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레이와 루미에 에 대한 사소한 이야기
라이레이와 루미에 에 대한 사소한 이야기
여기, 외로운 묘지기를 자청한 라이레이 옌 이 있다. 푹 가라앉은 어둠 속의 라이레이가, 그럼에도 환하게 빛나보이는 연유는 서글픈 과거를 억지로 몰아내지 않으려해서일까. 밤하늘에 박힌 별들을 가만가만 헤아려보던 손끝때문이 아닐까도 싶고. 가끔은 애저녁에 사멸한 동족들의 영혼과, 기어이 살아남아버린 자신의 선잠을 방해하는 불청객들이 방문할때가 있었을 것이다. 용인족의 뿔은 아름답고 귀하여 대륙의 암시장들을 통해 고가로 암거래되니 말이다. 밤의 휴식을 방해하는 치들이 기척에 그녀는 잠시 내려두었던 여의현철선을 더듬더듬 찾아쥐곤 의연하게 일어섰겠지. 고운 꽃잎같은 입술위로 영 어울리지 않는 쌍소리 한두마디를 살포시 올렸을지도.
고독한 라이레이 옌 만큼이나 외롭고 또 외로웠을 루미에 미라티사가 있다. 시리게 차가운 추위 속 그녀는 홀로 연거푸 차를 끓이고 흐르는 찻잎으로 잎점을 치며 쓸쓸한 하루를 겨우 채웠을 수도 있다. 꽁꽁 얼어 붙어버린 침묵들까지 안간힘으로 끌어안아야함을 잘 알고있는 루미에는 고개를 얼마든지 까닥이면서도 어쩌면, 아주 어쩌면, 방랑의 길을 허락하는 찻잎의 모양새를 가끔은 기대했을지도. 물론 그 뒤로 따라오는 죄책감은 어김없었을테지만. 그러던 어느 날, 상상속에서만 존재했었던 그 점괘가 뜨는 순간이 왔았다면 루미에는 깊은 생각에 빠졌을 것이다. 이건 나를 희망으로 이끄는 흐름일까? 아니면 나를 불행으로 유혹하는 표식일까? 고민끝에 루미에는 결국 차게 식어버린 찻잔을 내던져 깨트려버리곤, 얼어버린 얼음 두어덩이를 녹여 다시금 찻물을 끓여냈겠다.
추억이 멈춘 고요한 무덤가로 피곤한 몸을 기대는 라이레이도, 성에가 잔뜩 낀 유리창에 대고 부질없는 입김을 호오 호 불어보는 루미에도, 강하지만 가끔은 혼자 울기도 했겠지. 듣는 이 하나 없을 것이 분명했지만... 남겨진 최후의 존재여서 무너지면 안 되는 그녀들은 차마 애들처럼 두 팔 두 다리를 뻗대가며 울지는 못했겠지. 사명으로 지켜야하는 것들과 의지로 와락 안아든 것들, 그것들을 위해 험난한 운명 위로 기꺼이 올라탄 그녀들의 짐들은 무릎이 푹푹 꺾일 만큼이나 너무해서. 그 중량이 거의 말라버린 눈물샘의 마지막 틈새마저 짓눌러 막아버렸을 거 같아서.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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