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수현성
수성의 별동별
부산의 바다를 보기 위해 인적 드문 곳을 찾아 해맸다. 유명한 광관지는 듣기만해도 피로감이 몰려오기 부지 일쑤였기에 성준수는 제일 인적 드물고 현지인들에게만 유명하다는 곳을 찾아 떠났다. 부산에 오기 전 선택의 기로에 놓이며 매 순간이 시합과 같았다. 오늘은 나갈까? 아, 내일은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고민 끝에 잠을 지새도 코트 위를 나갈 수만 있다면 희망의 회로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딱, 희망이란 달콤한 거짓말에 놀아난 짝이다. 선배들은 대학에 가야하니까. 감독의 말에 떨군 고개를 주억이며 끄덕였다. 네. 담담하게 내놓은 대답 속에선 원망 한 덩이 없다. 체념, 혹은 상실. 기대감이 없으면 체념도 상실도 빠르고 돌파구를 찾아 다른 길을 모색한다. 성준수는 차라리 다른 돌파구를 뚫고자 하여 부산으로 향하는 버스편에 올라 탔다. 그가 지상을 택한 이유는 단수했다. 결국 더 많은 코트에서 뛰고 슛을 던지겠다는 갈망 때문이었다. 성장하고 승리한다. 자신을 향한 모질고도 혹독한 책찍과 욕심이었다. 탄탄하던 원중고를 벗어나 지상으로 향할 때. 홀로 부산으로 내려가기 위해 오른 고속버스에서 쉼없이 달리던 고속도로 위로 손을 떠나버린 농구공처럼 미련과 후회 그리고 불확실한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던졌다. 1년이면 될까, 2년이면 될까? 끝없는 터널을 달린듯한 고통. 지상으로 내려오던 날 던졌던 불안과 후회가 영겁이 되어 늘어진 실처럼 성준수를 묶고 괴롭히며 뒤늦게 쫓아왔고 불안과 불평은 예민하던 정신을 한없이 흔들기 시작했다. 팀원을 탓하고 탓해도 결국 스스로를 향해 욕하던 그 모진 말들. 끝없이 채찍질로 내던졌던 무수히 많은 말들이 불안에 빠진 자신에게 던진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알아달라고 한 적 없어. 아름다운 장미에 뻗은 가시처럼, 찔레꽃처럼 고독과 괴로움은 스스로에게 내던진 형벌처럼 끝없이 쫓아왔다. 매일 밤 악몽을 꿔요. 잠을 자는 것조차 괴롭고 고통스러워요. 맡이해 버린 거대한 장벽에 한없이 초라한 내 자신이 절망스러워요.
여름의 시원함이 가시고, 가을의 선선함이 찾아오던 날, 공이 손을 떠나 자유로이 횡단하던 그 모든 순간을 기억한다. 이제는 악몽보다 그날의 이룬 쾌재를 떠올리며 숨죽이던 모두의 염원을 기억한다. 비저버터가 울리던 괴로움보다, 자유롭게 떠나버린 공의 찬란한 순간의 기억을 끝으로 성준수의 악몽도 끝이 났다. 그럼과 동시에 자신의 미래를 연결해준 이를 보게 되었다. 먼 과거, 그는 아이들이 자신과 같이 후회하지 않도록 해주고싶노라 말했다. 그의 간절하던 속내가 닿아 마지막에 던져진 기상호의 슛에 마침내 이룩한 성공은 가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정도로 달콤했지만 그는 아쉬워했다. 이유를 묻지 않았다. 어른의 속사정이겠지. 단순한 생각으로 미뤄버렸지만 성준수는 어렴풋이 그가 놓아버린 자신의 미래에 후회함과 동시에 아이들에게 더 좋은 감독이 되어주지 못했단 것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기숙사 방 안에 누워 잠든 이현성을 보며 두 눈을 깜박였다.
“감독님.. 감사합니다.”
저릿하게 아파오는 가슴에 빠르게 뛰어대던 심장 고동에 부끄러움에 붉어진 얼굴에 성준수는 몸을 황급히 돌려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고선 애써 모른척 넘겼지만, 그날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건 떨어지던 유성 하나였다.
졸업식 당일이 돼서야 성준수는 이현성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아직 감정을 수습하기 어린, 사회적 청년의 나이였다. 이현성은 한동안 자신을 피하던 성준수를 보며 가볍게 웃어 주었다. 어린아고만 어린 아. 꼭 물가에 내놓은 어린 아이를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준수 니는, 내보다 좋은 프로가 되가 성공해야한다. 알긋나? 후회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니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네 슛은 이쁘그든. 그니께 꼬옥, 자신감을 가져라.”
성준수는 그리 깊게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다. 어차피, 이 감정을 사랑이나 애정으로 결론 내릴 수 없는 선망과 앙망 그 어딘가였으니.
“준수야 졸업 축하한다.”
“네..”
“이제 서울 올라가믄 우리 아들 보고 싶어서 우짜냐.”
“... 보고싶진 않을 것 같은데.”
“푸하하-. 뭐 준수 네는 그럴 줄 알았다.”
“...그래도 감독님 뵈러 올게요.”
“그래. 그래라.”
서울에 올라가던 버스 터미널 앞에서 인사를 받던 성준수는 못내 아쉬운 듯 쉽사리 발걸음을 떼지 못햇다. 등 떠밀려 떠나는 길이 아님에도 뭐가 그리 아쉬운지,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이내 돌려 이현성에게로 향했다. 처음으로 농구 코트 위가 아닌 길 한복판에서 스승을 끌어 안아 보며 그에게서 나는 스킨향을 맡아 기억에 저장하려 했다. 서울로 올라가면 이제 못보지 않을까. 아쉬움은 여운이 되어 성준수를 더욱 더 잡아버린다. 꽉 끌어 안은 자신보다 작은 스승에게 전하지 못한 마지막 말대신 그간의 감사함을 표하며 잘가라, 이제 가라 쫌~! 외쳐대는 이현성에게서 떨어져 천천히 천천히, 다시 한번 이름을 불러주길 바라며 버스로 향하다 이내 멈춰서 몸을 돌려 물었다.
“... 저 놀러오면 기숙사에서 같이 잘거죠..?”
“하야 참말로, 니 대학이 좋긴 한가보다, 알겠다. 알겠어. 그날 농구 경기 뛴것도 봐줄게 알갔제?”
“네.”
이현성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허락을 받은 성준수는 기분이 좋은 듯 입꼬리를 올려 쑥스럽게 웃어보였다. 이현성은 그제야 얌마, 이제야 웃네. 잘가라. 준수야. 몇 번이고 인사를 다시 해준다. 오른 버스에 3년 전 내린 길을 다시 올라 서울로 향한다. 긴 여행의 끝을 맞이하고 돌아가는 이처럼 가벼운 마음이었다. 선택의 후회는 없었다. 불안과 후회, 미련 말로 할 수 없던 깊은 응어리마저 사라지며 이제는 고유의 모습을 숨겨 자국조차 남지 않았다. 긴 터널 속을 지나, 빛나는 저 너머로.. 그래 그렇게 향해 새로운 길을 떠날 뿐이었다.
대학에 입학하자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 성준수는 쉴 틈없이 매 순간 농구 연습에 매진했다. 더 좋은 경기를 더 발전하는 자신을 위해서였지만 이현성이 말 한 봐주겠다의 약속 때문이었지만 자신의 목적을 버려두며 그 약속에만 매진하고 싶진 않았다. 공태성과 함께한 플레이를 이제는 다른 누군가와 하지만 그와 함께 뛴 호흡은 잊지 못한 듯 자연스럽게 리드를 해나간다. 농구경기에서 주전이 되고 벤치 멤버가 되도 그는 늘 지상의 호흡을 버리지 못한건 1년에 맛본 그 전율 때문이었다.
“준수 오늘 좀 좋네?”
현 대학 농구 감독 최만호의 말에 어리숙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대답하자 그는 가볍게 땀에 젖은 준수의 등을 툭툭 쳐주며 덕담 한 마디를 붙이며 이현성이 왔어. 가봐. 말했다.
“이현성.. 감독님이요?”
“어. 지상고 때 감독이지?”
“네.. 뭐..”
“가봐.”
최만호의 말에 성준수는 가볍게 목례를 하곤 농구부실 밖으로 향했다. 들어오지 않고 왜 밖에서 자신을 기다리는걸까, 애꿎은 질문으로 뛰어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하지만 발걸음은 그러지 못한 듯 재촉한다. 긴 복도 끝에 유리문을 막 열고 들어오던 이현성이 눈에 들어오자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띄며 반가움에 감독님 부르자 이현성은 고개를 들어 성준수를 발견하곤 웃으며 손을 휘저으며 흔들었다.
“오! 준수! 간만이제?”
가까워진 현성에 잠시 숨을 고른 준수는 마른 침을 삼켰다. 고르지 못한 숨도 이내 곧 진정되었고 현성과 나란히 맞춘 어깨에 걸음 속도도 곧 맞춰갈 때 쯤 체육과나 문 앞에 도착하자 이현성은 성준수가 보지 못했던 음료가 가득 담긴 불투명한 편의점 봉투를 건넸다.
“준수 동료들이랑 먹어라.”
문을 열자 이미 연습 경기는 끝이 난 듯 선수들은 서로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성준수는 최만호에게 다가가 이현성이 사온 음료를 건네며 인사를 건네도록 안내했다. 그러자 그는 너털한 웃음으로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건넸다.
성준수는 성장이 빠르고 머리가 명석합니다. 최만호의 평가였다. 이현성은 그렇습니까, 맞습니다. 고등학교 때도 억수로 빨랐습니다. 답하며 맞장구를 치며 남은 시간 연습 경기를 구경하며 그의 플레이를 지켜봤다. 1년의 시간 그가 갖고 있던 골을 넣거나, 경기를 할 때의 습관과 버릇을 알고 있는 그에겐 여전히 가르칠게 많은 어린 학생이었지만 이젠 고등시절 불완전한 슛보다 안정적이었으며 패스를 활용해 경기 플레이를 이끌어가는 히든카드가 되어 있었다. 이현성은 성장과 발전한 그의 모습에 내심 뿌듯해 높아진 콧날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한참을 구경하던 그가 곧 호각 소리와 함께 끝난 경기에 뛰어 지쳐 들어오는 성준수를 보며 고생했다 미소와 함께 엄지를 치켜들어주자 예민하게 날이 섰던 얼굴은 금세 풀어지곤 따라 엄지를 치켜들었다.
“와, 준수 니 많이 늘었던데.”
이현성의 말에 성준수는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며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농구만 보며 뛰던 여린 심장이 제 앞에 앉아 고기를 구워주며 칭찬하는 남자에게도 뛴다니, 그제야 몰래 속삭이며 인사한 그날을 떠올렸다. 선망이나 앙망이 아님을 알게된 차례였다.
이현성은 쉼없이 성준수의 플레이를 칭찬하며 감독의 습관을 가져와 그에게 고스란히 전했다. 연습이라 다행이다. 실전에는 그렇게 말고 이렇게 상황을 뚫어봐라. 조언도 아낌없던 그였다. 마지막 마무리까지 하며 쌈을 척척 싸던 그는 아, 해라 준수야. 말하곤 손수 싼 쌈을 입에 넣어주었다. 꼭 엄마와도 같은 그러나 섬세함은 부족한 그런 투박한 손길이었다. 쌈을 싸주며 한가득 입에 넣고는 조용히 시간을 확인했다. 곧 버스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성준수는 조심히 그러나 나름의 담대함으로 말했다.
“저.. 자취해요. 주무시고 가세요.”
성준수의 말에 이현성은 그럴까? 오랜만에? 말하곤 시원하게 웃어주었다.
짜르르 우는 여름 풀벌레도, 메미 울음소리도 하나 없이 성준수의 심장소리만 크게 울렸지만 이현성에겐 정적만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본디 오늘 내려가야 했지만 오랜 제자의 권유에 거절을 못한건 옛정과 첫 제자에 대한 남다른 사랑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젖은 머리카락을 털며 나온 이현성은 성준수가 사용하던 1인용 침대를 보며 옛날 생각나네! 그치? 악의없이 물었다. 아무것도 들고 오지 않은 그에게 자신의 옷을 빌려주 보니 생각보다 품이 커 헐렁이는게 눈에 들어옸다. 성준수는 애둘러
“농구 경기 녹화본 보실래요?”
말을 둘러대며 그에게 둔 시선을 거뒀다. 쿵쿵 울려대던 심장은 진즉 사그라든 줄 알았는데, 여전히 뛰는건 이제야 자신의 감정을 깨달아 버린 탓이 컷겠지. 성준수는 제 옆에 앉아 농구 경기를 보며 분석하는 이현성을 힐긋 몰래 훔쳐봤다. 입은 티셔츠에 밴 그의 살내음과 자신과 같은 샴푸향이 이제 갓 20살이 된 몸만 큰 성준수를 괴롭혔다. 이런건 성인이 돼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자신만의 착각이었다. 이제는 외워버린 홀로 보며 유일한 집안 소음이 되었던 농구 경기 영상 기억 속엔 이제 이현성이 존재한다. 몇 번을 보며 외웠던 경기 영상, 매일을 지겹게 보고 또 보며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봐오던 그 영상이었다. 삶에 스며드는 그가 좋았고 자신의 우산이 되어주는 그가 좋았다. 감정을 담아내지 못하는 그에게 또다른 길을 내어준 그가 좋았다. 매일 같이 자던 그 침대에서 작은 숨결을 들으며 악몽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안정을 준 그가. 이미 끝난 경기 영상에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자신을 보며 책임이 담긴 미소를 지어주는 그에게 내일이 되면 돌아갈 그였지만 그의 손을 잡고 입을 맞추고 살을 부대끼고 싶은 마지막 그 모든 것까지 욕심이 나는건 이제야 마주한 자신의 본심이자 애욕이니.
“선수는 일찍 자야한다.”
오랜 습관처럼 안정감이 가득한 얼굴로 나른하게 말하는 그를 자신의 눈에 담아낸다.
다음날이 되자 그는 성준수를 익숙하게 깨우곤 정리를 했다. 1인용 침대를 내어주려해도 불편하다며 바닥을 고집하던 그가 깔고 잤던 이불이 곧게 개어져 있었다. 성준수는 못내 아쉬운 듯 시선을 거두지 못하다 울리는 알람에 이제 막 깨어나기 시작한 몸을 움직였다.
“데려다 드릴게요.”
“아니다. 이제 가야지. 아들이 엄청나게 찾는다.”
“... 다음에 꼭 내려갈게요.”
“바빠지면 더 못오니께 내가 올라오겠다니까.”
“....그래도요.”
농구 경기장에 데려다 준다며 어른스러움을 강조한 이현성이 성준수의 보지 못한 어린 면모에 놀란 듯 장난가득한 미소를 띄고는 농구부실엔 들어가지 않겠다 덧붙였다. 너 경기 보면 또 잔소리 늘린다니까 장난끼 섞인 목소리로 말하곤 준수 끝나면 연락해라. 몸을 돌려 돌아갔다. 성준수는 농구부실 문고리를 잡았다 이내 몸을 돌려 그에게 뛰어 향했다. 그는 뒷머리를 벅벅 긁어대며 생각에 잠긴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성준수는 보지 못했다. 그가 뛰어가 그를 끌어안고 어깨에 얼굴을 파묻으며 조용히 답했다.
“연락하면... 경기 영상 말고 영화 보러가도 되요?”
이현성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그는 두터운 손으로 성준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답했다.
“어리광이 늘었고만 우리 준수”
그제야 웃음기 가득한 얼굴을 준수에게 보여주는 이현성은 성준수에게만 들리도록 몰래 속삭였다. 그가 들은 말이 어떤 말인지 성준수만이 알고 있다. 어린 제자에서 성인 남자가 된 그는 이현성에게 웃으며 얼굴을 묻은 어깨에 작게 웅얼거렸다.
“감독님... 이제 현성 선배라고 부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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