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2 ss

Panorama

K=Potassium by KPo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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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참 팔자가 좋다. 집 밖 구경 한 번 나갈 생각을 않고 그저 방석 위에 앉아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구경하는 게 유일한 일과다. 가끔 가게 문에 달린 도어벨이 딸랑이면 그쪽으로 시선은 한 번 준다. 그 혹은 그녀가 고양이에 관심이 없어 지나치면 지나치는대로, 관심이 있어 다가오면 다가오는대로 또 움직이지를 않는다. 인간에게 피해를 입지 않은 포근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이란 이리도 느긋한 것이다.

야옹 이건 등에 검은 줄무늬를 멋들어지게 그려낸 고디의 울음소리다. 자신에게 다가온 손님으로 추정되는 인간을 고개만 들어 올려다보고 있다. 방석 위에 둥그렇게 웅크린 자세는 풀지를 않았다.

그르르 이건 온몸을 새카맣게 칠한 네로의 울음소리다. 아예 옆으로 누워서는 고개를 들지도 않는다. 묘하게 푸른빛이 도는 눈동자를 데굴 굴려 인간을 쳐다보고는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인간을 맞이하는 일보다는 자신의 편안함이 우선이라는 듯이, 발가락 하나도 꼬물대지를 않는다.

"올 때마다 크는 것 같네."

이건 기모 저지의 지퍼를 목 끝 턱 아래까지 올린 백도화의 목소리다. 갑작스러운 추위에 집 옷장을 뒤지다가 겨우 작년에 입던 기모 저지를 발견한 그다. 평소처럼 운동을 하러 저 아래 도시까지 내려가다가, 오늘따라 다소 일찍 문을 연 동네 서점의 문을 열고 들어와버렸다.

"성장기니까요."

이건 가게 바닥에 앉아 재고 정리를 하고 있던 현의 목소리다. 도화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부터 그는 줄곧 가게 바닥에 털썩 앉아 있었다. 앉은 자리 주변에 재고로 추정되는 책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장부를 뒤적이면서.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문가를 한 번 쳐다보긴 하였으나, 그의 정체가 손님이 아닌 불청객임을 알아채곤 도로 시선을 물렸다. 행동 양식이 그가 기르는 고양이와 아주 흡사하다.

고디는 이제 방석 위에 네 발을 딛고 섰다. 도화의 발치에 털이 보송보송한 머리를 비벼댄다. 서점에 상대적으로 얼굴을 자주 비치는 인간이니 아무래도 경계심이 적은 모양이다. 보송보송한 녀석을 그대로 두 손으로 들어올리면, 끙끙거리는 건지 낑낑거리는 건지 알기 어려운 울음소리를 내면서 네 다리를 꼬물댄다. 내려달라는 소리 같다. 그래서 그대로 내려주었다. 아까의 웅크린 자세로 되돌아간다.

"괴롭히지 마세요."

"놀아준 거야."

네로는 이제 이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는다. 서점 주인도 그렇다. 고양이는 그렇다 쳐도, 어떻게 가게의 사장이 손님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있는 건지에 대해 도화는 생각한다. 두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가게의 운영에 큰 관심이 없거나, 가게의 유일한 손님인 자신이 가게에 득도 해도 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나. 크리스마스 이브 아침부터 재고 정리를 하고 있는 걸 보면 가게 운영은 착실히 하고 있는 것 같으니 아마 후자에 가까울 거다.

그러고 보면 초겨울 즈음부터 서점에는 작은 변화가 하나 생겼다. 인테리어 소품이 대충 놓여 있었던 서점 안쪽 카운터 근처 벽가에, 소품은 싹 사라지고 보기 좋은 그림이 그려진 소형 캔버스들이 줄줄이 걸리기 시작한 것이다. 사장에게 새로운 취미가 생겼나 싶어 캔버스를 살펴보면 그 아래에 판매용이라는 안내판과 함께 가격표가 붙어 있다. 그리 싸지는 않지만 사지 못할 정도로 비싼 것도 아니다.

도화는 고양이 두 마리를 뒤로 하고 현에게로 다가갔다. 여전히 바닥에 웅크려 있던 사장이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피곤과 의아가 묘한 비율로 섞인 얼굴이다.

"그림도 팔기로 했어요? 여기."

의아의 비율이 조금 더 늘어났다.

"뭐, 네. 사시게요?"

"아는 화가가 있나 싶어서. 그림 떼와서 파는 게 쉽지는 않잖아."

"아...... 그건 아닌데. 말하자면 길어요."

사장은 양반다리로 앉아있던 자세를 풀어낸다. 왼다리는 그대로, 하지만 오른쪽 무릎은 세워 앉는 모양새가 되었다. 자세를 바꾸면서 근처의 책탑을 건드려 무너뜨릴 뻔한 것을 도화가 어찌어찌 받아낸다.

"올 봄에 부산에서 살인사건 하나 있었는데. 혹시 아세요?"

"범위가 너무 넓은 거 아니야?"

"대서특필된 사건도 아니긴 하죠."

"그러면 내가 알 리 없잖아."

"백도화 씨니까, 혹시나 싶어서."

도화는 잠시 현을 빤히 내려다본다. 아침부터 무슨 장난이냐는 함의가 담긴 시선이다. 현은 그 시선을 맞받다가, 먼저 눈동자를 돌렸다.

"부산에 있는 갤러리에서 사람이 하나 죽었는데, 현장에 오동현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이번에는 현이 도화를 빤히 올려다본다. 도화와 동현의 관계를 이미 알고 있는 그다.

당신들, 어차피 일도 같이 하고 친한 것 같은데 정말 몰라? 라는 함의를 도화는 읽어낸다. 하지만 무시한다.

"그래서?"

"현장이 장난이 아니었대요."

"왜?"

"이건 기억하시겠죠? 봄에 태풍 하나 왔었던 거. 원래 강원 쪽으로 갈 태풍이었는데, 진로가 바뀌어서 부산으로 갔던 그거."

"아, 그거야 기억하지. ......그런데 그게 왜?"

"그 갤러리가 무슨 언덕 안쪽에 있었댔나. 태풍 때문에 산사태가 일어나서 완전히 고립됐었대요. 그리고 하필이면 그 때 사람이 하나 죽었고."

추리소설 같은 현장이죠, 라고 현은 덧붙였다. 소설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는 도화는 어떤 부분이 추리소설과 비슷한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림을 팔아볼까 생각했어요."

"음?"

"오동현이 하도 갤러리 갤러리 얘기를 해 대니까, 이거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아이템일지도? 싶은 생각이 들어서."

"뭐야, 비약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그놈 넋두리를 계속 듣다 보면 다른 생각을 하게 돼요. 그보다, 오동현한테 정말 못 들으셨어요?"

"그쪽 이야기 듣다 보니 그런 얘기를 했었던 것도 같고."

"보세요. 도화 씨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셨잖아요. 그런 거예요."

도화는 문득 동현의 바보 같은 얼굴을 떠올리기나 한다. 다니던 대학도 졸업을 않고 탐정이 되겠다며 대뜸 뒷세계로 뛰어든, 도화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는 사고 회로를 가진 녀석의 허여멀건 얼굴을.

그나저나 세상은 좁구나. 살다보니 그 바보의 둘도 없는 친구를 마주치기도 하고. 아무리 봐도 탐정이며 조사원이라는 직업에 어울리는 건 오동현이 아니라 이쪽 같은데 말이지.

의도적으로 인간관계를 늘리지 않고 있는 도화에게 있어 현과의 교류는 다소 특수성이 있었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웃들과도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피상적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작가 서도진과도, 변호사 윤필규와도, 하다못해 자신의 영상 편집자인 강성훈과도.

그들과 현의 차이는, 아무래도 지향성이다.

궁금한 것, 미심쩍은 것이 생기면 결판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중간한 도덕이나 타인의 감정이 장애가 된다면 최대한 배제하려 드는 오만한 태도. 이건 후천적으로 길러지는 성질이라기엔 무리가 있다. 인간은 웬만하면 성장 과정에서 사회라는 걸 배우기 때문이다. 도덕을 지키고 타인을 존중하세요, 라는 기본적인 법칙으로 이루어진 그것을.

물론 사회의 룰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보편적인 성장 과정을 대차게 벗어났던 도화의 주변에는 그런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눈앞의, 서점을 멀쩡히 운영하고 있는 남자가, 크고 자라며 그런 것을 배우지 못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니 그는 그러한 가르침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이다.

그렇게 타고난 자신을 바꾸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변두리의 도시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있을까.

현의 성정으로 도화 역시 미묘한 피해를 보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은 도화 그 자신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는 개인적인 사고였고, 그 이후로 도화에게 더한 피해가 들어오지는 않았기에, 그에 대한 악감은 어느 순간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도화는 의도적으로 그에게 접근했다. 접근하고 있다. 그것이 그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는 미지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호감도 비호감도 아닌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어쩌면 책도 몇 권 사지 않으면서 쓸데없이 가게에 들락날락하는 불청객으로 보일는지도 모른다.

"집에 그림 걸어둘 생각 없으세요?"

장부를 연신 펄럭거리던 현이 대뜸 물었다. 도화는 무심코 전시된 캔버스 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림 뒤에 소형 카메라를 설치하기 딱 알맞은 크기다. 방범용으로는 좋은 선택일 것 같다. 지금의 거주지에 그 정도의 방범은 필요없지만서도.

"걸어둘 공간이 있을지 모르겠네."

서점 한구석의 자동급식기에서 사료가 우루루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서울 남쪽의 어느 미술관에서 그녀는 기다리고 있었다.

한때 어느 외국의 영사관으로 사용되었으나 이제는 시립 미술관으로 사용되는 고풍스러운 건물. 정문을 가로막은 '오늘은 휴관입니다' 라는 안내판을 슬쩍 무시하고 부지 안으로 들어간다. 건물의 어느 창에도 불은 켜져 있지 않았다.

날이 아직 저물지는 않았지만 해는 뉘엿뉘엿 서쪽으로 육중한 몸을 움직이고 있다. 겨울은 해가 일찍 지니까, 한 시간 좀 더 지나면 완연한 밤이 되고 말 거다. 세상 모두가 들떠 마지않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이 찾아온다.

건물을 빙 돌아 뒤편으로 향한다. 그곳에 개방된 뒷문이 있다고 그녀가 언질해주었다. 미술관 부지는 거진 잔디로 되어 있어, 봄이었다면 꽃과 나무가 융성했을 법한, 하지만 지금은 앙상한 가지뿐인 초목이 곳곳에 심겨 있다. 몸을 숨기기에는 적합하지 못한 환경이다. 경비원의 모습은 따로 보이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건물 뒤편의 작은 뒷문을 연다. 끼이익, 하는 소리 하나 나지 않고 문은 조용히 열렸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희미하지만 온기가 느껴졌다. 개관일이었던 어제의 난방 기운이 남아있는 것이리라.

뒷문 바로 앞은 복도였다. 복도의 양 옆으로 전시실로 향하는 여닫이문이 세 개 씩 달려있고, 복도 너머로는 정문이었을 문이 보인다. 지금은 당연하게도 닫혀있다. 건물을 빙 돌았을 때도 생각한 거지만 미술관치고 규모가 그다지 크지는 않다.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은 뒷문에서 바라보았을 때 오른쪽에 있었다. 그녀는 2층의 가장 큰 전시실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잠자코 계단을 오른다. 그가 내는 발소리 외에 다른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계단을 오르자 1층과 같은 구성의 복도가 그를 맞이했다. 1층과 다른 점은 복도 맞은편에 문이 없다는 걸까. 그녀가 지정한 가장 큰 전시실이 어디일지 잠시 고민하고 있으니 왼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왼쪽 벽에 나란히 선 세 개의 여닫이문. 중앙의 문을 향해 그는 전진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최은수는 두 개의 문이 달린 전시실 가운데에 서 있었다. 조명은 전부 꺼져있다. 블라인드를 내린 창문에서 희미하게 들어오는 햇빛만이 유일한 광원이다.

뭘 그린 건지 알 수가 없는 캔버스. 어떤 걸 조각한 건지 파악하기 어려운 조각상. 무슨 재료를 써서 만든 건지 짐작도 안 되는 오브제. 그런 것들이 뒤섞인 채 방치된 전시실에 가만히 서 있는 그녀는 꼭 이곳의 전시품 같아 보이기도 한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취미가 고급지시네."

그가 목까지 올린 점퍼의 지퍼를 조금 내리며 말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와 미술관이라. 내 인생에는 없을 조합인 줄 알았거든."

그의 빈정거림을 들으면서, 그녀는 새카만 단발을 한쪽 귀 뒤로 넘긴다.

"어디에든 사람이 많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굳이굳이 결과를 듣고 싶다고 한 건 너잖아?"

그리고 그녀는 오른쪽 입꼬리만을 들어 웃는다.

"서진 씨는 어때? 잘 지내?"

"잘 지내지 않을까?"

"좀 멍청하긴 하지만 그래서 마음에 들었는데, 다음에 다시 불러내도 괜찮지?"

"상관 없어."

"그럼 그렇게 전해주고."

은수는 왼손으로 들고 있던 서류 가방을 연다. 얇은 서류철을 꺼내 그에게 건넨다. 오늘의 본론이 적힌 보고서다. 그는 보고서를 받자마자 페이지를 펄럭펄럭 넘겨 본다.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보고서의 결론에는, 원하는 정보는 그 무엇도 쓰여있지 않았다.

"이게 뭐야?"

"뭐긴, 네가 원했던 보고서지."

"보고할 거리가 없는 걸 보고서라고 해도 되나?"

"보고할 거리가 없다는 걸 보고한 보고서지."

"말장난 할 기분 아니야."

보고서를 돌려달라는 듯 손을 내밀기에 그는 텅 빈 보고서를 그녀의 손으로 넘긴다. 서류 가방에 보고서를 도로 넣고 나서, 그녀는 입꼬리를 올려 기분 나쁘게 웃었다. 본래 웃음을 이렇게 짓는 여자다. 그의 기분을 나쁘게 할 의도는 아니었을 거다.

"네가 타겟의 조사를 의뢰한 게 벌써 반 년이 넘어가. 알고 있지?"

"그야, 갤러리 일이 있었던 게 오 월이고 지금은 크리스마스니 반 년을 넘어 일곱 달이지. 일곱 달 동안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는 게 말이 돼? 일을 가라로 하는 거 아냐?"

"그 말 그대로 내가 되물어 볼까?"

시선이 맞았다. 그녀의 콧날 옆으로 희미한 노을빛이 비추어 들어온다. 벌써 해가 지기 시작한 거다. 빛과 그림자로 정확히 양분된 얼굴을, 그는 바라본다.

"몇 명이 달라붙어서 조사를 했는데, 일곱 달 동안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는 게 뭘 의미한다고 생각해?"

그는 생각한다.

두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짧은 오한이 스쳤다.

"알겠어?"

그는 고개 한 번 끄덕이지 않았다. 허나 긍정의 뜻은 충분히 전해졌으리라.

"타겟이 정말 무고한 일반인이든가, 아니면 떨거지가 붙은 걸 알아채고 행동을 조심한 위험한 놈이든가. 그런데 뭐, 전자의 확률이 희박하다는 건 너도 알고 있겠지?"

"......알겠어. 고마워."

"별 말씀을. 이번만큼은 동업자가 아니라 고객님이셨는걸."

"같이 나갈까?"

"아니, 나는 조금 더 둘러보고 나가려고."

"둘러볼 게 있나?"

"너 같은 사람의 심미안으로는 이해도 못할 작품들이 많지."

심한 말이었지만 그렇다고 틀린 말도 아니었으므로 그는 반박할 수 없었다.

"내가 조사하면 뭔가 나올 것 같아?"

그의 물음에 그녀는 일순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가, 또다시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이번에 쓴 애들이 너 정도로 유능한 애들은 아니긴 하지. 그런데, 그렇다고 아주 못 쓸 애들도 아니야."

"기본적인 미행은 할 수 있는 애들?"

"그렇지."

"그런데 타겟이 미행이 붙은 걸 눈치를 채고 얌전히 다녔다?"

"그런 거야."

"쉽지 않네."

"하지만 너라면 또 모르지."

"과대평가야. 나도 나이를 먹었거든."

"너...... 나보다 어리지 않아?"

맞는 말이었다. 그는 입을 다물었다. 이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금 내렸던 점퍼의 지퍼를 도로 끝까지 올리고 있으니,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잘 해 봐. 재밌는 게 나올 것 같으면 나한테도 연락하고."

"당신한테 재밌는 건 안 나올 것 같은데."

"사람 머리 같은 건 더 안 나오겠지?"

"목에 붙은 거라면 더 나올지도 모르지."

"서진 씨한테 안부 전해줘."

"알았다니까."

들어왔을 때와 같은 루트로, 뒷문으로 나왔다. 한겨울의 사정없는 한기가 뺨을 갉아댄다. 목도리를 매고 나오는 편이 좋았을까, 하고 그는 잠시 후회했다.

앙상한 나무 너머로 검붉게 물든 노을이 보였다. 그 위로 살랑살랑 내려오는 이것은 분명 눈이다.

올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려나.

거리에 늘어선 트리에 눈이 소복하게 쌓이려나......

미술관 부지를 빠져나오며 그는 생각했다.

종로로 가자. 종로로 가서 영감님이랑 저녁을 먹자. 앞으로 할 일에 대해 얘기를 드리자. 조언을 구해보자.

그런 크리스마스를 보내자...... 라고.

피어오르자마자 흩어지는 입김을 보면서 민석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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