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

[카게오이] 생일

2016.07.24 업로드

저장 by 은채/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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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오쨩."
"네?"
"다음주 내 생일이야."

카게야마는 잠시 침묵했다. 사람들과 별로 어울려 본적 없는 카게야마는 생일이라는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잘 몰랐다. 그래서 겨우,

"생일 축하드립니다."

축하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오이카와는 그런 어설픈 축하에 예쁘게 웃었다.

"그치? 축하해야지? 이 오이카와씨 생일이니까 말이야."
"네, 네에."
"자, 그럼 7월 20일에 일정 비워."
"제가 왜요?"

오이카와는 웃으면서 카게야마의 입술을 잡아당겼다.

"어느 귀여운 입이 선배 말에 토를 다는 걸까나?"
"아야야야, 아파요! 왜그러는 건데요!"
"토비오쨩은 바보예요? 다음 주 내 생일이라니까?"
"그거랑 무슨 상관……."
"토비오쨩이 이렇게까지 멍청하다니, 오이카와씨 걱정스러워. 그 날이 내 생일일거라는 자연스러운 추측도 못해?"

카게야마는 배구 시합할 때 이외에는 눈치가 느리다 못해 없었지만 그래도 그정도 추측을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단지 대상이 너무 의외였다. 오이카와선배가 자신의 생일에 만나자고 할 거라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못한 탓이었다. 생일이면 보통 친구나 가족이나 애인이랑 같이 보내는 거 아닌가. 그 범주에 카게야마는 없다. 아무리 둔한 카게야마라도 그건 알고 있다.

생일에 굳이 자신을 만날 필요가 있냐고 묻고 싶었다. 왜 그날 굳이 만나자고 하는지. 하지만 그런 말을 내뱉으면 오이카와씨가 싫으면 말고, 그런 식으로 말을 바꿀것 같아 묻지 않았다.

"네."

의아해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카게야마는 순순히 대답했고 오이카와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그리고는 구체적인 약속까지 잡았다. 학교 수업이 끝난 후에 어디서 만나자고. 20일은 수요일이고 세이죠의 배구부는 월요일에 쉰다고 했다.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하자고 하며 전화번호까지 주고 받았다. 당신과 내가 왜 갑자기 이렇게 친밀한 것 같은 사이가 됐지? 기쁜 한 편 불안했다. 내게 왜 이러는 걸까. 부활동을 끝내고 나서 만나기로 했지만, 왜 굳이 그때 만나자고 하는지 카게야마는 알수가 없었다.



***


20일이 됐다. 고기만두를 사주겠다는 주장의 말에 카게야마는 일이 있다며 고개를 젓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7시. 7시 30분인 약속시간까지 빠듯했다. 평일 저녁의 번화가는 꽤 복작거렸다. 오이카와가 말한 곳은 사람들이 흔히 만나자고 하는 약속장소여서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렇다 해도 카게야마는 금방 오이카와를 찾을 수 있었다. 아무리 사람들 틈에 섞여있다고 해도 오이카와를 찾는 일은 늘 쉬웠다. 언제나 눈에 띈다. 카게야마가 오이카와를 발견하고 그 앞으로 걸어가는 도중에 오이카와가 카게야마를 발견하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고등학교 올라와서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저렇게 웃었는데.

"얏호, 시간 맞춰서 잘 왔네?"
"네에……, 뭐."
"저녁 아직 안 먹었지? 저녁 먹으러 가자."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손목을 붙잡고 끌고가듯 걸었다. 카게야마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황금같은 생일에 자신을 부른 것도 이상한데 밥을 챙겨준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에게 붙잡힌 손을 빼내지 못하고 그를 따라갔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에게 약했다. 아무래도. 오이카와는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실 눈치채서 이러는 걸까.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를 동경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 없다. 동경은 커지고,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중학교를 졸업하면서는 아예 서로 직접적으로 연락할 수단이 없었다. 그저 너머너머로 어떤 고등학교에 간다더라, 어떻게 지낸다더라 하는 이야기만 들었다. 오이카와가 받아주지 않는 선망은 커지고 커져 어느샌가, 어찌할 도리 없는 짝사랑이 됐다. 좋아한다고 해도 넘고 싶고 이기고 싶은 상대라는 건 변함 없지만, 그래도 사랑이었다. 하지만 오이카와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를 위해서 가급적이면 가까이 하지 않으려고 했다. 시합이 있을 땐 어쩔 수 없고 반드시 이기고 싶은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같은 공간 안에 있다는 게. 자신보다 훨씬 더 뛰어난 오이카와의 모습에 좌절하면서도,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과 시합이라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식사는 평범하달지 이상하달지. 카레집이었다. 맛있다고 꽤나 유명한 곳이었지만, 굳이 맛집을 찾아보지 않는 카게야마는 모르는 곳이었다. 애초에 배구용품 살때 아니면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으로 오지도 않았다. 카레집에서 메뉴판을 보며 카게야마는 조금 신이나서 말했다.

"저, 카레 좋아해요."
"알아."
"네?"
"안다구."
"선배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카게야마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가 선배 앞에서 카레를 좋아한다고 말한 적 있나? 없던 것 같은데. 대화 자체가 드물었고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와 했던 이야기들을 거의 다 기억하고 있었다.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니까.

"그러게. 어떻게 알았더라? 잘 기억이 안 나네."

오이카와는 기억해내려는 듯, 혹은 거짓말을 하려는 듯 시선을 잠시 위로 올렸다가 어깨를 으쓱이며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고, 카게야마는 크게 의아해하지 않았다. 쿠니미나 킨다이치는 카게야마가 카레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 뭐 그쪽에서 얘기가 나왔던 거 아닐까. 주문한 카레는 꽤 빠르게 나왔다.

"잘먹겠습니다."
"잘먹겠습니다."

카레를 먹으면서 조용해진 것에 신경 쓰였다. 카라스노 사람들이랑 있을 때는 조용하단 걸 잘 인지하지도 못했는데. 조용할 틈이 없다는 것도 한몫했겠지만, 불편했다. 오이카와가 재미없다거나 지루하다고 느낄까봐.

"저, 오이카와선배 선물 사왔어요."

아직 카레는 반도 먹지 않았는데 카게야마는 꺼낼 말이 없어 선물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는 주섬주섬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오이카와는 밥은 다 먹고 달라는 말을 하지 않고 카게야마를 보았다. 카게야마가 꺼낸 건 포장도 제대로 하지 않고 물건을 사서 받은 비닐봉투째였다. 비닐봉투 안을 확인한 오이카와는 푸핫, 하고 웃었다.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정말인지.

"스프레이 파스랑 스포츠 테이프?"
"네."
"선물이 너무 성의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전, 뭐가 필요하신 지도 모르는걸요. 적어도 그건 있으면 쓰게 되는 거잖아요?"

카게야마가 입술을 비죽거리며 대답하니 오이카와는 뭐, 그건 그렇지. 하고 대답했다.

"사실 토비오쨩이 선물을 사올거라 생각은 안했는데. 고마워. 잘쓸게."

그러면서 오이카와는 제 가방에 카게야마가 준 것을 조심스럽게 넣었다. 그래봤자 스프레이 파스와 스포츠 테이프인데, 잘못하면 구겨지기라도 할 것처럼.
그리고 다시 카레를 먹었다. 카게야마는 화제를 만들고 이끌어가는 것에 미숙했기에 선물 이야기 말고는 생각나는 게 없었지만 이젠 오이카와가 이야기를 꺼냈다. 배구이야기도 있고, 아닌 것도 있었다. 배구 이야기가 아니어도 카게야마도 잘 들을 수 있는 그런 가볍고 쉬운 이야기들. 어쩐지 카라스노에서 다른 부원들과 같이 있는 것 처럼 편안했다. 기뻤다. 행복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래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잘먹었다."
"잘먹었습니다."
"자, 배를 채웠으니 다음엔……."
"오이카와선배."
"응?"
"좋아합니다."
"……에?"
"좋아해요. 오늘 불러주셔서 무척 기쁩니다. 기쁘지만, 오이카와선배는 기분 나쁘실 것 같으니까. 그러니까 너무 잘해주지 마세요. 더 좋아하게 될지도 몰라요."

카게야마는 덤덤하게 말했다. 덤덤하게 말하려고 했지만 얼굴이 붉어지고, 긴장으로 목소리가 떨렸다. 오이카와가 다시 웃었다. 카라스노와 세이죠의 연습게임때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내가 어째서 잘해주는지는 생각 안해봤어?"

생각 해봤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단지 변덕이 나서 그런가보다. 그런 결론 말고는 아무것도 추측할 수 없었다.

그도 같은 감정일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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