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은 흙으로
4,164자 / CP 요소 (페르휴) 및 주요 캐릭터 (휴베르트) 여체화 소재 있음
엄마의 장례식에서 언니는 울지 않는다.
언니를 질책하거나, 언니의 반응에 가타부타 말을 얹고 싶은 건 아니다. 애초에 그게 딱히 질책할 거리가 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내가 몇 살 더 어렸더라면 언니를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도 이제는 제법 머리가 굵어졌고, 고작 눈물 몇 방울이 누군가의 감정을 온전하게 비추지 않는다는 것을 알 정도로는 나이를 먹었다. 막내는, 글쎄, 잘 모르겠다. 그애는 아직 어리다. 여느 어린애들이 그렇듯 엄마를 사랑하고, 만약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있었다면 그 또한 비슷하게 사랑했을 것이다.
나와 그애는 모두 언니와 엄마가 기를 쓰고 지어올린 조그맣고 안온한 비눗방울 안에서 길러졌다. 안에서 바라볼 때에는 고성固城에 가까운 구조물이었고, 또 막내에게는 여전히 성처럼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그게 유약하기 그지없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잘 쳐 줘야 유리성이겠지. 길 잃은 바람 한 조각에 산산조각나지 않으면 다행인 정도의 유리성 말이다.
십여 년 전, 언니가 그 성의 열쇠를 건넸을 때 엄마는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그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을 것이다. 치맛자락에는 내가 달라붙어 있었고 품에는 아직 젖먹이인 막내가 안겨 있었을 테니까. 그래서 엄마는, 이제 막 십대 초반을 지난 맏이의 손을 잡아 주는 대신에 마른 등을 떠밀어 제도로 보냈고 남은 두 자식과 자기 자신을 그 유리성 안에 연금했다. 놀라울 정도로 매끄러운 전환이었다. 막내는 변화를 인지하기에는 너무 어렸고 나는 조금 혼란스러워했지만 금세 적응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엔가 아버지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에 그랬듯이.
성은 얄팍한 유리를 기워 맞춰 지었을지언정 따스함만은 확실히 끌어안을 줄 알았고 덕분에 우리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다. 숨어 사는 마당에 사치스러운 생활이 가능했을 리는 없었지만, 우리의 식탁은 항상 나와 막내의 반찬 투정을 감내할 수 있을 정도로는 여유로웠다. 치맛단 아래로 발목이 깡충하게 드러나 새 옷을 맞출 때마다 한숨을 쉬지 않아도 괜찮았고, 나이가 어느 정도 찬 후에는 엄마와 같은 방을 쓰지 않을 수 있었다. 소리를 지르며 뒷마당을 가로질러 달려나가지는 못해도 언제든 들를 수 있는 서재가 있었다. 제도의 귀족들이 으레 그러듯 먹이고 씻기고 입혀 주는 사용인들을 거느리지는 못했으나 동시에 누군가에게 굽신거려야 하는 일도 없었다. 매일이 그린 듯 완벽한 일상은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부족함이 많은 삶 또한 아니었다.
우리는 그럭저럭 충만했으며 때때로 행복했다. 울고 싶을 때 울었고, 웃고 싶을 때 웃었다. 도망친 줄도 모르고 도망쳐 있었으되 더 구석으로 몰리지는 않았다. 어린 나는 엄마에게 아버지의 행방은 묻지 않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뺨을 맞대고 지내던 언니의 행방은 종종 물었고, 그때마다 엄마는 시종의 의무에 대한 설교를 늘어놓는 대신 새로 들여온 책이나 간만의 산책으로 내 주의를 돌려 놓곤 했다. 명줄이 얼마나 경각에 달렸는지를 새기는 건 우리가 걱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두 어른의, 그 중에서도 주로 언니의 일이었다.
말하자면 우리는 언니와는 달리 너무 일찍 어른이 되지 않아도 됐다. 열 살의 언니가 박탈당했던 천진함과 무지는 유리성 안에 오래 머물렀다. 우리는 고립되어 있었기에 역설적으로 길게 아이로 남았다. 만약 언니가 십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단 한 순간만이라도 긴장을 놓쳤다면 얄팍한 비눗방울은 실제로 터졌을지 모른다. 언제 바스라질지 모르는 피난처에 우리를 밀어넣은 것도, 유리벽이 무너지지 않을까 먼 땅에서 전전긍긍한 것도 전부 언니였으니까. 유리로 올린 지붕은 무너졌을 테고 그 아래에서 이슬을 피하던 우리도 무사하지 못했겠지. 기려 줄 사람이 남아나지 않았을 테니 장례식은 한낱 사치가 되었으리라.
나는 언니보다 한 걸음 뒤에 서서 엄마의 관이 구덩이 바닥으로 내려지는 모습을 지켜본다. 둔탁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새까만 나무 상자는 바닥에 닿을 때에 가서도 이렇다 할 소음을 빚지 않는다. 끽해야 옷자락이 스치는 것 같은 바스락거림이 전부다. 어쩌면 그것마저도 언니가 몇 발 더 걸어나가는 동안 치맛자락이 구두 코끝과 부딪히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언니는 언제나처럼 흑색 일색의 뒷모습을 하고 무덤가에 서서 무언가를 받아 쥔다. 이내 반질반질한 표면 위로 꼭 한 줌만큼의 빗소리가 흩어진다. 망자의 관 위에 내려앉는 첫 흙이다.
흙은 흙으로, 재는 재로, 먼지는 먼지로. Earth to earth, ashes to ashes, dust to dust.
언니의 선창은 나직하고 건조하게 끊긴다. 한 줌 흙이 효시라도 된 것처럼 쏟아지기 시작한 겨울 비와는 대조적이다. 둘째 자식인 내가 언니 다음으로 불려 나간다. 손에 쥐어지는 흙은 척척하고 무겁다. 검은 베일 너머 언뜻 비치는 언니의 눈짓을 따라서, 나는 흙을 구덩이 속으로 던져 넣는다. 이번에야말로 둔탁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빗소리가 이어진다. 느린 영창을 따라 외는 추도객들의 뒷덜미가 새카맣게 젖어든다. 몇몇은 이미 우산을 펼쳤다. 언니의 머리 위로도 우산이 펼쳐진다. 그 사람이다. 알아보기 어렵지는 않다. 그렇잖아도 눈에 띄는 길고 굽슬거리는 구릿빛 머리칼인데, 하물며 흑색 일색인 장례식장에서야 어떻겠는가. 언니는 변함없이 꼿꼿하게 서 있다. 그 사람은 언니가 눌러쓰고 있는 후드 안쪽을 잠시 들여다봤다가, 별 말 없이 자세를 바르게 한다. 거세진 빗줄기와 눈물을 구분할 방법이야 없겠으나 나는 언니가 여전히 울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언니가 차라리 울었으면 좋겠어. 나는 생각한다. 눈물이 흠이 아니게 될 순간에 잠깐이라도, 무언가를 짊어지고 지탱하는 대신 전부 내려놓고 흘려보냈으면 좋겠다고.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내가 언니를 몰랐으면, 언니가 무엇을 견뎌야 했는지 알지 못할 정도로 마냥 어렸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한다. 내 소매를 쥐고 눈이 짓무르도록 울고 있는 막내처럼. 그 애에게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 나는……. 내가 마냥 어릴 수 있었던 시기는 이미 지났다. 설령 지나지 않았었다 하더라도 오늘이 끝이었을 테다.
보닛 위로 드리운 검은 베일이 푹 젖어 질척이기 시작한다. 그 사람의 왼쪽 어깨도 새카맣게 젖어 있다.
내가 언니 쪽으로 다가섰을 때 그 사람은 조용히 자리를 비켜 준다. 언니는 나를 오래 바라보지는 않지만 손만큼은 선뜻 내어 준다. 언니가 오랜 외출을 마치고 돌아올 때에 으레 그랬듯 내밀어지는 손에 얼굴을 묻을 수도 있었겠지만, 글쎄, 나는 차마 그러지 못한다. 그래서는 안 될 것 같고, 그럴 수도 없을 것 같다.
일순 깨달음이 스친다. 언니의 마른 뺨 위, 나와 똑같은 녹색의 눈 너머에는 내 것과 너무나도 다른 감정들이 얽혀 있다. 내가 쥔 언니의 손끝은 기실 내 손 안에 있지 않다. 언니는 지독하게 멀리 있고 그런 지가 오래되었을 것이다.
나는 언니가 내게 보여 준 다정함에 단 한 점의 위선도 섞여 있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확언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결국 나는 언니를 이해할 수 없을 것임을, 내가 그간 생각해 왔던 우리의 닮음이란 대개 나의 오만이었음을 나는 깨닫는다. 우리는 물론 닮았으나 생각보다 더 다르다. 한 배에서 나왔으나 달리 길러졌으므로 그렇지 않을 방도가 없다. 나는 언니가 울지 않는 이유를 제아무리 나이를 먹은들 끽해야 짐작 정도나 할 수 있을 테고 엄마와 언니 사이에 무엇이 오갔는지는 평생 모를 것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어떤 산 자들은 죽은 자들보다도 입이 무겁기 때문에, 언젠가 내가 - 어쩌면 언니보다 먼저 - 엄마의 뒤를 따라 흙으로 화하는 그날까지도 무지의 장막 뒤에는 아주 많은 것들이 감춰져 있으리라. 그 때에도 언니는 내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겠지. 그리고 행여 내가 너무 많이 알게 되지는 않았는지 불안해할 테다. 그게 언니라는 사람이니까.
눈물의 부재가 몰이해의 방증이 되어 언니와 나 사이를 지난다. 언니를 질책하거나 말을 얹지 않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애초에 그럴 능력도 권리도 나에게는 없다는 것을 방금 깨달은 참이다. 나는 언니의 손을 놓는다. 언니는 약간 놀란 기색이지만 선선히 내 손을 놓아 준다. 잠시간의 동요는 금세 자취를 감춘다.
나는 혼자 울고 있을 막내 곁으로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옮긴다. 생각하느라 잠시 멎었던 눈물이 곧 제자리를 찾고, 나는 다시 흐느끼기 시작한다. 엄마의 죽음이 슬퍼서만은 아니다. 채 가늠하지조차 못하고 있던 상실의 크기가 생각보다 크기 때문이다. 부얘진 시야 틈으로 언니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새카맣고 성마른 등은 한층 거세진 비에도 아랑곳 않고 꼿꼿하다. 아마 줄곧 그럴 것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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