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매브

[루스매브]훈장

Happy Father's Day

오늘은 브래들리의 참관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매버릭은 평소보다 더 힘을 줘서 말끔하게 정복을 차려입었다. 가슴께에 있는 훈장이 빛나고 잘 보이도록 후후, 입김을 불어 뽀득뽀득 소리가 날 정도로 깨끗하게 닦았으며, 약장도 각을 날카롭게 세워 더 잘 보이게끔 정렬했고, 옷매무새를 다듬어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옷맵시가 더 잘 드러나도록 했다.

과할 정도로 단정한 그 모습에 캐롤은 그렇게까지 힘 안 줘도 된다며 유난이라고 웃어댔지만 매버릭은 가볍게 눈썹을 들썩이더니 입꼬리를 씩 올려 보이고는 "그래도, 이러는 게 더 보기 좋잖아." 하며 대답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태연하게 반응했지만 사실 거기 내포된 뜻은 과시용, 보여주기식이었다. 이래야 캐롤과 브래들리가 무시당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항상 아빠의 빈 자리를 자신이 대신 채워야 한다는 마음이 그의 깊은 곳, 가슴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오늘 이 자리도 본인 혼자가 아니라 구스가 같이 있어야 했는데. 자신과 캐롤, 둘이 아닌 세 사람이 서 있어야만 했는데...

이거 아주 멋진데, 사진사가 될 걸 그랬어.

이제는 기억 저편으로만 남은, 먼 하늘로 떠나버린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잊지 못하는 그리운 목소리. 순간이 영원할 거라 믿으며 기상천외한 짓을 하고 철없이 웃던 그 시절,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확인한 구스는 그렇게 말했다.

만약, 구스가 곁에 있었다면 지금쯤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겠지? 브래들리와 같은 반 친구들은 멋진 옷을 입고 있는 아빠와 아빠 친구, 그 사이에 있는 귀여운 외모의 엄마를 구경하느라 자꾸만 뒤를 돌아봤었을 테고, 구스는 수업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선생님께 주의를 듣더니 결국 교실 밖으로 쫓겨났었을 거다. 난 그런 일이 하루 이틀도 아니라는 듯이 그저 신경도 안 쓰며 뿌듯한 표정으로 브래들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었을 테고, 넉살 좋은 캐롤은 "죄송해요, 저희 남편이 유난이죠?" 하며 다른 부모들에게 미안하다고 쿡쿡 웃으며 사과를 해댔겠지만 정작 남편의 행동이 재밌어서 말리지 않고 오히려 그 상황을 콩깍지가 씐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을 거다. 그리고, 창문 너머로 애처로운 시선을 보내며 풍경을 바라보던 구스는 애절한 목소리로 진짜 안 찍고 가만히 있을 테니 다시 들어가게만 해달라며 두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어 애원하고 나서야 겨우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겠지.

화기애애한 한때가 그려지자 옅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나, 곧 브래들리와 캐롤에게서 구스를 빼앗아 갔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무거운 마음으로 더 크게 잠식됐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좌절감이 그날의 바다처럼 심해 속으로 가라앉았다. 낯빛이 어두워진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저절로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얼마나 세게 쥐고 있었는지 하얘질 대로 하얘진 손은 속을 대변하기라도 하듯이 꽉 막힌 가슴 속 응어리를 내비쳤다. 중력 가속도 같은 답답함이 온몸을 짓눌렀지만 이내 감정을 추슬러 금세 표정을 풀고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려 밝은 얼굴을 유지했다. 또 다른 가족과도 같은 브래들리와 캐롤은 자신의 변화를 무서우리만큼 쉽게 알아챘으니까.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재빨리 고개를 들고 자신만 힐끔힐끔 쳐다보는 아이에게 눈웃음을 짓고 손을 흔들었다.

브래들리는 친구들이 자기만의 멋진 삼촌을 쳐다보는 게 맘에 들지 않았지만 올곧은 눈으로 저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매버릭에 안심하며 방긋 웃음으로 조그마한 손을 흔들었다. 친구들은 브래들리의 삼촌에 잠깐 웅성거리며 떠들다(부모님과 선생님의 눈살과 주의로 적정선에서 그치고) 말았으나 아이의 시선만은 계속해서 뒤를 향했다. 매버릭과 눈이 마주치면 들고 있던 책으로 얼굴을 가려 그 밑에서 수줍게 웃다가, 다시 고개를 슬쩍 들고 매버릭을 쳐다보며 천진난만하게 웃는 아이에 캐롤은 "어머, 우리 천사가 영 도통 집중을 못 하네. 한 번도 저런 모습 본 적 없는데. 맵이 온 게 그리 좋은가 봐." 하며 얼굴은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선생님 말씀은 듣지 않고 수업도 뒷전이라는 듯이 행동하는 처음 보는 자식의 모습에 난색을 보였다. 그런 아이에게 매버릭은 씩 미소를 짓고는 한쪽 눈썹을 쫑긋 추켜세웠다. 그럼에도 미동이 없자 가볍게 턱짓으로 '앞에 봐야지?' 하며 입을 벙긋거리고 손가락으로 칠판을 콕 집어 가리켰다. 브래들리는 그제야 히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세를 풀고 몸을 앞으로 돌려 수업 내용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브래들리의 멋진 삼촌은 곧 다른 아이 부모님들에게도 큰 화제가 되었다. 인파에 둘러싸여 아이와 아이 엄마와는 무슨 관계냐는 얘기부터 시작해, 아이 아버지가 그렇게 돼서 참 유감이란 얘기, 훈장과 약장을 보고는 당신이 나라를 지켜주셔서 참 든든하다는 얘기 등등... 바로 초반까지만 해도 아이들의 수업과 교육에 관련된 얘기가 대부분이었으나 곧 시답잖은 얘기들로 바뀌기 시작하자 옷깃이 꽉 조이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심지어, 예사롭지 않은 외모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은근슬쩍 상대방이 있는지 떠보거나 안 보는 척하지만 왼손 약지를 확인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매버릭은 그때마다 캐롤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내 도움을 청했다. 그 모습을 보고 바들바들 떠는 강아지를 떠올린 캐롤은 그런 매버릭이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웃음이 나왔지만 자발적으로 와서 고생 중인 그를 위해 최대한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파일럿의 아내답게 윙크로 신호를 받고는 다른 주제를 던져서 이상한 추파와 관련 없는 질문들을 쳐내고 분위기를 환기했다. 솔직히 누구나 다 그에게 저런 질문들에 일일이 반응해 주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편함으로 다 무시하기에는 가뜩이나 캐롤 혼자서 아이를 보는 데 많이 힘들 것이고 자신이 없을 때도 누군가한테 기댈 든든한 원군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 매버릭은 캐롤에게 고맙다는 신호를 보내며 다시 살갑게 사교적인 행동을 취했다.


"...하아아..."

한참이나 대화를 나누며 매버릭을 기준으로 북새통을 이루던 사람들은 한두 명씩 서서히 빠지자 주위는 어느새 거짓말같이 고요함을 찾았다. 고즈넉한 장소와 비교되게 응대에 지친 매버릭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녹초가 되어 멍하니 의자에 앉아 있다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까 봐 정신을 차리고 다시 기합을 넣어 자세를 고쳤다. 기지개를 켜자 긴장으로 위축되어 있던 몸이 두둑 소리를 내며 비명을 질렀다. 얼마나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는지 얼굴도 어딘가 낯설다고 느껴진 그는 입을 크게 벌리며 긴장으로 굳은 근육들을 풀었다.

캐롤은 이걸 올 때마다 한다는 건가? 새삼 빠짐없이 나가는 캐롤이 정말 위대하다는 생각과 함께 존경심을 느끼고 있는 사이, 뒤에서 브래들리가 "매브!"를 외치며 달려왔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매버릭은 두 팔을 벌려 힘차게 달려오는 아이를 품 안에 쏙 가뒀다. 아까까지만 해도 녹초 같았던 몸이 브래들리가 다가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활기를 띠었다. 으레 그렇듯 익숙하고 안정감 있게 자그마한 몸을 안아 들고는 "어땠어? 재밌었어?" 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브래들리는 "응! 수업보다도 오늘 삼촌 온 게 제일 좋았어." 하며 더 깊은 품속으로 파고들어 아직 젖살이 채 빠지지 않아 통통한 볼을 매버릭 어깨에 마구 비벼댔다. 배시시 웃은 매버릭이 어쩜 말도 이렇게 예쁘게 하냐며 브래들리의 볼에 애정이 가득한 뽀뽀를 남기자 브래들리도 따사롭게 따라 웃으며 볼에 뽀뽀를 남겨주었다.

짤랑짤랑, 금속들끼리 부딪히며 흔들리는 소리에 브래들리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매버릭의 훈장으로 향했다. 훈장을 빤히 바라보는 아이에 훈장 하나를 빼서 브래들리에게 걸어주자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웃었다. 그 순수하고 무해한 웃음에 제 마음도 빼앗겨 버려 마주 웃으며 심장을 부여잡는 흉내를 내자 브래들리는 엄마, 아빠 다음으로 삼촌이 세상에서 최고로 좋다는 고백을 하며 작은 품으로 매버릭을 꽉 끌어안았다.

"우리 귀염둥이, 엄마는 쏙 빼놓는 거야?"

다 들었다는 듯이 뒤늦게 다가온 캐롤이 브래들리한테 물었다.

"맵한테 엄마랑 아빠 다음으로 좋다고 했는걸? 그렇지, 삼촌?"

"응, 맞아. 캐롤. 분명히 그랬어."

"흐응... 조금 섭섭한데?"

눈썹을 축 내려뜨린 캐롤은 자기만 쏙 빼놓고 사이좋은 둘에 소외감이 들었는지 시무룩한 모습을 보이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토라진 척을 하자 브래들리와 덩달아 당혹해진 매버릭이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황급히 매버릭의 품에서 내려온 브래들리는 엄마를 껴안고 얼굴을 붙잡아 조그만 입술로 엄마, 아빠에 대한 사랑을 속삭이며 키스를 퍼부었다. 매버릭도 굳어있는 몸을 풀고 애정을 담아서 캐롤과 브래들리를 있는 힘껏 껴안았다.

"...풉, 아하하!"

캐롤의 쾌활한 웃음소리가 안개처럼 껴서 어색하고 흐릿했던 기류를 깨부쉈다. 브래들리와 매버릭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다가 캐롤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배꼽이 빠지도록 웃는 캐롤은 다시 밝은 얼굴을 보이며 장난스러운 투로 "농담이었어, 원. 농담도 못 하겠네. 내가 설마 질투를 하겠어? 오히려, 나를 그런 속 좁은 사람으로 봤다니. 너무 실망인걸." 하고 개구쟁이처럼 이를 보이며 해맑게 웃었다. 진땀이 난 둘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식겁했던 표정을 풀고 진작에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이 동시에 "놀랐잖아." 하며 핀잔을 주었다.

순간, 캐롤이 매버릭의 양 볼을 두 손 가득히 붙들어 잡고 찌부시켰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적잖이 당황한 그는 볼이 눌려서 부리처럼 톡 튀어나온 입술로 "캐, 캐롤...?" 하며 동그래진 두 눈을 깜빡였다.

"매브, 또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었던 건 아니지? 나 화낼 거다?"

예리하게 생각을 읽으며 매서운 눈빛으로 째려보는 캐롤에 매버릭은 허점이라도 찔렸다는 듯이 "윽..." 소리를 내었다. 사실, 캐롤은 그 짧은 사이에 매버릭 기저에 깔린 우울을 보았다. 하늘 같으면서도 심해 같은, 양날의 검처럼 그를 자유롭고 위태롭게 만드는 푸름. 우물쭈물, 아무런 변명도 못 하고 삐질삐질 땀만 흘리고 있는 매버릭에게 "항상 고마워, 맵. 진심이야. 우리 브래드쇼 가족은 매버릭을 사랑할 수밖에 없어." 하자 곁에 있는 브래들리가 "나도!" 하며 손을 번쩍 들고 맞장구를 쳤다. 푸스스 웃은 캐롤이 고갯짓과 눈짓으로 브래들리를 가리키고는 "봤지?" 하며 미소를 지었다. 반달처럼 부드럽게 접힌 눈은 미소를 짓고 조용히 고개를 잘게 흔드는 걸로 대신 답했다.

"좋아. 우리 아들들, 집 가서 뭐 먹을까?"

"뭐? 나 언제 아들 된 거야?"

"몰랐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우리 집안 비공식 브래드쇼 가족 큰아들이었는데."

장난스럽게 히죽거리는 캐롤을 보며 매버릭은 어깨를 으쓱거리고 못 말리겠다는 시늉을 보이며 웃었다.

"난 팬케이크, 초코칩 많이 넣은 걸로! 아이스크림도 먹고 싶어!"

"난 동생이 좋다는 거면 뭐든지."

"아까는 언제 아들 된 거냐고 하더니?"

이내 세 사람은 시선을 주고받더니 키득키득 웃어댔다. 눈을 빛낸 매버릭이 고개를 돌려 브래들리에게 누가 먼저 집까지 빨리 달려가나 시합을 걸어왔다. 브래들리는 좋다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곧이어 들려오는 "...준비, 땅!" 소리와 함께 힘차게 땅을 디뎌 달리는 아이는 날개라도 단 것처럼 날쌨다. 휘유, 경쾌한 휘파람을 분 매버릭이 질 수 없다며 뒤이어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뜀박질이 가벼운 발걸음 소리를 냈다. 잽싼 브래들리와 매버릭의 뒤 너머로 "아들들, 그렇게 빨리 달리면 넘어져!" 하는 종종걸음으로 뒤따라오던 캐롤의 걱정 어린 외침이 들려왔다.



수업이 지난 며칠 후, 도착한 집은 조용함이 그득히 깔려있었다. 쉼 없이 재잘대고 조용할 날이 없는 모습이 마치 카나리아 같다고 해서 구스와 더불어 조류 부부란 별명이 붙은 캐롤과, 샛노란 금발에 삐악삐악거리는 모습이 마치 병아리 같다고 해서 병아리란 귀여운 애칭이 붙은 브래들리까지 포함해, 동물농장이라고 불리는, 하루하루 노랫소리와 수다가 끊이질 않던 화목한 브래드쇼 가족이 이렇게나 조용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이 모든 상황이 신기루처럼 느껴진 매버릭은 혹여 안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초조해져 문을 두드리려는 순간. 벌컥, 열린 문에 되레 놀란 그는 "서프라이즈!" 하며 갑작스럽게 폭죽을 터뜨리는 캐롤에 괜한 걱정이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캐롤은 온 힘을 다해서 매버릭의 팔을 붙잡아 끌고는 무작정 등을 떠밀며 안으로 이끌었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질질 끌려다니는 매버릭은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속으로 '무소식이 희소식인 거면 된 거지...' 하며 자신을 납득하고는 윙크를 하며 나만 따르라는 캐롤의 말에 순순히 몸에 힘을 빼고 따라 움직였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거실에는 플래카드와 가랜드로 한껏 꾸며져 있었다.

"...이게 뭐야?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삼촌 훈장 수여식?"

얼빠진 얼굴로 장식을 번갈아 보던 매버릭은 뒤늦게 소파 위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브래들리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단상 위에 선 듯이. 뒤에는 뭔가를 꼭꼭 숨기고.

흠, 흠! 목을 가다듬은 브래들리는 "피트 "매버릭" 미첼 소령님. 위 사람은 멋진 삼촌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기에 이 훈장을 수여합니다." 하고는 회심처럼 감추고 있던 걸 "짜잔!" 소리를 내며 꺼내 들었다.

그것은 훈장이었다. 색종이와 크레파스로 만들어진 정성이 지극히 담긴 훈장. 핑킹가위로 오려서 테두리는 지그재그 모양에, 빨간 색종이 위에 노란 색종이를 붙이고, 크레파스로 진심을 꾹꾹 적어서 만든, 글씨는 삐뚤빼뚤하고 어딘가 어설프고 조잡하지만 그 안에 담긴 노력과 사랑만큼은 가득한 훈장.

말이 끝나자마자 벅차오르는 감동이 물밀듯이 넘쳐흘렀다.

소파에서 가볍게 폴짝 뛰어내린 브래들리는 훈장을 들고 주저했다. 아무래도 뒤에 달린 옷핀 때문에 구멍이 남는 걸 걱정하는 것 같았다. 세심한 배려에 매버릭은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고개를 빳빳하게 세워 가슴을 활짝 폈다. 조심히 옷에 훈장을 단 아이는 "됐다!" 하며 환하게 웃었다.

이걸 준비하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을까. 거실과 훈장을 장식하며 본인의 반응을 학수고대하는 두 사람의 그림이 그려졌다.

"뭐야, 매버릭. 우는 거야?"

"삼촌, 울어?"

캐롤과 브래들리가 고개를 푹 내려 숙인 매버릭에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장난스럽게 놀렸다.

"...안 울어어어..."

글썽거리는 눈과 한껏 구겨진 얼굴, 살짝 삐져나온 콧물, 호두 턱, 물기 어린 목소리.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으며 변명하는 그의 모습은 퍽이나 웃겼다. 툭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 같은 매버릭에 모자는 자지러지게 웃었다. 서프라이즈가 성공한 것인지 의기양양하게 하이 파이브를 나눈 캐롤과 브래들리는 매버릭을 껴안고 항상 고맙다는 말과 함께 사랑을 전하며 따사로운 햇볕과도 같은 온기를 나눴다. 결국 저항도 못 하고 울컥 터진 울음에 둘은 배를 부여잡고 바닥을 구르며 깔깔 웃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빠.

아이의 손에 들린 훈장을 보자마자 루스터와 매버릭은 앓는 소리를 내며 곧 감격으로 물들었다. 사랑으로 넘쳐 사근사근하게 접힌 눈꼬리와 헤벌쭉 벌려진 입꼬리는 바닥으로 내려올 줄을 몰랐다. 한참이나 손 위에 올려진 훈장을 소중하다는 듯이 들여다보던 매버릭은 자리에서 일어나 후다닥 발을 움직여 곧 방에서 무언가를 들고나왔다.

매버릭이 항상 소중하게 여겼던 상자. 그와 좀 많이 멀어 보이는, 스테인리스,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유리병으로 된 것이 아닌, 고급스러운 원목으로 된 보관함. 이 집에 들어오기 전부터, 격납고에서 생활했었을 때도 항상 소중히 챙기고 다니던 거였다. 루스터도, 매버릭과 친한 지인 그 누구도 거기에 뭐가 들어있는지 모른다. 정말 매버릭 혼자만 간직하고 있는 비밀이었다.

그저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다는 생각에 호기심 가득했던, 그 옛날 피트 '삼촌'과 모험이라면서 집 곳곳에 숨겨져 있는 보물을 찾아다니며 하루를 즐겼던 어린 브래들리로 돌아간 듯한 루스터는 눈을 빛내며 상자가 열리기만을 잠자코 기다렸다.

매버릭은 조심스럽게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뚜껑이 열리자마자 루스터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자기 기억 한편에서 잊고 있었던, 엄마와의 추억이 깃든 매버릭에게 수여했었던 훈장. 지금은 다 낡고 해져서 색이 바래진 색종이와, 살짝 옅어졌지만 좋아하는 마음을 써 내려간 글씨는 그대로 선명하게 남아있는 크레파스로 만들어진 오래된 훈장. 그리고,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단어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삼촌.

그동안 아이 앞에서 험한 말을 자제하고 있었던 루스터는 생각을 거치지 않고 "Holy..."라는 단어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자마자 너무 놀라서 숨을 들이켜고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감회가 새로우면서도 3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지나 꺼낸 기억에 쑥스러움이 몰려온 루스터는 부끄러움이 역력한지 볼과 턱을 살살 긁어댔다.

"세상에, 그걸 어떻게... 여태 안 버리고 갖고 있었어요? 너무 오래됐는데."

"그래서, 더 이상 상하지 말라고 코팅해놨지."

괜스레 코끝을 훔치고 부채질을 해대며 민망함에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툴툴거리는 식으로 말을 내뱉는 루스터에 매버릭은 천연덕스럽게 코팅된 훈장을 들어 보이며 히히 웃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깊게 팬 눈가의 주름이 접히며 유하게 웃은 매버릭은 "그럼, 당연하지. 네가 준 거고 나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건데 어떻게 버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누가 훈장을 멋대로 버리니? 나 잡혀가라고?"

킥킥 웃으며 수갑을 찬 흉내를 내는 매버릭은 말과 행동은 달리 표정은 온화한 미소로 루스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감정이 북받친 루스터는 말끝이 흐려졌다. 눈물이 차올라서 시큰해진 눈가를 짚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가 이내 고개를 번쩍 들고 손을 맞잡은 둘은 별을 수놓기라도 한 듯이 반짝이고 열망이 가득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Honey..."

"Kid..."

"Sweetheart..."

말이 거기까지 끝나자마자 와락 껴안으며 둘만의 세상에 빠져서 보호해야 할 아이는 안중에도 없이 부드러운 키스를 하는 아빠들에 아이는 '또 저런다...' 하는 눈으로, 아이 인생에서는 평생을 저러고 살았던 둘을 대수롭지 않게 바라보며 "Ewww..." 하고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젓고는 먼저 자리를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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