말이 단조롭게 뻗어나간다. 나는 마치 건널목 차단기처럼 한쪽 팔을 뻗어 문제의 녀석을 가로막는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그 몸에는 섣불리 손끝 하나 대지 않는다. 보다 예전에 아무것도 모르고 저 팔을 붙잡았다가 매몰차게 내쳐진 기억이 있어서다.

“없네.”

눈짓으로 꿈틀. 턱짓으로 까딱.

있어야 할 것의 부재가 눈에 띈다. 허전한 가슴팍을 무심히 가리키면 숨소리 섞인 조소가 뒤따라온다. 그러나, 이 또한 익숙한 일이다. 처음에야 좀 기분 상하지, 막상 무뎌지면 별것도 아니다. 나는 동요하지 않는다. 절대 동요하지 않고 고죠 사토루의 다음 행동만을 예상한다. 얘는 아마 이다음에 웃는 듯 마는 듯 오묘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다가 순진한 척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그리고

“선배는 왜 맨날 나만 잡아?”

⋯⋯예상 적중. 이 상습범아.

“네가 맨날 명찰을 안 하고 오니까.”

“킥킥. 그깟 명찰이 뭐라고 매번 이러지?”

그러게. 도대체 그깟 명찰이 뭐라고 매번 이럴까. 그건 오히려 내가 묻고 싶다. 나 역시 어떤 상황이든 대충 마무리 지을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은 사람이다. 내가 나를 조롱하는 듯한 웃음을 보고도 물러서지 않는 이유는 감정이 없어서도, 오기를 부리는 것도 아니란 소리. 학교 관계자들도 대놓고 부담스러워하는 ‘그’ 고죠 가문의 도련님을 일개 학생인 내가 편하게 여겨서 그런 건 더욱이 아니고.

그저 의무가 있어서였다. 교칙 어긴 학생 명단을 생활지도부에 넘겨야 할 의무가.

“어차피 내 이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고죠.”

“그것 봐.”

아무튼 고죠 사토루는 나한테 기준치 이상으로 부담스럽고 성가신 인간이 맞다. 지금도 일부러 시선을 빗겨둔 채 말하고 있건만, 쓸데없이 허리를 숙여 가며 나와 눈을 맞추려는 점이 그렇고.

“그만해.”

내가 곤혹스러워할 것을 빤히 알면서도 미형의 얼굴을 거리낌 없이 밀고 들어오는 점 또한 마찬가지.

“그만.”

제멋대로 거릴 좁혀오는 타인의 행동은 늘 불편하다. 나는 질색하며 고개를 뒤로 내뺐으나, 고죠의 입매는 내가 걜 붙잡은 순간부터 시종일관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 태도가 볼수록 얄밉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지겹다고 해야 할지. 어쨌거나 오늘도 내 힘없는 부정의 말과 연약한 열 손가락만이 작은 수첩을 억세게 쥠으로써 달갑지 않은 이 상황을 감내하는 중이었다.

“그만 좀⋯⋯!”

“응. 그만할게.”

한 차례 경고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 꼭 청개구리 같다. 매번 이런 식이니 좋은 감정이 생길 리도 없다. 점차 부담스러워지는 거리를 견디다 못한 내가 고갤 홱 돌리면 고죠는 그제야 샐쭉 웃으며 구부정한 허릴 바로 세웠다.

“봐주는 거야?”

“⋯가서 서.”

“매정해!”

매정하긴 누가⋯⋯.

잇새로 짜증스러운 한숨이 흘렀다. 웃기지도 않는다. 가벼운 농담으로 여기기에도 마뜩잖은 소리였다. 나는 능청스러운 낯짝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이 아예 없진 않았으나, 웬만한 말은 속으로 삼키는 게 더 익숙한 사람인지라 오늘은 이쯤에서 그치기로 하고 손을 휙 휘저었다. 존재만으로도 진 빠지는 고죠 사토루와 이른 아침부터 입씨름하고 싶지도 않았다. 불필요한 대화는 최대한 끊어내는 게 좋은 법. 물론 그 지론은 얘한테만 해당하는 건 아니었다.

“야.”

하지만 한번 말해서 들으면 서로가 편할 텐데 얘는 그렇지 않아서 자주 문제가 된다. 고죠 사토루는 그만하고 가라는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서서 날 쳐다보기만 했다. 나는 다시 한번 내 뒤로 줄지어 선 아이들을 가리켰다. 못 들었니. 가서 서라고. 재차 말하자 굳이 일을 두 번씩 하게 만든 고죠 사토루가 퍽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러더니 얌전히 그쪽으로 가는 척 경로를 틀어 나랑 가장 가까이에 서 있는 남학생을 건드렸다.

“비켜.”

“⋯네?”

“아. 실수.”

“아, 네⋯⋯.”

“뒤로 가.”

“⋯⋯예?”

보고 있으면서도 모를 일이다. 기이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황당하단 눈망울로 고죠 사토루를 올려다보는 남학생의 심정은 곧 내 심정이 되었다. 쟤가⋯⋯. 지금 뭐 하는 거야? 목적이 불분명한 행동을 일삼는 녀석에게 또 한 번 질리는 사이, 타깃이 되었던 1학년은 쭈뼛쭈뼛 자리에서 비켜나 맨 뒤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나는 미간을 구김으로써 고죠에게 무언의 해명을 요구했지만, 방금까지 1학년이 서 있던 자릴 차지한 걔는 그런 날 향해 오른손을 흔들기만 했다.

‘열심히 해.’

비뚜름한 미소가 눌어붙은 입 모양은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

 

 

어쩌다 고죠 사토루와 얽히게 되었을까. 자문해보지만 사실 지금 와서 그게 그리 중요한 건 아니다. 당사자인 나조차도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점은 과정보다 결과에 맞춘다. 이미 내 반경 안에는 고죠 사토루가, 고죠 사토루의 반경 안에는 내가 있다는 결과.

이따금 언론에도 노출되는 유명 가문의 막내 도련님이 유학길에 오르지 않고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교에 입학한다는 소문이 돌던 날. 그 장본인이었던 우리 학교는 깨나 들썩였다. 교무실부터 교실까지. 너도나도 나서서 한마디씩 말을 얹는 작태가 꼭 도떼기시장 바닥과 비슷했는데, 듣다 보면 다들 고죠 사토루의 이웃사촌쯤 되는 거 같았다.

그런 식의 온갖 소문을 뒤집어쓰고 입학한 고죠 사토루의 실물은 1년 전 강당에서 처음 보게 되었다. 걔는 그쪽에 일절 관심 없던 나마저도 잠시나마 시선을 빼앗길 만큼 소위 말하는 태가 달랐다. 전교생이 똑같은 교복을 입고 있는데도 혼자만 뭔가 달라 보였고, 맨 뒤에 삐딱하게 서 있을 뿐인데도 그곳이 마치 강당의 중심처럼 느껴졌다. 솔직히 세상만사 지루하다는 듯이 하품이나 쩍 하며 따분함을 줄줄 흘리는 얼굴이었지만, 뭐로 보고 어디로 보나 잘 먹고 잘 자란. 귀한 도련님티가 났다.

‘야, 아우라가 다르긴 다르다. 그치?’

중학교 때부터 친구인 야마자키가 내 텅 빈 옆구리에 뾰족한 팔꿈치를 딱 붙이고 속삭였다. 나는 아프니까 찌르지 말라는 말 빼고는 한마디도 얹지 않았으나, 실은 내 생각도 그 애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때도 고죠 사토루와 나 사이에 이렇다 할 접점은 없었다. 접점 같은 게 굳이 필요치도 않았을뿐더러 나는 걔한테 남들만큼 관심이 없었고, 걔 주변을 떠도는 소문에도 거의 문외한처럼 굴었다. 일단 학년부터 다르니까 마주칠 기회조차 흔치 않았으며 야마자키가 한 번씩 이슈를 물어다 주어도 관심이 없으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쉽게 말해 고죠 사토루는 내 존재를 아예 모르고 나는 걔를 알지만, 모르는.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는 말이다. 문제의 그날이 찾아오기 전까진.

문제의 그날이라고 함은.

오늘처럼 학생회 간부인 내가 선도부장을 대신하여 그 역할을 도맡았던 날을 말한다. 사실 선도부라고 해 봤자 거창한 일을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여느 학교와 마찬가지로 교칙에 어긋난 복장이나 지각한 아이들의 이름을 적어 넘겨주면 되는 일이었는데, 일 자체는 앞서 말한 것처럼 그냥저냥. 간혹 네가 뭐라도 되느냐는 식의 따가운 눈총을 받긴 했지만,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라서 참을만했다.

‘잠깐⋯⋯.’

고죠 사토루를 보기 전까진 분명 그랬다.

그날 녀석의 가슴팍엔 명찰이 없었다. 그런데도 걔는 마치 제 주변에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선도부원들을 지나쳐서 앞만 보고 걸었다. 과연 여러 사람을 껌벅 속아 넘어가게 하는 당당함이었다. 나 역시 그 뒷모습만 멍청하게 좇다가 뒤늦게 정신 차린 케이스였다. 나는 뛰다시피 걸어가서 다급하게 고죠의 팔을 붙잡았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화근이었을지 모르겠다. 내 행동의 대가를 빨갛게 물든 손목으로 돌려받을 줄은 꿈에도 몰라서.

‘⋯⋯.’

그저 아니꼽단 눈빛이었다고 설명하겠다. 네 주제에 감히 누구 몸에 손을 대느냐고. 내게 직접적으로 그렇게 말한 건 아니었지만, 대충 고죠 사토루의 눈에서 내 눈으로 읽히는 말이 그러했다. 이에 순간 주눅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나는 홧홧한 손목을 매만지며 애써 표정을 가다듬었다. 찰나에도 어찌나 억세게 잡혔는지 피부 위엔 손자국이 다 선명했다.

“선배.”

⋯⋯그러니까. 정말 ‘어쩌다’ 이렇게 됐지.

회상과 전개가 일맥상통하지 않으니 꼭 다문 입술 사이로 앓는 소릴 흘려보낸다. 부자연스러운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건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선배.”

가볍게 늘어지는 목소리가 신경을 긁었다. 지금뿐만이 아니라 고죠 사토루와 함께 있으면 항상 그런 편이었다. 그날 이후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이 애와 자주 한 프레임 안에 갇혀 있었고, 그건 마치 우리 사이에 큰 사건이 있었는데 통으로 편집된 것처럼 아주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선배.”

“그만 좀 불러.”

펜을 쥔 손에서 힘이 풀렸다. 인상을 찡그리고 수정 테이프로 틀린 부분을 그었다. 말로는 선배, 선배 하지만 조금도 귀염성 없다. 살갑지 않은 그 음성을 반복적으로 듣는 건 보통 이상으로 괴로웠다. 종국엔 그만 좀 부르란 말이 반은 애원하는 투로 나갔다. 마지못해 고개를 들면 고죠 사토루가 턱을 괸 채로 나를 보고 있다. 그 아래엔 1시간째 종이 쪼가리 한 장 없었다.

학생회실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건 학생회만의 소소한 특권이다. 나는 1학년 때부터 학생회 활동을 했기 때문에 야간 자율학습도 매번 그곳에서 했다. 교실보다 덜 답답하고, 감독 교사도 없어 비교적 자유로운 탓이었다. 자고 싶으면 자도 되고. 뭘 해도 눈치 보이지 않고. 처음엔 일종의 스터디 그룹처럼 학생회가 전부 모여서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다들 과외다, 학원이다, 바빠서 작년 2학기 때부턴 거의 나 혼자만 남았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학생회실에 고죠 사토루가 찾아왔다. 뒤늦게 의식하기 시작한 야마자키의 말에 의하면 교내 활동은 물론 수업조차도 잘 듣지 않는다던 걔는 2학년이 되자마자 뜬금없이 누군가의 추천을 받아 학생회에 들어오더니 자꾸만 내 시선 끝에 걸리곤 했다. 나는 고죠 사토루가 내뿜는 특유의 분위기도 그렇지만, 걜 볼 때마다 내 손을 쳐내던 모습과 서늘했던 눈빛 따위가 떠올라서 영 불편함을 감출 수가 없었는데. 정작 걔는 내 앞에서 그 일은 기억도 안 나는 사람처럼 굴었다.

야자는 저녁 식사를 해결하고 6시 30분부터 시작한다. 고죠 사토루는 그보다 항상 8분 늦은 시간에 도착해서 내 맞은편에 자리를 잡는다. 되도록 매주. 또 매일. 그 행동에 내가 의문을 드러내는 건 타당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게 고죠 사토루는 공부하지 않는다. 이따금 영어나 숫자, 경제 용어처럼 보이는 단어가 쓰인 문서를 훑긴 했지만, 보통 열에 아홉은 지금처럼 가만히 앉아 공부하는 나를 감상하기만 했다.

“넌 공부 안 해도 되니.”

“안 해도 잘하니까.”

“그렇구나⋯⋯.”

“⋯⋯.”

“⋯⋯그럼 그냥 가는 게 안 낫니?”

“선배는 나한테 할 말이 ‘가.’ 밖에 없어?”

무디게 물었다고 생각했으나, 예상외로 날카롭게 받아치길래 그만 입을 다물었다. 고죠는 다른 후배들과 달리 내게 존댓말을 쓰지 않았지만, 그건 이젠 신경 쓰이는 부분도 아니었다. 오히려 날 아랫사람 대하듯 행동하면서도 꼬박꼬박 선배라고 불러주는 게 감지덕지할 지경이었다.

제게 할 말이 가란 말밖에 없느냐며 서운한 척 고개를 좌우로 까딱이는 고죠가 달리 나한테 기대하는 말이라도 있는 건가? 싶지만, 솔직히 나로선 알 수도 없는 데다가 알 바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관심이 답이겠거니와, 나는 다시 영어 지문으로 눈을 돌렸다. 머릿속에 밀어 넣어야 하는 건 영어 단어지, 결코 고죠 사토루가 아니니까.

“안 궁금해?”

“안 궁금해.”

“뭐가 안 궁금한데?”

“뭐든 안 궁금해.”

나는 계속해서 눈길을 주지 않고 대답만 했다. 그런 내 태도가 거슬렸는지, 아니면 대답 자체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손끝으로 책상을 툭툭 두드리던 행동이 일순간 뚝 멈추었다. 겨우 작은 소음 하나 사그라들었다고 공간은 지나친 적막에 휩싸인다.

“선배.”

고죠가 나지막이 날 불렀다.

“나 이거 봐야 해.”

그러거나 말거나다. 나는 여전히 책에다가 시선을 고정했다.

“신기하네.”

“뭐가.”

“이쯤 되면 좋아해서 따라다니는 거냐고 물어볼 법도 한데.”

하지만 그런 말을 듣고도 동요 하지 않는 방법 같은 건 잘 모르겠다. 내 손목은 방금 대목을 듣자마자 그만 뻣뻣하게 굳고 말았다. 치사하게 이런 식으로 나오다니. 끝까지 안 보려고 했는데 안 볼 수가 없게 만든다. 나는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고갤 쳐들었다. 다시금 얼굴을 마주하자 고죠의 입꼬리가 시원스레 휘었다.

“근데 좋아서 보는 건 아니야.”

“그걸 누가 모르니.”

“굳이 말하면 싫어하는 쪽이지.”

“⋯뭐라고?”

“인간은 착각의 동물이라니까. 오해하지 말라고.”

고죠는 본인이 무슨 말을 지껄였는지 자각 못 한 사람처럼 눈매까지 접어가며 웃었다. 어처구니없는 문장의 주어는 몹시도 명확했고, 나는 그래서 더욱이 황당했다. 얘가 지금 뭐라고 하는 거지. 모든 것을 다 가졌을 사람이, 또 원한다면 원하는 걸 다 가질 수도 있을 사람이. 가진 게 하나도 없는 나를 싫어한다고 말한 게 맞나. 그것도 이렇게 대놓고?

솔직히 좋은 표정이 나올 수가 없다. 나는 참는 일엔 도가 튼 편이지만, 면전에서 그런 소릴 듣고도 허허 웃어넘길 만큼 호구는 아니었다. 탁. 소리 나게 펜을 내려놨다. 은연중에 그럴지도 모른다고만 넘겼던 것들이 이 순간을 기점으로 확실해지자 마냥 화가 난다기보단 좀 복잡한 심경이었다.

접점도 없던 고죠 사토루가 몇 달간 내 주변을 맴돌며 아는 체를 해오던 일이나 갑자기 학생회에 들어와 집중력을 흩트리는 일. 내가 이따금 선도 활동을 할 때마다 명찰 부재로 속을 뒤집는 일. 그 밖에도 크게 나무라기가 모호하게 사람 신경을 미묘히 긁어내던 일. 이게 다 내가 싫어서 벌인 짓이라고 생각하니 착잡하기만 했다. 매사에 수더분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나의 어떤 부분이 저 잘난 맛으로 사는 도련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건지 모를 일이었다.

“오해 같은 거 안 해. 네가 날 좋아한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 나는⋯⋯. 너 때문에 항상 곤란했으니까.”

“그랬어?”

“싫어할 거라고 생각 안 해본 건 아닌데⋯⋯. 막상 이렇게 대놓고 들으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

“⋯⋯뭐가 그렇게 싫었니?”

“방향이 이상하게 튀는군.”

굳이 분류하자면 비아냥이었지만, 그 속에 감추어진 뜻은 충분히 알겠다. 이런 상황에선 저한테 욕이라도 하는 게 정상이라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나, 내가 우선시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나는 먼저 내면의 평정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그러고 나서 차분하게 이유를 물었더니 걔는 입매를 끌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뭐가 싫으냐면⋯⋯.

“죽을 거 같은 얼굴인 주제에.”

“⋯⋯.”

“뭐든 열심히 하는 거?”

과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만 같은 대답이었다. 순간 별생각이 다 들었다. 예상치 못한 대답이라 그랬다. 보통 그런 이유로 사람을 싫어할 수도 있는 건가? 열심히 사는 게 나쁜 건가. 애초에 죽을 거 같은 얼굴이라니. 세수할 때 빼고는 거울을 자세히 들여다보질 않아서 뭘 말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살면서 그런 말을 들은 것도 처음이었다. 고죠 사토루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글자마다 전부 남의 일처럼 들렸다.

차라리 이유 없이 싫다는 대답이 훨씬 나을성싶었다. 공감할 수 없는 대답을 듣고 나니까 괜히 기분만 더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솔직히 죽을 만큼 궁금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묻지 말 걸 그랬다. 마땅히 받아칠 말도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반쯤 끌어내려진 시선을 다시 올려서 고죠 사토루를 쳐다봤다. 걔는 내게 폭탄을 던져놓곤 저는 태연하게 미니 초콜릿이나 까먹는다. 그 종잡을 수 없는 행태에 헛웃음을 터뜨리면 걔가 손안에서 요란스럽게 비닐 포장지를 구겼다.

“혹시 고칠 생각 있어?”

“⋯네가 뭐라고.”

“그건 그렇네~.”

그러더니 할 말은 그게 전부인지.

고죠가 책상 위로 엎드렸다. 우리의 대화는 석연치 않게 막을 내렸고, 나는 이제 걔의 정수리만 보게 되었다. 진짜 이상한 녀석. 날 그렇게 싫어하면서 왜⋯⋯.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그냥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물어본다고 한들 가르쳐주지 않을 거 같았고, 운 좋게 듣는다고 한들 이해 못 할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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