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기
캊딤
둘 다 권태기는 쉽게 안 올 것 같은데 연하는 사람 자체가 잔잔하고 오래 타오르는 사랑을 쉽게 질려하지 않는 타입이라 그런 게 큰 반면 연상은 일이든 사랑이든 쉽게 권태를 느끼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연하라서 둘이 사랑하는 온도가 어떻게 기적처럼 딱 맞아서 오래 유지할 수 있는 거라고 봐서 만약 둘 사이에 권태기가 오게 된다면 연상일 확률이 크다고 생각함
근데 연하랑 권태기라는 단어가 너무 안 어울려서 좀 놀라움 왜인지 모르겠지만 연하는 절대 권태기 안 올 거라는 확신 같은 게 있음 권태기 온 연상의 온도 차이를 버티고 버티다 결국 눈물 터져서 언니 나 사랑하긴 해요? 면 몰라도... 사랑한다는 말에 머뭇거릴 때도 본인의 마음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머뭇거리는 것보다는 그 상황에 대한 확신이 모자라서 머뭇거리는 게 어울림 예를 들면 술 취해서 실수로 연하 불러 낸 연상이 웃으면서 안겨 올 때라든가... 언니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하면서 얼굴 살피려고 해도 계속 품으로 파고들면서 보고 싶었어 나 데리러 와 준 거야? 이런 말만 반복하고 얼굴은 안 보여 주는 연상 때문에 상태 체크하는 건 포기하고 집 가요 언니 걸을 수 있겠어요? 하면서 부축해 주려는데 연상 뭐가 불만인지 자리에 멈춰 서서 연하 얼굴 가만히 쳐다보는 탓에 연하도 그냥 가만히 서 있을 때 별안간 헤헤 웃으면서 즈하야 우리 즈하 내가 많이 사랑해 하는 연상 누가 봐도 취했고 누가 봐도 내일 기억 못 할 거 그냥 사랑한다고 해 주면 되는데 괜히 머뭇거리는 연하가 좋음
연상의 요구가 버거워지는 것도 마음이 식어서가 아니고 오히려 너무 사랑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은데 연상의 사랑 방식이 나도 상대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적당하게 주고받는 거라면 연하의 사랑 방식은 말 그대로 아낌없이 모든 걸 표현하고 주는 거라 연상의 사소한 부탁도 완벽하게 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어떤 요구든 상호 간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걸 잊고 혼자만 노력하다 버거워질 것 같음 언니가 나 때문에 고생하거나 걱정하는 건 싫어서 어떻게든 혼자 해결해 보려고 하는데 그게 건강한 방법도 아닐 뿐더러 자꾸 혼자만 생각하니까 더 답이 안 나와서 버거운 연하... 그래도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참다 결국 울면서 연상한테 언니 저 너무 힘들어요 언니를 사랑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이런 말 해서 연상 심장 떨어트리는 거... 연하는 권태기보다는 이런 게 어울린다고 생각함 연인 관계에서 사랑이 식는 것도 당연히 갈등을 빚을 수 있지만 한쪽의 사랑이 너무 과한 것도 문제점이 되니까
반대로 연상은 연하와 만나기 전 주된 이별의 이유가 권태기였을 것 같음 처음 한두 번이야 권태기라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려고 이것저것 시도도 해 보고 했지 나중에는 권태기라는 거 자각하자마자 곧 헤어지겠구나 생각하고 혼자 정리하는 연상 때문에 울었던 사람 꽤 될 듯... 그렇게 지친 연상이 사랑이 꼭 필요한가를 고민할 때 만난 게 연하였으면 좋겠네 사랑에 빠진다는 자각도 없이 서서히 스며들어서 결국 사랑을 깨닫게 됐을 때 연상은 조금 놀랐을 것 같음 특별한 계기로 인해 사랑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던 지난 연애들과 달리 너무도 자연스럽게 연하가 좋아져서 처음에는 이게 사랑이 맞는지도 고민을 정말 많이 했는데 얼굴 보면 좋고 별거 아닌 말에 간질거리고 어쩌다 겹친 손에 두근거려서 사랑 맞구나 인정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연상이 권태기를 겪게 된다면 사랑한다는 말에 머뭇거리고 자꾸 요구를 버겁게 느끼기 시작하고 저도 모르게 핸드폰을 보는 시간이 늘어나고... 전처럼 설레지 않고 연락이 와도 바로 답장하지 않고 혼자 있는 시간을 더 편하게 느끼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사랑에 빠지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권태기구나 올 게 왔구나 싶을 것 같음 연하랑 하는 사랑은 워낙 잔잔하고 따뜻해서 권태기가 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고 있었던 연상 당황했지만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생각하고 천천히 연하한테서 멀어지려는 절차를 밟기 시작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게 맞나 싶고 자꾸 평소와 다를 게 없는 연하가 너무 신경 쓰여서 고민하게 되는 연상 보고 싶음
전화할 때 습관처럼 하던 사랑한다는 말 하루는 연하가 하는 사랑해요 듣고 굳어서 어... 그래 나도 하고 전화 뚝 끊어 버린 연상 잠깐 혼란스러웠지만 금방 잊고 지내다 문득 그 순간이 다시 떠올라서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곱씹을 것 같음 이 사건을 시작으로 서서히 권태기를 자각할 연상 다음은 요구를 버겁게 느끼는 건데 일주일 내내 붙어 있어도 모자라다고 느꼈던 때를 지나 이제는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만나는 둘 연상 일이 바빠지면서 한두 번으로 줄어드는데 바쁜 일 끝나고 만나자는 연하 연락에 꼭... 오늘 만나야 하나 싶은 연상 일 바쁜 거 겨우 끝나서 쉬고 싶은 마음이 더 크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거니까 적당히 꾸미고 나가면 평소처럼 꾸미고 온 연하 보임 평일 저녁이라 거창한 건 못 하고 자주 가던 식당에서 외식 잠깐 산책 루트 밟는데 평소라면 이미 꺼 뒀을 핸드폰으로 계속 업무 연락 확인하는 연상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닌데 연하 말에 너무 집중이 안 돼서 그러고 있다 보면 연하 바쁘면 내일 만날 걸 그랬나 봐요 해서 아니야 괜찮아 하고 핸드폰 내려놓음
그래도 연하 말보다 핸드폰에 자꾸 시선이 가서 머리 복잡한 연상 썸 탈 때부터 자주 했던 밤 산책 하러 나가는데 손 꼭 잡고 걷는 게 이제는 설레는 게 아니라 지루하고 왜 그때는 이게 그렇게 좋았지 싶어서 현타 오는 연상 연하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여전히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이것저것 얘기하는데 연상 여전히 집중 못 하고 건성으로 대답함 그래도 어찌저찌 데이트 끝내고 각자 집 가는 둘 원래라면 도착하자마자 바로 도착했다고 연락 보낼 텐데 연하가 도착했다고 연락 보낸 거 보고도 씻고 나와서야 나도 도착해서 씻었다고 연락하는 연상 그럼 이삼 분 뒤에 다시 울리는 핸드폰 슬쩍 쳐다보고 엎어 놓음 그러면서 생각하는 게 혼자 있으니까 편하네 조용하고... 연하가 시끄러운 편이 아닌데도 어느새 연하랑 보내는 시간을 피곤하다고 느끼던 연상 문득 사랑한다는 말에 머뭇거렸던 자기가 생각나고 오늘 했던 행동들이 떠오르면서 아 이거 권태기구나 즈하랑도 이렇게 끝나겠구나 싶음
그 생각에 조금은 착잡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연상 이제는 무의식이 아닌 의식적으로 연하 연락 덜 보고 만나는 것도 피하는데 그런 노력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는 연하 때문에 신경 쓰이는 게 보고 싶음 분명 권태기인데 더 설레지 않고 혼자 있는 게 더 편한데 왜 신경 쓰이지 싶은 연상 그래도 계속 어거지로 붙잡고 있는 건 연하한테 못 할 짓이라고 생각하고 천천히 생각 정리하고 마음도 정리함 그러다 진짜 오랜만에 잡힌 데이트에서 처음 볼 때만큼 예쁘게 꾸미고 온 연하 보면서 속 울렁거리는 연상 그뿐만 아니라 데이트 내내 평소보다 몇 배는 다정하게 구는 연하 때문에 맞다 내가 이 모습에 반했지 내가 이래서 얘를 사랑하기로 마음 먹었지 등등 옛날 생각 나면서 신경 쓰이는 건 계속 늘어만 가고... 결국 헤어지기 직전에 사랑해요 언니 하면서 웃는 연하 잠깐 쳐다보다 응 나도 사랑해 즈하야 하면서 꽉 안아 주는 연상 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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