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것은.

1. 노래

글러 49제 by 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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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의 한 조각, 매서운 폭염 아래의 한 오름, 가라앉은 텁텁한 공기를 훑고 창공 너머로 흘러가는 것은 무엇인가.

생을 살아가는 존재들은, 하늘을 올려다본들 밝은 태양 아래서는 무엇이든 볼 수 있으면서도-무엇이든 볼 수 없을 것이다. 즉슨, 태양은 모든 것을 비추어낼 만큼 빛을 내지만, 그만큼 짙은 그림자를 만들어낸다는 것.

그리고 내가 볼 수 있던 그는, 태양이 만들어낸 꽉 찬 그림자 속에 안주하며 텅 비어버린 채로 삶을 이어간다.

나는 그런 그에게 호기심을 느꼈다. 모두가 반가워하는 빛을 마다하고서 어둠을 반기는 이유가 순전하게 궁금했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하고 싶어지는 것처럼, 알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알고 싶어지는 변덕. 여름에 예고 없이 찾아오는 소나기와 같은 변덕. 그저 간단하게 정의 내려지는 한 단어.

이런 호기심을 느낀다 한들 이어지는 연 따위는 없다, 라고 생각했다. 나는 빛 아래에서 그를 바라보고, 그는 어둠 아래서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딱 그 정도의 거리감으로 유지하고 있을 어느 순간이 지난다면, 우연처럼 하늘을 보는 시선이 내게로 내려온다. 숨이 멈추는 것은 여름의 열기 때문일까, 소나기처럼 찾아온 시선의 여파일까.

물론, 시선에는 관심 없음이-빈 공간에는 무음이 채워져 어색함이 맴돌았다. 빛의 경계에서 머쓱하게 뒷목을 쓸면 내려왔던 시선은 거두어지고, 딱히 내쫓지는 않아 그림자 위에 살풋 걸치기로 했다.

처음으로 제 발로 들어온 그림자는 꽤 서늘해서 오싹함을 느껴지게 하다가도, 치열한 빛 아래의 유일한 쉼터라고 느껴질 만큼 편안했다. 가벼이 눈꺼풀을 감고 한기를 찾아가면, 귀를 간지럽히는 것이 있었다. 나지막하게 공허를 채워나가는 한 선율. 짧은 생의 어디서도 듣지 못했으니 고유의 선율일까…

그는 내가 존재한 것을 잊었는지, 혹은 신경 쓸 존재가 애초부터 아니었었는지는 모를지언정 마치 세상에 홀로 남겨진들 상관없다는 건조한 선율로 여러 단어를 읊어내어 간다.

무더운 여름의 한 조각, 매서운 폭염 아래의 한 오름, 가라앉은 텁텁한 공기를 훑고 창공 너머로 흘러가는 것은 어둠에 안주한 이가 읊어낸 고독한 노래. 나는 그날 처음으로, 이 노래를 계속 들을 수만 있다면…

빛을 마다하고서 이 어둠에 존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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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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