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rt Bloom (번역본)
여명 편 초안 (래디에센트 크로니클)
오늘도 그저 그런 날 중 하나였다. 미오는 이미 그런 날에 익숙해져 있었다.
미오는 황혼이 깔린 마을을 터벅터벅 걸으며 이방인이 하룻밤 머물 곳을 찾아 시선을 곳곳이 옮겼다. 하다못해 몇 시간 동안 편하게 드러누울 수 있는 건조한 부드러운 흙바닥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었다. 시야 끄트머리에 튼튼한 나무 하나가 들어오자 감지덕지한 마음에 미오는 나무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다다르자마자 미오는 쓰러지다시피 나무에 기대앉았다. 작은 빵 쪼가리와 사과 한 알이 저녁의 전부였기에 배가 꼬르륵 고파왔다. 그러나 그동안 공연으로 벌어들인 돈이 슬슬 바닥을 보이고 있었기에, 다음 며칠을 생각하면 절약해야 했다.
졸음이 몰려와 미오의 눈이 잠시 감겼지만, 다음 순간 다시 번쩍 뜨였다. 꽃을 거의 잊어버리고 있었다. 속으로 반성하며 미오는 몸을 다시 똑바로 세웠다. 곧이어 낡은 가방에 손을 뻗어 안에서 바스러질 듯한 꽃송이 하나를 꺼냈다. 색이 어찌나 옅은 분홍색이었는지 거의 흰색에 가까운 꽃은 잎의 가장자리가 시들고 있었다. 꽃을 내려놓기 전 잠시 눈길을 주었다가, 미오는 작은 녹색의 씨앗을 집어 들었다.
몇 분 후, 가슴께까지 올린 두 손에는 반쯤 피어난 꽃이 들려있었다. 색이 바랜 꽃은 곧 빠르게 시들어갔다. 미오의 마음에 슬픔이 잠시 찾아왔다가, 좌절감이 잠식했다. 꽃을 멀리 던져버리고 미오는 땅바닥에 도로 누워버렸다.
“난 왜 못하는 걸까?”
* * *
“있잖아, 미오. 요즘 정말 이상한 기분이 들어.”
미오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쌍둥이 오빠를 바라보았다. 갈색 머리카락에 갈색 눈, 마른 체격까지, 리건은 미오와 생김새가 꽤 비슷했다. 둘 중 덜 진지한 성격인 리건의 눈에 엄숙한 분위기가 깔리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러나 지금 그 깊은 갈색 어디에서도 웃음은 조각조차 보이지 않았다.
“내 안의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내가… 더 이상 내가 아닌 것 같아.”
미오는 몸을 완전히 돌려 자신의 쌍둥이를 똑같이 진지한 얼굴로 응시했다. 리건의 눈 아래 숨겨진 그림자가 뭔지 알 수 없어 미오 역시 불안해졌다.
“요즘 컨디션이 안 좋았잖아. 이상한 기분이 들 수도 있지. 너무 걱정하지 말고….”
미오가 조심스레 꺼낸 말은 리건이 고개를 천천히 흔들자 뚝 멈췄다.
“그거하곤 상관없어. 그게… 난… 난 무서워, 미오.”
미오는 리건의 눈 뒤로 차오르는 눈물을 알아채고 말없이 손을 뻗었다. 리건의 손에 미오의 손이 부드럽게 닿았다.
“그만 자자, 리건. 아침이 되면 기분이 나질 거야, 약속할게.”
긴 침묵 후, 리건은 주저하다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감았다. 미오는 리건을 잠시 부드러운 시선으로 응시하다 자신도 눈을 감았다.
사흘 후, 리건은 사라졌다.
* * *
미오는 고작 열 살이었을 때 하트리스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러나 미오가 열여섯 살이 될 때까지 그것들은 형체 없는 악몽에 불과했다. 리건이 하트리스가 되었을 때까진 말이다. 미오는 격렬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리건은 마음을 잃기 시작했을 뿐, 아직은 하트리스가 아니었다. 그리고 미오는 결코 그가 하트리스가 될 때까지 손 놓고 볼 생각이 없었다.
“제발 알려주세요. 리건에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되돌릴 방법을 알려주세요.”
“내가 알았다면 기꺼이 네게 말해주었을 것이다, 미오. 진심이란다.”
미오는 외로운 눈으로 나이 든 할아버지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의 뿌연 눈은 미오를 응시하고 있었지만 그를 보지 못했다. 완전히 홀로 남겨진 기분에 미오는 훌쩍였다. 리건이 밤중에 갑자기 사라진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가 사라진 것을 눈치챈 후, 미오는 그를 찾기 위해 마을 전체를 뒤집어엎었다. 그럼에도 그를 찾지 못하자 미오는 절망에 빠져 주저앉아 울었었다. 미오가 다시 일어나 리건이 남긴 편지를 읽을 수 있을 만큼 자신을 추스를 때까진 며칠의 시간이 걸렸다.
편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리건은 자신이 마음을 천천히 잃어가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완전히 하트리스가 되었을 때 미오에게 상처를 주게 될까 무서웠다. 그는 미안하다고 했다.
미오는 무수히 많은 질문을 들고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그가 답해줄 수 있는 질문은 몇 없었지만, 첫 번째 질문은 간단한 편이었다.
“하트리스는 겉으론 다른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단다, 미오. 그들은 그저 마음을, 감정을 느끼고, 공감하고, 사랑할 능력을 잃었을 뿐이란다. 어찌 보면… 사람이었지만 빈 껍데기만 남은 것이라 볼 수 있지.”
미오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같은 문장에 “리건”과 “빈”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이 어색했다. 마음이 조금 정리된 후에, 미오는 두 번째로 질문했다.
“변하는 과정 말이니? 사람마다 다르단다. 지닌 마음이 강할수록 변이되는 과정이 느리지. 하지만 그 어떤 강한 마음도 일 년 이상 버티지는 못할 거다.”
그 순간, 미오는 제 쌍둥이를 찾으려 그 자리에서 뛰쳐나가려는 충동을 억제해야 했다. 아직 답을 얻어야 하는 마지막 질문이 남아있었다.
“그를 되돌릴 방법은 무엇이죠?”
하루도 지나지 않아 미오는 짐을 싸서 떠날 준비를 마쳤다. 설령 그게 자신이 하는 마지막 일이 될지라도, 미오는 리건을 찾아 구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 * *
아침에 미오를 깨운 것은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밝은 햇빛이 아니라 새들의 지저귐이었다. 다시 잠들고 싶은 유혹을 느끼며 미오는 반쯤 감긴 눈으로 하품했다. 졸음이 덕지덕지 붙은 눈은 자신이 누워있는 땅바닥을 스쳐, 거의 시들어 말라버린 반만 피어난 꽃에 닿았다. 갑자기 졸음이 싹 사라져 미오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연습해야 했다.
다시, 미오는 손에 녹색 씨앗을 쥐고 꽃이 피어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이번에도 반밖에 피지 않은 꽃은 눈앞에서 시들기 시작했다. 미오는 한숨을 쉬고 꽃을 옆으로 던져버렸다. 절망이 점차 커져 미오는 손에 얼굴을 묻었다.
“왜 나는 꽃을 피우지 못하는 걸까?”
* * *
“왜 저는 꽃을 피우지 못하는 걸까요?”
엠리스가 고개를 들어 눈물을 터트리기 직전인 미오를 올려다보았다. 유감이라는 듯 미소지으며 다가오라 손짓한 후, 엠리스는 위로를 담아 미오의 어깨를 토닥였다. 미오는 엠리스에게 자신의 처참한 시도를 내보였다. 꽃은 메마르고 시들었으며, 화강암처럼 색이 없었다. 엠리스는 조심스레 꽃을 받아들고 잠시 들여다본 후, 미오에게 돌려주었다.
“이 마술을 완성하려면 많은 연습이 필요하지. 네 불을 다루는 재능과도 비슷해. 타고난 재능이 없다면 배우기가 쉽지 않을 거야.”
“그럼… 저는 영원히 꽃을 피워내는 마술을 배울 수 없는 건가요?”
미오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에 엠리스는 움찔하며 급히 말을 뒤늦게 수정했다.
“내 말은 그게 아니야. 너도 나처럼 꽃을 피워낼 만한 재능이 있다고 확신해. 문제는 다른 곳에 있지.”
여전히 절박했고, 이젠 흡사 호기심까지 들었기에 미오는 물었다. 그게 뭔데요?
엠리스는 오랫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몇 분의 긴 침묵 끝에서야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네 마음.”
미오의 눈이 동그래졌다. 무의식적으로 가슴께에 손을 올린 미오는 리건이 처한 상황을 떠올리며 부르르 떨었다.
“미오, 내 말을 오해하지 마. 네가 하트리스로 변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니까. 그렇지만 네 마음속의 무언가가 꽃을 피워내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건 확실해.”
“그래서는 안 돼요.”
조용히 중얼거리며 미오는 자신의 손에 든 꽃을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이렇게 계속 실패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불어오는 따스한 바람에 엠리스의 웃음이 울렸다. 그의 손이 다정하게 미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넌 언젠가 꽃을 피울 거야. 난 알 수 있어.”
* * *
꽃을 피우는 마술과 달리, 미오는 불을 피워내는 마술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화염 마술의 기본기를 터득하는 데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고, 한 달 후 미오는 유랑극단의 정기 공연자가 되어 있었다. 처음 미오가 그들의 공연에 감명받은 것처럼, 그들은 미오의 재능에 감탄하고 극단에 들어오라 제의했다. 미오도 달리 갈 곳이 없었기에 그들의 제안을 감사히 받아들였다.
‘어쩌면, 내가 유명해지면 리건이 나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될지도 몰라. 그럼 날 보러 찾아오겠지? 그 후엔 우리가 같이 집에 갈 방법을 찾으면 되는 거야.’
미오는 희망에 부풀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미오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갔다. ‘춤추는 불꽃’이라, 사람들은 미오를 칭했다. 미오는 새롭게 발굴한 자신의 재능도, 사귄 친구도 좋았다. 그러나 리건은 여전히 오지 않았다.
* * *
군중이 몰려들어 미오가 불길 사이에서 우아하게 춤을 추는 것을 놀라움과 감탄을 담아 구경했다. 미오의 늘씬한 팔이 작은 몸집 주위의 타오르는 붉은 불꽃을 이끌었다. 돌고, 회전하고, 미오는 주홍색 불길을 파트너 삼아 기품있게 춤을 추었다. 천천히, 회전 속도를 늦추며 미오는 양팔을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렸다. 회전이 멈추자 불꽃은 팔을 타고 올라 잠시 공중에 머물렀다가, 번쩍이는 불꽃놀이를 터트리며 사라졌다. 미오가 허리를 숙여 인사하자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일부는 공연에 대한 감사로 동전을 주기 위해 다가왔다. 미오는 웃으며 한명 한명에게 따듯한 감사를 표했다. 마지막 사람이 미오에게 다가왔을 때, 미오는 감사 인사 후 희망이 밴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리건’이라는 이름의, 저와 닮은 소년을 보신 적이 있나요?”
그가 부정의 뜻으로 고개를 저었다. 미오는 고개를 푹 숙였다.
* * *
유랑극단과 함께 여행한 지 석 달이 지났을 무렵, 미오는 하루하루가 지나갈수록 낙담했다. 리건을 보기는커녕 그에 대한 소식 하나 듣지 못했고, 미오는 주어진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새로운 친구들과 삶을 사랑했지만, 미오 스스로도 더는 머무를 수 없다고 느꼈다. 친구들과 안락했던 일상에 작별 인사를 하고, 미오는 다시 쌍둥이를 찾기 위한 여정에 나섰다.
그 후 한 달 간, 미오는 공연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홀로 떠돌았다. 엠리스를 우연히 만났을 무렵, 미오는 리건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잃기 직전이었다. 미오가 엠리스를 처음 봤을 때, 그는 미오와 같은 화염 마술을 펼치고 있었다. 미오는 불꽃이 춤을 추는 모습을 황홀한 표정으로 구경했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 공연으로 손에서 마술로 피워낸 꽃잎을 흩뿌리자 미오의 시선은 그에게 고정되었다.
그 순간, 미오는 저것이 자신이 원하는 마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의미 있는 이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마술. 리건의 마음에 생명을 불어넣는 마술.
미오는 군중이 흩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대담하게 엠리스에게 다가섰다.
“저는 떠돌이 마술사, 미오예요. 저에게 꽃을 피우는 마술을 가르쳐주세요.”
* * *
미오는 유독 피곤한 기분으로 아침에 기상했다. 지난 며칠간 자신의 휴식처가 되어준 나무에 기대 미오는 몸을 쭉 뻗었다. 이곳에 며칠 더 머무르고, 다른 마을로 옮겨서 리건을 찾아보기로 결정을 내린 참이었다. 수확은 없을지라도, 그동안 매일 공연을 하며 그의 행방에 관해 물어볼 예정이었다. 미오는 일어서서 고개를 흔들며 잠을 쫓아버리고 마을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해가 중천에 떠오른 시각, 전날처럼 미오가 불꽃과 춤을 추는 광경을 보기 위해 군중이 몰려들었다. 불꽃의 따스함을 망토처럼 두르고 미오는 다시 빙글빙글 돌았다. 오래 지나지 않아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고개를 든 순간, 미오는 타인의 눈 한 쌍과 시선이 마주쳤다.
저 비슷한 갈색. 거울을 바라보는 것 같은, 저 익숙한 눈. 제 쌍둥이 오빠의 눈. 리건.
그 이름이 격렬한 강물처럼 마음을 휩쓸자 미오는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리건. 그러나 눈을 깜빡이기도 전에 그의 눈이 사라졌다. 미오는 그 익숙한 얼굴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군중을 둘러보았지만 낯선 이들만이 미오를 맞이했다. 사람들이 다가오자 미오는 필사적으로 물었다.
“저와 닮은 소년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의 이름은 리건이에요. 제발, 그를 보신 적이 있나요?”
그를 봤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오는 군중 사이에서 뛰쳐나가 텅 빈 거리를 내달리며, 길을 잃은 아이처럼 리건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메아리밖에 없었다. 목소리는 점차 작아지고, 결국 미오는 길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리건이 떠난 이후 처음으로, 미오는 온전히 황폐한 절망에 휩싸였다.
* * *
미오의 시선이 자신 앞에 몰려든 군중에 머물렀다. 끝없이 꽃을 피워내는 마술을 연습하느라 밤에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러나 아직도 부족했다. 리건을 다시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미오는 모든 용기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익숙한 눈을 찾던 미오의 시야에 그의 눈이 들어오자 미약한 희망이 차올랐다. 리건은 미오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응시하고 있었다. 미오는 미소지었다.
미오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번만큼은, 군중을 만족시키는 것에 신경 한 톨도 쓰지 않았다. 미오가 기쁨을 주고 싶은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불꽃이 점차 높이 솟아올라 끝없는 원을 그리며 미오의 주변을 우아하게 장식했다. 미오의 움직임이 멈추자 사람들이 감탄하고 박수를 보냈다. 미오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 떨리는, 그러나 분명한 목소리로 말을 전달했다.
“오늘 공연을 보러 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한분 한분,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제가 제일 아끼는 이를 위한 특별한 선물을 선보이며 오늘의 공연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미오의 눈은 리건을 쉽게 찾아내어 긴 순간 머물렀다. 그리고 미오는 자신의 떨리는 손에 든 물건을 응시했다.
작은, 녹색의 씨앗.
미오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눈을 감고 가슴에 씨앗을 가까이 가져오며, 마술이 완성되도록 간절히 염원했다. 단 한 번만이라도, 그를 위해.
몇 초, 몇 분이 지났다. 군중은 미오를 열렬하게 바라보며 팽팽한 긴장감에 숨도 쉬지 않고 있었다. 눈을 꾹 감고 씨앗을 움켜쥔 미오에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못하겠어. 엠리스가 말한 내 마음속 무언가는 여전히 그대로야. 왜… 왜 나는 꽃을 피우지 못하는 걸까?’
감은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미오는 무릎을 꿇고 조용히 흐느꼈다. 사람들은 서로를 실망한 얼굴로 보고, 한 명씩 떠나갔다. 고개를 푹 숙이고 웅크린 채, 미오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울었다. 따듯한 손이 미오의 어깨에 닿았다. 미오는 고개를 들었다.
리건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무릎을 꿇어 미오와 시선을 맞추고, 어깨에서 손을 떼지 않을 뿐이었다. 미오는 닦아내지 못한 눈물 사이로 거의 일 년간 보지 못한 쌍둥이를 쳐다보았다. 찰나가 지나고, 미오는 시선을 떨어뜨렸다. 거의 들리지도 않을 속삭임이었지만, 리건은 단 한 단어도 놓치지 않았다.
“난 못하겠어. 꽃을 피워낼 수 없어. 못해, 못하겠어….”
리건은 말없이 미오의 말을 경청했다. 몇 분의 긴 침묵이 둘 사이에 머물렀다. 그리고, 조용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날 위해 꽃을 피워 줘, 미오.”
리건의 손이 미오의 떨리는 손을 감싸고, 미오는 다시 한번 눈을 감았다. 손을 마음 가까이 가져와, 미오는 기도하듯 고개를 숙였다.
꽃이 피어났다. 창백한, 그러나 아름다운 분홍색 꽃잎이 미오의 손안에 만개했다. 미오는 눈물 사이로 웃어 보였다.
“이건 내 마음이, 네 마음에 주는 선물이야.”
Written 21-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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